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OS

오숙진展 / OHSUKCHIN / 吳淑眞 / painting   2013_0319 ▶︎ 2013_0402 / 월요일 휴관

오숙진_cosmos_캔버스에 유채_130.3×80.3cm×2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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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319_화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 / 2013_0330_토요일_02:00pm

2013 갤러리골목 기획공모 선정작가展

관람시간 / 11:00am~10: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골목 Gallery GOLMOK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34-23번지 1층 5호 Tel. +82.2.792.2960 www.gallery-golmok.com

우호적이면서 비우호적으로 바라 본 오숙진 판타지 ● 거절할 수 없는 요청이 있다. 면식은커녕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한 여성작가의 이메일이 그랬다. 어떤 판자촌 마을의 사연을 그려왔고 그곳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으니 전시회 평문을 써 달라는 것이다. 왜 엉뚱하게 내가 '간택'되었을까 하는 의문의 답도 이어졌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별난 소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적임자라 생각했단다. 참 괴상한 사유라고는 여겨졌지만 그래도 나는 자동반응처럼 '포이동 판자촌 마을의 사연'에 반응했다. 대학시절을 산동네 야학교사로 보냈고 그 이력이 마음의 흔적으로 평생 가고 있는 탓이다. 누군가 고단하고 험악한 삶의 현장에 들어가 고투하고 있다면 경배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금의 내 삶에 변명거리를 주어야 한다. 일정이 다소 바쁜 편이건만 두말 않고 응낙의 답신을 보냈다. 설마 진짜 미술비평을 기대하지는 않으시겠죠?, 라는 유보를 담아. ● 작품이 작가와 별개이냐 아니냐를 놓고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부터 토론해 왔다. 조야하고 센티멘털한 작문에 대시인의 이름이 달리면 전혀 딴판으로 보인다. 전체가 난잡한 포르노그래피였던 피카소 드로잉전에 가서 이 스케치들이 김갑수가 그린 낙서라고 했다면 어떤 반응이 일었을까 킥킥 웃었던 기억도 난다. 그런 점에서 오숙진 작품의 배경으로 떠오르는 작가 이력의 특징은 길고 긴 가방끈의 무게감이다. 작가는 미대를 다니기 전에 먼저 지리학과를 나왔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4년의 수학과정을 거쳤다. 못 말리는 열망이 그녀를 그림으로 이끌었을지라도 그 배후에는 항상 번잡한 지성, 쓸데없이(?) 많은 생각들이 캔버스를 채우고 있으리라. 긴 가방끈에 따른 추정이다. 감각 곧 즉물적 반응으로 그녀의 그림을 즐기기보다는 화면에 숨어있는 생각을 읽어야 하리라. 더욱이 판자촌 현실이라는 텍스트가 존재하지 않던가.

오숙진_Kali 2(좌), Kali 1(우)_캔버스에 유채_각 130.3×97cm_2012
오숙진_마니차 2 Ma Ni Lag'khor 2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12
오숙진_Masjid 2_캔버스에 유채_145.5×112cm_2012

