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all are coming?

흑표범展 / Black Jaguar / painting.mixed media   2013_0510 ▶ 2013_0530 / 일요일 휴관

흑표범_정오의 목욕_캔버스 출력에 유채_73×10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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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510_금요일_06:00pm

오프닝 퍼포먼스 「The last dinner」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CSP111 ArtSpace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88-55번지 현빌딩 3층 Tel. +82.2.3143.0121 blog.naver.com/biz_analyst

광장에서, 만남과 기다림의 시간축을 돌리다. ● 흑표범은 한낮 광장에 있다. 그는 정오의 광장을 이야기한다. 광장은 더 이상 사회구성원들이 모여 합의를 이끌어내는 공론장이 아니다. 지금의 광장은 인간의 존엄과 품위는 고사하고, 개인의 정체성과 개성을 보장할 수도 없는 곳이다. 태양과 인공조명이 밤낮없이 작렬하는 백주대낮이건만, 이성과 합리, 상식의 대화를 나눈다던 고상한 지성인들은 온 데 간 데 없다. 종교, 정치, 역사, 사회, 문화적 이데올로기 위에 지역주의와 군중심리가 교묘히 뒤얽힌 (집회, 구호, 시위, 난동, 축제, 소비, 유행 등) 각양각색 집단광신주의자들의 발작적 경련이 연일 이어질 뿐이다. 광장은 더 이상의 갈등도 분쟁도 없는 화려한 축제의 경연장인 듯하다. 한바탕 힘을 과시하며 벌이는 군중의 경연들은 일일이 왈가왈부 거론하며 시시비비 가릴 틈도 없이 지나가버린다. 공동체적 욕망들, 군중의 무수히 많은 발길들이 교차하는 그곳에서 이제 개인은 시시각각 다른 군중의 스타일로 재빠르게 변신할 줄 알아야 시크하고 쿨한 현대인이다. 군중 속에 좌초된 개인에겐 광장에서 학살된 개인적 시간을 위한 최소한의 저항의 여지도 없기에 사회구성원들 간의 깊은 이해와 배려, 희생, 용서와 관용, 조화와 화해를 향한 현재적 시도의 몸짓도 역사적 비전과 열망도 어불성설이다. 무기력하고 무미건조한 나른한 광장이다. 흑표범의 「Who All Are Coming?」은 바로 이러한 광장 이야기이자, 그 한 가운데에서 실종된 개인을 부활시키려는 최소한의 예술적 저항이다. ● 이야기는 작가의 사적이고 우연한 사건과 인상에서 시작한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 광주, 구 도청 앞 분수대의 강렬한 인상 –시간이 정지된 듯 한 분수대의 공간과 분수대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대비적 풍경- 은 2011년 7월 광주 구 도청 앞 분수대에서 벌인 샤워 퍼포먼스 「정오의 목욕」의 모티프가 되었다. 하지만, 퍼포먼스가 실연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작품 의도와 상관없는 예상치 못했던 해프닝들 -쿤스트할레 광주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단의 장소 변경 강요, 지원 철회, 퍼포먼스 당일 광주 동구청의 오브제 철거 등 미술 내,외부와의 해프닝- 로 퍼포먼스는 졸지에 정치적 성격의 게릴라 퍼포먼스로 변색, 왜곡되었다. 게다가 퍼포먼스 이후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외설 논란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와 지역감정을 주 내용으로 한 댓글들까지, 작가 흑표범은 순식간에 뜨거운 이슈로 회자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예술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세대간, 지역간, 전문영역 간의 불통을 여실히 드러내고 지나가버린 군중들의 발길, 그 광장 한 복판에서, 흑표범은 다른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일어난 두 개의 상황을 중첩시키며, 자신의 광장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흑표범은 자신의 퍼포먼스 「정오의 목욕」 과 자신이 태어난 해 그곳에서 벌어졌던 「5.18 민주화 운동」, 이 두 사건과 이를 둘러싼 다양한 해프닝들이 난교차하는 상황 -'예술인가 외설 (혹은 단지 정치 행위)인가', '폭동인가 항쟁인가' 와 같은 시비로 일축해 판별, 규정하려는 상황 속에서, 5.18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집단적 시간과 이를 둘러싼 매스미디어의 언론과 실체 없는 군중들의 거대한 난류, 그 아래 침묵으로 실종된 개인적 시간들- 을 작가적 시각으로 재구성한다. 흑표범의 이번 개인전은 이러한 해석과 번역을 거친 회화와 영상, 설치 등을 새롭게 연계하고 교차시키며 이루는 제3의 광장이다.

