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intermediate

표영실展 / PYOYOUNGSIL / 表榮實 / painting   2013_0319 ▶︎ 2013_0331

표영실_외면하는, 외면당하는_캔버스에 유채_145×112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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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319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안국동 7-1번지 Tel. +82.2.738.2745 www.gallerydam.com cafe.daum.net/gallerydam

연약함, 그 불안한 감정에 대한 '중간' ● 확언되지 않은 표현. 사실, 감정이라는 것을 어떻게 계량적 수치처럼 드러낼 수 있는가. 표영실의 그림은 내가 원하는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의미가 확장된다. 조심스러운 선, 결단력 있는 스침. 선명하지 않아도 분명 실존하는 형체들. 감정적 단어를 충분히 내포한 것이 분명한 가득한 빈 공간. 절대로 낮게 느껴지지 않는 사고 우위의 감정들은 특정한 단어로 확정되어지기 보단 암시만으로도 괜찮을 만한 화면에 부여된 탁월한 특성이다. ● 「흐물흐물」 흐릿한 선들이 유기체처럼 흐르며, 사라지는 중이거나, 아직 남아있는 중이고 … 그리고 애잔하다. 애잔하다 함은, 그것이 꼭 무엇을 꼬집어 그런 경험치를 갖고 있어 증명해야하는 것이 아닌 표영실이 이야기하는 무언가를 달리 보이게 하는 아름다운 장치다. 그 흐물흐물한 광경은 견고했던 감정의 날이 수그러드는 모습일 수도 있고, 사라지고 싶지만 끝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중간체다. 흐물흐물 사라지는 것과 흐물흐물 드러나는 것. 모두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표징적 신호들. ● 블록처럼 견고하며, 아름다운 색채를 띠고, 균형을 잡고, 그리고 … 불안하다. 「징후」. 그 불안하다 함은, 그것이 쌓아 놓은 블럭을 각각 다르게 비추어 주는 (쓰러질지도 모를 이 형체의-쌓인 모습을 면밀히 보면 아귀가 맞지 않는다) 따뜻한 색감이 주는 위안을 담보로 한 불안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 징후는 매우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색면 예술의 일면을 드러낸다. 그러나 뻔한 이야기로 귀결지어 허술한 관람으로 끝내버릴 수 없는 주목성을 띤다. 수수께끼처럼 담겨진 불안한 일면, 우리를 「징후」앞에 붙들어 놓는 힘. ● 견고한 감정이란 것이 존재 가능하긴 할까. '늘'이라는 수사를 달고 살진 않더라도 '문뜩' 정도는 불안한 우리. 특히나 삶의 중간쯤 살아내고 있는 지점이라면 더욱 더 와 닿을 미묘한 감정들. ● 사전적 의미의 감정들로만 일상을 채워나가기엔 단어의 연약함이 도드라진다. 연약한 감정처럼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중간중간. 일생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동안 개연성 가진 사건과 사건 사이. 그 중간중간 드러나는 확정된 사실이지만 연약한 감정들. 혼돈, 상실, 애잔함, 안타까움, 상한 마음, 잠깐의 발끈. 얄팍한 광기. 오랜 상처의 흉터. 아물지 않는 감정들. 연약하고 연약하다. 연약한 감정들이 어쩌면 바로 오늘의 '나'일수도. '당신'일수도. 그래서 표영실이 담아놓은 화폭의 미묘한 흔적들이 상흔으로 읽히고, 견고해 보이는 팽팽한 화면 속에서도 삐딱한 불안이 도드라져 보일지도. 「외면하는, 외면당하는」의 대상 모두는 그래서 '나'일수도. '당신'일수도.

표영실_단련_캔버스에 유채_28×38cm_2011
표영실_중간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2

