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관찰일지 The Invisible Power

안초롱展 / ANCHORONG / 安초롱 / mixed media   2013_0506 ▶ 2013_0617 / 일요일 휴관

안초롱_Bleach drawing (sample 8)_75×65cm_2012

초대일시 / 2013_0506_월요일_05:00pm

2013 Shinhan Young Artist Festa

런치토크 / 2013_0614_금요일_12:00pm 미술체험 / 2012_0615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신한갤러리 광화문 SHINHAN GALLERY GWANGHWAMUN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번지 Tel. +82.2.722.8493 www.shinhangallery.co.kr

안초롱(An Chorong), 말씀에 저항하다. ● 세상에는 많은 언명과 말씀 그리고 약속들이 있다. 필요한 것도 있고 필요 없는 것도 있다. 필요악도 있다. 관습적으로 이어져온 이런저런 도덕률로부터 문장으로 명문화해 놓은 법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과 형태로 이들은 존재한다. 말과 행위로 드러나기도 하고 묵언의 상징(象徵)과 성징(聖徵)으로, 또는 노골적 억압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 안초롱은 세상의 이런저런, 일종의 불문율과 금기, 혹은 사회적 약속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어릴 적 집안 어르신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해야 할 것'과 '하지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며 부딪히고 맞닥뜨린 현실 관계 속 구체적 경험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순 언명들을 끄집어낸다. 신예 안초롱이 반추하고 있는 것은 주로 불합리한 것들, 불필요한 것들에 대한 불쾌의 감정이다. 특히 한국 특유의 전통적인 도덕률, 일부 필요악에 의해 오랜 시간 억눌려왔던 지난 시절 자신의 본능과 감정에 주목한다. 안초롱은 이러한 불필요한 기제들과 그로 인해 억압, 억제되어온 자신의 본능과 본성 그리고 답답하기만 했던 어르신들의 속앓이를 위로하듯 통쾌하게 까발린다. 거리낌이 없다. 그것은 엄마와 할머니의 억압된 속내를 달래고 위로하며 생겨난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의 외화, 또는 같은 여성으로서 가지는 일탈, 이탈의 감정이자 바람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하며 다짐한 스스로의 사회적 역할이자 향후 자신의 작업을 관통해나갈 미래적 약속인 것이다.

안초롱_rhapsody in dream (orange)_frameless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11

안초롱의 최근 작업은 개인적인 답답함과 울분의 감정을 넘어 사회적 현실과 관계하고 있다. 자신은 물론 대중을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옥죄고 있는 불합리한 제도와 말씀, 현상들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안초롱은 불합리한 모순 현실을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생활 오브제를 사용하여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드로잉과 사진, 영상작업도 병행하는 등 형식에 특별히 구애 받지도 않는다. 핵심적인 모티프를 중심으로 자신의 태도를 밝히는 이유로 안초롱의 작업은 일견 개념적인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세상의 모순 논리와 언명, 왜곡된 의식구조를 상징하는 오브제를 사용한 작업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듯 안초롱의 작업은 오브제와 개념을 중심으로 과도한 체면치레와 불필요한 절차를 중시하고 세상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고답적 유교적 전통과 재래의 관습, 현실에 맞지 않는, 이른바 한물간 세상의 모순논리들을 물리적으로 깨부수거나 과감히 지워버린다. ● 다소 응큼하고 삐딱해 보이는 오브제가 눈에 들어온다. 제법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는 이것은 나름대로 멋을 낸 자전거 안장이다 '시집안간 처자가 자전거를 타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던 어르신들의 지나친 염려와 사랑으로 결국 맘 편히, 몸 편히 자전거를 타지 못했던 지난 시절의 황당함을 반영했다. 나름의 편향된 상징과 위용을 뽐내는 자전거 안장작업은 안초롱이 세상의 왜곡된 권위와 통념을 꼬집어 반영한 대표적인 경우다. 안초롱은 실제 자전거 안장을 사용하여 실물보다 두툼하고 육감적인 생김새와 쓰임새로 재탄생시켰다. 어르신들이 염려했던 것들을 더욱 노골화하기 위해서다. 잘생긴 안장을 골라 그것을 석고로 다시 두툼하게 떠냈다. 그럴싸하게도 묘한 표정을 간직한 안초롱의 안장은 쇠파이프 위에 일반적인 자전거의 위치보다 높다랗게 올려져 나름의 권위를 뽐내고 있다. 거기에는 차마 거부하기 힘든 수직중력을 버틸 페달이라든가 높은 안장에 올라타기 위해 딛고 올라갈 수 있는 친절한 구조가 없다. 실제든, 상상이든 그것에 올라갈 때, 올라탔을 때 받을 물리적, 심리적 부담과 중압감, 또는 지금도 여전하고 엄연한 자전거를 타는 여성을 바라보는 세상의 왜곡되고 일방적인 시선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안초롱_stick_레진_33×7×7cm_2013

