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고독 씹어 먹을 것.

이다흰展 / LEEDAHEEN / 李다흰 / drawing   2013_0107 ▶ 2013_0202 / 일,공휴일 휴관

이다흰_청춘이라는 지위의 모자를 쓰면_포장지에 콘테, 목탄, 색연필_71×6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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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시_(사)서울영상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일,공휴일 휴관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갤러리 미술동네 OHZEMIDONG GALLERY 서울 중구 충무로4가 125번지 충무로역사내 Tel. +82.2.777.0421 www.ohzemidong.co.kr

소녀 혹은 숙녀, 어쩌면 소년 아니면 어떤 청춘이 담장 아래로 떨어졌다. 그의 부모님은 그를 달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은 후였지만 '그림자가 이끄는 중력의 힘이 너무 커져 버린 탓에.'라고 급히 외치며. 청춘이란 지위의 모자를 눌러쓰면, 너무 푹 눌러쓰면 시야를 가려버려. 사실 그는, 그녀는 그림자를 자신의 몸으로 눌러버렸지. 그림자의 중력보다 무거웠던 그 마음으로. 나는 떨어지는 그를 받아내었지만,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고 조용히 치를 떨며 바보라고 속삭였지. 그러나 곧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늘에서라도 잠시 쉬어갈 수 없었던 그 어둠에 대한 너의 무게가 나의 목덜미 뒤에도 슬며시 내려와서 고개를 자꾸 떨구게 돼, 네 그림자와 난 마주 보고 있다. (2012.02.베를린에서)

이다흰_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_공책 낱장에 연필, 잉크_가변설치_2012

이 소외감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이것은 나만 안고 있는 것일까. 에 관한 탐구로 시작되었다. ● 나에게 고독은 네 가지로 분리된다. 「1. 인간 존재 자체의 고독 2. 군중 속 고독 3. 사랑의 고독 4. 세대의 고독(청춘)」 나는 내가 가진 고독의 시를 읊는다. 글이 아닌 그림으로. 그리고 그중에서 4번째의 고독을 가장 많이 노래하고 있다.

이다흰_마중나오길 기다렸던 사람_포장지에 연필, 오일스틱, 콘테_88×65cm_2012

여럿과 함께, 사회로 달려나가야 할 생기 넘치는 청춘을 나는 고독을 벗 삼아 좀먹고 있었다. 모두가 함께할 때 나 또한 그곳에 속했지만, 혼자인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마음 한편이 비어 있었고 그곳을 채울 공간과 시간과 인간을 알 수 없었다. 이러한 고백은 나의 친구와 동료들도 지니고 있었다.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물론 표현은 달랐지만, 그들도 그 마음 한편에 안달 나 하며 또 덤덤해하기도 했다. 나는 이것을 청춘의 찬란한 우울함이라 말했다. 이것에서 도망치려는 자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잠시 멈추리라. 나는 후자이고 우리는 잠시 이 청춘의 찬란한 우울함을 즐길 필요가 있다. 함께이면서도 느낄 수밖에 없는 이 고독은 세대를 걸쳐 또다시 다가오겠지만 지금은 지금일 뿐이니까.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채워지리란 보장은 없다. 나 역시 이 한편의 비밀을 알고 있지만 영원히 채워질수 없단 걸 잘 알고 있고, 나는 그 구멍을 그리는 것으로 대신하려한다. 아주 미약하고 아직 서툴지만, 그림은 내게 은유적 고백이고 위안이 된다.

이다흰_한적한 언덕_크래프트지에 혼합재료, 콜라주_104×124cm_2012

좀 더 솔직하게 고백을 해보자면, 나 혼자만의 위로를 위해 동지(?)들을 끌어 모으려는 의도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얻어걸리기라도 하듯 누군가 이 고백을 알아준다면 참 기쁠 일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기적인 이 소통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내가 소통할 수 없다고 좌절하고 있을 때 그 은밀한 그 소통의 위대함을 느꼈다. 그러나 언젠가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 더 폭넓은 소통을 해야 하겠지만, 그걸 알기에 지금의 나는 답답함과 불안함 속에 살고 있는 것 일 테지만 내가 그리고 있는 청춘이 이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의 고독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다. ● 아마 나와 같은 사람들이 속속 숨겨져 있으리라 믿는다. 그들을 찾아 서로 위안을 얻고 조심스레 변화를 꿈 꿔본다.

이다흰_서커스 준비_포장지에 연필, 오일, 콘테_60×59.5cm_2012

나의 작품은 모두 드로잉이다. 내가 지닌 무겁고도 두루뭉술한 감정들을 표현할 때 물리적으로 가벼운 재료들을 가지고 그려나가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매체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나의 작품을 굳이 '드로잉'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표현에 있어서 가장 첫 번째의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그 첫 번째 정신은 늘 불안함과 불완전함을 담고 있기에 드로잉의 소재나 느낌이 그 생각과 행위의 조화를 이루어내기에 가장 적합했다. 완전할 수도 있고 불완전할 수도 있으며 기계적일 수 없는 손길은 늘 미완성이어야만 하는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완벽한 마지막 단계가 될 수도 있고, 미완성적으로 보이는 그림은 그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페인팅을 위한 단계로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대개 그런 과정으로만 인정받아왔던 드로잉이 좀 더 독립적인 장르가 되길 바란다.

이다흰_때 아닌 깊은 바다_갱지에 파란색 볼펜, 혼합재료_가변설치_2012

물론 드로잉은 작가의 세계를 함축한다기보다는 연결짓는 쪽이다. 아무리 꽉 채워진 화면, 섬세한 표현으로 무장해도 작가의 세계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는 묘한 여백을 느끼게 한다. 일부러 남겨놓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여백은 바라보는 사람이 채워 줄 것이며,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소통이란 걸 이룰 수 있는 열쇠가 된다. 나는 이토록 드로잉이라는 방식에 집착하고 있다. 미완성이 주는 상상과 불안함이 주는 잔상을 예찬하고 싶고, 많은 실험을 통해 그 느낌을 더 끌어올리고 싶다. ■ 이다흰

Vol.20130107c | 이다흰展 / LEEDAHEEN / 李다흰 / 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