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난 극

Difficult Play展   2013_0118 ▶︎ 2013_0303

하모니카 불기

오프닝 공연 / 2013_0118_금요일_02:00pm_기획전시실 A존

참여작가 김월식_김보용_고재필_곽동열 송미경_이아람_조강이

전시영상편집 / 박영균

주최 / 문화체육관광부_한국문화예술위원회_경기도 주관 / 경기도문화재단_경기도미술관_무늬만커뮤니티 www.muniman.kr(김월식) 협력 / 안산시장애인복지관 후원 / 기획재정부_복권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8:00pm

경기도미술관 프로젝트 갤러리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동산로 268(초지동 667-1번지) 1층 Tel. +82.31.481.7000 www.gmoma.or.kr

『총체적난 극』은 장애인과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커뮤니티 아티스트, 조각가, 연극배우, 국악 무형 문화재, 미디어 아티스트 등)이 함께 참여하는 총체적 다원 예술프로젝트이다. 무엇보다도 장애인과 예술가의 만남부터 협업의 모든 과정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갈등과 존중, 편견과 이해, 동질성과 불일치를 드러내는 상호작용 방식에 주목한다. 때문에 『총체적난 극』은 발생될 수 있는 잠재적 사건들을 미리 유추하기보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출발점으로 다음을 진행하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목표달성이 아닌 차이의 연대감으로 과정을 채워나갔다.

신체놀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친해지기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장애인들의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사고와 의지, 행위와 욕망을 전제조건으로 출발하며, 그들 스스로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제안과 주체적 의지가 발동해야만 진행될 수 있다. 그들의 가족, 친구, 예술가들과의 불편한 탐색의 시간 속에서 서로의 의지의 텐션을 만들어가며 구체화되었다. 또한 장애인 예술가들의 독립적인 예술 가치를 생산하는 것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문화예술영토로 개척하며, 장애인 예술이 기존 문화예술의 하위문화 형태가 아닌 동시대 예술 영역의 독자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활동이다. ● 그러므로, 『총체적난 극』은 성실하게 연습하여 무대 위로 올라가는 공연이 아니다. 장애인과 예술가들의 협업을 통하여 그들의 탐미적 행위를 공연하고, 그들의 몸과 표현의 언어를 전시하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참여자가 전체화되는 관성과 훈육적 습관을 경계한다. 공연 결과의 만족감에서 발휘되는 자긍심보다는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욕망의 표현과 우연이 만들어준 넌센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정적 불안감에 주목하는 것이다. ● "나는 21세기에 예술에 대한 믿음은 '관계'에 있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는 아직 그 관계가 정해지지는 않았으나 완벽하게 동시성을 가지고 있는 기회들이 흩어져 있고, 그러한 기회들이 어떠한 공동체 안에서도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타로 토모코(오타야마 아트링트 센터 디렉터, NPO 하트 아트 오카야마 회장))

장석원씨가 클라리넷을 잡고 있는 모습

네 번째 만남에서 장석원씨는 클라리넷 연주를 하기 위해 악기를 준비해왔다. 연주를 위해 악기를 연결하고 세팅하는 과정까지 석원씨의 동작은 아주 느리고 세심하였다. 악기 세팅이 끝나고 난 뒤 연주가 시작되기까지 과정상에서 악기를 쳐다보며 세심하게 만지거나 느리게 입에 가져갔다 떼거나, 숨을 고르고 내쉬는 준비동작이 꽤나 길게 이어졌다. 석원씨가 연주한 곡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었다. 이 곡명을 이야기하기 전 까지는 원곡을 알 수 없는 연주였다. 연주 실력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변주와 비슷한 형태로 음의 길이와 템포, 호흡의 위치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동작과 동작 사이의 공백들은 언어가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이루어지는 의미의 되새김질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 시간들의 정적은 존케이지의 4분 33초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곡이라는 형태를 끄집어내기 위해 더듬는 정적의 시간은 무언가를 드러내기 위해 시도하는 동작들이 담겨있기에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경기도미술관 기획전시『동네미술』전시실에서 요리하는 모습