마침내 그녀와 작품을 만났다. 난감했다. 이상하고 막막하고 모호했다. 그녀의 작품이 어려워서? 인간적으로 기질이 다르고 안 맞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숙진은 머리로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세 개의 커다란 가방에 그 많은 작품을 담고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허위허위 내 작업실을 찾아온 그녀는 예상대로 가난했고 예상대로 예술가스러웠고 예상대로 이지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보여준 작품들은 내 예상과 기대를 몽땅 벗어나 있으니 이 뭔... ● 나는 미술분야의 사람이 아니다. 이런 일반인이 그림에 감응하는 단서는 가령 조형상의 세공능력이 압도적이거나 (멋있는 그림!), 엉뚱하고 기이해서 놀래키거나(주눅 들게 하는 그림!), 쉽게 스토리가 읽히거나 (민중화 혹은 현실과 발언!) 하는 것에 있다. 오숙진의 그림은 그 어느 관점으로도 잡히지 않았다. 픽토그램 같다고나 할까, 그래픽이나 일러스트 같은, 그러나 선명하게 감흥이 포착되지 않는 그림이었다. 몇 시간이나 이어진 첫 만남에서 작가와 관객은 논쟁 아닌 논쟁의 상태를 이어가야 했다. 그림의 대중적 소통 가능성에 대한 대화였다. 까놓고 말하면 왜 이 그림들이 한눈에 나를 사로잡지 못하냐는 막말, 막견해에 대한 공방이었다. 작가는 무척 분한 듯했고 나는 점점 더 무식해져 갔다. 하지만 멋있냐 아니냐, 포이동 판자촌 현실이 읽히느냐 아니냐 수준의 발언을 해대는 내 속마음에 감추어진 것이 있었다. 그녀가 그림을 붙들고 지내온 세월의 무게, 그녀가 폭넓게 경험했을 현대회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한 존중감이었다. 내 통속한 안목에 이른바 '멋있게' 포착되지 않는 그림이건만 분명한 것 하나가 있다. 저 형상은 오숙진 만의 것이라는 점이다. 과거의 도록에서 이번 전시회 작품까지 일관되게 오숙진 고유의 회화적 판타지가 관철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같은 자기세계가 쉽지 않다는 것쯤은 안다. 진지하게 여러 날째 컴퓨터 파일로 옮겨져 온 그녀의 작품들을 보고 또 보는 중이다.

오숙진_U-city 04, U-city 03, U-city 06, U-city 05_종이에 과슈_각 35×30cm_2012
오숙진_cosmos_캔버스에 유채_45.5×53cm×3_2012

전시명 『COSMOS』는 카오스적인 현실 혹은 작가 자신의 혼란스러운 상태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다. 작가의 말을 빌면 '선과 악이 뒤범벅되어, 더 이상 선악을 구분 할 수 없는 세계'를 코스모스(조화로운 세계)로 명명했다. 코스모스는 세 개의 작품군으로 구성된다. 첫째군 「U-CITY」는 유토피아 도시를 의미한다. 강남이라는 욕망과 성취의 한 가운데 부스럼이나 종기처럼 자리한 판자촌 사람들을 대비시켰다. 강제 이주와 감시, 의문의 화재를 겪어야 하는 팍팍한 삶이 가장 호사스러운 거주지에 포위되어 있는 부조리극을 떠올려야 한다. 둘째군 「마니차」는 작가가 경험한 인도체험의 연장선상에 있다. 여전한 카스트제도의 굴레 속에서 가난한 삶을 이어가야 하는 바라나시 아이들의 모습에서 티벳불교의 기원도구인 마니차를 떠올렸고 그것은 다양한 변주로 형상화된다. 셋째군이자 전체 표제작인 「COSMOS」는 이 같은 문제의식의 집약판이며 특히 종교적 구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암시되어 있다. ● 작품을 보는 두 개의 시선이 가능하다. 첫째 우호적으로 바라보기. 작가의 의도를 사전에 인지하고 찬찬히 오래 들여다보노라면 회화성을 넘어 문학적 사회과학적 인식이 복합된 감상체험을 할 수 있다. 관람자는 작가와 같은 선상에서 사회적 비판의식과 미학이 결합된 체험을 한다. 그리고 그런 의도가 비교적 쉽게 전달되는 성격의 그림들이다. 둘째 비우호적으로 바라보기. 왜 그런 생각을 구태여 그림으로 표현해야 했을까. 차라리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더욱이 이 같은 색감과 형상에서 어떻게 판자촌이나 빈민아동의 핍절함을 느낄 수 있는 걸까. ● 이제 내 관람기를 정리해야겠다. 이 글은 사실 업계의 전문가, 준전문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전시장을 들른 나 같은 성향의 막눈들을 위해 씌어진 것이다. 오숙진의 작품은 흘낏 볼 때와 찬찬히 오래 들여다 볼 때가 아주 다르게 다가온다. 흘려 볼 때의 작품은 비교적 단조로운 일러스트처럼 다가오기 십상이지만 깊은 관심을 갖고 찬찬히 지켜볼 때는 참 많은 요소가 화면 안에서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소재와 관념의 직접적 반영이 아니라 변형되고 재구성된 제3영역 즉 판타지의 세계라는 사실이다. 조세희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비유할 수도 있다. 난쏘공에 등장하는 공단지역 은강은 신문 사회면의 리얼리즘과 큰 거리가 있는 언어적 판타지물이다. 오숙진의 『COSMOS』 또한 마찬가지여서 그림 속 포이동 판자촌이나 마니차는 현실 영역을 넘어 작가의 원더랜드로 변형된다. 아울러 그 변형은 관람객에게 적극적 관찰을 요구하는 수동적 적극성의 성격을 보여준다. 작가의 문제의식과 회화성 간의 거리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지점이 이 대목이다. 생각하는 그림, 나는 오숙진의 『COSMOS』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 김갑수

