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갈탄 A Blank

정보경展 / JUNGBOKYUNG / 鄭補瓊 / mixed media   2012_1203 ▶︎ 2012_1214

정보경_Missile Project_무지개 홀로그램_100×90cm_2012

초대일시 / 2012_1208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8:00pm

갤러리 175 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매체의 배반: 불안전의 아이콘인 미사일편재(ubiquitous) 미사일은 어디에나 있다. 구름 위 허무맹랑한 좌회전 금지 구간에도,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스키어의 눈앞에도. 차선 통제용 러버콘(rubber cones)을 모아 놓은 위로, 바위 위에 놓인 빈 의자 위로 미사일이 수직강하한다. 출구가 있는 계단 아래로 도망치는 사람을 쫓아가는가 하면, 콜로세움 특설무대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었을 법한 자리에 떡하니 올라타 있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19금짜리 노출로 스스로 미사일이 된 사내. 정보경의 작품들에는 고유 제목이 없다. 「미사일 프로젝트」 연작, 「미사일 프로젝트-MDL」 연작, 그뿐이다. 유일한 예외가 1부터 4까지 연번을 붙여 놓은 「인체공학적 미사일」 미니시리즈다. 그러니 작품을 언급하려면 그것들의 재현적 내용을 기술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많지 않은 전시작들을 전시장 한가운데 서서 두어 번 휘이 둘러보고 나면 키워드만으로도 식별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불러 주기 전에는 제 나름의 의미만 있을 뿐 하나의 몸짓들에 불과할 저것들에, 우리가 이름을 붙여 주자. 구름 위로 솟은 좌회전 금지 표지판 너머, 호라이즌 위로 미사일이 날아오른대서 「좌회전 금지」. 운해(雲海)에 구멍을 내고 솟은 스키점프 선수 앞에 미사일 무더기가 미사일 모양으로 편대를 이루어 돌진한대서 「구름 스키」. 풀밭 우묵한 데 모아 놓은, 빨간 몸체에 흰색 테를 한 여섯 개 러버콘(그중 하나는 지레 넘어져 있다) 위로 파란 하늘에서 미사일이 수직강하하는 「RABAKON」. 그렇게 「의자」, 「비상구」, 「콜로세움」, 「자유의 여신상」. 그리고, 작은 탁자 위 지구본과 구석에 접이식 사다리가 놓인 빈 방에 미사일이 유리창을 깨고 난입한 듯 유리조각이 널부러져 있고, 미사일은 시치미 뚝 떼고 액자 안에 들어앉은 「난입」, 등등.

정보경_Missile Project-MDL_반사 홀로그램_22×131×5cm_2011

개가 침을 흘리면 파블로프의 제자들은 종을 친다던가? 프로이트를 상식으로 배우고 외운 우리도, 미사일 같은 길고 뾰족하고 공격하는 물건을 보면 조건반사적으로 페니스를 떠올린다. 심지어 미사일도 분출/폭발한다(단, 분출은 페니스처럼 앞이 아니라 뒷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이래저래 「인체공학적 미사일」 앞에 서면 시선이 자연스레 '미사일과 유비적으로 닮은 그곳'을 향하게 마련. 피사체가 된 작가도 이것을 예견한 듯 친절하게 거웃 제모까지 해 놓았건만(1번), 예쁘긴 해도 결코 튼실하다고는 할 수 없어 실망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체-미사일은 자학하듯 자신을 옥죄고(2번), 발기한 채 옥죄인 페니스를 연상시키듯 머리부터 붉은 물을 뒤집어쓰고(3번), 마침내 알루미늄 포일로 자신을 생선구이처럼 밀봉해 버린다(4번). 사실 이 불발은 '격발 직후 총구를 떠나지 못하고 얼어붙은' 권총 탄두에서, 그리고 발포비닐(속칭 뽁뽁이)로 칭칭 감은 미사일에서 이미 불길하게 예견된 바다. 이렇게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데도 끝내 터뜨리고 발산해 버리지 못하는 불길한 뭔가가 정보경의 미사일 시리즈 곳곳에 심어져 있다.