다섯 번째 만남에서는 모두가 함께 요리를 하였다. 요리를 세 가지로 정하고 작가와 참가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메뉴는 김밥, 떡볶이, 핫도그였고 그룹이 구성되자마자 바로 요리에 들어갔다. 정란씨와 태윤씨는 모든 팀을 활발하게 다니면서 전체적인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유동적으로 참여하였고 승동씨와 유림씨는 김밥 만드는 일 자체에 강하게 집중하였다. 숙자씨와 선혜씨도 핫도그를 만들고 빵가루를 묻혀가면서 집중력을 가지고 즐겁게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었다. 석원씨는 요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 전체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듯 했다. 병호씨는 단순한 작업을 주로하며 전반적으로 즐겁게 임하였다. 작가들은 손질이나 준비 과정을 나누어 모든 참가자들이 함께 요리를 만들 수 있게 하였고 누구 하나 뒤쳐짐 없이 요리에 참여하였고 먹는 것을 즐겼다. ● 식재료를 다듬고 먹을 수 있도록 익혀 서로 만든 음식을 공유하고 입에 들어가기 까지 모든 과정은 사람들의 촉각과 감각을 자극시키며 음식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 친밀감과 유대감을 형성한다.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함께 경험하며 여러 차원에 있을 개인에게 문을 두드려 보는 것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듯 하였다. ● 여섯 번째 만남에서는 선생님들이 가지고 있는 장기를 보여주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송미경 작가의 피리연주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송미경 작가는 새끼손가락만한 굵기의 피리로 경기도 민요 '긴 아리랑'을 연주한다. 모든 참가자들이 생소한 악기인 피리가 내는 특유의 소리에 집중하였다. 다음으로 각자의 장기를 소개했다. 먼저 재인씨의 춤을 보기로 하였다. 재인씨가 춤추는 시간은 이제 정기 코너처럼 되어버렸고 모두에게 당연한 듯 한 시간으로 자리매김 한 것 같다. 매번 비슷한 댄스 비트에 몸이 알고 있는 익숙한 동작을 실어 나르는 재인씨. 엠피쓰리를 틀고 이어폰을 귀에 꼽은 채 춤을 추는 재인씨는 엠피쓰리를 남에게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노래를 스피커로 틀고 다함께 들으며 춤을 추면 안되겠냐는 제안에 재인씨는 썩 내켜하지 않았다. ● 결국 재인씨가 듣고있는 노래를 스피커로 따로 틀어놓고 재인씨의 춤을 바라보았다. 재인씨가 대중가요에 맞춰 춤을 추고있는 가운데 석원씨는 드럼스틱을 한 손으로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기 시작한다. 재인씨의 춤과 석원씨의 단순한 박자가 얼개를 짜고 교차하면서 즉흥 잼과 비슷한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복지관에서의 탁구활동