표영실의 그림은 유독 미묘하고 예민해서 굳이 단어로 골라내자면 강인함보다는 연약함이, 처절함 보다는 섬세함이 더욱 어울릴 터. 어차피 사전 속 단어만으로 삶을 살아내지는 않는 바. 예술가의 여린 속살 같은 감정의 날이 수그러들고, 정제되어 화면에 안착되었을 때 비로서 인정하게 되는 동의의 감정들. ● '심금'도 그 동의가 있어야만 울리고, '진정성'도 인정함을 선행해야만 얻어지는 일. 문자가 아닌 그림이라는 단서는 얼마나 더 풍요로운지, 그이의 그림을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내가 품은 만큼 보이는 공간, 먼저 그이의 개념이 옳다 믿어야만 허락된 모순된 공간들. 그 속에서 내가 왜 표영실의 모순된 형상에 이토록 가슴이 울리는지 알게 되는 일. ● 존재하나 까밝힐 마음은 없어 숨겨둔 내 상흔들을 촌스럽지 않게 만나는 순간. 복잡한 내 오늘의 불안한 감정을 너무 적나라하게 들키진 않되 누군가는 눈치 채고 위로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우월한 장치. 조금 오래 두고 보면 더 많은 속내를 찾아보게 될 것 같은 진부하지 않고 진지한 그것. 유치한 진심과 소심한 사실들. 타자가 내게 남긴 상체기를 보면서 도리어 나도 누군가에게 남겼지 않나 생각게 하는 「외면하는, 외면당하는」처럼 수식은 아니지만 인정하게 되는 동의의 그림. 미처 도달하지 않았고, 아직 더 가야하는 인생 혹은 예술, 아니 오늘의 내 감정의 중간 어디쯤 … 그 어디쯤을 표영실의 그림에서 찾다. ● 할 말이 너무 많은 그이의 그림을 두고 내게 허락된 길지 않은 활자 공간은 오역을 줄일 수 있는 허울 좋은 핑계가 되어주고, 감정적으로 쓰라 했던 그이의 요구가 더 자유하게 그림의 서문을 달 수 있는 그럴싸한 변명이 되어 준다. 연약한 감정의 불안을 다루는 그이, 표영실은 모호한 그것을 담아내기 위해 극단보다 중간을 선택했다. 『중간』이라 명명한 전시에서 나는 활자에서 배우지 못한 심리라는 마음의 이치와 경험에서 해결하지 못한 모순된 감정의 고리를 조금씩 깨닫고 있음을 고백한다. 수많은 우리가 각각이 처한 날들과 지금이라는 완결형의 실체는, 어쩌면 어딘가로 향한 중간…그 중간이라는 진실의 연속 중 하나, 어디쯤일 것이므로. ■ 김최은영

표영실_변신_종이에 수채, 연필_28×38cm_2011
표영실_집중_종이에 수채, 연필_28×38cm_2011

표영실의 평이한 것들은 그 평이성에 의해 역설적이게도 삶의 의미를 관통하는 '카이로스'의 계기가 된다. 집과 달과 풍선과 벌레와 가방은 평상시에는 내재해 있거나 잠복해 있다가 어느 순간 인생의 의미와 직통으로 맞대면하게 하기 위해 터져 나오는 어떤 신비로운 순간,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순간을 소개하는 기제들이다. 옥스포드 사전의 정의에 의하면, '세렌디피티'는 "예기치 못한 기쁜 것을 우연히 발견하는 능력"이다. 물론 그 기쁨이 어두운 구석이라곤 없는 유쾌함과 쾌락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표영실의 신체들은 자주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움직이는 법조차 잊어버린 몸뚱이'며, 얼굴은 더 이상 '눈동자를 소유할 수조차 없는 텅 빈' 범주에 그친다. 이 불완전한 것들, 생채기가 나고 불구적인 공간에 자리하는 무수히 많은 '감정의 덩어리들', '감정의 앙금들', '섬세하고 미묘한 정서의 파편들' 은 오히려 신바람이 나는 순간들과는 무관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최소한 '아아', 또는 '오오'를 발하게 하는 삶 그 자체를 이루는 환희로운 순간들이라는 사실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한 것들이 배제된 삶이란 얼마나 메마르고 기괴한 것이겠는가! ● 느끼고 예감하고 전율하는 순간, 삶, 또는 세계 자체에 대한 믿음이 확인되는 미세한 순간들을 포착하는 것, 이것이 작가로서 표영실의 힘의 실체다. 표영실은 사물을 의인화하고, 사람을 사물화 하는 교환, 곧 존재적 속성의 바꿔치기를 통해 서술의 파행에 윤활유를 치고 보정한다. 예컨대 훨훨 날고 싶은 욕망은 풍선 단 집이 되고, 플라스틱 물통에는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고양이는 사람을 대변하고, 집은 달의 거처가 되고, 먼지는 풍경이 된다. 유기체와 무기물의 경계가 지연되고, 사물과 상상의 구분이 교란되는 경계부위에서 재현의 불안정성은 큰 문제가 아니다. 실제들이 누락되는 틈새들은 자주 어른들의 감각을 불허하는 동화적 각성으로 채워진다. ■ 심상용

Vol.20130319b | 표영실展 / PYOYOUNGSIL / 表榮實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