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낭만주의 해석방법

전기숙_김언정 2인展   2013_0315 ▶︎ 2013_0415

전기숙_saccarine_캔버스에 유채_130×130cm

초대일시 / 2013_0316_토요일_03:00pm

아이원문화예술나눔터 특별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9:00pm

아이원 문화예술나눔터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307번지 동광빌딩 3층 Tel. +82.2.2.2246.0071 www.ai1.or.kr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는 잃어버린. 혹은 지나가버린 세월, 청춘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으로 들린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수십 년 전 과거부터 수 백, 수천 년 전의 과거까지 짐작해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한 과거가 누군가의 기억이라고 한다면, 아름다운 기억일수록, 다시 돌이킬 수 없을수록 애틋함은 더해진다. 몇 년 전, 여행길에서 우연히 수 백장의 필름이 내 손으로 들어왔다. ● 그 필름뭉치는 현재의 나의 시공간과는 너무나 멀리 있는 1930년 대 초반 한 프랑스인의 사생활의 기록이었다. 흐릿한 '상'들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한 장 한 장 장소와 년도를 잘 정리한 누군가의 일상의 소중한 기록들 이었다. 그 사진의 주인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2차 세계 대전의 폭격은 어떻게 피했을까. 나에게 오기 전 80년 동안은 누가 가지고 있었을까. 내가 그것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그 기록들은 어떻게 됐을까. 자신의 사진이 80년이 지나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작품화가 되리라고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그 이상한 우연과 인연에 대해 생각해본다.

전기숙_Mr.1933과의 조우-발견된기억6_캔버스에 유채_91×65cm
전기숙_mr.1933과의 조우-발견된기억5_캔버스에 유채_91×65cm

한 장씩 사진을 보면서 순간이동되어 1930년대 유럽의 거리를 배회한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니, 벌써 몇 번은 변했을 강산과 풍경들과 지금은 사라지거나 변했을 건물들 사이를 상상하면서 지나간다. 특히 다양한 표정의 인물들과도 친구가 되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사진을 들춰보고 그들과 함께 그 시대 그 공간을 느껴 보려 해도 사진 속의 인물들과는 동화될 수 없다. 끊임없이 무언가 소곤대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얘기하는 것처럼. 사진 속의 인물들은 불완전한 상태로 나의 시선과 감정을 두드린다. 한 마디로는 단정할 수 없었다. 완전한 형태로 완전한 위치에 머무르게 할 수 없었다. 그들과 내가 만나는 지점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진동 속에 있었다. 그들은 조용한 표정으로 흔들리는 풍경 같은 인물들이었다.

전기숙_장인적 편견_캔버스에 유채_130×130cm
전기숙_장인적 편견_캔버스에 유채_119×119cm

"잘게 다져서 흩어놓고 다시 한 땀 한 땀 제 자리로 엮어가는 과정은 청승맞은 고행이다. 애써 만들고 지워버리는 모래그림 만다라가 연상된다. 반복되는 조각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제각각 다 다르다. 한 조각씩의 그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지만 하나씩으로는 뭔가가 부족하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여러 '상'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야 하고, 멀리서 그 조화를 느껴야만 그나마 어렴풋하게나마 알아 볼 수 있다. 멀리서 거리를 두고 보면 곧 손에 잡힐 듯하지만, 다가가서 잡으려고 하면 절대 잡히지 않는. 조금씩 흔들리며 그쯤 어딘가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한 파도 속 물같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잎사귀같이." ■ 전기숙

김언정_Still life-Misty_캔버스에 유채_100×145.5cm
김언정_Between here and there_리넨에 유채_80.5×60.8cm
김언정_Dazzling shadow_캔버스에 유채_130.3×97cm