흔히 탁구를 치다보면 게임을 제외하고는 내가 일방적으로 상대를 이기려고 공을 치는 경우는 드물다. 말하자면 탁구라는 운동은 상대방이 공을 잘 받아낼 수 있도록 공을 건네는 운동이다. 적당한 속도와 방향으로 일정하게 상대방이 공을 치는 몸짓의 기분을 상대방이 텐션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주고받기가 지속되면 탁구공은 어느새 둘을 하나의 몸짓으로 연결하는 신호체계가 되고 사람들은 이 신호를 악보삼아 함께 연주하는 연주가가 되거나 익숙한 무희들이 리듬을 타고 춤을 추듯 리듬에 몸을 맡기는 댄서들이 되고 만다. ● 여러 의미에서 탁구를 같이 치는 일련의 무리들은 함께 공연을 한 듯한 친밀감과 연대감이 생기고 그 합의 경험이야말로 몸과 감정이 함께 오고가는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소통의 경지를 넘어선다. 그런데 지금 이곳의 탁구는 조금 다르다. 합을 만들지 못하는 탁구가 대부분인 우리들의 핑퐁은 핑은 있는데 퐁은 없고, 퐁은 있는데 핑이 예상하는 시간에 도착하지 않는다. 전조가 계속되어서 매우 고급스럽거나 난해한 컨템포러리 음악이 이러할까? 즉흥적이고 찰나적인 감성의 번역에 익숙한 고수들의 잼을 보는 듯한 인상이기도 하다. ● 탁구대라는 하나의 물리적 공간을 두 개의 레이어로 나누어 쓰는 듯한 우리의 탁구는 그래서 이상하다. 하나의 시간대로는 어눌하나 두 개의 시간대를 중첩하여 하나의 오브제를 마주하는 듯 한 우리의 탁구는 어찌 보면 상대방이 없이 탁구를 치는 두 개의 상황을 한 공간에 편집해 놓은 듯 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이상하고 낯 선 탁구의 정체는 『총체적난 극』이 처음부터 갖고 있던 우리들의 차이와 거리를 드러내는 듯하다. 겹쳐지되 밀착되지 않고 밀착되어도 스며들 수 없는 차이들이 핑퐁을 한다. 가끔 핑퐁 사이, 사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서로 다른 레이어들의 문이 열리고 그 열린 문 사이로 공이 오가기도 한다. 그리고는 그 문은 곧 다시 사라진다. 우리는 그 짧은 시간 일반적인 핑퐁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일반적 핑퐁이 사라진다고 해서 우리의 핑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일반적 핑퐁의 안정감과 달콤함이야 말로 『총체적난 극』이 버리고 시작했던 일반화의 프레임이 아니었던가? 중요한 것은 탁구를 통하여 사유하고 고민할 수 있는 지점들이 발생하고 또 이 지점들을 탁구를 치면서 받아들인다. 어쩌면 우리는 탁구라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마주하고 있지만 주고, 받음이 다르고 어색한, 어눌하고 불확정적인 그런 삶이다. ● 하지만 불확정적인 것이 불안한 것도 아니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

라면을 끓이는 숙자씨

숙자 씨가 좋아한다는 매운 라면과 냄비, 휴대용 가스레인지, 젓가락의 최소한의 재료들을 나열해본다. 그리고선 정수기 옆쪽에 자리를 잡아 라면을 끓일 때 제일 먼저 진행하는 것들에 대해 들어본다. 사실, 자신의 의견을 들어본다는 것은 문장으로서의 대화가 아닌 짧은 단어로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눈치로 잘 알아들어야 한다. 숙자씨는 곧 "물"이라고 한다. 물을 먼저 받아야 한다는 숙자 씨에게 정수기 쪽으로 몸을 돌리게 한 뒤 물을 받게 한다. 이제부터는 숙자 씨 스스로 물의 양과 라면을 끓일 때 재료를 넣는 순서 등의 모든 활동은 그녀의 몫이고 나는 가스버너에 불을 켜주는 것을 마무리로 그녀의 옆에 앉아 말동무가 되어준다. 하지만 내 얘기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애써 무시하는 듯이 오로지 라면에만 집중하는 그녀는 물이 끓을 때까지 소리 없이 빙긋이 웃는 모습을 몇 차례 보여준다.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석원씨와 같은 패턴으로 기억을 복귀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이어 물이 끓으려고 기포가 생기는 사이 라면 수프를 뜯어 한 번에 털을 수 있도록 한쪽에 모으려고 가장자리 끝을 연신 움직이는 그녀가 수프를 자신의 코 가까이 대어 냄새를 맡은 뒤 또 한 번 빙그레 웃고 냄비에 부어본다. 다음엔 야채분말 수프를 넣고 마지막으로 라면을 넣는다. 라면이 잘 익을 수 있게 면발을 뒤적이는 모습에 그녀가 라면을 자주 먹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아래로 뭉쳐있는 라면 면발이 풀어질 수 있도록 젖다가 면발이 익을 수 있도록 쉬지 않고 연신 저어 보이고, 불을 조절하여 보이기도 한다. 몇 분이 흘렀을까. 꽤 짧은 시간에 라면을 끓인 숙자 씨는 자신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을 끄고 먹어 본다. 그녀의 입가와 눈가엔 행복한 미소가 연신 흘러나온다. 적당히 익은 면발은 씹기 좋았고, 먹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얼큰함을 갖고 있었다. ● 옆에서 보던 정난 씨와 병호 씨가 냄새를 맡고 다가와 우물쭈물하는 사이 그들에게 건네진 젓가락질은 빠르고 민첩하게 그들의 입속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어 정난 씨가 언니는 요리를 잘한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그녀에게 내보이지만, 숙자씨는 먹느라 여념이 없다. ● 젓가락으로 건지기엔 짧은 면발만을 남기고 라면을 비운 그녀는 이제 정리한다. 그리고 입에 묻은 붉은색의 라면 국물은 휴지로 닦아내는 것 대신 물로 연신 닦아내면서 언제 라면을 먹었느냐는 듯이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 우리에게 고픈 배를 달래주는 단순한 라면 끓이기는 그녀에게 요리 이상의 의미를 지녀 보였다. 라면 안에 들어있는 수프를 가까이 대어 코로 냄새 맡고 만지는 사이 그녀는 눈으로 요리를 대하는 것이 아닌 오감으로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고 있었던 오감을 통한 감각 익히기가 그녀에게 대수롭지 않은 듯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사진찍기