흑표범_The last dinner_설치-5.18 당시 시민의 기록을 적은 12개의 빵과 퍼포먼스 제작 당시 작가의 기록을 적은 1개의 빵_7×27cm×13_2013

이번 전시는 흑표범이 기존에 보여주었던 작가적 문제의식과 비판적 시각, 개인의 존재증명과 세계와 무한을 향한 열망과 시도, 그 과정에서의 과도한 감정의 표출이 뒤얽힌 일탈과 해체, 저항의 몸짓으로 공간 전체를 독점적으로 점유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풀리지 않는 두려움과 갑갑함 그리고 시계 초침의 기계적인 반복과 순환 안에서의 울부짖음과 포효, 난동과 소란, 비정형의 옹알이, 방언 등 언어적 발성과 발언을 시도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맥동과 호흡 등을 찾아가는 몸짓, 이러한 모든 통과의례의 과정 안에 조금씩 배태된) 흑표범 고유의 의미형상들로서 불완전한 원과 숨표, 시계와 과녁의 동심원, 그리고 중심점에서의 수직상승/하강 이미지들은 이번 전시에서 광장, 시계, 둥근 빵 등의 유비적 형상으로 이어지며, 크고 작은 광장과 이들을 엮어내어 상호공명하게 하는 더 큰 광장으로서 예술적 행위의 상징과 은유의 연쇄를 이룬다. 몰입과 거리두기, 깊은 교감과 공명, 작가적 시각과 개성으로의 해석과 번역, 밀도 있는 의미형상의 구성과 차분한 서술구조 방식은 한결 성숙해진 관계와 맥락에 대한 성찰을 엿보게 하며, 작가적 세계관과 관련하여 자신의 예술적 저항에 집중하게 한다.

흑표범_일곱 개의 시계_시계 5.18 사체 사진에 유채 스와로보스키_지름 34cm_2012

흑표범의 광장은 대안이란 이름으로 지하에서 잠자는 잠재태가 아니다(underground). 그렇다고 제의적 퍼포먼스나 완전무결한 제물들을 바치는 높은 언덕에 우뚝 선 예술 신전도 아니다(museum). 그렇다고 자연으로의 회귀나 형이상학적 정신성을 운운하며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고독한 선동자의 발언대도 아니다(independant). 그는 오히려 2004년부터 자신을 은연중에 누렁이라고 지칭해왔듯이(똥개 2004, Boy meets dog 2006) 언젠가는 올 주인을 한없이 기다리는 누렁이처럼 예술이라는 광장 시장 통 한 점방을 지키고 있다. 그는 정오 한낮 광장에서 무수히 많은 광장의 지나가는 말들, 때로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남아 역사로 기록될 무수히 오가는 말들의 유행과 부침(mass media와 pop culture)에는 (거리를 둔 무관심한) 침묵하는 일인에 가깝다. 그는 단지 자신만의 시간을 살다가 거대한 역사로부터 배제된(죽임을 당한) 무명씨들의 증인이자 증거인으로서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가 그들과 함께 공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제안한다. 1980년 5. 18의 시공간에서부터 2011년 7월 「정오의 목욕」의 시공간을 지나 이번 전시의 「일곱 개의 시계」 - 「The last dinner」 – 「Big dinner」 - 「푸른 점」 – 「정오의 목욕」 - 「외설」 – 「거인」을 통해 같은 공간 위의 다른 시간들이 중첩되는 동안 우리는 특정 사건과 시간을 초월한 또 다른 광장 위에 서게 된다. 경보음을 내는 균형추, 메트로놈과 같이 부단히 움직이는 한 예술가가 리드미컬한 스펙트럼으로 세계와의 화해를 향해 무지갯빛 징검다리를 놓는 순간이다. 2004년 상처받고 남루한 누렁이는 이제 다 같이 함께 나누어 먹을 빵(The last dinner 2013)을 준비하였다. 이 빵은 먹고 사는 입, 군중심리에 호소하는 입, 물신화되고 우상과 구호를 기계처럼 따라 반복하는 입을 위한 빵은 분명 아니다. 작가 흑표범의 “어떤 사람들이 오고 있느냐?”라는 기다림이 건전한 생의 욕망과 의지를 공유하며 함께 광장에 서 있을 새로운 타자들에 대한 부름과 예술적 공명의 공동체적 울림일 수 있길 바란다. 더불어 CSP111아트스페이스도 단지 물신화된 작품이 거래되는 공간(gallery)을 넘어, 예술과 사회문화의 빵을 나누는 공명의 장을 꿈꿔본다. 이것이 우리의 광장이다. ■ 조성지

