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극장 영상미술전 '세상의 빈틈'

이광기展 / LEEKWANGKEE / 李光基 / video.installation   2013_0530 ▶ 2013_0531

이광기_기다림_단채널 비디오_00:02:34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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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일시(2회 상영) 2013_0530_목요일_05:00pm / 07:30pm 2013_0531_금요일_05:00pm / 07:30pm

부산시민회관 대극장 Busan Infrastructure Corporation First Theater 부산시 동구 자성로 133번길 16 Tel. +82.51.630.5200 citizenhall.bisco.or.kr

날 것의 시선으로 세상을 유희하다일상에서 시작하는 인식의 전환 아침이 밝았다. 피곤이 채 풀리지 않은 몸을 일으켜 세워 화장실로 향한다. 샤워기의 따뜻한 물에 몸을 맡기고 몽롱한 상태에서 양치질을 한다. 아침은 건너뛰고 겨우 출근시간에 맞춰 미술관에 도착. 오늘 할 일을 체크하고 일과를 시작한다. 오늘은 도록 제작을 위해 시장가격을 조사하고 업체를 정하는 일이 급선무다. 지난 주 개막한 전시는 성공적이었는지 고민하면서 결재 올릴 서류를 정리한다. 12시 땡. 점심시간. 한 끼를 뚝딱 해치우고 동료들과 잠시 수다를 떨다 오후 일과를 시작한다. '아! 오늘 카드 결제일.' 통장을 체크하고 결제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한다. '겨우 마이너스 통장으로 넘어갈 수 있겠군.' 이놈의 지긋지긋한 마이너스 인생을 언제 청산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도록 업체가 들어와 계약을 진행한다. 관장님께 싫은 소리 들으면 안 되니 신속한 도록 제작을 위해 업체와 열심히 회의를 한다. 어느새 6시. 빠이빠이 하며 퇴근한 후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고 소주 한 잔을 기울인다. 회사 뒷담화와 세상살이 푸념을 안주 삼아 소주 서너 병을 비우고 집에 들어간다. 샤워를 하고 TV의 채널을 돌리다 잠이 든다. 다시 아침이다. 양치질로 또 하루를 시작한다. ● 나의 하루를 정리한 내용이지만 크게 다르지 않는 일상일 것이다. 반복되는 삶이고 그리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인생이지만 먹고 살기 위해선 별 도리가 없다. 그렇게 일상은 반복되고 삶은 양식화 된다. 이렇게 양식화된 삶이 바로 문화이며 시간의 힘을 빌려 전통이 된다. 문화나 전통이 만들어지는 것은 이렇듯 별 거 없는 삶의 반복 속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이것들이 한 번 자리 잡으면 어느새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진리로 둔갑해 있다. 그렇게 세상은 돌아간다.

이광기_황금심장_단채널 비디오_00:03:30_2013

이광기 작가는 바로 이런 양식화 된 소소한 일상에 딴지를 건다. 철학자들처럼 거창한 개념으로 세상을 분석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설프게 만들어진 문화와 전통을 날 것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문화와 전통에 포섭되지 않고 삶에 스며들어 있는 이데올로기에 저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항상 날 것으로서의 시선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쓴다. 인식하지 않고 그저 반복되는 일상은 사실 눈에 띄지도 않을뿐더러 별 거 아닌 것들이다. 그런데 이것이 새롭게 인식되고 문제적인 지점으로 떠오를 때 그 일상은 삶을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영상과 설치를 주로 하기에 그를 가리켜 영상작가라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 그는 개념적 예술가다. 형식적 차원에서도 글은 그에게 중요한 소재이지만 작품의 내용을 생산하는 관점에서 개념은 핵심적이다. 그 개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식전환'이다. 그 시작은 2005년 「인식-한국도로공사의 답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그는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 어디선가 날아온 돌에 유리창이 금이 가는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고속도로공사와 책임소재로 공방을 벌이다 이를 작업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속도로에 떨어져 있던 돌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보이지 않던 세상의 작은 돌과 조우하는 순간 한국도로공사의 무사안일주의와 거리 곳곳의 위험 구간을 인식하게 된다. 이후 그는 개념을 시각화하거나 시각적 경험을 개념화 하는 작업을 전개한다. '의심하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광기_위대한 풍경_단채널 비디오_00:05:47_2013

세상을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숨어 있던 모순적 삶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사뭇 진지한 삶이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삶의 포장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속의 내용물을 감추면서 있음직하게 보이도록 하는 일상의 포장을 벗겨내는 것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내용적 ․ 형식적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내가 니를 어찌 키웠는데』(2010) 전시에서 보여준 사기성 출판 작업은 제로섬 게임에 빠진 한국의 교육 현실을 가볍지만 아프게 풍자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그동안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행동했던 것들의 허술함과 거짓됨을 툭 건드려 새로운 인식 지평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NewRemake」시리즈가 가장 대표적인 인식 지평의 이동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멀쩡한 컵이나 석고상을 깨트려 다시 재조립 하고선 과정의 영상기록을 더해 예술적 행위의 결과물이니 이것을 예술작품으로 인식해야한다는 그의 진술은 어이없음이라는 판단을 유발하여 예술시장의 어이없음을 상기토록 한다.

