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적 현실-6자회담

설총식展 / SEOLCHONGSIK / 薛總植 / sculpture   2013_0504 ▶ 2013_0520 / 월요일 휴관

설총식_Lies Named Justice_합성수지에 아크릴채색_38×40×23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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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504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의정부 예술의전당 UIJEONGBU ARTS CENTER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2동 323번지 Tel. +82.31.828.5841~2 www.uac.or.kr

우리를 둘러싼 힘의 자리 ● 설총식 작업의 시작과 끝은 의인화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밥 벌어 먹고 사는 우리들이 일상 속에서 늘 마주하는 생존의 관계망을 동물인간 캐릭터를 이용해 보여주었다. 2002년 첫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인 명태(인간)과 두꺼비(인간)에서 출발하여, 고릴라, 개, 올빼미, 제비, 물고기, 여우, 곰 등 다양한 동물들이 설총식의 우화 속 캐릭터로 등장했다. 동물의 외모와 성격, 행동습관 등은 표현력이 빼어난 그의 손을 거쳐 현실의 '나'를 대신하는 캐릭터 속에 깃들었고, 이렇게 탄생한 '동물인간'들은 천연덕스럽게 우리의 비루한 일상 소소한 장면들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제도 전시장보다 생활공간을 더 선호하는 작가의 고집덕분에, 우리는 도심의 빌딩 숲 사이나 한갓진 골목에서, 또는 어느 집 담장 앞에서 이 캐릭터들과 만나곤 했다.

설총식_6자회담_합성수지에 아크릴채색_가변설치_2012~3

설총식의 동물인간들을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그 캐릭터들이 흉내내고 있는 바로 그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현실을 새삼 알아차린다. 우리는 낚시밥에 정신 못차리는 물고기고, 자신의 자리를 안 빼앗기기 위해 버티고 앉아 있는 두꺼비고, 주변을 경계하며 눈치를 보는 고릴라다. 주어진 판 위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버티느라 힘겨운 우리는 조금은 불쾌하지만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 안에서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설총식 우화 속 캐릭터는 계속 늘어갔고, 그의 표현력은 점점 더 능수능란해졌으며, 덩달아 캐릭터의 연기력과 설득력도 높아져갔다. 그가 만들어온 동물인간들은 21세기 현재 자본주의 체제의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담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보편성을 담은 지금여기의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여기 설총식이 만든 신작 동물인간 여섯이 있다. 이소룡의 노란 체육복을 입은 자세가 쿵푸 선수인 듯한 '판다'를 보자면, 그는 노란 작은 별들이 그려진 빨간 운동화를 신고, 변발을 한 머리카락을 얌전히 땋아 오른쪽 어깨에 드리운 채 바닥에 앉아 있다. 오른손에는 트럼프 카드뭉치를 쥐고 있는데 맨 윗장은 조커다. 왼팔은 군복차림의 '두더지'를 감싸는 자세다. 앉아 있는 판다의 허리 정도 밖에 닿지 않는 작은 체구의 두더지가 끝에 빨간 별무늬가 그려진 까만 미사일을 마치 갓 난 아기를 업은 양 짊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삶을 땅속에서 사는 동물인지라 눈은 거의 퇴화한 듯 눈동자는 보이지 않고, 양쪽 귀에 손등을 대고 있어, 마치 땅굴에서 기어나오고 있는 것 같다.

설총식_6자회담-North Korean Soldier_합성수지에 우레탄채색_67×40×66cm_2013 설총식_6자회담-South Korean Taekwondo Fighter_합성수지에 우레탄채색_63×53×30cm_2013

그 맞은 편에는 태권도복 차림의 '고양이'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판다와 두더지에게 똘망똘망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고양이는 태극무늬가 그려진 파란 헤드기어를 쓴 데다, 역시 같은 무늬의 파란 호구까지 제대로 갖춰 입었건만 목에는 방울을 달고 있다. 그 오른편에 있는 스모선수로 보이는 뽀얀 '두꺼비'도 이들을 향해 앉아 있다. 온몸이 다부진 근육질인 두꺼비의 부리부리한 눈 속에서는 불꽃이 이글거리는 것 같고, 하얀 마와시(스모의 샅바) 둘레에는 붉은 점들이, 앞쪽에는 욱일승천기 문양이 그려져 있다. 고양이 태권도 선수와 두꺼비 스모 선수는 두더지 군인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판다 쿵푸 선수에 비해 왜소해 보이지만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 쫄지 않아 보인다. ● 고양이와 두꺼비의 뒤에는 고릴라가 있다. 구릿빛 피부에 거대한 상체를 가진 고릴라가 뭔가 소리라도 치는 양 입을 쩍 벌렸다. 그는 이들을 향해 가려는 듯 왼발을 앞으로 내밀고 있다. 고릴라는 하얀 별이 잔뜩 그려진 파란 팬티를 입고, 빨간 장갑을 꼈다. 윗니에 끼워진 노란 마우스피스에는 빨간 글씨로 'JUSTICE'를 적어 넣었고, 왼손에는 나무망치를 들고 있다. 머리에는 판사용 하얀 가발까지 쓰고 있으니, UFC(얼티밋 파이팅 챔피언십) 선수같기는 한데 한편으론 영락없는 판사의 모양새다. 태권도 고양이와 스모 두꺼비의 뒤를 든든하게 받히고 있는 파이터 고릴라 판사의 자리는 두더지를 감싼 판다와 대립쌍을 이룬다.