흑표범_일곱 개의 시계_시계, 사진(나경택 제공), 유채, 스와로보스키_115×36×14cm_2012
흑표범_푸른 점_원형 캔버스에 유채_지름 150cm_2012

본 전시는 집단적 시간에 학살된 개인적 시간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예술적 저항으로서 지난 2011년 7월에 광주 구 도청 앞 분수대에서 펼쳤던 샤워 퍼포먼스 「정오의 목욕」을 회화, 설치 등의 매체로 새로이 재구성하며 5.18 민주화운동과 「정오의 목욕」을 교차시킨다. 퍼포먼스 「정오의 목욕」은 광주라는 특정 지역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작품인 동시에 광주를 넘어 한국 예술계 전체에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다. 퍼포먼스가 실연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작품 의도와 상관없이 벌어진 쿤스트할레 광주와 아시아 문화 중심 도시 사업단의 장소 변경 강요, 지원 철회, 퍼포먼스 당일 광주 동구청의 오브제 철거, 퍼포먼스 이후 관련 보도에 달린 댓글들의 내용 등 미술 내,외부와의 해프닝은 한국 예술계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정치적, 제도적 경계 간의 불통과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세대간, 지역간, 전문영역간의 불통을 여실히 드러냈다. 본래 특정 장소에 대한 심미적 견지에서 출발했던 퍼포먼스 필름의 첫 구상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오히려 정치적 성격의 게릴라 퍼포먼스로 변화하게 되었고, 퍼포먼스 이후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외설 논란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와 지역감정을 주 내용으로 한 댓글들 등 사회적 반응 또한 이 퍼포먼스가 또다시 전시로 재구성되는 연계점으로 작용했다. 다른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일어난 두 개의 상황, 5.18민주화 운동과 「정오의 목욕」퍼포먼스는 서로 다르지만 '폭동인가 민주화 운동인가, 예술인가 외설(혹은 단지 정치 행위)인가.'와 같은 시비로 일축해 판별, 규정하려는 대상에 처해진 상황은 비슷하다. 다르지만 비슷한 이 두 개의 상황을 전시장 내에 직교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 가운데 사회적 흐름에 던져진 개인들의 존재성을 주목시키고자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폭동인가 항쟁인가의 시비, 그리고 그 당시 5.18이라는 이름으로 함축된 거대한 집단적 시간은 그러나 그때 그 곳에 있었고 지금은 이미 사라지기도 한 누군가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 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집합체이다. 시간, 역사, 사회, 이데올로기 등 거대한 집단적 시간의 흐름에 던져지고 또 각기 자신의 욕망과 동기로 모여 집단적 흐름을 만들어 내지만 집단의 거대한 그늘 아래 사라지는 개인들의 시간을 주목하고 위로하고자 한다. 동시에 폭도나 열사의 층위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그들을 작품으로 부활시키려는 이 전시는 작가 자신에게도 제지를 겪는 과정에서 변화해 온 작품을 새로운 연계점들을 통해 본래 구상으로 회복시키려는 과정이다. ■ CSP111 ArtSpace