정보경_Missile Project_잉크젯 프린트_80×100cm_2012

편집(paranoiac) ● 장난감 같은 미사일에 이어 이번엔 병정놀이다. 여덟 명의 꼬마병정 홀로그램이 한 명의 실물 꼬마인형과 대치하는 「8 대 1」은 전봇대에 감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공익광고 「뿌린 대로 거두리라」 탓이다. 예술은 삶을 반영한다지만, 거꾸로 삶이 이렇게 예술을 반영하기도 한다. ● 꼬마병정 시리즈엔 미사일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많지만, 그래도 연작 제목은 엄연히 「미사일 프로젝트-MDL」로 '미사일'을 담고 있다. '미사일 없는' 미사일 프로젝트의 논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우리는 불안전하다, 불안전은 미사일이고 군사적 대치다, 군사적 대치는 군사분계선(MDL)에 있다'-이른바 조응(correspondance)의 삼단논법이다. 지구상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 모두는 불안전하다고 작가는 여러 기회에 강변해 왔다. 그러니까 작가에게 미사일은 불안전의 기표이다. 군사적 대치의 환유인 꼬마병정도 불안전의 기표이다. 그러니까 꼬마병정은 불안전이라는 이상한 동일률이라니! 그러나 이것은 작가의 억지일 뿐이다. 앉거나 서서 총을 겨누거나 수류탄 투척 자세를 취한 병정인형들과 군견들, 예비군 훈련장의 후덕한 인민군 병사 표적까지 모두, 어른 관객들에겐 앞의 미사일들과 마찬가지로 귀여운 미니어처일 뿐이다. 하지만 작가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MDL은 군사적 군사적 대치고, 군사적 대치는 불안전이고, 불안전은 미사일이니까. 프로젝트의 미사일(과 꼬마병정)은 불안전의 기표가 아니라, 거기서 글자 하나만 바꾼 작가 내면의 불안 또는 불안정의 기표는 아닐까? ● 미사일이 시각적 형태가 아니라 의미, 그것도 함축적 의미(connotation)만 갖는 아이콘으로 채용된 작업들에서 조형의식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정보경의 작품들이 은근히 예쁜 화면, 재미있는 내용을 지향하는 듯해 있으면서도 첫 느낌에 어딘지 휑하고 중심 없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정보경의 작품들을 작가의 드러난 의도(불안전)와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불안정), 조형적으로 엉성하다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시덥잖게 평가할 수도 있다. 작가 자신 자기 작업의 '조형성'(정확히는 조형의식)과 '상호주관적 메시지'를 변명하는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를 버리고 요소만, 형상을 버리고 아이콘의 의미만 취하는 편집증적 작업에서, 애당초 있지도 않은 상호주관적 메시지와 조형적 고민을 추출하려는 것이 과연 온당할까?