안초롱은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웠고 참을 수 없었던 자신의 경험과 모순율이 베어 있는 생활 오브제를 활용하여 보다 구체적인 또 다른 사물과 경험, 상황으로 전치시키는 이른바 또 다른 상징(象徵)체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어쩌면 인류 사회에서 가장 금기시되어온 것 중 하나인 성징(聖徵)을 건드리는 작업도 선보이고 있다. 거룩하고 성스럽게 빚어진 성물(聖物)들의 기존 생김새와 심리적 구조를 과감히, 본격적으로 건드린다. 감히 손대지 않으며 애지중지 존중하기 마련인 성물을 칼로 깎아내고 그라인더로 갈아내며 결국 전혀 본래의 성징(聖徵)을 도통 알아차리기 힘든 또 다른 상징으로 바꾸어 버렸다. 안초롱의 흉측하고 불경한 결과물은 성물이 지닌 성징(聖徵)이라는 본래의 의미구조나 맥락을 무화시켜버리고 전혀 다른 상징인 성징물(性徵物)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그리스도의 성징(聖徵)을 남성의 심볼을 연상시키는 성징(性徵)으로, 성물(聖物)을 성물(性物)로 파격적으로 새롭게 의미 구조화시켜 버린 것이다. ● '해라, 하지 말아라' 식의 계몽적 억압기제를 가장 예민하고 민감한 오브제를 통해 적나라하게 까발린 것이다. 이처럼 터부 자체를 터부시하는 안초롱의 삐딱한 작업은 왜곡된 권위나 필요악과도 같은 몇몇 거룩한 말씀들이 지닌 계몽시스템을 미련 없이 비틀어 버린다. 그에게 있어 사회화란 이러한 약속들과 터부를 지키며 집안의 전통이라든가 가정교육을 통해 길러진 도덕의식과 한편으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억압되어온 본능이 치열하게 길항하며 자신을 걷잡고 지켜나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며 겪은 자전적 이야기구조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렇듯 안초롱의 작업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진법적 길항구조가 사회와 은밀하게 만나는 접점을 노골적으로 까발린다. 최근 들어 사회의 현실이슈에 대한 관심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이유다. 말씀이 지닌 일종의 병리적 당위와 사회적인 시스템의 오작동 사례를 통해 직접적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안초롱_stick_레진_33×7×7cm_2013_부분

안초롱이 자신의 작업에 이러한 약속이나 말씀을 잘 따르자는 계몽적인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거나 시스템의 순기능을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가족이라는 시스템, 혹은 학교, 사회, 국가라고 하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받아온 도덕교육, 사회교육 등과 같은 학습경험 과정에서 체험하고 다짐한 기성의 모순체계를 무화 시키고 건강하고 새로운 지형으로 설계해보려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 누구나 세상을 살아내면서 집안에서,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사회에서 자신에게 금기시해온 몇몇 중요한 말씀들을 기억할 것이다. 또한 '무엇무엇해라'또는 '하지 말아라'와 같은 이런저런 강령과 말씀을 누군가에게 똑같이 전하면서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물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엄연히 존재한다. 사회적인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초롱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읽히는 것은 그의 시선이 드러내는 기성을 보는 반(反)의 시각이다. 대부분의 그의 작업에서 보듯 안초롱은 기존의 가치와 기성의 틀을 끊임 없이 회의하고 그것을 비트는 시선과 시도, 시각을 가감 없이 노골적으로 드러낸다.권위와 기성의 통념을 비판하고 지적하며 일반적인 사고를 비튼다. ● 안초롱의 이러한 태도는 일견 당황스러운 결과물로부터 우스꽝스러운 것, 제법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진폭과 변형태로 드러난다. 또한 앞서 지적했듯이 개인적인 고민으로부터 사회, 정치적인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실이슈를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과정은 간단하다. 권위를 상징하거나 권위를 믿게 만드는 통념들을 오브제들을 통하여 끄집어내고 그것을 무화 시켜나가면서 자신의 감정을 더한다. 자신이 권력자가 되어 권위와 권력의 작동 방식을 꼬집는 것이다. 힘과 권위의 건강한 작동과 균형을 지향하며 사회적, 종교적, 도덕적 규범으로부터 의도적 이탈을 자행한다. 그러한 규범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았던 부모, 사회 그리고 침묵으로 따랐던 자기 자신에 대한 통열한 응징과 반성적 기운을 드러낸다.

