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집 - 프로세믹스 부산 House of Human Being – Proxemics Busan

강홍구展 / KANGHONGGOO / 姜洪求 / photography   2013_0704 ▶︎ 2013_0730 / 월요일 휴관

강홍구_문현18_피그먼트 프린트_80×24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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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704_목요일_05:00pm

* 이 전시는 트렁크 갤러리로 이어지며 고은사진미술관 연례기획 '부산참견록'의 순회 전시입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원앤제이 갤러리 ONE AND J. GALLERY 서울 종로구 가회동 130-1번지 Tel. +82.2.745.1644 www.oneandj.com

작가 강홍구는 집만 찍는 것은 아니지만, 집을 주로 찍는 사진가다. 그것은 그가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삶에 대해 투철한 주제 의식을 갖는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의하면 예술이란 그 안에 그림이나 조각처럼 바라보는 대상도 있지만, 사람이 들어가서 살아야만 완성되는 것도 있다. 그래서 건축 즉 집이야말로 모든 예술을 낳게 한 산파다. 그런데 자기 집 한 칸 없어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 집 즉 건축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설사 꼭 세 들어 사는 사람 입장이 아닐지라도 집이라는 데서 아름다움이 그 안에 사는 사람보다 우선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작가 강홍구가 사람이 사는 집 혹은 사람이 떠나 재개발의 운명에 놓인 집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이 사람 우선의 예술관 위에서다. 그런 작가 강홍구가 건축가들이 지은 건물들에 대해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그 이유를 그런 건축은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다 보니 너무 자의식에 휘둘리고 그러다 보니 공격적이 될 수밖에 없음에서 찾는다. 반면, 그는 부산의 산복도로 주변의 집들은 그런 자의식이 없고, 사람이 살면서 꼭 필요해서 지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절실함과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일종의 자신감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 산복도로, 그 처절한 삶의 역사가 작가 강홍구의 눈에서 예술로 어우러진 것이다. ● 그곳의 집들은 모두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런데 각각이 따로따로 독립된 공간을 유지한다. 하나하나는 모두 서로 다른 자신들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역사를 하나하나의 집의 생김새가 숨김없이 말해준다. 전체로 보면 집단의 사회지만 자세히 보면 이질적이고, 혼종적인 개인의 역사, 뭐라고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애매한 그들만의 역사. 그 분별할 수도 없고, 뭉뚱그릴 수도 없는 독립적 역사가 모이는 곳이 산복도로 마을이다. 그런데 독립의 다른 이름은 소통이다. 요즘 우리가 말하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는 꿈으로서의 소통이 아닌 삶 그 자체에서 서로 공유하고 나누는 가운데 자발적으로 생기는 그 자연스러움으로서의 소통인 것이다. 애초에 삶의 물질이 간신이 허락되는 도시 변두리 그것도 전쟁 난리통의 주변 공간에서 그들이 독립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독립이란 삶의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고, 인간답게 살만한 환경이 되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공동묘지 위에다, 일본 '놈'이 묻힌 묘지에서 뜯어낸 비석으로 집을 짓는 공간에서 독립을 논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사는 집 하나하나는 모두 독립적이다.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강홍구_감천02_피그먼트 프린트_90×225cm_2012

그것은 그들이 살아야 하는 삶에 시(始)와 종(綜)이 같은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초심이나 초지일관은 배부른 자들이 하는 이야기다. 목숨을 부지하려거든 원칙이란 있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슨 짓인들 못할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가는 것이다. 오로지 변화만이 존재할 뿐이다. 본질이라는 것, 항상성이라는 것, 그런 것은 없다. 그것은 관념이자 호사다. 사각의 링이자 먹이 앞에 포식자만 존재하는 사바나의 초원에서 사는 것은 살아남는 것일 뿐이다. 잘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자일뿐이다. 난, 강홍구의 작품을 통해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가 찾은 야생의 사고, 브리콜라주(bricolage)가 여기 사는 사람들을 관통하는 정신임을 읽는다. 그들은 스스로 모든 기술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술과 재능을 조합하여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것을 창조라 하든, 모방이라 하든, 해결이라 하든 그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로지 살아 있는 삶, 살아가는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존재일 뿐이다. 공동묘지 위에 집터를 마련했을 때 그들에게 한국인의 심성이 어떻고,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이 어떻고 하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공동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담론 안에 존재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공간이 허락하지 않는 상황에서 같이 나눠 써야 하는 것들은 모두 그 속에서 스스로 삐져나온 용감한 것들이다. 그것이 아름다울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이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이념으로서는 그럴지 모르겠으나 삶의 현장으로서는 분명 호사다. ● '산복도로(山腹道路)'는 산을 사람의 몸으로 인식하고, 그 배를 갈라 길을 냈다고 하는 뜻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까지 들어가 산다는, 거기 사는 사람들에 대한 폄하와 무시의 목소리가 담긴, 서러운 말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 했을까? 전쟁 때문이다. 1950년 터진 한국전쟁. 이곳가지 밀려온 사람들은 오로지 살아야 했기에, 살아남아야 했기에, 산의 배를 갈라서라도 그곳으로 들어가서 살아야 했다. 화장실이고, 부엌이고, 평상이고 간에 자기 것을 따로 둘 공간이 없으니 같이 쓰면서 살아남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식구가 늘고, 프라이버시 라는 개념이 들어오면서 각각의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긴다. 그러면 자신이 가진 온갖 물질과 기술 혹은 재주로 그 필요를 채운다.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위층이 아래층보다 더 넓게 되기도 하고, 옥탑방 위에 또 옥탑방이 생기기도 한다.

