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들렌

박선주展 / PARKSUNJOU / 朴善柱 / photography   2013_0319 ▶︎ 2013_0326 / 월요일 휴관

박선주_m1_디지털 C 프린트_54×82cm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류가헌 ryugaheon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번지 Tel. +82.2.720.2010 www.ryugaheon.com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마들렌' ● 마들렌은 작고 가벼운 조가비 모양의 스폰지 케이크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홍차에 마들렌을 적셔 먹으면서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 마을의 기억을 떠올린다. 여기서 유래하여 향기나 냄새와 같은 후각적 자극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재생해 내는 것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부른다. 사진가 박선주에게는 사진이 곧 소설 속의 그 '마들렌'이다. 마들렌의 향과 촉각에 불현듯 잊고 지냈던 과거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진이 그녀에게 프루스트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박선주_m2_디지털 C 프린트_55×82cm_2010

추운 겨울, 차고 투명한 빛이 감싸고 있는 서울 변두리 마을을 사진에 담으면서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버려진 물탱크, 담에 기대어 세워진 짐수레, 계단 옆 작은 화분들. 그녀는 시선이 머물러 떠날 줄 모르는 곳마다 셔터를 눌렀고, 그 우연한 마주침의 연속은 잊었던 기억의 긴 흐름으로 이어졌다.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로 공간과 사물들을 들여다보는 동안, 시각을 통해 다른 감각기관들도 깨어났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빛의 소리와 온도 등이 느껴졌다. 그것은 작가의 어린 시절 그녀 주변의 사물들이 둘러싸여 있던 고요한 침묵의 빛이었다.

박선주_m3_디지털 C 프린트_34×52cm_2012

"카메라는 내 시선의 대행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도구가 되었다. 나는 그저 그 도구의 동반자일 뿐이다." 불문학자이면서 철학아카데미 운영위원이기도 한 박선주는 오랫동안 '사진으로 사유하기'의 가능성을 탐색해 왔다. 이번 전시는 2009년에 연 첫 개인전(갤러리 룩스, 서울) 『autre-타자』에 이은 두 번째 전시로, 더 넓어진 사진적 지평을 기대케 한다. 작가는 '고정된 이미지 그 어딘가에서 냄새가 나고, 어른거리는 빛과 리듬이 느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고 고백한다. 사진 속에 어른거리는 기억의 온도와 향기를 더듬어 볼 수 있는 박선주 사진전 『마들렌』 3월 19일부터 24일까지 종로구 통의동에 자리한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에서 볼 수 있다. ■

박선주_m4_디지털 C 프린트_61×82cm_2010

사물과 침묵의 빛 ● 시간이 많이 흘렀다. 자라나는 딸의 모습을 찍기 위해 카메라라는 낯선 도구를 손에 잡은 지 25년,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들판과 거리를 돌아다녔다. 유아원에서 돌아온 딸 앞에 그날 찍은 사진들을 펼쳐놓고 좋은 사진을 골라보라고 내 놓았다. 아이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단숨에 몇 장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나의 사진 확인 작업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눈이 시리도록 렌즈를 들여다보았고, 다리가 붓는 줄도 모르고 온 종일 암실에 처박혀 있기도 했다. ● 돌이켜보면 카메라와의 만남은 내 욕망에 의한 무의식적 선택이 아니었을까. 바람과 같이 일어났다가 흩어져 버리는 매 순간의 생각들. 내게는 늘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생각들과 이미지들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문장들은 언어로 해결할 수 있지만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언어의 한계 바깥에 있다. 내 시선이 안겨드는 풍경들, 사물들을 감싸 안으려는 내 시선의 욕망은 긴 세월 동안 카메라와 결탁해 왔다. 풍경에 굶주리고 사로잡힌 시선은 무거운 눈꺼풀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 때까지 바깥으로, 풍경 속으로, 사람들 사이로 나돌아 다녔다. 카메라는 내 시선의 대행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도구가 되었고. 나는 그 도구의 동반자일 뿐이었다.

박선주_m5_디지털 C 프린트_55×82cm_2011

세계의 균열은 내 안의 균열이다. 내 안의 균열은 세계의 균열이다. 카메라는 세계의 균열을 드러내고 내 안의 균열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어두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산동네.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일터로 나가고 없었다. 영하 17도의 칼바람이 불고 있었고, 어린 고양이 한 마리, 투명한 겨울의 빛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원색 페인트칠을 한 낡고 빛바랜 담벼락에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그들의 삶에의 희망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텅 비어 버린, 낯선 동네의 침입자인 나는 몇 시간동안 골목 구석구석을 조심스럽게 돌아다녔다. 바람을 막기 위해 세워둔 부서진 판때기들과 찢어진 비닐조각들 위로 오후 두시의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한 옹색한 골목, 계단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허술한 층계를 오르내리며, 나는 삶의 냄새를 맡고 다니는 한 마리 개였다. 마치 그곳에서 잃어버린 내 어린 시절의 삶의 진실을, 자본주의의 현란한 불빛 속에서 놓쳐버린 진실의 씨앗을 찾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마들렌 과자가 프루스트에게 콩브레의 풍경을 되살아나게 했듯이 말이다.

경사진 비탈길에서 빛을 붙들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셔터를 눌러대었을까. 현기증을 느끼며 일어서니 찬바람이 휑하니 지나간다. 빛은 어디에나 비치고 있었다. 가난한 이 골목에서 햇살은 더 없이 강하고 순수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고요와 빛이 내 안에서 조금씩 깨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던 사물과 침묵의 빛이었다. ● 사진을 찍는 행위는 사물/사건과의 마주함이다. 그가/ 그것이 내 앞에 있고, 내가 그/그것 앞에 있음을 확증한다. 그는/그것은 그 순간 나의 현존을 확증한다. 렌즈를 들여다보고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내 손가락의 떨림을, 내 입술의 숨결을, 내 살의 떨림을 가장 선명히 느끼는 대상과의 공존이고 공명이다. 문득 어떤 대상에 이끌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떨림의 사건이 일어난다. 우연한 마주침에 의한 존재의 전율과 현존의 확인, 그게 내 사진 행위의 전부다. 한 장의 사진이 갖는 의미는 사후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 사진행위는 렌즈를 통해 냄새 맡고 만지고 듣는 존재론적 의미를 지닌다. 고정된 이미지 그 어딘가에서 냄새가 나고, 어른거리는 빛과 리듬이 느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 박선주

Vol.20130319i | 박선주展 / PARKSUNJOU / 朴善柱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