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기 The Incubation Period

박형진展 / PARKHYUNGJIN / 朴亨鎭 / sculpture.drawing   2013_0510 ▶ 2013_0531 / 주말 휴관

박형진_잠복기_공업용 구리스, 혼합재료_75×60×75cm_200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 휴관

아트스페이스 휴 Art Space Hue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68 성지문화사 3층 302호 Tel. +82.31.955.1595 www.artspacehue.com

인간에 갇힌 인간 또는 스스로를 가둬버리기 ● 사람의 일생이란 무엇 하나 이룬 것 없이 내달리다 마지막 순간 자신이 달린 길을 되돌아보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이 아니겠지. ● 기름덩어리를 뒤집어쓴 인간이 입을 벌려 숨 쉬려는 듯 뻐꿈거린다. 인간은 마치 바닥이 드러난 강물의 물고기처럼 숨을 짜내고 있다. 산업사회의 기계동력을 작동하게 하는 것들은 불길하고 공포스럽다. 기름덩어리가 되어버린 인간은 개인이 될 수가 없다. 다만 인간덩어리로만 존재한다. 번들거리고 유동하며 동시에 모든 숨구멍을 막아버리는 것, 인간을 질식시키는 것이 사회이고 문명이며 인간 자신이라면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박형진_무제_마가린에 투명 에폭시 코팅_50×30×20cm_2013
박형진_무제_마가린에 투명 에폭시 코팅_50×30×20cm_2013

작가는 전통적인 인간의 문제, 실존의 문제, 예술의 문제를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이제 출발선에 서있다. 출발선에 서있는 동시에 도착지에 서서 되돌아본다. 작가에게 인간의 문제는 되돌아보는 출발이 가능한 주제처럼 보인다. 근대에 발명된 인간, 동시에 원형적 신화시대의 인간을 떠올려보는 것. 작가의 작업은 근대조각의 오래된 주제, 형식을 관통하고 있다. 조각으로서 인간은 결코 현실의 인간이 아니다. 관념과 형이상학과 정서가 뒤엉킨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 작가의 작업은 산업사회의 동력으로서의 기름과 요셉 보이스가 죽음 덫에서 벗어나는 치료제였던 기름의 이중의 은유를 동시에 떠올린다. 또 단단한 돌과 철로 만들어낸 영속하는 인간과 손을 대기만해도 금방 뭉그러지고 미끄러지며 뚝뚝 덩어리져 떨어져버리는 순간을 사는 인간을 은유한다. 이 양극단의 이중의 의미는 그의 작업을 난해하게 만든다. 인간은 인간 자신에 탐미적으로 구속될 수도 있고 또 자신을 죽음으로 모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인간의 행복은 인간에게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공포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존재가 자라서는 무정한 살인자가 된다. 인간에 갇힌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자연과 인간에게서 쥐어짜낸 기름덩어리인 것이다.

박형진_무제_패널에 마가린, 투명 에폭시_115×90cm_2013
박형진_무제_패널에 마가린, 투명 에폭시_45×34cm_2013

박형진의 인간은 최수앙의 인간, 이동욱의 인간, 이환곤의 인간과 다르다. 또 그의 인간은 류인의 인간, 구본주의 인간과도 다르다. 그러나 이들의 인간은 모두 어떤 부조리함과 공포에 갇혀있다. 인간 자신이 그 원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해석은 사실 매우 작은 차이를 만들어낼 뿐이다. 인간, 인간의 문제는 예술의 중심 주제이긴 하지만 동시에 거대한 감옥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 자신이 인간의 감옥이다. 스스로에게 뒤집어 쓴 굴레로 인간은 질식한다. 자연계에서 자기 살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존재는 인간이다. 인간은 자연의 가장 반대편에 서있는 존재이다. ● 스스로를 죽일 수 있는 것은 동시에 인간이 불굴의 삶을 살아내는 동력이자 자유를 뜻하기도 한다. 인간의 삶은 결코 이해도 설득도 불가능한 불가해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인간과 삶이 결코 단순하지 않으니 바로 그 복잡성과 혼란과 무한한 변화의 존재로서 인간을 해석하려는 것이 예술가들의 오래된 과제였다. 동시에 수많은 작가들이 매달렸던 동일한 과제이다. 인간은 어느날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기억할 수 없던 때부터 진행되어온 인간 존재의 새로운 또는 다시 인식하기이다. 그것은 보다 내밀한 불안과 공포의 존재로서 인간이 타고난 자의식을 조명하는 것이다.

박형진_마가린 드로잉1_2013
박형진_마가린 드로잉2_2013

예술은 그리고 조각은 바로 그 불가능한 해답을 모색하는 도전이고 모험이니 수많은 작가들의 일생은 그 문제를 붙들고 출발하자마자 최종의 국면에 도달해버린다. 그러므로 작가가 사는 시간은 결코 흐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영원성의 주제와 문제를 다루는 사람은 그 스스로가 이미 영원 속에 자신을 가둬야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허무한 찰나의 유희나 제스춰로 비치더라도. ■ 김노암

Vol.20130519h | 박형진展 / PARKHYUNGJIN / 朴亨鎭 / sculpture.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