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D · LANDSCAPE 風·景

유근택展 / YOOGEUNTAEK / 柳根澤 / painting.drawing   2013_0501 ▶ 2013_0512 / 월요일 휴관

유근택_감포에서_한지에 수묵_67×99cm_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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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택 홈페이지_www.geuntaek.com  인스타그램_@yoogeuntaek

작가와의 대화 / 2013_0511_토요일_01:00pm

장소 / 휴머니스트 세미나실(서울 마포구 연남동 동교로23길 76)

『지독한 풍경-유근택 그림을 말하다』 출판기념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두가헌 갤러리 GALLERY DUGAHUN 서울 종로구 사간동 109번지 Tel. +82.(0)2.2287.3551 www.galleryhyundai.com

대화_징글징글한 세계에 맞선 몸의 원시성 유근택 / 작가, 성신여대 교수 윤동희 / 북노마드 대표 / 미술무크지 『debut(데뷰)』 발행인 이대범 / 미술평론가, 독립큐레이터

발문 1_ "나에게 일상은 아주 징글징글하게 얽혀 있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그런 놀라움이 항상 공존하는 세계, 그게 제가 바라보고 탐색하고 천착해온 삶의 공간이자 그림의 공간입니다." 발문 2_ "동양미학은 결국 몸의 언어입니다. 태도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먹 자체에 동양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기보다 먹을 다루는 사람의 태도에 의해 그 색채가 다르게 변화하는 것입니다. 작가, 즉 먹을 다루는 사람의 몸의 태도와 철학, 움직임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죠." 발문 3_ "'원시성'에 대한 질문을 계속 되뇌입니다. 일종의 '본능'이죠. 어떤 본능적인 지점에서 내 작업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게 질문이자 화두입니다." 발문 4_ "작가로 살아간다면, 작가로 살겠다고 결정하면 혼자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시간들은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사회에서 주목하는 작가의 연령대가 너무 낮아졌어요. 이제 막 시작한 단계인데 자신의 스타일을 굳힌다거나, 주변의 반응을 고려해 유행을 여과없이 쫓아갑니다. 호흡이 너무 빨라요.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놓치는 게 아닐까요?"

유근택_지경리해변의 비_한지에 수묵_26×47cm_2010

윤동희_ 작가를 인터뷰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평범한 일이 되어버린 시대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세계를 그림으로 구성하는 작가의 작업세계를 중간 점검하는 이번 책에서 오늘의 대화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유근택의 작업을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역사~시간~일상의 화두를 탐구해온 시간이 아닐까 여겨 봅니다. 그리고 이를 다시 뭉뚱그려 정리한다면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부단히 담아온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그동안 그림을 통해 발언하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나요? 유근택_ 역사~시간~일상, 이렇게 간단히 요약하고 나니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술계에 입문해 활동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이 오버랩됩니다. #039;일상'에 대한 관심은 세계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어 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인간의 내면 문제가 어떻게 회화가 될 수 있는가를 놓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당시 동양화단은 현대화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관념적인 정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 점이 저에겐 늘 공허했어요. 그래서 내가 서 있는 지점에 관심을 기울이자고 마음먹고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어요. 결과적으로 '일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이를 통해 주변의 것들을 작업 속으로 끌어들이는 하나의 장치가 되었습니다. 근래에는 '세계'라는 용어가 훨씬 포괄적으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단순한 일상이라기보다 아주 징글징글하게 얽혀 있는 하나의 세계 같은 겁니다. 그런 놀라움이 항상 공존하는 세계, 그게 제가 바라보고 탐색하고 천착해온 삶의 공간이자 그림의 공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윤동희_ 초기 작업의 주요한 이야깃거리 중 하나로 '할머니'를 꼽을 수 있습니다. 유근택_ 할머니에 대한 드로잉은 많은 부분에서 저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화가인 내가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세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 게 1994년이었어요. 종이와 먹을 들고 나와서 대상과 직접 부딪치는 방법을 택할 때였어요. 1995년 초, 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은 직감이 들었던 건지 할머니 방에 지필묵을 가져다놓고 한 달가량 '할머니' 드로잉만 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작업하면서 그 방에서 할머니가 신음하고 있는 공기와 그림을 그리는 내 호흡과 손이 일체가 되어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수묵이 단순히 골법용필(骨法用筆)의 운용방법론에 그치는 게 아니라, 어떤 호흡과 정서의 문제로 해결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정서, 즉 화가의 눈높이에서 주변과의 관계항에 대한 질문을 찾은 겁니다. 이후 작업에 중요한 동기가 되었던 건 물론이었고요.