정보경_Missile Project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12

편면(single-sided) ● 정보경의 미사일 작업은 페인팅, 홀로그램, 사진, 입체 할 것 없이 만화적이다. 만화적 설정과 형상이라도 페인팅들엔 시늉이나마 원근법과 음영이 들어가 있는데, 정작 주인공인 미사일만은 예외다. 「미사일 프로젝트」 연작 페인팅 중 미사일이 원통형으로 보이게끔 음영을 넣은 것은 초기작인 「좌회전 금지」와 「의자」, 이렇게 둘뿐이다. 나머지 페인팅들에서, 화면 내 다른 요소들은 어떻게든 입체로 보이게 하려는 장치를 해 놓았으면서도 미사일만은 하나같이 평면이다. ● 「미사일 프로젝트-MDL」 연작의 입체와 홀로그램에서도 미사일은 원통형이 아니라 아크릴 판을 대충 미사일 윤곽으로 오려 만든, 윤곽과 두께(라기보다는 얇음)만으로 존재하는 미사일이다. 홀로그램이란 매체가 본래, 가짜 입체를 더욱 입체같이 보이도록 하는 트릭 아니던가? 그러나 정보경의 홀로그램 속 미사일들은 깊이만을 부여받았을 뿐, 낱낱의 형태는 아크릴 판의 얇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것은 매체의 역량에 대한 심각한 배반행위다. 어차피 불안전/불안정의 아이콘으로 변질된 이상, 미사일-로-보이기만 하면 될 뿐, 미사일-같이-보이기는 더 이상 작가의 관심사항이 아니라는 외침이다. 그 대신, 같은 불안전의 기표이되 아직은 미사일처럼 아이콘화지 않은 병정인형 시리즈에서야 비로소 홀로그램은 입체의 환영을 제공하는 역량을 인정받는다. ● 최신작들에서 미사일들의 사이즈가 커진 것이 심상치 않다. 그러나 커진 미사일들도 여전히 온전한 미사일은 아니다. 「콜로세움」과 「자유의 여신상」에서, 미사일만은 여전히 원통형 입체로 그리려다 말았고, 위치도 자세도 어딘지 어정쩡하다. 그림이나 아크릴판 아닌 온전한 원통형 입체 미사일이 처음이자 유일하게 등장하는 것은 「뽁뽁이」에서이지만, 그나마 우리가 멋대로 붙인 제목 그대로 뽁뽁이로 칭칭 감싸 놓았다. '위장된 불안정인 불안전'의 아이콘으로서, 그 자체가 불완전/불안정한 모습으로, 그렇게 미사일은 어디에나 있다. ● 그나저나, 앞에서 생선구이 같다고 한 「인체공학적 미사일」 4번의 실루엣이 무엇을 닮아 보이지 않는가? 유선형 몸체에 꼬리지느러미 대신 미사일 꼬리날개! 「미사일 프로젝트」는 미사일과 MDL의 병정인형을 넘어 어뢰와 인어 버전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작가를 위한 변명거리만 하나 만들어 주면 된다. 어뢰는 수중 미사일이고, 인간인 동시에 물고기이면서 인간도 물고기도 아닌, 물도 뭍도 제 집이 아닌 인어는 그 자체가 불안전 아니냐는.

정보경_Missile Project_캔버스에 유채_81×117cm_2012

정보경의 「미사일 프로젝트」는 다양한 매체로 된 미사일 아이콘을 통해 불안의 주관적 형상화를 시도한다. 편집증적으로 반복되는 미사일 형태에다 작가가 가공해 낸 맥락을 결합한 방식들은 적어도 작가의 의도상으로는 '안전에 대한 불확실성'을 나타낸다. ● 미사일이 위치한 맥락은 하나같이 편안하고 고요한 환경들이다. 즉, '보편적 안전'의 이미지들이 파괴의 상징인 미사일과 결합한 결과 안전과 불안이라는 대립적 성질이 서로 마찰하면서 하나의 프레임 안에 통합되어 형상화된다. 작가 자신 남북의 대립, '88세대'와 기성사회와의 마찰의 교점에서 타성처럼 살아가면서, 내면적으로 안전에 대한 불확실성과 안전 불감증 사이의 마찰을 역설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 이번 전시는 고전적 매체인 페인팅과 드로잉, 광학적 매체인 사진과 홀로그램, 개념의 산물인 오브제라는 세 가지 매체를 통해 표현방식의 확장을 탐구한다. 한 가지 매체에만 전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에 대한 항의인 동시에, 한 가지 매체에 안주하지 못하는 작가의 불안정한 내면의 반영이기도 하다. ■ 정보경

Vol.20121130k | 정보경展 / JUNGBOKYUNG / 鄭補瓊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