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화에 그린 그림

박구환展 / PARKGUHWAN / 朴九煥 / painting   2013_0305 ▶︎ 2013_0323 / 일,공휴일 휴관

박구환_만개하여MO1301_캔버스에 혼합재료_60×17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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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연주회 / 2013_0305_화요일_06:00pm_안형수

박구환 작가 목판그림 이야기 & 체험 / 2013_0316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세인 GALLERY SEIN 서울 강남구 청담동 76-6번지 한성빌딩 2층 204호 Tel. +82.2.3474.7290 www.gallerysein.com

향기로운 작품, 힐링의 시간 ● 담양 병풍산자락 가까운 곳에 '박구환 스튜디오'가 있다. 담양 읍내에서 승용차로 20여 분 신북면 방향으로 달리면 야트막한 산등성이 아래 작업실이 보인다. 주변에는 대나무가 무성하다.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니 꽤 넓었다. 1층은 유화 작업하는 공간과 판화를 찍는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개인전을 앞두고 진행 중인 작품들이 눈에 띈다. 몇 몇 작품은 마지막 붓 터치가 남아있다. 목판에 15도(15회 다른 색상으로 찍은 상태) 이상 찍은 작품 위에 다시 유화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다. ● 작가는 목판화로 30여 회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번은 목판화가 아니다. 회화이다. 그렇지만 작은 차이가 있다. 보통 회화 작가들이 캔버스에 그리는 그림이라면 작가는 목판화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오랫동안 소멸목판화로 작업한 노련함과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도전이다. 결국 소멸목판화와 회화를 융합한 새로운 방식의 회화이다. ● 회화 작가들이 더러 실크스크린과 사진을 캔버스의 밑 작업으로 이용한다. 실크스크린과 사진은 재료적 특성상 표면이 매끄럽다. 소멸목판화는 다르다. 나무 판 위에 새기고 한 번 찍고, 다시 새기고 두 번 찍고, 또 다시 새기고 세 번 찍는... 이 같은 작업을 15회 이상 반복하는 지리한 과정에서 소멸목판화는 완성된다. 박 작가는 그 소멸목판화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리고 완성하는 목판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박구환_만개하여MO1201_캔버스에 혼합재료_96×162cm_2012

나무 판은 소멸된다. 향기로운 향을 피워내는 촛불처럼... 이래서 소멸목판화라고 하는구나. ● 작업 과정을 직접 보고 싶었다. 작가는 작업복을 갈아입고 판화 작업실로 들어간다. 베니어판에 매화 가지를 새긴다. 첫 채색(1도)이 올라간다. 몇 가지 판화 물감을 수십 회 개어서 의도한 색을 만들어 첫 판을 찍는다. 깎아낸 부분만 나무 원판 그대로이다. 이제부터 15회 이상 진행되는 과정은 단순 반복되며 진행된다. 그 사이 한나절이 훌쩍 지나갔다. 판화실 내에도 유리문 안쪽으로, 별도의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는 채색을 하는 과정, 과정 중간에 그 안쪽에서 다음 이미지를 새기고 파내는 작업을 반복한다. 캔버스에 드로잉 하듯 그는 목판 위 드로잉이 자유롭다. 종이 위에 그리는 회화와 다르다면 힘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박구환_만개하여MO1207_캔버스에 혼합재료_64.5×50cm_2012

쌀쌀한 날씨임에도 박 작가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그러나 이것 또한 약과이다. 전지종이 크기의 사이즈를 프레스기에 찍어내는 과정은 엄청난 노동력과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나무 판과 찍어내는 판화지 네 귀퉁이에 정확하게 일치해야 하고 색의 농도가 전체적으로 동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켜보기만 해도 힘겹다. 마지막으로 15도를 찍어낸 후, 나무 판은 소멸된다. 향기로운 향을 피워내고 녹아 사라지는 촛불처럼... 이래서 소멸목판화라고 하는구나. 오전에 시작해서 오후까지 이어지는 작업과정을 지켜보며 작업실 창 밖으로 펼쳐진 논, 밭에 농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판화는 그냥 찍는 거죠" 라는 말이 가장 불편했다는 작가의 심정이 이해된다. 기계에 넣으면 뚝, 딱 생산하는 공산품처럼 판화도 쉽게 찍어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아마도 판화공방에서 제작된 실크스크린 종류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목판화는 달랐다.