다다를 수 없는 것을 향한 동경 ● 캔버스 위에 떠오른, 혹은 가상의 공간의 깊이 속에 가라 앉은 형상. 우리는 공통의 경험에 근거해 이 형상들이 인물을 나타낸 것이라고 인지한다. 회화의 역사에서 인물화는 그 주축을 이루며, 인류가 존속하는 한, 인간 자신의 모습에 대한 매료는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내, 궁금해진다. 여기에 그려진 것은 누구이고 어디 있는가? 인간의 삶에는 이야기가 있고, 의미가 필요하다. 한편 회화는 어떠한가? 회화가 의미와 내용을 포기한 채 고고하게 스스로 존재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꽤 지난 일 아닌가. ● 적어도 나는 내가 알 수 있는 한의 진실됨을 원했다. 경험한 세계, 거기서 만났으며, 직접 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실재하는 이들에 관한 것을 남기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런 소망도 다 지난 일이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고 느낀 이래, 나는 객관적 현실이 그토록 유의미한 것인지 회의하게 되었다.

김언정_Adagio_캔버스에 유채_89.5×130.3cm

이제 눈을 감아보자. 어둠 속에 부유하는 빛과 형상들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것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 중 어디에 속하는가? 누구의 기억이며, 어딘가에 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느 하나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다. ● 하늘은 항상 거기에 있다. 하늘의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사람의 것이다. 그런가 하면 결코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하늘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디에나 있고 결코 포착할 수 없다. 언젠가 강연회에서 오노 요코가 한 말을 떠올려본다. "하늘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아세요? 여기 발 밑까지 와 있어요. 인간은 하늘 속을 걷고 있어요." ● 나는 하늘의 빛을 닮은 인물들을 그리고자 한다. 인격체라기 보다는 빛의 알레고리로서 그 곳에 있는 사람들, 그들은 주로 여성들이지만 나 자신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설령 누군가를 상기시키는 모습이라 해도 그들은 익명이다. 기억 속의 바다를 떠돌다 어떤 계기로 반짝 하고 빛을 받아 수면에 떠오른 듯한 이미지의 조각들일 뿐이다. 빛의 상태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이야기 하지 않지만 어떠한 감명을 준다. 붉게 타오르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사라지는 저녁 노을처럼. 혹은 이야기를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고 어딘가 다른 장소로 데리고 가고야 마는 클래식의 기악곡들처럼.

김언정_Allegory of morning_리넨에 유채_45.5×33cm

18세기를 살았던 쟝 밥티스트 샤르댕은 로코코시대 궁정의 화가로 있으면서, 부엌에 있는 사물들,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을 즐겨 그린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의 그림 속의 인물들은 정물들과 마찬가지로 고요히 정지되어 있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인 '그림은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는 낭만주의가 도래하기 전 시대의 의미심장한 예언이 아닐까. 그런가 하면 그보다 조금 뒤에 태어난 모차르트 역시 고전주의 작곡가이지만 그는 음표 사이사이 도처에 감정들을 숨겨놓아서, 그것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발견할 수 있게끔 해 놓았다. 나의 작품은 고전적 회화의 규칙을 따르며 과거로 회귀하려는 듯 보이지만, 의식 속에서 과거와 미래의 구분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회화의 시간은 언제나 과거에 속하는 것이던가? 혹은 회화를 경험하는 순간에 속해 있는 것인가? ●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려고 열망하나, 결코 온전히 다가갈 수 없다. 지금 마주보고 있다고 한들, 영원히 이 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덧없음을 인지할 때에, 형상을 남기고자 하는 충동이 생겨난다. 내가 하는 일이란 이러한 감각을 조용히 포착해서, 화면 안에 흘려 넣으려는 보편적인 시도이다. ● "침묵 또는 정적을 닮은 음악이 흐르고 어떠한 빛의 상태로 존재하는 사물과 공간." 관객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어느 날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하늘을 문득 올려다보고 어떻게 느끼느냐와 비슷한 경험이었으면 좋겠다. ■ 김언정

Vol.20130315e | 2013년의 낭만주의 해석방법-전기숙_김언정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