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city and The invisiblewall

오승민展 / OHSEUNGMIN / 吳昇珉 / painting   2013_0316 ▶︎ 2013_0407 / 월요일 휴관

오승민_cityfal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30.3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603i | 오승민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316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화~토요일_11:00am~06:00pm / 일,공휴일_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토스트 GALLERY TOAST 서울 서초구 방배로 42길(방배동 796-4번지) 3층 Tel. +82.2.532.6460 www.gallerytoast.com

"과연 예술이 우리 정신과 육체의 경계를 허물고 일치되는 순간을 허락 할 수 있을까?'' 또는 ''예술에 있어서 정체성의 문제와 내적 치유와 같은 문제의식과 철학적 주제는 우리의 삶의 목적과 방향성을 제시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예술의 본질에 대한 담론들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수 많은 예술가들의 매력적인 주제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여기 자신의 정체성과 내적 치유를 조형적 언어의 하나인 '색채의 확산'을 통하여 그 필연과 우연 그리고 끊임없는 연속성의 경계로 여행을 떠나도록 허락하는 작가 오승민이 있다. 그의 이러한 예술적 주제는 낯 설은 경험으로부터 호출 되어져 왔다. 'Panic' 극도의 불안과 긴장감에서 오는 병리적 현상의 하나로써 유기체와 무기체의 혼돈이 착시현상을 일으켜 공포에 사로 잡히게 한다고 그는 불편한 진실을 토로한다. ● 오늘날 현대미술은 과거의 신화나 성서 속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뿐 만 아니라 개인적이고, 너무나 내부적인 이야기에도 우리는 많이 귀를 기울이고 수용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정신적 고통의 소산인 'Panic'은 오히려 그의 잠재적 시각을 일깨우는 창조적 과정의 일환으로 환원이 되어 우리의 놀란 눈앞에 등장하고 있으며, 작가는 자기 자신이 무엇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표현하길 원하는지? 라는 사고의 관점과 과정을 통하여 예술의 정체성과 문제의식을 다시 한번 수면위로 끌어 올리고 있다. 오승민의 시각적 표현의 대상은 '인간과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 환경들이다.' 이를 위해 그가 주목한 조형적 방법은 '데칼코마니'에서 유래한 변형과 확장 된 기법이다. '테칼코마니'의 탄생은 20세기 중엽이었고 다양한 무늬를 특수한 용액(전분, 글리세린, 알부민)이 처리 된 종이에 찍은 후 얇은 막을 형성시켜 다른 표면에 옮긴 것이다. 작가는 이 조형적 방법론을 자연스럽게 그의 작업에 이끌어 왔다. ● 작가는 무한의 이미지가 존재하는 화면 위에 색채라는 이미지의 세포를 정렬시킨다. 이윽고 그의 가슴과 정신을 압박하는 무엇인가?의 현상적 힘에 의해 내부적인 고통을 당했듯이 색채 세포는 외압의 과정을 통하여 각각의 고유한 색채는 서로 침범하고 범람하며 포효하기 시작한다. 시련의 고통은 마치 포르말린 시험관에 담긴 유기체의 몸부림과 같다...경계는 사라지고 정의 내릴 수 없는 새로운 시각적 생명체가 교배되었다. ● 그의 작품에는 '치밀한 미쟝센'이 등장한다. 시각적 언어의 이성적 논리와 해석이 정교하게 조직 되어지고 이 과정을 파괴하는 행위로 그는 개인적이고 내부적인 이야기를 새로 창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미졍센의 실제 결과물은 한 작가가 바라보는 '삶의 세계에 대한 이해의 창'을 소개하고 우리에게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는 행위이다.

