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 刹那 A Moment

김수학展 / KIMSOOHAC / 金洙學 / sculpture   2012_1128 ▶︎ 2012_1204

김수학_찰나-4_알루미늄_96×98×45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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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82.2.734.7555/+82.2.722.9883 www.topohaus.com

찰나 또는 영혼의 집 ● 그는 작업실 2층에 있는 거실에 앉아 가끔 창밖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을 흩뿌린다. 물은 일순간 허공에 무수한 물방울의 흐름으로 선명한 줄기를 이루며 멈춰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윽고 그것은 순식간에 땅위로 떨어져 사라지지만 그 찰나의 형상은 작가의 망막에 살아있는 빛의 줄기와 가지들로 남는다. ● 딱딱한 알루미늄 금속편들이 그의 손에 쥔 토오치 불꽃 끝에서 액화하여 방울방울 흘러 내린다. 금속의 물방울들은 하나하나 서로 붙여지기도 하고 흘러내리며 이어지다 가지 끝에서 맺어지기도 한다. 허공에 물을 뿌리는 한 번의 손짓에서 줄기로 태어나는 물의 흐름이 긴 시간을 통해 작가의 손끝에서 다양한 형상으로 재현된다. 금속 방울들이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처럼 서로 손을 뻗어 가늘고 긴 선형으로 연이어지는 줄기의 행렬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 중에 더러는 마디마다 이슬방울처럼 알알히 맺혀서 화관의 형상을 이루기도 한다. 이 모든 형상들이 서로 순간적으로 이루는 인연의 띠처럼 하나로 연결된다.

김수학_찰나-16_알루미늄_59×77×32cm_2012
김수학_찰나-3_알루미늄_75×160×56cm_2012

그에게 순간은 일순간에 머물렀다 사라지는 한 정점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특히 그 찰나는 순식간에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주기에 그것은 오히려 전체이다.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전체라는 줄기에서 솟구쳐 오르는 어떤 시적이고 놀라운 한 순간이야말로 전체를 함축하고 포괄한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오랫동안 긴 시간과 짧은 순간을 역설적으로 동일시하는 동양적 사유에 익숙하다. 김수학에게는 한 순간은 전체에의 경배이다. 그는 씨앗을 한참 들여다보거나 담쟁이 넝쿨이 자라는 것을 오랫동안 관찰하곤 했다. 한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과거의 모든 생장 정보를 응축하고 있고 동시에 미래의 커다란 성장을 함축하고 작게 웅크리고 있는 씨앗이나, 느린 움직임으로 자라나는 기나긴 꿈을 꾸는 식물의 뻗어나감이 순간의 직관을 통해 하나의 흐름으로 보일 때, 그 순간은 전체를 보여주며 그때의 시선은 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미시적이며 거시적인 우주에의 경배가 된다. 그렇다면 그는 지극히 깊고도 커다란 눈을 가진 전지자의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리라.

김수학_찰나-15_알루미늄_46×57×38cm_2012
김수학_찰나-5_알루미늄_86×148×51cm_2012

그는 산속에 외따로 지어진 작업실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사방이 산과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기에 그가 늘 마주치고 보게 되는 것은 자연 자체이다. 자연은 서서히 보이지 않게 움직이지만 어느 샌가 현저하게 변하여 있다. 점점 자라서 크기와 외양이 달라지고 날씨와 절기의 변화에 따라 색이 바뀌면서 자연은 그 변화의 모든 낌새를 사람의 눈에 직접 들키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어느날 문득 감쪽같이 모습이 바뀌어 있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이 변화는 전체의 맥락이며 바로 순간의 비밀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는 각각의 순간을 내밀하게 간직하고 있다. 전체는 순간이 되고 그 순간의 비밀이 그의 손끝에서 불에 의해 녹아 흐르는 금속의 물성(物性)을 따를 때 그것은 물줄기의 흐름의 형태로 재탄생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물줄기의 선을 되살리고자 하는 무수한 수정과 집중을 요하는 오랜 불의 손질을 통해 더욱 육화된다.

김수학_찰나-17_알루미늄_72×56×38cm_2012

이렇게 이어지는 노동의 시간과 의지는 한발 물러서서 보면 하나의 기나긴 순간이 된다. 그는 이러한 순간을 다시 하나의 씨앗으로 은유한다. 지난 전시에서 그가 보여준 작업들은 씨앗을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씨앗이야말로 순간을 사유하기에 가장 적절한 화두이다. 씨앗은 곧 기나긴 순간이며 확산되는 줄기의 주름(pli)이다. 들뢰즈(Gilles Deleuze)에 따르면 주름, 곧 접혀있음은 변곡선 안의 변곡점과 같다. 그것은 모든 지나간 움직임의 기억과 장차 일어날 폭풍같은 변화와 펼쳐짐의 예지이며 핵이다. 이러한 주름으로서의 씨앗은 태고의 시원으로부터 꼭꼭 간직한 내밀한 이야기를 외부에 펼쳐서 오롯이 전달하고자 하는 우주적 고리와 소통의 의미이기도 하다. 찰나적인 순간성 속에 그것은 전체를 잉태하고 있다.

김수학_찰나-7_알루미늄_128×128×47cm_2012

흔히 삶(生)은 순간, 곧 찰나와 같다고들 하지 않던가. 이때 순간은 다시 한번 씨앗이 된다. 그가 1999년의 첫번째 전시때 환기시킨 티베트의 지혜에 따르면 모든 삶의 순간은 환생이다. 삶이 순간으로 재 응축되고 새로운 씨앗이 되어 다시 피어나는 것이 환생 아닌가. 이 환생은 지속되는 정신의 순간이다. 그의 정신은 그가 몰두하는 오랜 시간의 노동 속에서 하나의 순간이 되는 금속의 흐르는 줄기 속으로 아주 서서히 깃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매순간 이어지는 작업의 연속이 종국에는 결코 끝나지 않는 기나긴 순간인 뫼비우스의 띠를 이루며 또다른 삶으로 환생하게 되지 않을까. 마치 다음의 생애에 우리가 어떻게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처럼 그는 쉬지 않고 손끝으로 이승과 다음 생의 몸집을 이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술가로서 매번 자신의 영혼의 집을 선택할 수 있고 또 그것을 누에가 다음 차원의 생으로 변태하게 될 자신의 고치를 짓듯이 어렵지만 묵묵히 짓는 일은 행복한 작업일 터이다. 수 많은 손질들, 끊임없는 노동을 요하는 작업, 몸을 움직여 벌이는 고단한 사유가 작업이 되는 드문 미덕을 이 작가는 살고 있다. ■ 서길헌

Vol.20121129g | 김수학展 / KIMSOOHAC / 金洙學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