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교란 Naked Disturbance

한정수展 / HANJUNGSU / 韓廷守 / sculpture.installation   2013_0516 ▶ 2013_0616 / 월요일 휴관

한정수_Meniscus - D3 : Square in Square in Square The same and Different._ 플렉시 글라스에 검정 잉크, 흑연_63.5×64.5×1.5cm_2013

초대일시 / 2013_0516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옵시스 아트 OPSIS ART 서울 종로구 소격동 36번지 Tel. +82.2.735.1139 www.opsisart.co.kr

쫀득한 긴장과 새빨간 교란 ● 한정수 작품의 대부분은 박스에 물을 넣은 것이다. 그 속에 물을 꽉 채우고, 채워진 물은 그 표면이 스스로 수축하여, 되도록 작은 면적을 취하려는 힘을 가지는 표면장력이라는 자연 법칙 때문에 물은 박스의 체적보다 좀 더 들어가 박스보다 약간 더 위로 올라와, 옆으로 보면 볼록한 곡선이 생긴다. 한정수는 이렇게 생겨난 물의 표면 때문에 생겨난 윤곽을 물로서 선을 그은 드로잉이라고 주장한다. 장력이라는 자연 법칙이 선을 긋게 하기 위해서 작가는 플렉시나 돌로 박스를 짜고, 그 속에 물을 붓는 것이다. 물은 박스를 채웠고, 채워진 물로 인하여 박스는 박스이기를 멈추고, 속이 꽉 찬 육면체의 형상을 한 입체 작품이 되는 것이다. 물이 꽉 찬 박스는 다른 박스나 작품은 물론 조명과 어우러져 전시 공간 자체가 질적으로 달라진 새로운 공간으로 바뀌어 버린다. ● 최근 작품들은 돌과 플락시로 만든 박스에서 플라스틱 들통이나 플라스틱 휴지통, 물통, 블랜드 등 폐 생활 용품을 갈고 닦아서 그 속에 물을 담아내는 생뚱스러움이 돋보인다. 제작에서 레디메이드로 소재가 확장되면서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감각의 드로잉에서 보다 말랑말랑하고 쫀덕한 감정적인 드로잉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그 새롭게 창출된 공간 속에서 작품은 아주 은근하게, 그러나 매우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뭔가 감각적인 자극과 욕망을 뿜어낸다.

한정수_Meniscus – D3 : Mondrian No.1_플렉시 글라스에 검정 잉크, 흑연_60.5×62.5×1.5cm_2013

우선 보기에는 한정수의 작품은 매우 미니멀스러운 계열의 작품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포스트 미니멀적일 뿐만 아니라, 차라리 반 미니멀적이다. 단순한 작품의 형태나 산업용 자재를 사용한 심플한 구성, 형태의 단일성이 보장해 주는 대상으로서의 전체성, 감정의 흔적이 배제되고 물질은 물질로서, 색은 색으로서 어떤 것도 지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는 매우 미니멀한 계열의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텅 비어 있는 도널드 저드의 박스와는 달리 한정수의 박스는 속에 물이 차 있어서, 박스 그 자체는 실체적으로 물로 꽉 찬 채 존재하며, 형체를 이루는 각 부분들이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어서 상호 촉발적인 미적 효과를 뿜어내고 있으며, 심지어 그 부분 간의 상호관계성 때문에 각 부분의 물질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각적이라기 보다 오히려 촉각적인 환영까지 생겨난다. 박스에 차있는 물이 더 이상 액체인 물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응고되어 있는 플락시처럼 보이게 되고, 검은 색 잉크로 칠해진 나무 판자 위에 연필로 그린 육면체가 실제 조형물처럼 튀어나와 보이기까지 한다. 마치 벽에 걸려있는 박스의 드로잉이 평면이 아니라 박스를 벽에 메달아 놓은 것처럼 환각이 생겨난다. 물성이 뒤틀려 보이고 차원이 비약되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에서 추방하려고 했던 환영과 시각적 효과가 되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관객과 작품 사이에 놓여있던 작위적 거리 자체가 소멸되면서 미니멀한 작품 속에 내재된 "연극성"까지 해체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이 한정수의 작품을 보면 은근하게 시간의 경과와 함께 감각이 펼쳐지며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보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경험이 생겨나면서, 관객은 작품이 불러일으킨 공간 속에서 스스로가 새로운 감각적 체험을 하게 된다.