안초롱_the law of sound_시멘트, 마이크, 앰프_가변설치_2012

누군가에게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해야만 그것이 폭력이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옛말이다. 일방적인 것도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 폭력이다. 최근 그의 관심이 사회적인 이슈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마도 성인이 된 이후에 깨닫게 된 기성의 일방적인 작동방식에 대한 자신의 무조건적 반응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지부식간에 자행되고 있는 이런저런 폭력을 안초롱은 예의 주시한다. 더 이상 당할 수만은 없다. 제도의 일방적 통행이라든가 투명한 합의 없이 진행되는 사회적 결정과 그에 따른 시민들의 상처 깊은 피해상을 결코 묵과할 수 없음이다. ● 안초롱은 다수의 합의가 따르지 않은 일방적 사회적, 도덕적 규범을 따르도록 강제된 사회와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공고히 되는 민간의 통념, 제도화된 말씀들을 하나 둘 거세해나간다. 때론 당혹스럽기도 한 안초롱의 과감한 삭제 행위는 억압되었던 저항의식, 억압기제들에 대한 응징의 몸짓, 그것들에 저항할 수 없었던 지난날 자신의 모습에 대한 이타적 외침이자 보복이다. 과거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포기와 순종의 수동적 전략이었다면, 어엿한 성인이 되어 세상이치를 깨달은 작가로서 펼치는 응징은 그야말로 가공할 배신의 전략이다. 그 동안 말 잘 듣는 착한 딸, 착한 학생, 착한 국민 안초롱에게 있어 사회적 반목을 야기하는 그 어떠한 행위, 행동도 금기시 되어 왔다. 바야흐로 안초롱은 그 동안 자신의 본능을 스스로 은폐시키고 지엄한 말씀으로 억압되어온 자신의 저항과 일탈에의 감정을 오브제를 통한 중립적인 용어로 불러내어 응징하고 있는 것이다. ● 안초롱은 그것을 지적하고 고발하는 자신의 개인적 노력에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작업으로 드러내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은 전공을 바꾸어 진학한 대학원이후 더욱 공고해지고 뚜렷해졌으며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그는 불안전한 규범이나 불안정한 권위, 왜곡된 도덕률과 개인들의 이해타산과의 갈등구조를 힘 있게 까발려나가고 있다. 까발리는 방식은 힘과 권위, 행위의 주체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그것의 배후를 들추어냄으로써 행위주체들의 이해타산이 당대의 현실이슈와 왜곡된 현상의 기초가 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방식이다. 선한 권위가 거세된 통념과 말씀, 이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 강요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모순과 부당함을 지적해나간다.

안초롱_missing your home(220-1)_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바니쉬_180×180cm_2012_부분