유근택_바다_한지에 수묵담채, 38×51cm_2010

이대범_ 단순히 일상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작업으로써 눈에 들어온 것이 이미지적인 사물이 아니라 정서가 묻어 있었다는 얘기일 겁니다. 삶의 어떤 흔적들이 남아 있고, 선생님이 언급했던 공기 같은 게 남아 있고 반영되었기 때문에 나온 거겠죠. 저는 여기에 '몸'에 대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보고자 합니다. 분명 그림이란 어떤 노동일 테고, 그 노동이라는 건 결국 대상에 대한 흔적 찾기일 테니까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작가의 그리는 행위나 사물을 대하는 태도, 몸 씀씀이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유근택_ 결국 '태도'의 문제입니다. 나를 둘러싼 주변, 나를 구성하는 것들을 고민했을 때 결론적으로 도출되는 언어는 결국 '몸'이었던 것 같아요. 동양미학에서도 아주 중시했던 지점이죠. 가령 내가 대나무를 친다는 것은 대나무를 그린다기보다 대나무가 되겠다는 것이거든요. 대나무라는 '몸'을 만드는 차원과 같은 거죠. 저는 그 지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동양미학을 관념적인, 어떤 거대한 아우라 속에 집어넣고 바라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동양미학은 결국 몸의 언어거든요. 태도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먹 자체에 동양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기보다 먹을 다루는 사람의 태도에 의해 그 색채가 다르게 변화하는 것입니다. 작가, 즉 먹을 다루는 사람의 몸의 태도와 철학, 움직임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리얼리티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윤동희_ 조형적 차원에서 실험적 태도가 돋보이거나, 그래서 지금 우리 미술이 일정 수준 진보를 이루었다고 볼 수도 없을 듯합니다. 외화내빈의 시대라고 할까요. 저나 이대범 선생 같은 사람들은 이른바 젊은 작가 전성시대라는 공론의 장에서 글을 쓸 수 있었는데, 지난 10여 년을 돌아보니까 우리도 미술계 외화내빈의 공범이 아니었는지 반성해봅니다. 북노마드가 '풍경'을 화두로 작가 유근택을 조명하는 이유도 지난 20여 년간 정신성과 조형성을 끌고 나간 작가를 통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얘기해보자는 것입니다. 자, 이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인 '풍경'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초기 작업에서의 풍경, 지금의 풍경 등 작가 유근택이 바라본 풍경의 변화가 궁금합니다. 그 사이사이마다 차이점, 변곡점, 결절점이 있었을 것 같거든요. 유근택_ 제가 다루는 모든 것들은 풍경과 관련 있습니다. 풍경이란 일종의 발견 같아요. 내가 바라보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그 대상의 '틈새'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그런 행위들이 결국 드로잉과 연결되는 겁니다. 초창기에 '창밖을 나선 풍경'을 그리면서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에 본질적인 변화를 겪었어요. 회화이되, 어떤 '시간성'이 결합된 회화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동양화가 시간을 다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할까요. 당시에 풍경에 대한 일종의 '신(Scene)'이라고 하는, 사건이 결합된 풍경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게 조금씩 발전하게 되었어요. 2002년, 동산방 화랑에서 선보인「어쩔 수 없는 난제들」처럼 장난감이 널려 있는 작업을 하면서 그림에 생활공간을 끌어들였고, 이후 점점 생활공간이면서 동시에 심리적인 내부와 결합된 공간을 그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갤러리 현대에서의 개인전은 물성적인 면을 좀더 강조하고, 사물 하나하나의 존재감과 깊이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유근택_눈, 삼릉송림에서_한지에 수묵_25×35cm_2008

