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Generation

2013 공모당선展   2013_0102 ▶︎ 2013_012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7:00pm

에이블 파인 아트 엔와이 갤러리 서울 ABLE FINE ART NY GALLERY 서울 종로구 화동 127-3번지 1층 Tel. +82.2.546.3057 www.ablefineartny.com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오직 국제적 잠재력을 기준으로 선정된 10명의 작가들과 함께 2013년 새로운 한 해를 여는 공모 당선전 New Generation展을 준비 하였습니다. 약 한달 동안 열릴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이미 본인의 작업관을 구축 한국 미술계 전반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보다 더 나아가, 현대 미술의 중심 뉴욕에서 세계 미술 시장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한국의 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선발대의 일원으로서 Able Fine Art NY Gallery와 함께 국제무대에 첫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 드립니다. ■ Able Fine Art NY Gallery

강덕봉_Disguise 16_Pvc 파이프, 우레탄 페인트_25×110×7cm_2012

Part 1 ● 나의 작업은 관계(關係)와 소통(疏通)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아니하든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가고, 또한 그 속에서 소통하며 살아간다. 관계속의 소통, 소통을 통한 관계, 이것은 우리의 본질을 나타내는 그 어떤 말보다 가장 중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현대인(現代人)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인하려 하며, 피상적인 인간관계 안에서 인위적인 구조가 복잡해 질수록 스스로를 위장하여 불투명하게 감추어 버린다. 즉, '나는 누군가인가' 와 같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지는 나'를 통해 정립해 버리고, 자신이 가진 본질은 외면하는 것이다. 본질을 숨기고 타인을 위해 만들어낸 이미지를 발견 했을 때 우리의 자아는 스스로에게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을 느낀다. 나아가 존재론적 괴리에 빠져들어 비진정성으로 인한 작은우울함에 신음하기도 한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빈 공간, 채워져 있으나 비워진 형상… 이러한 것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공허한 모습을반영하고 있다. 결국,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존재감의 상실은 점점 더 공허함만을 가중시킬 뿐,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지 않으면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현실에서 그저 빈껍데기 안에 스스로를 숨긴 채 박제된 이미지로서 힘겹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 강덕봉

김기석_Corner inside-trespass_130×162cm_2011

대도시가 기동 (機動)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의 흐름이 계획되는데, 나에게 도시인의 움직임은 그 곳으로 유입되는 그 흐름처럼 느껴진다. 이 때 개인은 온전한 개인의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는데, 이러한 현대인의 모습은 나의 관심을 끌어왔다. 아마도, 과거 조직생활에서 형성된 나의 기억이 그와 닮아있으며, 이후로도 그 기억은 꿈과 같은 무의식 속에 침습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것은 거대 시스템의 부속으로서만 존재 가능한 나와 끊임없이 그것을 부정하는 나 사이의 아이러니이다. ● '구석' 시리즈는 그러한 체제 하의 개인성의 위축과 그 심화로 인해 변질하는 개인적인 어떤 것에 대한 작업으로서, 그 의미는 기호적 이미지와 상징적 표현을 통해전달된다. 예를 들어, 3개의 축은 다중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바슐라르의 구석진공간을 떠올리면, 내 작업의 공간은 아마도 사회화되지 않은 채, 도시 안에 비도시적 뉘앙스로 남겨진 개인성의 도피처일 것이다. 하지만 문명화, 사회화가 강화되면 그곳은 콘크리트가 빚어내는 도시 공간의 결정(結晶)이 될 수도 있다. 이 사이에서 유발하는 불안감, 우울함 등은 늘 나의 염두에서 조형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부학적 표현과 해체하려는 반해부학적 표현의 이율배반적 그리기는 그 예일 것이다. 간헐적인 시멘트 질감 위로 쌓인 상이한 농도의 물감, 선(線)적인 드로잉 조형이나 물감 던지기와 같은 조형 방식도 주제와 관련된 생각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단순화 되어있는 기하학적 도상과 캔버스 위의 복잡한 질감은 시각적으로 강한 대조를 이루면서도, 그것이 표방하는 내용을 환기한다. ■ 김기석