한정수_Meniscus – D3 : Black Line & Dotted Line_플렉시 글라스에 검정 잉크, 흑연_60.5×60.5×1.5cm_2013

본래 도널드 저드나 로버트 모리스를 위시한 미니멀리스트들이 기존의 미술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재현의 충동이나 환영을 제거하기 위해 단일하고 전체적이며 자립적이고 분리가 될 수 없는 대상을 "구체적 사물(specific things)이나 "총체적 사물(whole things)라 부르면서 통상적 관념이나 어떤 기존의 다른 대상을 지시하는 상징이나 은유가 배제된 어떤 실체로서 그냥 보이는 물체 그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즉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모를 오브제를 작품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미니멀리스트가 말하는 사물이란 표상작용에 의해 조정된 세계의 대상적 응고물로서 표상에 대한 관념에 대한 대응물인 것이므로, 사물은 표상에 의해 생겨난 관념적인 상, 가상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그래서 사물 그 자체, 있는 대로 그대로 있는, 보는 대로 그대로 보이는 작품이기 때문에 관념이 제거된 실체라는 미니멀리스트들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사물들은 사물의 껍데기나 허깨비로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마치 무대 조명 속에 서 있는 배우처럼 보여서, 조명이 꺼지면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릴 그런 한시적인 대상처럼 보이는 것이다. 제시된 작품들은 "하나 다음에 또 다른 하나" 라는 질서 내에서 각각은 다수이면서도 개별적이라서 관객도 하나의 작품을 보게 되면 그 작품만 고립적으로 경험하다가, 다른 작품을 보면 그 전 작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다시 주어진 작품만 배타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즉 관객은 주도 면밀하게 마련된 전시 공간이 만들어 내는 상황 속에서 오브제로서 주어진 작품을 체험하게 되면서 작품 자체가 객체로 되고 관람객이 주체로 탈바꿈이 일어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연극적 효과는 작품이 관객에게서 끌어 낸 특수한 동참에 의한 것이라서 관객이 없다면 작품 자체가 불완전 해지기 때문에 반드시 작품은 관객을 특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고립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미니멀리스트들의 사물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와 동일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외부에 표출을 하면서 외부에 있는 다른 사물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한정수_HANIL Primaire blender_혼합재료, 물_121×37.5×36cm_2013

반면에 한정수의 작품은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사물이라기 보다는 형상과 실체, 그리고 빛과 물, 심지어 공간 내에 흘러 다니는 먼지까지 작품을 구성하는 요인이 되어 작품 내의 다양한 부분이 전체를 구성하는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한 설치된 작품들이 상호 연결되어 전체 전시 공간 자체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사물은 본래 불가분하게 연계되어 있는 동시에 항상 비총체적으로 단수적으로도 존재하기 때문에 각 작품에 속하고 있는 것들과 다른 외부적 부분들이 별다른 개연성이 없이 우연스럽게 접합이 되고 혼성이 되면서 전시 공간은 무구속적, 탈중심적, 무형식적으로 변모되고, 그 속에서 작품은 순수하게 시각적이라기 보다는 촉각적인 감각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것은 전시 공간 자체가 다양한 여러 입구를 가진 공간으로, 단일한 시점으로는 파악하기가 불가능한 그런 공간이 되는 버렸기 때문 인 것이다. 들루즈식으로 말하자면 "무제한의, 무형식의 공간 속에서 이종적으로 산포되어 있는 다수의 촉각적인 국면"을 작품들이 열어놓은 것이다. ● 한정수의 작품이 창출한 공간은 마이클 프리드가 그토록 통렬하게 비판하는 미니멀리즘 속에 내포된 "연극성"과 "은폐된 인간중심주의"를 외면화하고 적극화 시켜서 작품과 관객과의 특정한 거리는 해체되고, 그 속에 있는 관객은 새삼스럽게 다시 작품들로부터 객체화 되면서 전시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 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전시 공간 속으로 이미 빨려 들어 간 관객들은 그 속에서 다시 개개의 작품들이 미묘하게 자신들을 밀어내는 듯한 발칙한 자극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홀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밀어내는 유혹으로 꽉 찬 감각이 주는 쾌락 때문에 그 전시 공간에서 벗어나기가 싫어지게 된다.

한정수_Home plus trash can_혼합재료, 물_139×44.5×44.5cm_2013

한정수가 장력으로 그려 내는 선은 기하학적인 형식으로서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입체적이면서도 분산적인 선이다. 그 선은 단순히 두 지점을 연결하는 평면적인 선이 아니라 시작점과 끝점도 없고 어떠한 한계도 없는 공간에서 그어지는 탈중심적이고 무제약적인 그 중심성이 상실된 선인 것이다. 원근법적인 거리를 지낸 고전적인 공간을 내용과 형식이라는 견지에서가 아니라 시각적/촉각적 이라는 구별의 견지에서 공간을 볼 여지를 부여하는 선인 것이다. 그래서 그 선은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것이고, 유효성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현실적인 어떤 윤곽도 남겨두지 않고, 또 어떤 형식도 정해주지 않는 변화무쌍한 방향을 띤, 우리가 관성적으로 대면하는 기하학적인 선을 탈주시켜 버리는 그런 선인 것이다. ■ 신지웅

Vol.20130518f | 한정수展 / HANJUNGSU / 韓廷守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