이광기_세상의 빈틈_단채널 비디오_00:03:20_2013
이광기_NewRemake_단채널 비디오_00:03:50 & 오브제_2013
이광기_세상은 생각보다 어이없이 돌아간다_단채널 비디오_00:03:30_2011

세상의 빈틈을 유희하다 ● 작업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하고 상당한 시간을 쏟아 부어 고단하게 영상을 제작하는 작가이지만, 흥미롭게도 그의 작업은 유희적이고 잉여적이다. 작업 개념을 완결 짓지 않고 머릿속에서 가지고 논다는 점에서 유희적이고 그다지 유용해 보이지 않은 주제를 작업화 하는 점에서 잉여적이라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유희와 잉여야말로 일상의 인식에 새로운 지평을 펼쳐 놓을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왜냐하면 유희와 잉여는 일상의 경계를 넘어선 일탈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기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극장 영상미술전 - 세상의 빈틈』은 유희와 잉여의 기제가 제대로 작동하는 전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1,600석에 이르는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을 전시 무대로 설정했다는 것 자체가 이를 증명해준다. 이광기 작가의 인맥이 아무리 좋다 한들 개인전으로서의 상영회에 회당 1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오겠는가. 나머지 1,500석은 텅 비워둔 채 상영회는 진행될 것이다. 텅 빈 극장에서 아무 곳이나 자리 잡아 대형 스크린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객석이 비어있다는 건 주최측의 입장에서는 적자를 떠안아야하기에 썰렁하고 불안한 상황이지만 관람객에게는 한없는 축복이다. 만약 상영공간이 '왜 이렇게 썰렁하지'라고 걱정한다면 당신은 아직 이 상영회를 온전히 즐길 준비가 안 된 것이다. 텅 빈 극장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여유로운 맘으로 상영회를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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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총 10여 편의 작품을 관람하게 되는 이번 상영회의 타이틀 작품은 「세상의 빈틈」이다. 영화배우 이광기가 출연하는 이 작품은 슬로우 모션으로 느껴질 정도로 천천히 이를 닦는 행위가 핵심이다.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양치질을 하게 된 작가는 느릿느릿 닦은 이의 상태가 평소보다 훨씬 좋았음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데,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천천히 양치질하기의 효과를 꼭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대형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양치질 장면은 기존의 무의식적인 양치 습관이 '세상의 빈틈'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명품 NewRemake」는 상상만 해도 마음이 아픈 작업이다. 220만원 가량의 명품 가방이 작품 속에서 싹둑싹둑 잘려진다. 스무 조각 이상으로 잘린 가방은 깨진 석고상을 붙이듯 순간 접착체를 이용하여 원래의 형태로 복원된다. 그러나 잘린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명품 가방으로서의 가치는 사라진다. 하지만 작업의 결과물로서 예술작품이 탄생한다. 가격은 원래보다 할인된 200만원. 누가 살까 싶지만 작가는 보란 듯이 가격을 책정한다. 미술시장에서 작품의 가격 형성이라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은가. 위의 작품들이 인식의 전환이 삶의 변화와 가치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면, 「보이는 것보다 소리가 강하다 - 위대한 풍경」은 인식 행위 자체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바람이 부는 바닷가 언덕에 양복 입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무거운 음악소리 때문일까. 두 사람의 대화는 사뭇 진지해 보인다. 파도 소리가 들리고 이어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이없게도 두 사람은 항공모함 탑승인원 수로 다투고 미역인지 톳인지 실랑이를 벌이고 수정이와 뽀뽀를 했었냐며 낄낄거리고 있다.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면 상상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파도 소리와 무거운 음악이 이렇듯 대상의 진실을 왜곡시킨다. 우리는 영상작품을 시각 예술로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영상에서 음향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소리는 그렇게 우리의 인식을 지배한다. 이광기 작가의 작업은 이렇듯 늘 일상을 소재로 한다. 그래서 가볍게 느껴지고 '별스럽게 이런 것까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일상의 채집을 통해 시스템화되고 규격화된 삶의 구조를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은 사실 그리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깨끗이 씻고 정시에 출근하여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하루를 버티는 나의 삶은 자본주의를 운용하여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사회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따라서 그가 제기하는 일상의 허점과 세상의 빈틈은 우리에게 일차적으로는 개인적 삶의 재인식, 이차적으로는 사회 시스템의 재인식을 유도한다. 물론 그가 보여준 세상의 빈틈이 우리 삶을 즉각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인식의 시작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이데올로기와 무의식의 달콤한 지배를 즐기는 우리 삶이 『세상의 빈틈』속에서 잠시나마 중단되길 기대해본다. ■ 김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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