흑표범_Big dinner_2013
흑표범_Who All Are Coming_CSP111 ArtSpace_2013

아름다운 동행 (전시 연계 프로그램) 1. 죽음이라는 것이 완전한 마침이 아니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인간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인간에게 주어진 삶은 그에게 부여된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느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의 시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들추어내어 정면으로 응시하고자 노력하는 까닭은 잃어버린 본성과 자아를 찾아 그 기원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부분과 전체로 요약할 수 있는 개인과 역사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개인의 삶 속에 교차하고 있는 역사의 흔적들. 그러고 보면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는 작업은 그것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꿋꿋하게 살아남은 자의 몫인지도 모른다. 2. 이 짧은 희곡은 돌이킬 수 없는 시대의 아픔 속에서 잊혀진 자들, 그렇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영영 안 잊혀지는, 아니, 결코 잊을 수가 없는 역사의 뒤편에 묻혀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혹은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없는 곳, 마음속의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름답고 슬픈 추억으로 버무려진 지나온 날들의 꿈과 환상을 찾아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 3. 무대 공간은 기차 안이지만 이 공간은 때에 따라서 태초의 바닷가나 어둠 속의 거리, 밤의 도서관, 외딴 섬, 산 속 동굴들로 변모한다. 시간은 인류 최초의 어느 날일 수도 있고 종말을 앞둔 지구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그 속에 한 가족의 가슴 시린 과거사를 간직하고 있는 청년과 잘못된 역사의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 떠도는 사내가 존재한다. 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불러낸다. 혹은 그들 자신이 아득한 시간의 저편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부대프로그램 극 「아름다운 동행」 (런닝타임 이십여분, 보도자료 별첨) 작, 연출 : 최창근 출연 : 이십대 후반의 청년 - 윤성원         사십대 중반의 사내 - 이정훈 음악 : 하림