설총식_6자회담-Chinese Kung Fu Fighter_합성수지에 우레탄채색_140×130×110cm_2012

이 다섯 동물들이 이리저리 시선을 주고 받는 장면 왼편에는, 왼손으로 머리를 고인 채 길게 누워 파란 눈으로 다섯 마리 동물을 무심히 바라보는 레슬러 '북극곰'이 있다. 앞판은 파란색, 뒤판은 붉은색으로 몸에 찰싹 달라붙는 레슬링복을 입고 있어, 육중한 몸덩어리가 두드러진다. 등판에는 황금색 쌍두 독수리가 그려져 있다. 독수리는 한쪽 발로 가스 배관 파이프를, 다른 발로 황금덩어리를 쥐고 있다. 파이프는 북극곰이 신고 있는 하얀 운동화로 이어지는 모양새인데, 신발에는 러시아에서 가장 큰 국영 천연가스 회사의 이름 '가즈프롬(GAZPROM)'이 적혀 있다. ● 이들의 복장을 보아하니 두더지를 제외하면 다들 각종 격투기 종목에서 활약하는 운동선수인 듯하다. 그 복장이 지시하는 스포츠 종목은 모두 다르니, 다들 각자의 경기장에서 각자의 룰을 지키며 게임에 임하면 되겠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무슨 이벤트 차원에서 그들간에 서로 힘겨루기를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한다면? 모두가 납득할만한 '공정한' 규칙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레슬러와 스모선수가 서로 경기를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니까 그런 게임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나 벌어질 수 있는, 사실은 거의 벌어질 이유가 없는 일이다. 그건 그렇고, 두더지는 왜 혼자 군복 차림인가?

설총식_6자회담-Japanese Sumo Fighter_합성수지에 우레탄채색_65×70×60cm_2012

운동선수 캐릭터의 이 여섯 동물들은 여섯 개의 국가를 지시한다. 노란별이 그려진 빨간 운동화, 게다가 쿵푸복에 변발한 판다라면 영락없는 중국이다. 카드를 쥐고 있는데 맨 위에 펼쳐놓은 것이 조커라는 건, 국제사회에서 조커를 쥐고 있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라는 이야기겠다. 중국이 감싸고 있는 두더지는 한 때, 땅꿀파기 실력을 남측에 과시하던 북한이다. 남들은 다 운동복을 입었는데 혼자 군복을 차려 입고, 최근 개발에 성공한 '핵'을 과시라도 하는 양, 미사일까지 짊어진 두더지에게서는, 왜소한 '트러블 메이커'의 측은한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다(어쩌면 보고 싶은 것일지도). 다른 나라들이 전쟁을 스포츠로 대치시켜 욕망을 해소할 때, 북한은 전쟁무술을 스포츠로 치환하여 체력 연마에 힘쓴다 하니, 그들의 '군복'은 운동복으로, '전쟁무술'은 격투기의 일종으로 인정해줘야겠다. 물론 이 '특수한' 격투기에서는 '스포츠맨십'이 필요 없다. ● 두더지를 감싼 판다와 맞서고 있는 무리는 고양이와 두꺼비와 고릴라다. 태권도 선수 고양이는 한국이다. 목에 방울을 매단 고양이에게 자율은 없다. 경우에 따라서 자유롭다는 착각에 빠져 있을 수는 있다. 일본을 상징하는 스모선수 두꺼비의 시선은 대륙을 향해 있다. 기회를 봐서 언제라도 대륙을 향해 튀어오를 기세다. 나무망치를 들고 이쪽으로 쫓아오는 고릴라는 미국이다. 그는 성조기 무늬의 팬츠를 입었다. '정의'의 이름으로 모두를 심판하겠다는 고릴라 미국의 결연한 의지가 하얀 판사 가발 덕분에 살짝 코믹해진다. 자본주의 블록의 한미일 3국이 사회주의 블록의 중국과 북한과 맞서 있는 상황을 담은 이들 다섯 동물의 관계는 전쟁위협이 고조되어 갈등과 대결 국면으로 치닫는 2013년 봄의 상황을 집약하고 있다.

