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산수 enjoyable Mountains

유혜경展 / YUHAEKYUNG / 劉惠鏡 / painting   2012_1205 ▶ 2012_1211

유혜경_유쾌한 산수I_장지에 채색_112×29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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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120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 SEOUL ARTCENTER GONGPYEONG GALLERY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번지 공평빌딩 1층 Tel. +82.(0)2.3210.0071 www.seoulartcenter.or.kr

"유쾌한 산수" - 해탈(解脫)해선 안되는 현대인(現代人)의 유쾌한 산수 ● 유혜경 작가의 산수화는 차경(借景)이다. 옛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창밖의 세상을 빌어 정신을 노닐게 하고 나아가 창밖의 세상을 건물 내부로, 방안으로 끌어들여 그 풍경을 즐기니 바로 차경이다. 작가의 산수화는 와유(臥遊)다. 그림 속 작고 얼굴 없는 사람들의 산행(山行)을 따라 나의 눈의 움직이고, 나의 마음이 유람하니, 옛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는 작가의 산수 가운데 와유한다. 더구나 작가의 산수 가운데에서 나는 지금 현대의 유람을 즐긴다. 옛사람들의 산수 유람과는 다르게 나는 암벽을 오르며, 한 줄 로프에 매달리며 이제 내 마음 속 산수에서 차오르는 숨결에 희열한다.

유혜경_유쾌한 산수_장지에 채색_110×110cm_2012

그런데 뭔가 다르다. 나는 작가의 산수를 창 너머에서 본다. 차경이야 본래 창밖의 세상을 끌어안는 것이니 창 너머에서 보건, 창 너머를 보건 결국 같은 일일 것이다. 그런데 다르게 느껴진다. 나는 산수를 "즐기는 사람"을 작가의 그림에서 보고 있다. 와유일진데 내가 그 자연으로 들어가 "노니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노니는 사람"을 나는 창 너머에서 보고 있었다. 오히려 현대적 산행의 모습이, 현대의 와유가 과거의 와유보다 서글픈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마음속에서조차 적극적이지 못한 것이 현대인의 와유인지…. 그런 것이 현대인인지, 바로 우리인지…. 그런 생각을 하니 차경의 매체인 "창(窓)"조차도 나와 세상을 분리하는 "장벽"으로 느껴진다. "정신적 노님"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세상인가?

유혜경_live in a garret_장지에 채색_85×160cm_2012

그런데 그런 생각 속에 다른 작품들도 읽혀져 다가온다. 작가는 창을 넘고 있다. 창틀에 매달린 사람들은 창을 넘어 산수로 들어간다. 이제 창은 사라지고 작가는 자연 속으로, 산수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작품 「유쾌한 선물」에서 바위와, 그 바위에 매달린 사람과, 작가와 그리고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없다. 이제 나는 나무에서, 자연에서 어린 시절 함께했던 종이 집을 지어 놓고 한가로이 유람한다. 나무에는 상자들이 달려있다. 이제 상자 속에 꼭꼭 담아두었던 나의 정신은, 나의 자연은 밖으로 뻗어 나온다. 나는 와유한다.

유혜경_climbing_장지에 채색_30×30cm_2012

그런데 나무는 아직 초록으로 피어나지 못했다. 그림 속 작은 사람들은 여전히 얼굴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나무에 매달린 저 상자는 어느 순간 다시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다시 꼭꼭 싸맨 후, 스스로를 닫아버릴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작품에서, 그러니까 작가의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작품을 보고 있는 나의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작가의 "상자"는 거기서 나오면서, 거기로 들어가는 양자의 모습을 모두 보여준다. 다시 서글픔일 뿐인지….

유혜경_conservatory_장지에 채색_110×110cm_2012

또 다시, 그런데 그 상자가 있어 나는 진심으로 와유할 수 있다. 아직 나는, 우리는 해탈(解脫)해서는 안되니까. 내 마음속 정신을, 자연을 꺼내놓고 그 상자를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져 버리기엔 지금의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남아야만 하는 그런 존재니까. 아직 상자를 매달고 있으면, 그러면 된 것 아닐까? 다시 닫힌 상자는 다시 열수 있으니까. 가끔씩 상자를 열어 정신을, 자연을 풀어놓고 자연을, 자유를 즐기다가 때가 되면 다시 상자 속에 고이 접어 넣을 수 있다면, 그렇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러면 된 것이지…. 여전히 그 상자를 간직한 채로…. 상자는 언제 닫혀버릴지 모를 "두려움의 상자"가 아니었다. 가지고 있어 행복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선물상자"였다.

유혜경_유쾌한 선물I_장지에 채색_130×76cm_2012

그래서 유혜경의 산수는 "유쾌한 산수"다. 작가의 산수화는 "유쾌한 산수화"이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허용된, 혹은 스스로 규정한 진실(眞實)한 "유쾌함"이다.

유혜경_유쾌한 선물_장지에 채색_130×70cm_2012

언젠가 우리가 "해탈"할 수 있다면, 상자를 아무 망설임 없이 쓰레기통에 집어 던질 수 있다면, 그 때는 또 다른 유쾌한 자연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것이 옛사람들이 이야기하던 진정한 자연이고, 자유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바로 지금의 우리에게 진심으로 "유쾌"할 수 있는 유혜경의 산수화에서 나는 진실하게 "유쾌한 와유"를 한다. 작가가 창조해낸 "유쾌함"은 세상을 부여잡고 있는 손을 절대 놓을 수 없는, 여기 우리들의 소극적 유쾌함이라 할지라도, 그 유쾌함은 지금 우리들에게 부담되지 않는, 마음 편안한 정신의 자유를 선물한다. 이제 작품 「climbing」속 매달린 저 사람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인지, 집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들어갔으니 나오는 것이고, 나온 것이니 들어가는 것일게다. 신산한 삶에서 잠시 벗어나 유쾌한 와유를 즐기고, 나는 다시 웃으며 삶속으로 뛰어든다. ■ 계영경

Vol.20121205j | 유혜경展 / YUHAEKYUNG / 劉惠鏡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