이지은_기억하기_E.V.A_90×210×13cm_2011

존재 - 기록하기 ● 존재한다는 것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총괄이며 시간과 공간 안에서 성립된다. 기록한다는 것은 존재 했었음을 나타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라짐은 또 다른 그리움으로…" 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라졌다. 사소하게 생각했던 것이 없음을 통해 소중한 존재감을 알린다. 어느 순간 변해있는 주번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이미 지나가버린 수 없이 많은 시간들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떠올려 본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변하고 사라져 간다. 인간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보존하며 지나간 시간에 대한 역사를 기억하고 새로운 시대의 발상으로 이어간다. 수집이나 기록에 의해 보여지는 지나간 흔적들은 진열장에 놓여져 눈으로만 그 가치를 바라보고 보여짐으로 지나간 시간의 모든 것을 말하게 된다. 지금의 모습도 지나간 시간 속에 옛것과 같이 기록으로서 남겨지게 될 것이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시각적, 정신적 경험을 통해 사유하고 자연의 순리적인 시간 속에 머물며 공간에 의해 인식되고 기록되어 진다. 생명이 있거나 없거나 이 세상에 실존하는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진다. 사라짐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또 다른 에너지로 또 다른 그리움으로 남겨진다. 초가 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초는 연소되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면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이 공기 중에 기체가 되어 떠돌고 있는 것인가?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고,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존재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이러한 생각은 존재에 대한 집착인가? 이로부터 나의 작업은 사라지기 전 찰나의 시간을 붙잡으며 사진촬영을 통해 기록하기로 시작한다. 사진으로 기록된 작업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흔적으로 정하며 흔적의 이미지 또한 제거하는 방식을 통해 부재의 네거티브 형태로 표현된다.결국 있음도 있음이 아니고 없음도 없음이 아닌 존재에 대한 표현이 나의 작업이다. ■ 이지은

장입규_Flughafen in Duesseldorf_사진, 종이_125×190cm_2012

이번 작업은 공간과 우리의 시지각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인식의 차이에 대해 고민한다. 작업에서 나타나는 공간을 먼저 설명하면 그 공간은 수많은 장면들이 연결되어 나타나는 장면이다. 그 공간들은 낱장으로 보자면 실제공간이지만 그것들이 함께 연결되는 순간 더 이상 그러한 공간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 공간은 실재보다 더 실재일 수 있다. 그것은 실제공간의 어느 특정위치에서 사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그 연결된 장면을 변형시켜 평면의 사진이 아닌 사진이라는 매체를 오브제로 사용, 사람의 시지각을 교란시키는 입체적인 작업이 된다. 정면에서는 그 본연의 장면을 볼 수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분열되고 사라지고 왜곡되어 원래와 다른 장면들이 생성된다. 그것은 감상자가 작품을 보는 위치에 따라 마치 조각과 같이 수많은 새로운 장면이 생성된다. 왜곡된 시지각 현상을 우리는 환영 또는 환각(Illusion)이라 한다. 나는 이 환영을 통해 감상자에게 새로운 시각과 자세의 변화를 유도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더 자유롭고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음을 희망한다. ■ 장입규

캐스퍼 강_DISILLUSIONMENT 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스크린 잉크_65×90cm_2012

캐스퍼 강(Casper Kang)의 작업물은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장난치지만, 이를 그저'장난기 많은' 것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흔히 디지털 프린트 작업으로 쉽게 오해 받는 그의 그림들은, 실제로 그림의 질(quality)에 대한 그의 완강한 기준을 반영하는 아주 길고 힘든 과정을 통해 꼼꼼하게 탄생된다. 그는 의도적으로 아주 평면적인 미학(aesthetic)을 추구하며, 부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향력 있는 깊이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놀라운 효과를 만들어 낸다. (중략) 그의 시각적 영감은 대게 한국의 전통적인 민화 자료에서 비롯된다. 이런 이미지들에 대한 그의 관심은 순수하게 형식적이며, 이는 주관적이기보다 객관적이기 때문에 그 이미지들이 의미하거나 나타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철저한 비 애착(non-attachment)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것들을 가져와 선입견을 품지 않은 채 (가끔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형시키고, 강력하게 정의된 그의 개인적 미학(aesthetic) 환경에 새로운 목적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다른 시대의 문화적 맥락 안에 숨겨져 있는 이미지들은 본질적인 변화를 겪으며, 명백하게 동시대적인 그의 새로운 전 작품들(oeuvre)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들이 된다. ■ Andy St. Louis Part2