이대범_ 그 풍경의 변화 과정에서 그리기의 방식도 달라지지 않았나요? 유근택_ 최근 들어 물감을 좀더 많이 쓴다는 것 외에 그리기의 방식에 큰 변화는 없어요. 그보다는 점점 더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생각했던 것보다 참 기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방 안에 있지만 기묘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세계에 함께 살고 있는 것이죠. 방에 소파가 하나 있고, 장난감이 하나 있고, 책장이 하나 있다는 것은 그런 사물들도 기묘한 세계 속에 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거죠. 결국 살아있다는 겁니다. 어떤 표정들이 있어요. 이대범_ 동양화 속에 시간을 담아낼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유근택_ 동양화의 공간 개념은 결국 시간성을 드러내는 데 적합한 재료가 아닌가 해요. 곽희의「조춘도」를 포함한 대부분의 산수화에서 보이는, 위로 올려다보고 내려다보고, 앞을 바라보는 '삼원법'이라는 구도는 결국 시선을 움직여 그 안을 여행하고 있다는 개념입니다. 종이가 갖는 공간 구조는 사물들의 움직임을 공간 내부로 끌고 들어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동양의 두루마리 작업을 보면 10미터가 넘는 작품도 있잖아요. 말려 있던 그림들이 하나씩 펼쳐지면서 또다른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광경은 영화적인 형식과 흡사합니다. 똑같은 조형이 계속해서 이어지면 지루해지잖아요. 따라서 두 팔을 펼친 만큼의 폭에 의해 구도와 공간이 변하고 생성하고 사라지는 거죠. 그림의 내부로 시간을 끌고 들어가는 장치가 되는 겁니다. 종이가 갖고 있는, 스며들어가는 공간 개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에요. 이대범_ 시간에 대해 질문을 드린 건, 그것이 유근택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점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시간, 몸, 이런 것들이 전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작가 유근택의 고민의 흔적이라는 거죠. 문제는 그러한 고민을 이 시대 젊은 작가들이 이미지적으로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게 아닌가, 라는 노파심이 드네요. 유근택_ 공간과 시간이란 개념은 동양미술이 갖는 중요한 조형적 가능성입니다. 호크니 역시 '공간이 없으면 시간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을 했더군요. 이대범_ 작업량이 상당히 많은 작가로 유명합니다. 앞서 말했던 몸 씀씀이, 노동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행위로서의 노동이 아니라 삶을 마주하는 대화의 방식으로서의 노동이라고 보거든요. 유근택_ 모든 행위들이 노동과 관련 있겠죠. 집에서 누워 있거나 움직이다가 문득문득 만나는 사물들을 기억하고 발견하는 등 평소 관심을 갖고 있는 지점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려고 합니다. 저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건 드로잉을 한다는 거예요. 계속해서 드로잉을 합니다. 노동과 관련된 것이죠. 내가 만나는 사물들을 언어화시키는 과정에서 해결이 안 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노동은 없는 것 같아요. 해결책은 없어요. 내가 지금 어떤 부분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가 명확해질 때까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한 달 동안 작업실에 온종일 앉아 있다 간 적도 있어요. 고통스럽죠. 그런 과정이 모두 노동의 방식인 거죠.