오승민_go somewher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9.4×130.3cm_2009
오승민_rainbow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4.2×24.2cm_2013
오승민_rainbow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7.3×22cm_2013

(중략) 오승민의 작품세계는 'Panic'이라는 병리적 현상이 그의 시각적 세계를 억제하고 가두는 부정의 요인이라기보다는 '낯선 세계' 혹은, '애매 모호한 경계','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 들어가도록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는 초현실주의자들의 그것과 같은 경험이다. 그의 작품을 바라 보고 있으면 마치 몽환적인 현상을 느끼게 된다. 미지의 세계로부터 '쏟아지는 가상의 색채폭포', '빨려 들어가는 뒷 모습의 사람들'… ● 마치 가상세계로 들어가는 문의 중간 정거장 쯤에 와 있는 듯 하다. 쟝 보드리야르 의하면, "보이지 않는 다고 해서 존재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전도서의 구절을 '시뮬라시옹' 서문에 인용하므로 시각적으로 지각되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인정하였다. 이미 우리와 공존했었고 미래에 보게 될 대상이나 상황에 대하여 그는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오승민 작품에서 보게 될 가상과 진실은 무엇일까? ● 오승민은 그의 작업을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신비한 모험"이라고 하였다. 어디로 가는지?, 정말 그가 가고 싶은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선택의 여지가 없고, 목적지가 불분명하다.라고 까지만 작가는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그의 작품에서는 어디론가 분주히 가고 있는 무리들, 어둠의 공간을 질주하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작가는 자신의 지향하는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하여 의문을 던진다. 내면으로의 침잠, 옛 대가의 흔적을 자신의 작업에 남기기를 좋아하는 이 작가는 이제 '예술의 동기'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듯 하다.

오승민_rainbow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1×53cm_2013
오승민_red roa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00cm_2009

오승민의 일련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온 곳, 어쩌면 우리가 결국 돌아가야 할 곳으로 건너 가도록 돕고 있다. 현재가 아니라 영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도착과 출발, 입구와 출구, 탄생과 죽음 그사이의 모든 것을 느끼기 위한 공간이다. 우리는 이제 그의 작품에서 옛 대가들이 치열하게 고통 당하며 담고자 하였던 예술의 실체를 보게 될 것이다. 작품에서 등을 돌리거나 전시장을 나와도 여전히 우리는 그 작품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 작품은 그의 손을 떠나 우리 눈 앞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되어있다. 오승민의 작업에서 색은 가장 중요한 표현의 동반자이었고 그것은 아주 극적인 출발이었다. 그는 보편적인 인간 드라마의 본질을 표현하고자 하였고, 색채는 이제 더 이상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시각적 현상을 통하여 예술 본질의 이해에 다가가게 되었다. 그의 작품에서 색채는 정의 되지 않는 슬픔을 비롯하여 여러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색채 내부의 움직임과 경계의 사라짐을 경험시키며 더불어 인간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유까지 느끼도록 허락하고 있는 것이다. ■ 구기수

오승민_the stree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16.8cm_2009

영혼을 지배하지 못하는 몸뚱이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 껍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조바심과 두려움에 사회성이 결여된 인간 또는 괴로움과 외로움에 떨고 있는 노숙자처럼 그렇게 차디찬 도시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머릿속에서 지그시 누르는 그 무언가에 괴로움을 호소하며 은둔 생활 같은 숨바꼭질을 난 여전히 하고 있다. 반드시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 지금의 난 소통의 문제를 갑자기 찾아온 공황증이라는 불청객을 통해 해결하려한다. 어쩜 이러한 불청객이 아니었다면 사회 속 인간의 소통과 몸과 마음의 연결고리를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몸과 마음은 하나가 아니지만 정확하게 말해 마음이 몸이라는 껍데기를 조절하기가 매우 힘들지만 우린 항상 "언젠가" 라는 우연성 보다는 문제를 더욱 진지하게 몰입하며 이겨 내려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들이 해결되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림을 더 그려야만 한다는 어떤 필연성을 느낀다. 이제 알 것 같고 조금씩 이해가 된다. 삶이란 것이…. Rainbow city and the invisible wall 난 존재하며 보이지 않는 시간의 벽을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오승민

Vol.20130316e | 오승민展 / OHSEUNGMIN / 吳昇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