오숙진_cosmos_캔버스에 유채_130.3×80.3cm, 130.3×97cm_2013

Oh Suk-chin Fantasy, Perceived Favorably and Unfavorably in Lieu of the Oh Suk-chin Exhibition, COSMOS ● There are some requests that simply cannot be turned down. This was the case of an email sent by a female artist whom I haven't had the opportunity to meet and hear her name. She told me a story of an impoverished shantytown and she asked me to write her a plain text of her exhibition saying that she wants to share the story with many people. I even wondered how come I was "chosen." She said that she felt that I am the right person while seeing me say strange things (?) on TV entertainment program. I felt that this is a very strange reason, but I reacted automatically to the 'Poidong shantytown story' perhaps because I had spent my university years at an impoverished town situated on a hill as a volunteer night school teacher, which has left behind a life-long mark. If somebody is struggling after jumping into the field of tough and rugged life, it is necessary to feel respect for that person. That is the last thing I can do to find an excuse for my life today. Although my schedule is rather hectic, I did not hesitate to agree to it, along with a reminder, "You don't expect me to write a real art critique though, right?" ● I used to hold discussions on the question of whether an art piece should be viewed separately from the artist or not, tracing back as far as the literary club years at the high school. It is true that even a coarse and sentimental writing looks different when the name of a great poet is attached onto it. I remember giggling at the Picasso drawing exhibition which was filled with dirty pornographic drawings, wondering what kind of reaction would have resulted if it was said that these sketches are the scribbles drawn by Kim Gap-soo. From this respect, Oh Suk-chin's profile which is emerging as a background to her work is characterized by the burden of long over-education. She graduated from the Geography Department before she started attending an art school. And she studied in Firenze, Italy for four years. Even when her immense passion may have driven her to painting, chaotic and unnecessary (?) thoughts may be filling up her canvas all the time. This was only a presumption given her education background. I decided to read her thoughts that are hidden on the canvas instead of enjoying her paintings with sense, which is instant reaction. On top of it all, she was working with a realistic text, called the shantytown. ● Finally, I got to meet her artworks. They were perplexing. They were strange, desolate and vague. Is it because her artworks are difficult? Is it because humane characteristics are different and do not match? No, these were not the reasons. Oh Suk-chin was exactly as I had envisioned with my head. She who hurried to my atelier, with three huge bags filled with numerous artworks after taking a bus and then transferring to the subway, was poor as I had expected, was artistic as I had expected and was intelligent as I had expected. But then, the artworks that she showed me went totally against my expectation... ● I am not someone from the art field. In order for an ordinary person like me to be impressed with painting, it has to be either impressive in terms of the craftsmanship (cool painting!), strange, exotic or surprising by being strange(the type of painting that makes you feel belittle!), or painting with easy to read storyline (popularization or realistic comment!). Oh Suk-chin's paintings are not easy to read, using any one of these perceptions. They are more like pictogram. They are the paintings that are like graphics or illustrations, but that do not capture the inspiration clearly. During the first meeting which lasted for hours, the artist and the audience had to continue on the dispute that was not like dispute. This was a dialogue on the possibility of painting to communicate with the mass. To be honest, it was me attacking why these paintings fail to grab my attention all at once. It was me talking coarsely. The artist appeared to be very angry and I became increasingly ignorant. However, there was something hidden in me while I was talking about whether a painting is cool or not, whether the reality of the Poidong shantytown can be read through