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숲ㅣ소리의 변형

정두화展 / CHUNGDOOHWA / 鄭斗和 / painting   2013_0516 ▶ 2013_0528

정두화_소리_나무에 책_지름 5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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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516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노암갤러리 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6 www.noamgallery.com

혼돈에서 규칙으로ㅣ소리의 변형'창세 이후 온 우주의 만물들은, 그들의 몸짓과 소리를 빌어 소통을 하게 되었다.' 신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인류는 그들 삶의 과정과 의미 그리고 가치를 기호와 문자를 제작하여, 그들의 지적 소산을 후세에 전하였다. 이를 통해 인류는 모든 생명력이 있는, 사물과 대상 사이에서 외 내부적 소통의 장을 열어 가게 되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책'이 존재하였기에, 우리는 현재의 모습으로 세상을 영위하며 다스리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오늘날 책에 담겨져 있는 지혜와 지식은 '거대한 힘'을 의미하게 되었고, 동시에 그 힘은 끊임없이 잡을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인간은 남보다 더 앎으로 우월해지려하였고, 우월해지므로 영속적이기를 기대하였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고 연구한 지적 가치를, 흐르는 연대기적 시간 안에서 역사적 의미로 남기고자 하는 본능을 책이라는 현물을 통하여 '다른 자아' 또는 '잠들지 않는 목소리'로 대를 이어가게 기꺼이 허락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내면 깊숙이 내제된 욕망의 속성을, 소설 '바벨의 도서관'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무한한 책들이 놓여 있는 이 도서관을, 영원한 공간이며 우주와 같은 의미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진리를 찾고자, 이 바벨의 도서관 안을 헤매는 불완전한 사서와 같다고 말하고 있으며,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책을 통하여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정두화_소리_나무에 책_지름 61cm_2013
정두화_소리_나무에 책_지름 80cm_2013
정두화_공명 - 울림_나무에 책_125×125cm_2012