성민우_결혼_비단에 채색, 금분_162×97cm_2009

내게 처음 다가온 풀은 놀라운 번식력과 생명력을 지닌 생명체였다. 한여름 건기와 우기를지나며 한 주 사이에도 1-2m씩 자라나는 풀을 보면서 나의 생명력도 저와 같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그 이후로 풀은 내게 은유가 되고 비유가 되어 나의 삶을 보듬었다. 나의 개인적 아픔을 기록으로 남길 때도, 내 삶과 일상적인 삶들에 대한 연민과 위로가 필요할 때도 늘소재가 되어 준 고마운 존재다. 이제 나는 풀이 다른 생명체들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모습을보다 직접적이고 해석적으로 표현해내고자 한다. 그들 간의 갈등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들이 관계 맺고 살아가는 공생의 삶을 본받고 싶다. 풀은 단순히 일 년의 생을 살아가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풀의 삶을 통해 인간의 삶을 살펴보고 나의 삶을 바라보며 어떠한 관계 속에 나를 위치시킬 것인지 꾸준히 고민해 나갈 것이다. 고작 일년의 시간도 살아가지 못하는 풀이라는 소재에 집착하는 이유는 아직도 내가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많아서다. 풀에 대한 집착이 인간의 삶으로 이해되고 확장되기 위해 나는 좀 더 풀과 함께해야 할 것이다. ● 오래된 결혼사진을 바탕으로 작업된 결혼은 질경이와 달개비로 구성되어 있다. 질경이는 양지에서 잘자라는 풀이고 달개비는 음지에서 잘 자란다. 흔히 여성은 음으로 남성은 양으로이야기된다. 하지만 이 작업에서 여성은 질경이로 남성은 달개비로 표현하여 일종의 도치를 만들어 냈다. 붉은 선으로 그려진 풀 하나하나의 잎맥은 각기 다른 풀로 그려진 여성과 남성의 이미지를 엮어낸다. (중략) 양지에서 자라는 질경이는 음지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달개비는 햇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잎을 피우지만 양지보다는 음지의 서늘함을 더 닮았다. 너무나 다른 이 풀들의 교집합을 결혼이라는 형상으로 보여주고자 한 작업이다. ● 생존과 번식에 있어 솔직하고 아름다운 풀들의 욕망이 인간의 형상으로 대치되면서 또 다른 해석을 낳을 수 있다고 본다. ■ 성민우

성병희_비행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1×168cm_2012

창백하도록 하얀 얼굴은 삐에로의 두꺼운 화장과도 닮아있고, '하얗게 질린다'라는 표현에서의 하얀색과도, 창백하고 핏기가 없이 삶의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의 얼굴색과도 통해있다. 눈의 붉은 색은 울고 난후의 충혈된 눈이기도 하고, 핏발선 분노의 눈이기도, 호기심으로 집중해서 바라보는 눈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자신의 얼굴위에 두꺼운 화장을 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의 색과 대비되어 더욱 붉게 보이는, 절대 가려 질수 없는, 인간의 속 깊은 곳에 있는 살색이기도 하다. ● 손끝의 붉은 색은 상처(외부로의 내부로 부터의), 고통, 호기심등을 나타낸다. 우리는 손으로 무의식을 말을 많이 한다. 이 그림에서의 손짓은 수화처럼 보이지만 명확한 의미에서의 수화는 아니다. 손짓으로 눈이 다 할수 없는 이야기의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 그렇다면 그 설명은... 각각의 보는 사람들이 해석해 보면 어떨까? 모든 그림은 거울 처럼 각각의 보고있는 사람을 비춘다. 그곳에 비춰지는 해석은 각각 다를 것이다. ■ 성병희

양인희_Mabi 17 마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3.5×162cm_2012

무엇을 잡고 싶었던 것일까 움켜쥐고 있던 오른손에 의해 잠에서 깨어났다. 잠과 깨어 있음 사이의 몽롱한 상태는 그 사이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순간 벗어나 있었다는 의식을 지니게 해준다. 찰나가 전부가 되고 전부가 찰나가 되는 … 사이 ■ 양인희