비트박스 퍼포먼스 「시계」 (런닝타임 십여분) 연출, 출연 : 윤기범

Turning the time-axis of meeting and waiting in the square ● Black Jaguar is in the square at midday. He talks about the noonday square. The square is no longer a public plaza where members of society make agreements. The square today is a place that cannot ensure an individual's identity and personality let alone human dignity or sanctity. In the square brightened by sunlight and artificial lighting day and night, elevated clerisies who converse using reason, rationality, and commonsense, are nowhere. Many religious fanatics' spasmodic convulsions - rallying, demonstration, rampages, festivals, consumptions, trends - are pervasive in the square where political, historical, social, and cultural ideologies entangle with regionalism and mob-psychology. ● The square seems to be an arena for extravagant festivals where there are no conflicts and struggles any longer. Contests of the crowd pass without leaving room to raise issues and discuss right and wrong. In the place where communal desire and the crowd's multiplicity intersect, individuals may become chic, cool contemporary people if they swiftly metamorphose themselves into the crowd style every moment. As individuals have no room for minimum resistance against the forces massacring their personal time in the plaza, any present endeavor, gesture, historical vision or aspiration for deep understanding, consideration, sacrifice, tolerance, harmony, and reconciliation among members of society are of no use. The square perpetuates a lethargic, dull, and listless state. Black Jaguar's Who all are coming? is minimum resistance to revive disappeared individuals, conveying narratives about such a square. ● The narratives are inspired by the artist's impression of an incident he underwent by chance. The artist took the motif of Bath at noon, a shower-performance the artist performed at the fountain in front of the old provincial government building in Gwangju on July 2011, from a strong impression of the fountain he met in his home Gwangju, the space of the fountain where time stands still, and the contrasting scene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 Due to unexpected incidents which occurred during the performance, internal and external happenings, such as Kunsthalle Gwangju and Presidential Committee for Hub City of Asian Culture's coercion to performance stage, withdrawal of support, and forced removal of objects on the day of the performance by the Gwangju Dong-gu Office, the performance has been degraded and distorted into a political rebel performance. ● The performance of artist Black Jaguar was the hottest talked-about issue due to the controversy over obscenity reported by some media after the performance and comments posted on Internet sites with the intention of discrediting the May 18 Gwangju Democratic Movement and to instigate regionalism. In the center of the square where miscommunications between generations, regions, and specialist areas as well as the art world of Korean society are pervasive, Black Jaguar overlaps two situations that took place in the same space but at different times, reeling off his narratives over the square. ● He reconstructs the circumstances in which the two incidents occurred. His own performance Bath at noon, and the Gwangju Democratic Movement that occurred in the year when he was born, and other diverse happenings related to these two events are intermingled, from his perspective as an artist, addressing together the collective time named the Gwangju Democratic Movement, enormous turbulent streams formed by the mass media and insatiable crowds, and moments of silence in parts of his performance is distinguished and defined as whether it is art or obscenity (or political activity). The Black Jaguar's solo show is the third square formed through a connection and intersection of painting, video, and installation going through such interpretation and translation. ● This exhibition showcases aspects quite different from those of Black Jaguar's previous pieces, such as his artistic critical mind, critical perspective, his existence proof, aspirations for the world and the infinite and attempts, deviation and deconstruction entangled with excessive emotions, and monopolistic occupation of space through a gesture of defiance. As his indigenous semantic forms derived from an endless tunnel, unsolved fear and stuffiness, wailing and roaring within mechanical repetitions and cycles of a watch's second hand, and gestures of exploring his own pulsation and breath through linguistic utterances and remarks, incomplete circles, breathing marks, a watch or target's concentric circles, and images vertically descending and ascending from the center are associated with analogical forms such as the square, watch, and round breads in this exhibition. His work creates a series of artistic symbols and metaphors as an artistic act of interweaving small and large squares and making them resonate with one another. His insights into more mature relations and contexts are discovered in such elements as immersion, keeping distance, deep communion and resonance, interpretation and translation his artistic perspective and individuality, the composition of dense semantic forms and placid narrative structure. He highlights his artistic resistance, anchored to his artistic worldview. ● Black Jaguar's square is not an underground movement that may be an alternative. It is also neither a ritualistic performance nor an artistic temple standing tall on a high hill. It is also not a podium for a lonely demagogue who pleads for a return to nature and metaphysical spirituality, presenting a utopia. As he has called himself Nurung-e, or Yellow Dog, since 2004 (A mongrel 2004 / Boy meets a dog, 2006), Black Jaguar tends a shop in the market like a yellow dog endlessly waiting for his owner. He seems to be one who remains indifferent to the rise and fall of numerous words spoken in the square or innumerable words to be documented in history. ● He presents something we can sympathize with alongside anonymous people who lived their own lives, transcending space-time, but were excluded (or killed) from an enormous history as an eyewitness of their exclusion. He has passed from the space-time of the Gwangju Democratic Movement to the space-time of A Noon Bath. We stand on another square transcending a specific event and time while the same space overlaps with another time in Seven clocks, The Last Dinner, Big Dinner, A blue spot, Bath at noon, Pornography, and The Giant on display at the show. An artist who constantly moves like a metronome or a balance weight with alarm sounds lays rainbow-colored stepping stones for reconciliation with the world in a rhythmical spectrum. ● In 2004 wounded and shabbily clad Nurung-e prepared bread to be shared with all. (The Last Dinner, 2013) This is surely not the bread for the mouth such as we eat for survival, the mouth for appealing to mob psychology, and the mouth for mechanically reiterating idolized slogans. It is hoped that artist Black Jaguar's waiting (Who all are coming?) could be a summons for the others who are standing on the square, sharing sound desire and a will for life, generating artistic communal resonances. CSP 111 Art Space dreams of becoming the arena of resonance sharing the bread of art and culture, transcending just a space where fetishized artworks are merely traded. This is our square. ■ Cho, SONGE

Vol.20130510d | 흑표범展 / Black Jaguar / painting.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