기실 세상에는 암묵적인 합의를 가장한 사회적, 도덕적, 종교적 규범이 얼마나 많은가. 안초롱의 작업은 그것이 집안에서건 사회시스템 내에서 얼마나 자주 그리고 광범위하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특히 여성답게, 착하게 딸로서, 아내로서 살아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압력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자연스런 선택일 수도 있고 문화적,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학습과정에서 강요된 선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초월적 카리스마라든가 종교적인 힘,그들의 영향력을 지적하고 논하기보다는 사회, 정치, 문화 등과 일상에 은밀하게 잠복되어 있고 작동하고 있는 현실적인 권력, 권위, 힘을 들춰내는 것이다. 비현실적 권위에 대한 경험적 반추와 일방적 권위에 대한 반감과 반기의 감정을 동일한 힘의 논리로 반박하기보다는, 이들이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이는 파워게임에 대한 시각적, 조형적 고발이다. ● 안초롱은 게임의 규칙이 사라진 채 자행되고 있는 일방적 공격, '을'의 입장인 자들에게 무방비 상태에서 자행되는 '갑'의 폭력적, 일방적 강요도 지적하고 있다. 소외의 감정과 힘 없음을 특유의 말 없음의 상황으로 지적하면서 침묵의 힘, 힘의 침묵을 환기시키고 있다. 진정과 믿음이 결여된 추종, 저항하지 못하는 힘없는 위치와 계층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줄서기, 무슨 무슨 라인 등과 같은 행위와 말이 상징하듯이 세상에는 힘을 따르는 사람들, 힘을 찾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오로지 힘을 따르고 힘의 논리로 밀어부치는 힘의 세상에서 건강한 가정, 사회, 종교, 도덕, 전통의 힘이 상실된 지 오래다. '갑'의 논리, 권력자, 독재자의 게임 룰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상호 신뢰게임은 요원한 것인가. 안초롱은 '모'아니면 '도'식의 승부차기식 게임사회 속에서 권위와 힘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바람을 펼치고 있다. ● 안초롱은 공공의 선, 이익을 좇기 보다는 특정 집단과 개인의 이익을 앞세운 집단 이기주의, 배타적 종교관에 저항하는 이타적 인간세상을 꿈꾼다. 이기적 유전자, 일방적 유전자로 가득한 상식과 균형이 상실된 사회 현실에서 안초롱의 작업은 인간의 본성과 관계한다. 이타적 권위와 이기적 권위가 충돌하는, 이익과 도덕이 충돌하는 상황을 오늘도 수 없이 목도한다. 과연 이타적 힘, 이타적 권위의 출현은 요원한 것일까. 힘 안들이고 얻는 힘, 힘 없이 무너지는 힘,세상의 모든 힘과 권위, 권력, 그로 인해 파생되는 힘의 불균형, 소외라고 하는 현상 아닌 현상, 그것들이 생겨날 수 밖에 없는 부패한 필연성을 강조한다.

안초롱_처녀를 위한 기념비_석고, 스틸_120×80×40cm_2011

안초롱은 이러한 자신의 태도를 오브제를 통하여 드러내고 그것을 또 다른 의미구조와 가치를 지닌 안초롱식 상징으로 바꾸어 놓았다. 오브제 본연의 기능에 기대어 거기에 기생하는 썩은 권위를 도려내었다. 그의 날카로운 매스는 전통과 관례, 관습적 얼게, 당위성, 사회적 합의 시스템에 칠해지고 더해진 말씀,강요된 강령 등을 돌아보게 한다. 이렇듯 안초롱의 작업은 소외되는 가치와 획득되는 가치, 상대적인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권위에 시비를 걸기보다는 그것이 환영일 수 있으며 그것을 합리화하려는 기성의 태도를 지적하며 권위 역시 상대적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안초롱의 작업은 나아가 권위에 대한 상대적인 입장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계(界)에 관한 고찰이기도 하다. ● 안초롱의 작업은 세상을 살아내면서 경험한 거룩한 것들, 이른바 말씀이나 권위에 대한 상징(象徵), 혹은 성징(聖徵) 지우기다. 그러나 그것들을 물리적으로 지워낸다 해도, 심리적으로 덜어낸다 해도 과연 권위의 존재감은 지워질 수 있을까. 권위와 권력, 말씀의 역사를 철폐한다 해도 우리는 과연 사회적, 도덕적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안초롱의 작업은 사회적 권위가 아니라 안초롱이 부여한 개인적 권위로서 존재한다. 안초롱의 전개하는 이타적 행위, 이타적 전략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 안초롱의 이번 전시는 일방적으로 구사되어온 힘과 권위, 그로 인해 억눌린 감정에 대한 위로의 전시이자 상황보고전이다. 또한 안초롱은 균형을 잃은 일방적 힘의 논리와 그러한 힘의 논리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추방된 소수도 주목했다. 안초롱의 이러한 노력은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가 획득한 능력과 위신, 권력과 권위, 그들의 상대적 위력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기에 충분하다. ■ 박천남

Vol.20130513h | 안초롱展 / ANCHORONG / 安초롱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