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정원

김유정展 / KIMYUJUNG / 金維政 / painting   2013_0503 ▶ 2013_0530 / 주말,공휴일 휴관

김유정_Taming the Plant_프레스코_90×14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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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홈페이지_kimyujung.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3 이랜드문화재단 3기 공모展

주최,기획 / (재)이랜드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이랜드 스페이스 E-LAND SPACE 서울 금천구 가산동 371-12번지 이랜드빌딩 Tel. +82.(0)2.2029.9885 www.elandfa.org

세상은 화려한 색채로 넘쳐난다. 외형적인 아름다움은 우리의 시선을 끌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생각과 꿈을 좇아가길 갈망한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행복을 소유하는 것이다. 내가 소유한 것이 안락하고 아름다울 때 비로소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나의 깊은 마음 속은 어떠할까? 이후에도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로운 나가 아닐까?

김유정_Taming the Plant_프레스코_90×140cm_2013
김유정_Taming the Plant_프레스코_90×140cm_2013

작가가 작품의 소재로 삼은 실내의 식물은 관상용이다. 바람과 햇볕을 맞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다. 누군가의 손으로 정성 어린 보살핌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방치되기도 한다. 작은 화분은 물론이거니와 커다란 나무일지라도 사람의 손길을 거쳐야만 자랄 수 있는 것들이다. 타의에 의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화분의 신세는 아무리 화려해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도 말이다. 그래도 화분은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자신의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우리에게 위안을 안겨주고 떠난다. 작가의 눈으로 새로운 관심의 범주에 들어온 식물은 자신의 고유색을 버리고 한결 같이 평소에 말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다른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것은 겉으로 볼 수 없는 나이고 투시되어야 보이는 나이며 심상을 거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진실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 자신임에도 우리는 얼마나 남을 의식하는지 모른다. 나의 치장도 남을 위한 것이요, 나의 말도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 화분을 통해 꿋꿋한 듯 보이는 사람들의 연약한 모습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삶의 한 단면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채색의 식물 이미지는 사람을 경건하게 만든다. ● 김유정의 작품은 프레스코 기법에 음각을 이용하고 있다. 프레스코란 젖은 회벽 위에 안료로 채색하여 회벽 내층까지 안료를 스며들게 함으로서 발색과 보존성을 가장 극대화시킨 벽화기법이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등 서양의 성당 건물 벽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이 프레스코 기법을 이용한 것들이다.

김유정_In a Body_프레스코_70×70cm_2012
김유정_Shadow Garden_프레스코_113.5×162cm_2012

김유정의 작품은 본래 프레스코 기법의 채색보다 조각이 훨씬 중요하다. 형상은 주로 음각으로 표현하는데 이렇게 드러난 형상은 순백에 가까울수록 강조된다. 보통 그림은 백지 상태의 바탕 위에 한 겹 두 겹 채색이 쌓여지거나 필기구의 흔적에 따라 그려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무언가가 더해지면서 어떤 것이 만들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자꾸 덜어낼수록 무엇이 만들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다. 나를 비워내는 행위는 내 안에 더 큰 공간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김유정_Floating the Plant_프레스코_55×80cm_2013
김유정_Floating the Plant_프레스코_100×100cm_2013

화판에 발라진 회벽은 커다란 정원이다. 순백의 정원이 어두움으로 덮이고 난 뒤에야 고요는 깨지기 시작한다. 김유정의 그림은 날카로운 칼날이 작품의 바탕을 파고들어야 한다. 예리한 칼날은 작가의 손끝이 되어 서서히 식물의 몸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파리 하나가 세상에 드러나기 위해 패이는 회벽은 생명 탄생의 거름이 되고 바닥에 쌓이는 가루는 시간의 축적을 알린다. 반면 이것은 정원의 상처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상처가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매 순간 이어지는 음각의 깊은 칼질은 시작의 과정이고 즐거운 순간이 되며 치유의 현상이 된다. 결국 행복의 상처가 있음으로 생명이 창조되는 것이다. ■ 천석필

Vol.20130505d | 김유정展 / KIMYUJUNG / 金維政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