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ve

한진수展 / HANJINSU / 韓眞洙 / installation   2013_0316 ▶︎ 2013_0420 / 월요일 휴관

한진수_prime texture_석고, 벌집_21×18×2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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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포스 갤러리. 베이징 FORCE GALLERY / 富思画廊 798 Art zone, no.4 Jiuxuanqiao Road, Chao yang District, Beijing, China Tel. +86.10.5762.6138~9 www.force798.com

역사로서의 현재-한진수의 작업에 대한 단상 ● 르네상스 이후 400년 동안 서양 회화를 지배해온 것은 원근법이었다. 이 원근법적 재현을 해체시킨 입체주의는 회화사에 있어서 일대 혁명이었다. 세계를 영원한 이데아가 질료에 의해 구현된 것이라고 보고, 이데아와 현실계를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본 플라톤적 존재론이 파기되는 순간이었다. 자연과 대상을 재현해온 색과 형태로부터의 해방, 나아가 원근법적 공간의 해체는 회화가 완전한 자율성의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한진수_queen's arrow_유리구슬, 비눗물, 튜브, 공기압축기, 염료_650×250×250cm_2013
한진수_queen's arrow_유리구슬, 비눗물, 튜브, 공기압축기, 염료_650×250×250cm_2013

이 입체주의로부터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의 싹이 트고, 추상회화가 열매를 맺었다. 대상(자연)으로부터 예술을 해방시키려는 필사적인 노력은 마침내 절대주의에 이르러 '예술의 존재론적 해방'을 선언하게 된다. 르네상스시기에 정점에 도달한 자연을 모방하던 예술은 말레비치에 의해 '야만인의 예술'로 폄하되며 극단적으로 폐기처분되었다. 회화에서 입체주의의 역할을 조각에서는 오브제가 수행했다. 오브제는 전통 조각의 초현실주의적 대체물로, '꿈과 현실이라는 모순된 상태가 해소된 절대적 현실성'을 추구하는 현대조각과 설치미술의 핵심적 기법이다. 그래서 회화의 입체주의와 조각에서의 오브제는 현대미술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제들마이어가 '중심의 상실'이라고 한탄했던 (신을 기리는 성전에 늘 함께 했던) 건축과 미술, 음악의 조화는 산산이 부서졌고, 장엄과 숭고는 이 세상의 가장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예술은 순수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모든 성스러운 것, 기념비적인 것, 훌륭한 것들을 혐오하거나 거부한다.

한진수_queen's arrow_유리구슬, 비눗물, 튜브, 공기압축기, 염료_650×250×250cm_2013
한진수_queen's arrow_유리구슬, 비눗물, 튜브, 공기압축기, 염료_650×250×250cm_2013

이렇듯 구구절절한 현대 미술사는 인류가 살아온 지난 세기 100년의 상처와 고통에 대해 작가들이 온 몸으로 맞서서 함께 만들어온 것이다. 지난 100년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최소한 다다나 아방가르드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구의 표현처럼 미술과 역사는 등산 자일에 함께 매달린 사이다. 신이나 왕의 지배에서 벗어나 인간이 투표로 스스로의 국가를 구성하는 소위 민주주의라 불리는 이 시대에, 예술은 역설적이게도 (인류가 자행한 수많은 전쟁과 살육, 자본의 자기 증식과 국가-민주주의의 권위에 대한) 혐오와 부정의 방식으로 존재해왔다.

한진수_The hive展_Culture Cube FORCE_2013

내가 본 한진수의 작업은 이런 것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 물론 그가 이토록 무겁게 역사나 미술사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선배들이 공유했던 묵시론적 파국이나 극적요소, 서사시적 웅장함도 그의 작업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는 반대편에 서 있다. 세상의 모든 하찮고 사소한 것들에 관심이 가 있는 듯하다. 거품이나 산업폐기물로 얼기설기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마치 아이가 모래 장난을 하듯 작업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모든 하찮고 사소한 장난처럼 보이는 행위들이 무가치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의 작업은 선배들의 묵시론적 비장함이나 서사적 웅장함과는 반대되는 대척점에서 작고 슬픈 소리를 낸다. 마치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을 읽을 때처럼 말이다. ● 이런 경향들은 한진수와 그의 동시대 작가들이 (양혜규를 포함하여)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한진수의 설치작업에서 대상은 견고함을 잃고 입자의 분포로 해체된 다음 확률론적으로 형상을 재구성한다. 거품방울들은 성공적으로 화면에 도달할 수도 있고 중간에 부서질 수도 있다. 이런 우발적이고 확률적인 생성의 공간으로서 한진수의 설치작업은 동시대 동료들보다 훨씬 가변적이고 부서질 듯 가볍다. 비천하고 하찮은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존중하는 것이 동양의 일원론이고 범신론이라고 한다면, 그런 존재들과 연결된 한진수의 모든 작업들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 尹在甲

Vol.20130317b | 한진수展 / HANJINSU / 韓眞洙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