유근택_하루를 위한_한지에 수묵_25×37cm×10_2010

이대범_ 넓은 의미의 노동에 대해 말씀해주셨어요. 어떠세요? 최근 유난히 눈에 밟히는 것들이 있으세요? 유근택_ 더 많아졌어요. 집의 옷장들, 책장, 소파, 헬스기구, 침대, 이불..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여요. 사물과 사물들이 어떤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좀더 확장시키면 길거리에 나와 있는 모든 사물들이 기묘하게 얽혀져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윤동희_ 기묘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계십니다. 유근택_ 오랫동안 즐겨 사용하고 있는 단어예요. 기묘하다는 것은 '낯설다'라는 걸 텐데, 그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자 친구 혹은 남자 친구와 이별했다고 쳐요. 바로 어제까지 함께 봤던 풍경이 얼마나 낯설게 보이나요. 아름답던 석양빛이 왜 그리 슬퍼 보이는 걸까요. 그건 우리가 풍경을 바라보는 방식이 '인식'한다는 것이거든요. 순간순간의 낯섦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경험하는 거예요. 다만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거예요. 작가는 그걸 환기시켜서 삶의 문제와 조건에 질문을 하게 만드는 장치를 만들어주는 존재입니다. 제가 '낯섦'이라는 걸 중시하는 이유죠. 이대범_ 방 안의 풍경도 변화가 느껴집니다. 방에 혼자 있었다는 느낌에서 점점 밖으로 나오다가 더 큰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계와의 관계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한다는 거겠죠. 선생님이 생각하는 예술가란 어떤 존재인가요, 그리고 사회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유근택_ 결국 삶이 어떻게 구성되고, 세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반응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겠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아요. 이대범_ 그렇다면 '어디'에 반응하고 계신가요? 유근택_ '어디'라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이대범_ 반응한다고 하셨잖아요. 그 자극점이 있을 것 같아요. 유근택_ 알 수 없는 부분이죠. 자연의 비밀과 같은... 단지 내가 감지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증폭시키는 거 아닐까요. 2000년경,「풍경의 속도」라는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어요. 충남대 강의를 나가던 시절이었죠. 경기도 일산에서 충남 유성까지, 시속 200킬로미터 넘게 달리는 고속버스에서 잠깐 졸다가 문득 깼는데 깜짝 놀랐어요.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그렇게 강렬한 줄 몰랐거든요. 엄청난 에너지로 나를 육박해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게 뭔가?'라는 생각을 품고 습관적으로 풍경이 지나는 걸 기다렸다가 극도로 긴장한 가운데 드로잉을 했어요. 2~3초도 안 되어 풍경이 지나가니까요. 그 순간에 풍경과 싸워야 하는 겁니다. 당연히 답은 없죠. 끊임없이 계속 이어지는 힘에 대한 싸움인 거죠. 결국 '풍경의 속도'라는 개념으로 완성시켰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향해 육박해 들어오는 저 힘을 어떻게 회화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다보니까 '속도'라는 개념으로 풍경을 해석하게 된 거죠. 화가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그런 것 같아요. 처음부터 일정한 콘셉트를 갖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어떤 긍정에서 시작하는 것. 그 힘을 갖고 들어가면서 또다른 힘을 끌어내는 장치. 그게 저에겐 회화인 거죠. 이대범_ 사물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사물과 조응하는, 사물과 대면하는 나와 세계에 대한 관심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반면 선생님 작업이 전개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부분도 있어요. 태도에 대한 문제도 그렇고, 사물과 세상을 대면하는 방식도 변하지 않는 지점입니다. 그 변하지 않는 핵심적인 태도 가운데에서 나이를 먹고, 환경이 바뀌며 조금씩의 변화들이 생기고 작업에 반영되는 것 같아요. 유근택_ 개인적으로 작업하는 공간이 바뀌면 작업이 확실히 바뀌었던 것 같아요. 공간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거죠. 윤동희_ 공간과 주변 환경의 변화가 어떻게 작업에 반영되었나요? 유근택_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공간과 환경의 변화가 태도의 변화로 이어졌어요. 내가 작업실에서 먹고 자고 할 때의 작업과 아파트에 들어간 이후의 태도와 작업이 바뀌었죠. 그전에는 나의 자의식과 역사적 주제, 물성에 대한 싸움이었다면 생활하는 공간이 아파트로 바뀌면서 일상으로 관심이 이동했어요. 1999년이었네요. 일산에서 홍제동으로 삶의 공간을 옮기면서 아파트 창문에 주목해서 보게 되었거든요. 당시 10층이라는 공간에 살았었는데, 앞쪽 아파트 창문이 숨을 쉬듯 열고 닫히는 모습을 유심히 보게 되었어요.「자라는 실내」라는 작업이 그때 나왔어요. 얼마 전 미국에서 1년간 있을 때에도 변화가 따랐습니다. 뭐랄까, 이방인과 같다고 할까요. 미국이라는 거대한 존재감, 그 속에서 나는 부유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그림 그리는 자의 태도에 변화를 미치게 되었어요.