박구환_만개하여MO1309_캔버스에 혼합재료_45.5×53cm_2013

미술전문가 뿐만 아니라 일반 관람객과 소통이 자유로운 장점을 지닌 작가 ● 통 넓은 유리창 옆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며 작품 내용으로 접근해본다. 작가는 3년 전, 광주 시내에서 이곳으로 작업실을 이전해 건물을 지었다. 작업에도 변화가 시작됐다.「한가로운 마을」시리즈에서「만개하여(in full bloom)」시리즈를 발표했다. ●「만개하여」시리즈는 박 작가가 지난 20여 년 동안 작업한 조형적 특색과 사뭇 다르다. 형상적으로 일반적인 나무 몸체가 아닌 나뭇가지가 중심이다. 형태도 매화와 대나무 가지가 주를 이룬다. 색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홍매화를 강조한 붉은색 계열의 단색이다. 이러한 변화가 작품에 옮겨지며 내밀한 자연 속으로 더욱 가깝게 접근한 작가의 심상을 엿보게 한다. ●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천상 그는 꾸밈없는 자연인임을 새삼 느낀다. 일반적으로 현대미술이 개념화되어 쉽게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지만 그의 작품은 개념화된 내용을 쉽게 풀어가는 데 능숙함이 배어 있다. 작품 앞에서 솔직한 그의 천성이 자연과 교감하며 뜨거운 열정의 과정으로 완성된다. 이러한 과정을 보지 않아도 작품을 감상하는 자체만으로 관람객은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작가와 공유한다. 박 작가는 그만큼 미술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관람객과 소통이 자유로운 장점을 지닌 작가이다.

박구환_만개하여MO1308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50.5cm_2013

"매화에 봄 사랑이 알큰하게 펴난다 / 알큰한 그 숨결로 남은 눈을 녹이며 / 더 더는 못 견디어 하늘에 빰을 부빈다 / 시악씨야 하늘도 님도 네가 더 그립단다 / 매화보다 더 알큰히 한번 나와 보아라" (서정주 시인의「매화」중) ● 매화는 달 항아리 못지않게 작가들이 즐겨 다루는 소재이다. 석학 이어령은 "청빈 속에서 굳은 절개를 지키고, 다른 꽃보다 일찍 피는 조개성(早開性)은 부정, 불의의 세상을 물리치고 태평성대를 불러오는 현인군자의 이미지를 나타낸다."(이어령, '매화' 중)라고 표현한 바 있다. ● 한국화나 서양화, 그리고 사진작품에서 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은 종종 있다. 반면, 목판에 새긴 매화를 찍어내 그 위에 다시 그림으로 그려 작품을 완성한 표현은 박 작가 처음이다.

박구환_만개하여MO1302_캔버스에 혼합재료_60.6×90.9cm_2013

그의 작업실은 죽림서옥(竹林書屋)이지만 작품에는 매화서옥(梅花書屋)의 풍경이 그려진다. 대나무는 사계절 청정한 푸른 잎이 찬 서리를 이겨낸다. 작품 내용 속 대나무는 매화를 잔잔히 받쳐주는 배경으로 존재한다. 매화나무는 가지가 쭉쭉 뻗어가며 꽃을 피운다. 작가는 나뭇가지에서 느낀 무한한 생명의 신비를 작품에 오롯이 담아낸다. ● 매화 나무가지 아래로 한가로운 마을 풍경이 정겹다. 자연과 벗하며 숭고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목가적이다. 특히 작가는 전남 슬로시티 지역으로 스케치를 수 차례 다녀왔다고 한다. 그런 작가의 시선, 마음 자락이 작품에 그대로 옮겨진 듯하다. 대도시에서 바쁘게 생활하는 도시인에게는 떠나고 싶은 곳이다. 작품 속에는 바쁜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넉넉함, 힐링의 순간이다.

박구환_만개하여MO1307_캔버스에 혼합재료_91×116.8cm_2013

꾸밈없는 작가의 성품이 작품 속에서 고스란히 담겨있다. 열정은 매화꽃을 피어나게 하고. ● 그는 판화작가로 알려졌지만 유화 또한 오랫동안 그리고 있다. 또한 작업실 내에는 조각과 부조 작업의 흔적도 더러 보인다. 종이컵, 나뭇가지, 금속판 등 그가 다루는 재료는 다양하고 입체작업도 즐긴다. 특정한 재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실험과 표현을 시도하는 그는 멀티 아티스트이다. 목판화가로 알려진 박 작가의 그림 전시회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작가의 창작열과 오랜 수련을 통해 깊어지는 작업의 세계를 가늠해보는 기회이다. ■ 정영숙

Vol.20130305b | 박구환展 / PARKGUHWAN / 朴九煥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