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Flow

이상은展 / LEESANGEUN / 李尙恩 / painting.printing.video   2013_0327 ▶︎ 2013_0402

이상은_집적 201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100cm×2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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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327_수요일_05:00pm

후원 / 디자인 바치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6 www.grimson.co.kr

시간의 선분들, 혹은 시간의 그물 - 흐름 ● 우리는 시간에 대해 지각하고 인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시간 자체가 비가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잠재적인 가능성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언정 구체적인 형태로 재현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실재하는 것이지만 추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을 가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간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상은이 그리고 있는 시간도 이런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태극(太極)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한「고리들(rings)」을 보면 화면의 중심으로 갈수록 운동량이 증가하고 가장자리로 멀어지면 수직선으로 펴지려는 선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형태는 음양의 원리를 도형으로 표현한 태극이 완만하게 펼쳐지는 과정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면서 왠 천체망원경으로 촬영한 타원형의 소용돌이 은하를 떠올리게 만든다. 어쩌면 띠처럼 자른 펠트를 늘어뜨렸을 때 위에서 누르는 천의 무게와 밑에서 받치려는 압력이 만나며 만들어내는 유연한 형태를 보여준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의 조각을 평면으로 표현한 할 때 이런 구조와 형태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이 구부러진 선들의 집적이야말로 시간은 직선으로 운동한다는 관념을 전복시키는 '시간의 기록'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시간을 켜켜이 쌓는다면 그녀의 이 작품처럼 시간이 축적되면서 무게와 운동에너지에 의해 부드러운 곡선으로 변형가능한 형태가 나타나는 것일까.

이상은_시간쌓기 2013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0×120cm_2013
이상은_시간쌓기 2013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0×120cm_2013

이러한 생각이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시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상상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계기를 제공해 주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이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드러진 특징이 유동성이다. 디지털매체의 도움을 받은「Time × Time」에서는 색채와 선으로 나타난 시간의 결이 볼륨을 형성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반복적인 띠들이 만들어내는 흐름은 시간의 속성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작품들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직선이다. 무수하게 많은 수직과 수평의 선들이 중첩, 교차, 교직하며 만들어내는 색채의 그물인 그녀의 작품에서 겹쳐진 선과 색채들은 시간의 화살이 남긴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수많은 직선들의 누적은 시간의 화살이 지나간 자국이란 상상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 속에서 우리는 '흐름'에 대해 지각한다. 그러나 그 흐름은 사실 상상된 것이며, 실제의 화면에서 시간의 화살인 선들은 정지해 있다. 짧거나 또는 길게 그어놓은 선들은 특정한 지점에서 출발해 어느 지점에서 멈추고 있다. 그래서 유동성이 줄어드는 대신 부동성은 증가하여 공간에 멈춘 채 떠있는 선들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상은_시간쌓기 2013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13

집적, 시간의 역사 ● 개인이 경험한 구체적인 시간을 추상화하여 공간에 반복, 누적적으로 그려놓았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시간을 표상한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집적시켜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에 대해 그녀는 '시간쌓기'란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상은의 작품에 대해 시간의 집적이란 표현을 했을 때 과연 시간은 부피나 체적이 있는 것인가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시간이 부피나 질량을 가진 것이라면 쌓는 것도 가능하고 그 누적의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적된 시간이란 역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일지언정 구체적인 시각적 증거로 눈앞에 제시할 수는 없다. 사진이 그 역할을 할까.아니다. 사진은 누적된 시간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과거 어느 시간을 기록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빛바랜 낡은 사진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추억이며, 이미 죽어버린 시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향수이자 위안이며, 더 나아가 고통스러운 회상인 것이다. 따라서 쌓여진 시간은 시간의 물리적 속성과 관계없는 경험과 기억의 누적을 의미한다. 질서를 갖춘 선들의 배열은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시간을 더욱 단순화한 단위로 나눈 것이 만들어내는 구조이다. 그 속에 그녀가 지내온 시간의 역사가 있다.

이상은_Time Flow 201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0×260cm_2013
이상은_Time × Time 20132_디지털 프린트_170×70×4cm×3_2013

그런데 시간에 대한 공간적 지각은 시간을 쌓는 것도 가능하게 만든다. 사실 시간은 쌓는 것이 아니라 보내는 것이지만 말이다. 켜켜이 쌓아올린 시간의 선분은 수평과 수직으로 교직되며 그물처럼 촘촘하게 얽혀있는가 하면 때로는 수많은 시선들에 의해 복잡한 구조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화면은 공간의 깊이를 지니면서 동시에 그 조밀성이 강화될수록 평면으로 환원하려는 속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표면에는 무수한 붓질이 만들어낸 얇은 층들이 겹쳐져 있으므로 그것을 쌓아놓은 시간이라고 해도 문제는 없다. 단순한 행위의 반복과 지속을 통해 형성된 화면은 마치 무지개처럼 영롱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무수한 직선들이 교차하고 있는 도시의 풍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이 격자구조는 자로 잰 듯 분명하기보다 손의 압력과 붓질의 속도에 의해 아주 미세한 떨림을 지니고 있다. 직선과 색채가 만들어내는 이러한 바리에이션을 그녀는 일기에 비유한다. 마치 일기를 쓰듯 선과 색채를 쌓아올린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작품은 기억이 투영된 스크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상은의 작품에서 선분 하나는 한 조각의 픽셀일 수도 있고, 그것이 누적된 공간은 시간이 압축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교직된 선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사건이 구조화된 장이자 기억을 저장하는 그물이다. 촘촘하게 얽혀있지만 투과의 틈이 있는 공간, 그 속에 시간이 거주한다.

이상은_Time Flow 201321_렌티큘러_50×50cm_2013

지속 ● 이상은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한 시간에 대해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비연속적 시간을 나열한 것이며, 비재현적이고 비현실적이며, 환각적이고 상징적이면서 또한 명상적인 시간의 가시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시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그것을 직선의 운동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이상은의 작품에서 기억이란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직선상 위에 존재했던 과거를 그 선상에서 기억해낸 결과라기보다 베르그송이 말하고 있는 '변화하는 시간'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베르그송은 지속의 본질은 흐름이며, 지속은 이미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흐르고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상은에게 있어서 시간쌓기는 과거의 퇴적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와 함께 공존, 지속하는 운동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의 조각을 쌓아나가는 과정 속에 유동성이 발생하며, 교직의 틈, 그 사이에 현재가 틈입할 수 있는 여백이 있다. 날줄과 씨줄의 직조, 그 구조가 바로 그녀의 삶이자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시간의 그물이다. ■ 최태만

Vol.20130327h | 이상은展 / LEESANGEUN / 李尙恩 / painting.printing.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