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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월용_이상미_정규옥_한선희展   2012_1128 ▶︎ 2012_1212

초대일시 / 2012_1128_수요일_06:00pm

기획 / aA CAfe & Gallery_동덕여대 회화과 서양화전공

관람시간 / 12:00pm~11:30pm

aA CAfe &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55번지 B1 Tel. +82.2.722.1211

놓치고 빗나가기 ● 젊은 작가 네 명이 모였다. 전시제목이 말장난을 의도한 듯, 이들은 모두 Miss들이다. 유독 Miss들에 대한 정서적인 압박이 심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고스란히 짊어지고도, 이들은 쎄지거나 거칠어지지 않으면서 묵묵히 자신들의 삶과 정신을 예술이라는 툴(tool)로 가늠해 보려는 미시적인 혜안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방식은 요즘 미술의 스마트한 '개념'들 사이에서 모종의 다른 온도를 지니고 있다. 이는 동력장치의 인위적인 온도인 과도한 뜨거움이나 혹은 기계적인 차가움 같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유기체가 발하는 미열과도 같다. vb 외부로부터 침입한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살아 있는 것들을 열나게 한다. 이것은 문제를 발견하고, 질문하고, 의미를 찾아 헤매는 분주한 진행형으로의 과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실제로 네 명의 작가들은 명료한 자기의식을 완성한 자들이 가진 특유의 고집을 경계한다. 오히려 사물의 흔들리는 상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미동에 자신의 리듬을 맞추며 그 '중간상태'를 즐긴다.

노월용_between17.18.19._캔버스에 잉크 프린트, 아크릴채색_100×65.3cm×3_2011

노월용의 작품에서 읽혀지는 의미의 프로세스는 상당히 단순하고 결과물은 패션 적이다. 그의 작업은 언뜻, 나무로부터 시작해 기하학의 추상으로 발전하는 몬드리안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노월용의 작품 역시 나무라는 유기체의 입체감을 이차원의 패턴으로 귀결시키는 과정을 거치지만, 자연으로 비유한 거대한 담론을 소화하는 인간의 평면성을 겸손하게 마주하고 있다. 여기에는 작가가 도출해 낸 결론적인 명제 보다 스스로를 향한 의문이 내포되어있다. 작가는 언제나 자연으로 온전히 흡수되길 갈구하는 자아와 그것을 장식화 해서 소유하려는 자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몬드리안의 나무는 색면으로 추상화 되면서 거대한 의미를 생성했지만 노월용의 나무는 평면으로 고착된 후에도 그림자처럼 어른어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큐브라는 다른 차원의 화면이 등장한다. 작가의 나무와 그의 사고의 평면성이 사뭇 다른 입체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상미_포착된 일상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9

이상미의 실 작업은 동시대의 다른 실 작품들에 비교해 건조해 보인다. 그건 두툼한 면사가 가지는 뻣뻣하고 수수한 질감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실을 그 본연의 쓰임새인 꼬거나 짜는 방식으로 다루지 않고 나란하고 촘촘히 붙이는 방식으로 다소 생뚱맞게 사용하는 것 역시 실 작업 특유의 따듯함을 거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의도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이상미의 실은 끊임없이 흐르지 못하고 분절되어서라도 사물을 감싸 안기 위함이다. 덕분에 흔해 빠진 접이식 의자와 여행용 가방은 세심하게 붕대에 감겨진 듯 초현실적인 사물이 되었다. 캔버스 위의 수많은 색깔들은 비워졌고 우리의 무거운 일상은 느닷없이 텅 빈 풍경이 되었다. 노동집약적으로 촘촘히 쌓아 올린 실의 결들은 일상에 대한 기이한 촉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미지근해 보이나 제법 따뜻한, 딱딱한 것 같은데 보송보송한, 메마른 듯 느껴지나 촉촉한, 그런 아이러니다.

정규옥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1

정규옥의 작가노트를 보면 생각의 흐름이 의도적으로 파편화 되어있다. 예컨대, '절대적인 것, 있음, 무의식적 비상, 산책, 고립과 고독, 충족(과 결핍, 혹은 과잉), 환상, 꿈과 실천, 나무, 예술'등, 의미들 사이의 특별한 연관성이 없고 짧은 단문 형식의 기록들이 나열되어 있다. 어느 한 주제에 더 비중을 두거나 어떤 생각이 유독 도드라지지도 않는다. 정규옥의 의식은 붙잡히기를 거부하고 유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작업에서도 드러나듯, 유화의 강렬하고 표현적인 터치가 겹치기를 수없이 반복했음에도 섬세한 투명도를 간직하고 있다. 아마도 이 투명성과 겹침의 흔적들이 작가가 말하는'눈을 반쯤 감고 바라보는 세계'가 아닐까 싶다. '눈을 반쯤 감은 채 중심을 똑바로 바라보면, 갑자기 입체감, 질량, 색채, 촉감, 거리, 시간을 무시하는(...) 새로운 질서와 만나게 된다.'

한선희_검은숲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2

네 명의 작가 중에 '흔들림'에 가장 익숙한 작가는 한선희 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물의 미동에 본능적인 끌림이 있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흔들림을 꾸준히 기록함으로써 반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선희는 집, 식물, 의자와 가구 등 개인의 일상과 사물을 그림의 소재로 쓴다. 색감으로 가득한 드로잉 곳곳에 수없이 문질러댄 흑연의 반들반들한 표면과 꾸준히 써내려간 일기와 시의 빼곡한 글자들이 존재의 떨림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최근에 이렇게 기록했다. '빈 땅에 잡풀이 자라나 관목림(灌木林)을 이루고 양수림(陽樹林)에서 다시 음수림(陰樹林)으로 숲이 변하는 과정은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천이(遷移)이다. 내가 만약 지금 관목림이라면 당분간은 관목림으로 지내면 되는 것이다. 별 도리가 없다.' 이번에는 자신의 글들이 관객들에 의해 해체되고 새로운 텍스트로 재조합되게 하는 관객참여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타인에 의해 해체되길 기꺼이 감수하고 새로운 조합을 기대하는 한선희의 시도가 이제 양수림으로 이행되는 숲의 모양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노월용_between cube / 이상미_삼거리 / 정규옥_untitled / 한선희_마음다지기
노월용 / 이상미 / 정규옥 / 한선희

전시 제목으로 쓴『miss』는 '놓치다'라는 의미의 동사이다. 여기에는 목표를 간만의 차이로 놓치거나, 화살이 과녁을 살짝 빗나간 것 같은 아쉬움이 내포되어있다. 목표에 완벽하게 도달한 사람은 다시 길을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빗나간 아쉬움은 다시금 활을 쏘게 하는 동력이 된다. 이번『miss』展에 초대 된 네 작가는 '놓치고', '빗나가기'를 고유의 에너지로 쓰는 이들이다. 무리하게, 단숨에 도달하려 하지 않고, 매일 매일 진행형으로 진화하는 것을 의미로 삼는 관목림들처럼 말이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관목들을 배양하고 있는 음수림들인지도 모를 일이다. ■ 조소희

Vol.20121128j | mis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