설총식_6자회담-American U.F.C Fighter_합성수지에 우레탄채색_127×85×120cm_2012

두 무리의 맞섬을 지켜보는 북극곰의 모습은 설총식의 유머감각을 돋보이게 한다. 북극곰은 러시아다. 등에는 러시아가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계승받은 문장 속 상징 쌍두 독수리가 그려져 있다. 원래 문장 속 쌍두 독수리는 오른쪽 발에 세속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홀을, 왼발에는 전 세계를 그리스도교화하겠다는 상징으로 지구 위에 십자가가 놓여 있는 형상의 황금구를 쥐고 있는데, 여기 등장한 독수리는 황금과 가스파이프를 들고 있다. 그의 신발에 적힌 '가즈프롬(GAZPROM)'은 오늘날 러시아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냉전시대 사회주의 블록의 패권국가였던 러시아는 이제 양 진영의 대결구도를 관망하고 있다. ● 이번 개인전에서 설총식은 지금껏 보여주었던 소시민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국가 단위로 전환했다. 이는 국가와 같은 거대 권력이 보여줄 수 있는 스펙터클이라든가, 풍부한 서사를 끌어낼 수 있는 정치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개인과 다를 바 없이 '기득권', '나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국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미국이 9.11테러 이후 취한 모습에서 그는 지구촌 정의의 수호자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 나라의 욕망을 보았다. 자기의 자리, 역할을 지키기 위해 힘의 관계망 속에서 바둥거리는 미국을 설총식은 팔에 폭탄을 끼고 달리는 미식축구선수 고릴라로 캐릭터화했다. 그는 「lies named justice」라는 제목의 이 작업을 시작으로 2011년부터 국가들의 캐릭터화를 본격화했고, 우리와 좀 더 밀접한 국가들의 관계망을 그려볼 수 있는 '6자회담' 시리즈를 완성하여 우화의 무대에 올려놓았다.

설총식_6자회담-Russian Wrestler_합성수지에 우레탄채색_70×210×110cm×2_2012

동물인간들의 크기는 각 국가의 면적 비례와 일치하고, 자리잡은 위치도 지구상의 각 나라 위치와 비슷하다. 이들의 시선과 태도 역시, 각 나라들의 현재 시선, 태도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데, 현실세계에서 이들은 현재 북핵을 둘러싼 6자회담이라는, 출구 찾기가 어려운 게임판 위에 올라와 있는 상태다. 게임에 등장한 동물인간들은 서로 다른 종목의 운동선수다. 이는 그들이 서로 다른 게임의 룰에 지배받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섯 나라가 서로 다른 처지, 입장, 이해관계에 놓여 있으며, 만일 이들이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처럼 힘겨루기를 하려 한다면 이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좀처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일종의 '교훈'도 발견할 수 있다. 풍부한 표정과 알레고리를 가지고 있는 이 캐릭터들은 관찰 여하에 따라 또 다른 이야기와 교훈을 유도해나갈 수도 있겠다. ● 거의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 일반의 보편성이 아니라 경제와 정치의 굴레로 얽힌 국가 사이의 특수성을 캐릭터화하여 서사구조를 만들어나간 이번 신작 '6자회담' 시리즈는 앞으로 설총식이 전개해나갈 우화의 확장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동안의 동물인간 캐릭터들이 각자의 특징 속에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면, 신작은 그것을 국가 간의 대결국면,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에 대입함으로써 훨씬 더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복잡다단한 국제관계를 명료한 서사로 압축한 신작들은 설총식 우화의 진화를 보여준다. 개인과 사회, 개별과 구조, 보편과 특수 등 서로 다른 단위와 영역의 문제들을 오고 가며 우리시대 삶의 모습과 현실의 문제들을 다루는 예술가 설총식은 지금 삶의 한 가운데서 자신의 발 디딘 곳과 그 주변을 깊이 살피고 있다. 그것은 남과 북과 그 주변에 존재하는 '우리를 둘러싼 힘의 자리'이다. ■ 김지연

Vol.20130504d | 설총식展 / SEOLCHONGSIK / 薛總植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