유근택_매화밭_한지에 수묵담채_40×63cm_1996

이대범_ 그때나 지금이나 선생님은 결국 '주변과의 관계'와 몸의 반응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그 반응을 기반으로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회화적으로 풀어내는... 유근택_ 맞아요. 일단 질문을 던지고 보는 거죠. 이대범_ 드로잉도 많이 하시잖아요. 선생님에게 드로잉은 어떤 의미인가요? 유근택_ 화가에게 '본다'는 것은 '발견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드로잉은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마치 책을 읽듯이 읽는 방법론입니다. 이대범_ 드로잉은 매일 하시나요? 유근택_ 매일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느낄 때마다 그 자리에서 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려고 해요. 사진 작업도 있어요. 하지만 사진은 있는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해요. 형태보다 소스를 담는 역할, 간단한 기억장치로만 활용하고 있습니다. 윤동희_ 작업할 때 사진을 많이 이용하시나요? 유근택_ 기본적으로 드로잉에 기준을 두고 작업하지만 가끔 참조합니다. 드로잉과 사진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죠. 이대범_ 사진을 참조하는 건 기록에 대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많은 작가들이 사진을 참조합니다. 그중에는 사진의 이미지적인 측면에 접근하는 분들도 많고요. 그런데 막상 회화로 나올 때에는 좀 달라지잖아요? 유근택_ 저는 사진을 그대로 그리는 차원은 아니고, 하나의 소스로만 활용합니다. 어떤 사물에 관심 있을 때, 그 사물을 드로잉을 통해 확신을 갖는 거죠. 이 작업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언어로 치환시킬 때 드로잉이 그 수단이 되는데, 그보다 세세한 소스를 사진이 줄 때가 있어요. 요즘 사진은 인간 시각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어요. 디지털 영상과 고화질 디지털사진은 우리를 놀라움으로 이끕니다.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는 세부를 들추기 때문이죠. 하지만 화가는 눈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고 온몸의 감각기관을 통해 보고 있기 때문에 상호 보완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이대범_ 개인적으로 사진을 이용한 작업을 볼 때마다,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너무 순간적인 이미지에 천착하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사진이 대상을 대하는 것과 회화나 드로잉이 대상을 대하는 것은 분명 다르니까요. 사진은 순간적이고, 회화는 계속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방식이라는 거죠. 선생님은 그림의 대상과 대화하고, 사물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그것들을 표면을 통해 나오게 하는 데 몰두하시잖아요. 그런 것들이 회화적 붓질, 재료의 사용 등에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목판화는 드로잉과는 또다른 의미일 것 같아요. 유근택_ 목판화도 드로잉과 관련 있어요. 판화라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부질없을 때 혹은 고통스러울 때 하게 되요. 그림 그리는 행위가 답이 안 나올 때가 있어요. 화면만 바라보면 너무 답답해서 목판이라도 파야 할 때가 있는 거죠. 목판이라도 파고나면 답답한 걸 풀어주니까요. 칼이라는 게 좀 비장하잖아요? 칼이라는 언어가 저항을 이야기하기도 하죠. 시대가 어두울수록 목판화가 빛났던 이유입니다. 칼은 상징하는 것이 많아요. 나에게 칼이란 내 안의 해결되지 못한 응어리를 풀어주는 역할을 해주었어요. 일종의 조절장치죠. 혼자 넋두리하듯이 파내려가는... 지금도 그래요. 이대범_ 붓과 칼이 다르잖아요? 강인한 것을 잘라내는 지점도 있고요. 목판을 깎을 때의 감각이 그림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유근택_ 영향을 주죠. 목판의 칼은 붓이랑 같아요. 일획성과 호흡의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화가의 목판화 방식과는 달라요. 윤동희_ 목판화를 하고 나면 내부의 해결되지 못한 응어리가 좀 풀리시나요? 유근택_ 풀리지는 않지만 위로는 되요. 내 작업은 매우 거칠어요. 목판에 구멍이 뚫릴 정도예요. 이렇게 나를 극단적인 곳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는 게 목판화의 매력이에요. 칼과 목판과 내 손 사이의 극도의 긴장감을 찾거나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유근택_사과나무_한지에 수묵_74×104cm_1998