여기 인류의 지적 체계와 역사 그리고 문화를 품고 있는 정보의 해체(찢기)와 결합(겹치기) 그리고 모음(쌓기)을 통하여, 마치 모든 우주의 유랑하는 것들을 빨아들이는 정의 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의 소용돌이, 시간이 정지한 낯선 공간 그리고 생명이 있는 세포의 방으로 창조하는 작가 정두화가 있다. 그에게 있어서 문자를 통해 정보를 기록한 종이(책)라는 시각 매체는, 옛적 그를 '미소 짓게 하는 기억'과 '향수를 동반한 추억' 그리고 '인간의 본질'(시간 앞에 불완전한 존재)을 2차원의 평면에서 3차원의 입체로, 더 나아가 '차원의 한계를 극복하는 깨달음의 영역'에까지 이르게 하는 시각적 재료이다. 정두화의 예술에 대한 관점으로, 그는 우주의 흐름 안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자신의 내면적이고 규정되지 않는 관념적 세계관을, 일정 정보가 담겨있는 종이의 문장을 비정형적 간격으로 해체하여(찢기), 고요한 평면에서 울림이 있는 기하학적 형태로 재현하고 있다. 더불어 그는 우리 내면 깊은 곳의 내 외적 트라우마(상처)를 감싸고 치유하는 의미로써 '겹치기'를 제안하고 있다. 이제 그의 화면을 여행해 보자! 우리 놀란 눈앞에 있는 이 대지(불규칙의 정방형의 틀)는 마치 원형의 우주를 담고, 무엇인가 흡수하며 쏟아내고 있는 우리의 측량법으로 도저히 젤 수 없는 거대한 에너지의 공간이자, 수많은 생명들의 소리가 기록되었다 흩어지는 현실과 가상사이 차원의 경계에 자리한 영역처럼 보여 진다. 또는 우리 마음에 들어온 하나의 감동적 울림이자 숨 쉬는 대지의 표면인 듯 고요하다. 그리고 그의 화면은 우리에게 마치 거룩한 성역 안에 들어와, 우리 자신을 정화하고 회복시키는 '참회의 방'에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게까지 하며, 모든 세속적 삶과 욕망을 소멸시키는 공간처럼 보여 지고 있다. '잠재적 해석의 다의성' 그가 재현한 화면에서는 정의 할 수 없고 규정 되지 않는, 무한 의미를 소유한 생명의 영역이 등장하게 되는데, 작가는 이곳을 표면적 시각 효과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우리 내면의 마음 속 '시각적 사유의 장'으로까지 자연스럽게 확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두화는 '이미지를 제작하는 본인의 의도'와 '화면 자체가 보여주는 목소리' 그리고 '작품을 감상 하는 이들의 시지각적 사고'를 유연하게 허락하므로, 추상적 이미지의 다의적 해석을 관용적으로 유도하여, 문자의 해석을 뛰어넘는 즉각적이고 '순수한 자연 상태'의 소통으로 환원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두화는 그의 시각적 사유를 확장시키는 조형적 방법으로 꼴라쥬(COLLAGE)를 선택하게 된다. 꼴라쥬(COLLAGE)의 탄생은, 19세기 무렵에 장식적인 종이를 잘라 구성한 빠피에 꼴레(PAPIERS COLLES)가 모체이고, 그 어원은 프랑스어의 '붙이기'라는 뜻으로 신문지, 헝겊, 벽지 등 다양한 소재를 작가가 2, 3차원의 화면에 재배열하여 붙이는 조형기법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꼴라쥬(COLLAGE)는 무작위성과 무의식 표현의 접근법을 시도하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과 감동을 주었다. 특히 막스 에른스트는 꼴라쥬(COLLAGE)를 당시 시대 상황(1, 2차 세계대전 사이의 불안한 정세)을 시각적으로 기록하기위해, 무의식에 의한 자동화기술법(AUTOMATISME)과 잠재의식에 대하여 주창한 프로이드의 학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꼴라쥬(COLLAGE)는 그에 의해 적극적인 지지와 조형적 접근법의 권력을 확보하게 된다. 정두화의 꼴라쥬(COLLAGE)는 서양에서 출발한 기법을 차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물과 대상에 대한 정서적 사유(관조자적 입장과 은유)의 접근법과 그 내용은 상이하게 다름을, 우리는 그의 화면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 할 수 있다. 그 예로 극단적이지 않고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에 의해 다스려진 표현의 재료가 되는 책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모든 숨결이 있는 대상에게 순종하듯 조용하며 겸손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물성에 감성을 전이시키는 방법'으로 정두화는 재료가 되는 책을 자연의 힘인 시간과 공기 그리고 햇빛에 노출시키므로, 정교한 표현을 주창하는 아카데미즘의 작품이 주는 자연스러움의 부족을 만회하려는 듯, 노출 과정을 보다 은밀하게 즐기며 재현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이 행위를 통하여 하나의 순수 현상(책의 인위적 탄생을 자연이 품게 하여 동질화 시키는 의식)이상의 조형적 방법론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두화_사유의 숲_나무에 책_70×120cm_2013
정두화_공명 - 작은울림_나무에 책_지름 51cm_2012