the paintings and so forth. This was the sense of respect I was feeling towards the weight of the years that she invested in her paintings, and towards the diverse spectrum of the contemporary painting that she had experienced. One thing was clear though regardless of whether a painting came across to me as 'cool' or not according to my popular insight. Despite everything, her work was hers alone. From the list of the past to the artworks for this exhibition, it was clear that Oh Suk-chin's specific painting fantasy was getting accomplished. And I understand that it is not easy to safeguard one's own world. I am still looking at her paintings again in a sober manner after she gave it to me a few days later via computer file. ● The name of the exhibition, 『COSMOS』 is a paradoxical expression of the chaotic reality or her own confusing state. To borrow her words, 'COSMOS (harmonious world) is the world in which the evil and the good cannot be discerned since they are both intermingled.' COSMOS consists of three artwork categories. The first category, 'U-CITY' refers to utopian city. She contrasted shantytown people who grew up like boil or abscess amidst the desire and achievement of Gangnam. The rough life that entails forced movement, surveillance and questionable fire conjure up the absurdity since this area is surrounded by the most elegant residential area. The second category, 'Manicha' is at the extension of India that she experienced. She thought about the Manicha, which is the origin of Buddhism in Tibet from the children of Varanasi who have to continue on their poor life amidst the Caste system that continues on, and this is formed in diverse variations. The third category and the total title piece, 'COSMOS' is the intensive version of this issue. In particular, it alludes to the critical perspective regarding religious salvation. ● Two perceptions for viewing an artwork is enabled. The first is to perceive in a favorable manner. When the artist's intention is perceived in advance and when an artwork is observed for a long time, it is possible to see beyond the nature of the painting to experience composite appreciation with the cultural and social science perception added in. The viewers will have the experience in which social criticism and aesthetics are combined together at the same wavelength as that of the artist. And her paintings are of the nature that can communicate with such intention easily. The second is to perceive unfavorably. Why did she express her thoughts with the paintings. I wonder whether it would have been more effective to express with writing or word. Moreover, how can this type of color and form express the shantytown or the suffering of the economically challenged children. ● Now, I must summarize my opinion after viewing her artworks. This writing is not for the experts or semi experts of the industry. Instead, it is written for those who view recklessly like me as they stopped by the exhibition accidentally. Oh Suk-chin's artworks are very different when viewed at a glance and when viewed for a long time slowly. In case of the former, her artworks will come across as a simple illustration, but it is possible to see that many variables react organically in the canvas when one observes by paying utmost attention. That is not the direct reflection of the theme and concept. Instead, it is the world of fantasy, that is the third domain that is transmuted and re-configured. This may be used as a metaphor for 'the small ball that is shot up by a dwarf' in Cho Sae-hee's novel. The Eungang of the industrial complex that appears in the novel is a linguistic fantasy object that is distant from the realism found in the newspaper's social section. Oh Suk-chin's 『COSMOS』 changes into the artist's wonderland, going beyond the Poidong shantytown in the painting while Manicha goes beyond the realistic domain. Moreover, this transmutation showcases the active and passive personalities that require active observation from the audience. This is the point where the conflict in the street among the artist's sense of problem and painting is induced. The painting that thinks - this is how I want to define Oh Suk-chin's 『COSMOS』. ■ Kim Gap-soo

Vol.20130319c | 오숙진展 / OHSUKCHIN / 吳淑眞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