공연을 한 달 남짓 남겨둔 총체적난 극 만남의 풍경은 지극히 일상적이었다. 그 어떤 조바심도, 공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무언가 보완하고 만들어 나아가는 모습도 이곳엔 존재하지 않는다. 연출자와 퍼포머의 구분 없이 모두가 서로 짝을 이루어 지극히 안정된 상태에서 편안한 놀이들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공연을 앞둔 상황이라고 보기엔 지극히 평온한 분위기가 유지된다. 장애인들과 작가들의 구분이 가지 않는 분위기 속에 작가들은 풍경 속으로 들어가 또 다른 풍경이 된다. 장애인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감각적 차원을 열고 스스로 운동할 수 있게 조용한 활로를 만들어 놓는 것이 현재 작가가 하고 있는 일이다. 활로는 공간이 되고 이 날 참석한 장애인들은 그 위에서 스스로 몸을 움직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각과 한계를 너무나도 명쾌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혹은 감각적인 한계들은 놀이를 통해서 이토록 매우 쉽게 드러난다. 놀이와 일상적 행위들을 통해서 그러한 한계를 명쾌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은 곧 장애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들이 가진 감각적 한계는 걸림돌이 아니라 여과 없이 드러내어 주장해야할 것들이다. ● 『총체적난 극』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함께 결합되어 있다. 우리가 어떤 문화적 예술적 재능을 타고 났는지, 그것이 삶의 성찰에 다시 작동되는 장치로 어떻게 활용할지 잘 모르는 것처럼 장애인들 역시 어떤 재능과 관심으로부터 삶의 행복을 설계할 수 있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총체적난 극』은 그런 이유로 많은 장르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며 출발하였다. 본래 예술가들은 특별한 미적 재능만큼 사고와 철학 또한 그러하다. 이 특별함은 다양함을 만들고 서로를 존중하지만 태생적으로 다른 미적 감수성들의 충돌은 피할 방법이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 이 충돌은 차이와 차이가 만나는 경계를 해체하기도 한다. 이 역시 『총체적난 극』이 갖고 있는 예측 불허의 과정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다양한 예술가들의 이견이 총체적난 극에 긴장감을 더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

Vol.20130118c | 총체적난 극 Difficult Play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