이대범_ 붓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동양화의 붓은 분명 서양화와 매체적 측면에서 다르잖아요. 스며듦, 우연적 요소 등... 선생님이 우연적 요소에 자신만의 대처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유근택_ 그래서 습작의 과정이 많아요. 가끔 작업이 완성되지 않을 때는 의식적으로 그 작업을 버리기 위해 작업하곤 해요.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 것들이 나올 때까지 작업하는 거죠. 내 스타일이 굳어지는 건 오히려 고통스럽거든요. 화가는 스스로 변화할 필요가 있을 때는 용감해져야 합니다. 윤동희_ 한동안 동양화의 현대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잖아요. 그런데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작가들이 놓친 부분이 많았어요. 선생님이 말씀한 태도, 시간, 먹에서 나온 것들.. 매체를 변화시킨다고 현대적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선생님이 보실 때 지금 젊은 동양화가들의 작업은 어느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어떻게 가야 할까요? 유근택_ 방향은 알 수 없어요.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방향은 만들어지는 것이거든요. 결국 그 안에서 바람직한 방향이 만들어지겠죠. 중요한 건 지금 현재를 어떻게 보는가에 있어요. 우리가 지금 어떤 구조 속에 살고 있나를 읽는 작업. 동양화라고 해서 어떤 재료적인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삶의 문제나 철학의 문제, 즉 태도의 문제를 어떻게 가장 근접한 위치에서 끌어들일 것인가, 라는 고민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아요. 미술계가 너무 빨리 변하고 있고, 반대로 그런 질문을 던져서 자기화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걸리거든요. '현재형'에 관한 문제를 더 깊숙이 들어가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대범_ 많은 작가들이 미술사를 배우는 과정에서 다분히 형식적인 것만 배운다는 생각이 들어요.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형식적․물질적․재료적 측면만 이야기하는 거죠. 팝아트건 추상이건, 작업에 결부된 태도가 작업에 흘러야 하는데 나오지 않고 있어요. 선생님 말씀대로 호흡이 짧아져서 그런 듯합니다. 유근택_ 아무래도 유혹이 많은 시대에 살다 보니 대부분의 작가들이 쉽게 물결에 편승하는 것 같아요. 학교 현장에서도 느낍니다. 이대범_ 선생님 그림 혹은 작업 방식에 어떤 규칙들이 있나요? 그림을 통해 많이 사용하는 개념은 무엇인가요? 유근택_ 뭐가 있을까요? 근래 들어 자신을 인식한다는 이야기를 가끔 합니다. 질문이라는 개념도 중요하다고 봐요. 질문이란 말은 생각할수록 아주 재미있는 말이에요. 예술이라는 행위는 질문에 대한 문제이지 해답에 관한 문제는 아니거든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행위죠. 질문의 명확함에 따라 그 파급력이 다른 것일뿐 해답이 나와 있지는 않거든요. 스스로 질문을 자주 던져요. 갤러리 현대 전시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가졌을 때 기혜경 선생이 "당신에게 예술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예술이란 "결국 질문"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윤동희_ 선생님을 최근에 아프게 한 건 무엇인가요? 유근택_ 나를 괴롭게 하는 아픔을 의미하나요? 윤동희_ 뭔가 찌른다는 느낌? 선생님 작품을 보면 사물들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건드린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 건드림이 아픔 혹은 자극이 될 것 같아요. 유근택_ 그런 아픔은 즐거움이죠. 사물과의 게임이자 놀이니까요. 다만 학교에 있다 보니까 생활을 위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들이 존재하죠. 아빠, 남편, 가장으로서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아프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포함되겠죠. 세상 모든 것은 좋은 것과 아픈 것을 같이 갖고 있어요. 이대범_ 늘 품고 있는 질문이 있으세요? 유근택_ 나도 모르게 계속 되뇌는 질문이 있어요. 일종의 '원시성'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단어로 말하자면 '본능'이죠. 어떤 본능적인 지점에서 내 작업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요. 그게 질문이자 화두입니다. 그림에 대한 아우라보다 내 본능에 대한 아우라가 더 커지는 욕구, 그런 거요. 이대범_ 선생님이 1990년대부터 고민해온 건 결국 '동양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고민을 함께해온 분들의 현재적 상황 또는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근택_ 동양화의 현재성에 대해 그룹 활동을 하고 기획도 하면서 많은 시간들과 사건들이 저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어요. 다행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보는 분들이 많아서 감사합니다. 최근에는 동양화와 서양화를 관통하는, 좀더 보편적 회화와 아시아적 담론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회화의 깊이에 대한 고민도 갈수록 커집니다. 당시 함께했던 작가들도 다들 잘 살고 있어요. 저마다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어떻다 이야기할 순 없을 듯해요. 윤동희_ 그 시절 고민했던 질문들이 개인적으로 많이 풀리셨나요? 유근택_ 어차피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다만 그런 질문들을 통해 내 작업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건 분명해요. 작가란 끊임없이 자신을 위기의식으로 채찍질해야 하는 존재잖아요. 그저 좀더 깊어지고 좀더 자유롭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대범_ 마지막 질문입니다. 식상한 질문이에요. 하지만 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화가는 어떤 존재인가요? 유근택_ 사물과 세계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딴죽을 거는 존재. 그게 안 되면 틈새를 만들어내야 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그런 행위를 통해 제3자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보게 하는 그런 존재 아닐까요?

Vol.20130506f | 유근택展 / YOOGEUNTAEK / 柳根澤 / painting.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