작가 정두화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가 본인의 작품과 서로 사뭇 닮아있음을 확인 하게 되는데, 그가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처럼(물리적이나 자연스러운) 많은 세상의 어려움과 인간 막대기에 의해 다듬어지고 길들여졌음을, 우리는 그의 작품과 인품을 통하여 충분히 느끼고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동양에서 언급하는 '무위자연'에 대하여 말하길 자연과 인간의 '그저 있음'이라고 한다. 즉 '자연을 닮은 인격체의 구현'이라는 것이다. 정두화가 지향하는 진정한 예술관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과의 소리가 있는 소통이며, 그 소리를 지양하는 대화를 추구 하는 것으로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유추해 볼 수 있게 된다. 그가 사물의 의미와 본질을 재명명하기 위해 선택한 또 다른 요소로, 변형(METAMORPHOSE)을 채택하였다. 변형(METAMORPHOSE)은 라틴어(METAMORPHOSIS)에서 유래한다. 변형의 정의는 형상의 변화로, 본질의 변화로, 어떤 존재에서 전혀 다른 존재로의 변화 또는 실체의 완전한 바뀜 그것은 모체가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왔다. 마치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변형은 형태와 실체의 변화인 것이다. 그는 인류 지식의 창인 책의 변형(METAMORPHOSE)을 통하여 낯선 그러나 전적으로 새로운 시각적 생명체를 낳았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에서 우리가 이해하는 책(질료적인 측면)이라는 단편적인 단서만을 가지고, 정두화의 예술적 세계를 논하기에는 곧 벽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몇몇의 의미 있는 사실은, 그가 사물과 대상 그리고 이를 뛰어넘는 추상적 깨달음을 논리적 시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 할 여지가 없다. 책은 나무에서 종이로, 그 종이 위에 수많은 정보와 지식 그리고 지혜를 품은 책으로 다시 태어나, 시공간을 초월하고 민족과 민족 간의 이해를 연결하는 소통의 장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정두화의 책은 최초의 기능이 배제되고, 황토 빛의 대지와 태양빛에 부딪쳐 반짝이는 바다를 그리고 호흡이 있는 원형의 세포와 같이, 모든 것이 함축되어지고 암호화되는 상징적 세계의 표현이 되었다.

정두화_공명 - 작은울림_나무에 책_지름 71cm_2012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어울림과 교환의 호흡 그리고 역설적 해석으로 문자가 해체되어진 시각적 소통을 보고 있다. 이들은 최초에 그들이 담은 메시지와 정보 그리고 지식을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작가에 의해 새로운 숨결을 부여받은 질료(책)는, 읽혀짐으로 해석되고 이해되는 표면적 소통을 놓고, 작가의 어루만짐의 지휘에 따라 추상적 세계를 이루어 가게 된다는 것이다. 한 장 한 장의 종이를 붙이고 말아 올리는 건축에 있어서의 구축자적 방법 '쌓기'의 제안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인간의 모든 내면적 관계성을 이어주는 상징적 의미로 형이상학적 세계를 생성하고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화면 안에 붙이고 말려져 쌓여진 종이로써, 그는 열수 없는 아니 열리지 않는 우리 마음의 심연을 역설적으로 이해시키고 수긍하게 이끌고 있는 것이다. 보다 섬세하게 조명한다면, 작가 정두화에게 있어서 문자의 해체(찢기)는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 모든 것이 평온함과 조화를 이루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이다. 그는 종이를 세밀하게 구성하고 재배열하여 붙이므로, 낯 설은 그러나 우리 주변 어디에인가 존재할 만한 함축적 의미를 상징하는 추상적 공간과 영역을 호출하여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그의 작품세계 내부에 작용하는 치유의 자연을 호출하여, 정두화는 개인적이고 내부적 '사물'에 대한 미학적 관점을 감정이 이입 된 '대상'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의 작품은 우리 인생 전반에서 깨어지고 조각난 관계성의 기억과 어린 시절의 추억을 교차하여 붙이고 쌓으므로 '무언의 대화'를 창조하여, 우리가 인식하고 잊어버린 상처의 치유까지 허락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책은 크고 작은 이야기와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건, 사고, 역사이고 모든 인문, 종교, 사상을 담는 '철학의 그릇'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이자 교량이었다. 그러나 정두화에게 있어서 책은 태초의 공허한 상태, 즉 무한한 우주의 울림이고 어울림이 있는 인간의 군집과 그들을 포용하는 조화의 방과 같은 '은유적 시각의 형태를 감각화'한 것이다. 우리가 그의 작품세계를 볼 때, 이제 그가 창조한 이미지는 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생성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더더욱 확신하는 바는 그가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우리도 그 의도와 고뇌 그리고 완숙함에 대하여 아무것도 부인하지 못 하게 되었음이다! ■ 구기수

Vol.20130517f | 정두화展 / CHUNGDOOHWA / 鄭斗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