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선 Flowing Eyes

하이경展 / HI,KYOUNG / 河利炅 / painting   2013_0329 ▶︎ 2013_0428 / 일,공휴일 휴관

하이경_흐르는 시선 Flowing eyes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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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329_금요일_06: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획 / 스페이스 오뉴월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공휴일 휴관

스페이스 오뉴월 Space O'NewWall 서울 성북구 선잠로 12-6(성북동 52번지) Tel. 070.4401.6741 www.onewwall.com

19세기 파리의 도심에서 보들레르는 산책자를 발견한다. 산책자는 산업화 시대의 부산물인 군중에게 매혹당한 집단의 일원인 동시에 그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양면적 존재다. 흰 연기를 뿜는 기차와 거대한 역사(驛舍)가 대도시적 삶을 경험한 군중을 쏟아놓을 때, 이들 산책자는 쇼핑 아케이드에서 피어오르는 먼지 냄새를 맡고 목로주점에서 매춘부와 도박꾼이 나누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모든 견고한 것이 세속 도시의 공기에 녹아버리는 인상을 화폭에 옮겼다. 산책자의 개념을 처음 묘사한 보들레르의 에세이(『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Le Peintre de la vie Moderne』) 이후, 화가들은 현대적 도시 공간의 충실한 목격자였다.

하이경_돌아가는 길 Way back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12
하이경_느리게 걷다#2 Walking Slowly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12

도시 풍경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하이경은 그 선배들을 잇는다. 텅 빈 거리, 가로등 켜진 주차장, 비 내린 언덕길, 가로수 그림자가 드리운 보도, 허공을 가로지르는 전깃줄 등 그녀가 포착하는 모든 장면은 산책자로서 작가가 스쳐 지나간 거대 도시의 한 부분이자 일면이다. 그의 화폭에서 현대적 군중은 모습을 보이지 않거나 흔적만을 남겨놓는다. 하이경의 조경(造景)과 건물 벽, 보도 등은 산책자의 시선이 머문 곳이되 어떤 의미도 거부하는 대상이다. 인상파 화가들의 성당과 종탑이 주제로서 비중을 잃고 단지 빛의 효과와 실험 대상일 뿐이었듯 말이다. 하이경이 그린 도시적 사물은 현장부재증명, 즉 알리바이다. 더욱이 화면을 덮고 있는 사선의 필터는 풍경을 직접 제시하지 않으려는 듯 거리를 유발하고 한편으로 작업을 하는 동안 작가 자신과 화면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이경_여기까지만... Until now..._캔버스에 유채_80.3×116.7cm_2012
하이경_맑은 흐림 Clear, but cloudy_캔버스에 유채_80.3×116.7cm_2012

이러한 분리와 거리의 구도는 초기작에서 두드러진다. '베란다 풍경'에서는 마주한 아파트 건물에 부딪치고 가로막히는 시점, 문을 향해 곱게 놓인 구두와 외출복 등을 그린 바 있다. 하지만 작가의 활동 반경이 넓어질수록 베란다 시점의 아파트 건물 모듈은 보도블록, 카페 건물 마감재의 모듈로 조금씩 좁혀지기 시작한다. 정면만 남은 꽉 막힌 화면, 혹은 뻗어있지만 굽은 보도, 어두운 밤 홀로 켜진 가로등이 비추는 나무 등으로 시선이 옮겨가면서 이제 이 모듈은 점점 불규칙해지며 형체를 잃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고요한 도심의 사물 모두가 흔들리며 보는 이의 마음까지 뒤흔드는 '흐르는 시선'에 당도한다.

하이경_겨울 빛 Light of winter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13
하이경_잠시 서다 Stand for a moment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12

하이경의 작업은 최근작일수록 고요하고 어둡다. 하지만 놀랍게도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진동이 느껴진다. 이는 또 다른 알리바이일까? 흘러넘치는 에너지가 역설적으로 느껴지는 작품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맞닥뜨린 언덕은 수고로 다가오지만, 언덕을 적신 빗물이 반사하는 가로등의 반짝이는 불빛은 그 수고를 기쁨으로 바꾼다. 잠시 서서 바라보는 경복궁 옆 돌담은 너무 높아 답답하다. 하지만 굽은 길을 통해 길이 끝나지 않음을, 또 다른 길이 있음을 내보인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의 그림자와 보도블록에 어른거리는 빛은 곧 틔워낼 새잎을 기대하게 만든다. ● 식민지 수도 경성에서 구보 씨는 하루 동안의 배회를 끝내며 "이제 나는 생활을 가지리라… 참말 좋은 소설을 쓰리라"고 독백한다. 목적도 없고, 나섰던 문으로 다시 돌아올 뿐일지라도,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이 길을 떠나기 전과 달라졌음을 깨닫는 것이다. ■ 서준호

Vol.20130330e | 하이경展 / HI,KYOUNG / 河利炅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