이세준_계속되는 의문_캔버스에 유채_90.9×116.8cm_2012

나의 작업은 내가 인식하고 있는 이 세계의 복잡성과 불가해성에서부터 출발한다. 작업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특징은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자유롭고 화려한 색상의 팔레트인데, 이러한 명시성 높은 색들의 향연은 회화의 화면을 더욱 카오틱하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근대적인 원근법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 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체들의 전후 관계를 보여주는데 용이한 선 원근법을 조작해서 앞과 뒤가 뒤섞인 풍경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크기를 변화시켜 고의적으로 전후 관계에 혼동이 오도록 유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회화의 구도를 더욱 복잡하고 다의적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로서 작용하며, 그림 속 사물들이 서로 유기적인 모순관계를 이루도록 하기 위한 시도들이다. (중략) 「예술적 경험의 다양성」이라는 작품에서 나는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 후 새로운 캔버스를 그 위나 아래 혹은 옆으로 붙여서 크기를 확장시켜가는 시도를 하였다. 이렇게 확장 되어 지는 작업은 유기체처럼 스스로를 증식해 나가며, 한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 크기까지 커지곤 한다.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림은 우리가 우리의 세상을 단편적으로 밖에 이해 할 수 없는 것처럼 태생적으로 불가해를 내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나의 작업은 전체의 개괄적인 이미지에서 시작해서, 찬찬히 뜯어보고 들여다 볼 때야 비로소 찾을 수 있는 아주 작은 붓 자국 속에 담긴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으로, 나아가 구상적인것에서부터 추상적인 것으로, 그리고 이미지 적인 것에서 물질적인 것으로 다양한 층위를 이루게 된다. ■ 이세준

현경_Hello! another me_캔버스, 일본종이에 아크릴채색_220×480cm_2011

인간의 욕구나 의지의 좌절 등은 마음속에 상처를 입히고 그로 인해 편집적,강박적인 감정을 낳게 된다. 복잡하게 엉키어버린 심리 상태는 고통,화,슬픔,원망 등 네거티브한 감정 등을 동반하며 보기 싫은 것, 추한 것들로 인식되어 온 이러한 감정들은 밖으로 끄집어 내지도 못한 채 안을 향해 억눌려 왔다. 나는 복잡 다양한 인간의 감정、특히 그 중에서도 살아가는 동안 직면하게 되는 불가해 한 일들, 부조리, 모순 등으로부터 발생하는 감정들이나,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문제들, 말하자면 인간의 불행에 관련된 감정에 관심을 갖고 있다. 표출 되어지지 못한 네거티브한 감정들, 안으로 안으로 억눌려버린 그음의 에네르기를 끄집어내어, 어떠한 형태로든 전향시키고,해소 시키고 ,정화시키는 프로세스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모순을 넘어서 망연하게 만드는 대상일 수도 있고, 비합리적인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 수 도 있다. 그러나 절대적 가치관이 존재하지 않는, 무엇을 단서로 살아가야 할 지가 과제인 지금, 어쩌면 사회 그리고 인간이 계속 요구해왔던 문제일수도 있겠다. 예를 들면 우리조상들은 「굿」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보다 나은 삶을 기원해왔다. 굿에서 보여지는 삶에 대한 집착, 죽음에 대한 공포,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 욕망, 이 모든 것들은 추한 것이 아니다. ●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단지 행복한 삶을 원하는 발버둥 인 것 이다. 무속신앙이 현대까지 남아오게 된 배경에는 인간의 기쁨, 슬픔, 원망, 사랑 같은 보편적 감정과 관련되어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민중의 입장에 서서 인간의 탄생과 죽음 빈부의 차 사회 부조리 등의 문제를 짊어진 사람들의 출구가 되어주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등을 밀어주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 하고 받아들인 후에야 다음 스텝을 위한 한걸음을 뗄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행복한 삶을 기원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그 어느 누가 불행한 삶을 원하고 선택하겠는가. ● 이점이 내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상통한다. 확실히 현실을 직시하고, 살아있다는 것을 재인식 시키는 것, 미래를 예감 시키는 것, 지금 자신에게 닥친 혼란이나 시련은 모든 것이 끝난 완전한 어둠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일시적 어둠, 재생을 위한 시간이라는 메세지를 계속해서 전달하여 포지티브한 힘을 끌어 내는 것이다. ■ 현경

Vol.20130102d | New Generation-2013 공모당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