강홍구_문현01_피그먼트 프린트_100×100cm_2012
강홍구_서동04_피그먼트 프린트_120×100cm_2012

그 공간이 만들어내는 문화에 대해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이 말하는 것이 참 흥미롭다. 홀은 사람과 사람 혹은 공간의 거리를 어떻게 지각하는가를 프로세믹스(proxemics)라 부르는데, 그 프록세믹스에 따라 문화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두 사람 간의 거리가 가까우면 친밀도가 매우 높아 귀엣말을 하거나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고, 거리가 멀면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시로 이주해 온 촌 사람들은 서로 담 쌓고 사는 도시인들에게 놀라지만, 농촌으로 돌아간 도시인들은 잦은 프라이버시 침해 때문에 놀라는 게 모두 서로 간에 만들어진 공간 거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동으로 거주하는 공간에도 항상 '내' 자리가 있고, 우리 '나와바리'가 있는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잇을 것이다. ● 그렇다면 이 산복도로 동네에는 어떠했을까? 이곳에는 나만의, 우리만의 문화를 지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내 것이 네 것이고, 우리 것이 모두 우리 것이 된다. 작가 강홍구가 부산의 산복도로를 끼고 만들어진 그 집 사이에서 본 공간의 거리는 그러한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문화는 해석의 문제이자 기술의 문제이다. 2차적인 것이면서 부차적인 것이다. 학자들이 가지고 노는 인식 차원의 문제다. 작가 강홍구는 그 문화를 해석하고,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그곳에서 드러내고자 한 것은 그 공간의 거리를 통해 드러나는 삶의 처절함과 처연함 그리고 사람스럽게 사는 자연스러움의 궤적이이다. ● 작가는 문화의 바탕이 되는 그 삶 자체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한 동네를 여러 차례 마음 닿는 대로 발품으로 돌아다니면서 그는 깨닫는다. 이곳에서는 그 처연한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만이 예술이라는 사실을.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그것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보다 더 예술적일 수는 없다. 그 어떤 방식의 사진에서 이보다 더 본질적인 사진의 아우라를 찾을 수 있겠는가? 작가 강홍구는 카메라를 메고 산복도로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차례 무력감을 느낀다. 사진이 입체적이지 못하다는 사실 때문에 받는 무력감이다. 사람들이 떠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 그들은 모두 일터로 떠났거나 집을 비우고 타지로 떴다 - 것을 담아내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무력감. 냄새는 피울 수 없다 할지라도 동영상이라도 됐으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담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새로운 장르 파괴나 행위 예술 차원으로 한 번 시도해 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는다. 사진의 평면적 한계, 그것은 역설적으로 사진만이 갖는 힘이기 때문이다. 근원적으로 작가가 개입할 수 없는 기계적 재현 장치, 그것이야말로 이 처연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치다. 거기에는 새삼스러운 해석도 필요 없고, 새로운 평가도 필요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만 재현하면 될 일이다. 이곳에서는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하는 예술임을 강홍구는 깨닫는다.

강홍구_영도04_피그먼트 프린트_100×120cm_2012

장르 파괴는 현실을 넘는 것이다. 현실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자 할 때 장르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이 그 말하고자 하는 것에 충분하고, 그 어느 것도 현실보다 극적이지 못하다면 굳이 장르를 파괴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 장르 파괴라는 것은 창조를 생명으로 하는 미술에서 이미 일상이 되었지만, 이제 그것마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이라면 작가는 굳이 장르를 파괴할 필요를 갖지 못한다. 부산의 산복도로 주변의 사람 사는 마을들은 그 어떠한 상상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그래서 어느 영상이나 구상 회화도 담아낼 수 없는 것을 사진이 담는다. 그것은 사진이 그래도 다른 장르보다 더 실제적이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으로 사실을 재현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 작가가 제목을 '사람'의 집으로 잡은 것도 다 이것 때문으로 보인다. 안창마을, 감천, 영주동, 매축지 어디 할 것 없이 부산의 산복도로 주변의 마을은 모두 사람이 사는 곳이자, 그들이 떠나가는 곳이다. 그렇게 북적거렸던 것처럼 그들은 이제 그곳을 떠나간다. 그것은 무한경쟁에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그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독립'이나 '소통'이 아닌, '획일'이나 '불통'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도 부지런히 돈 벌어 남들과 같이 '불통'의 공간에서 살고 싶다. 그 획일성에서 벗어나면서 손가락질 당하는 삶을 더 이상 살기 싫다. 우리 자식 대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동네가 빈다. 사람들이 떠난다. ● 집은 모두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제목을 '사람'의 집으로 잡는다. 잔혹한 레토릭이다. 저 처절한 공간에 남는 것은 떠나가는 사람들이고, 들어오는 것은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의 허망함을 말함이다. 사진작가 강홍구가 카메라로 잡은 것은 그 집이 보여주는 삶의 처절함 위에 자리 잡은 허망함이다. ■ 이광수

강홍구_매축지02_피그먼트 프린트_120×100cm_2012
강홍구_감천26_피그먼트 프린트_100×1205cm_2012

부산은 내게 아직도 유령 같은 도시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부산에서 한 십 년 쯤 살면서 돌아보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한 개인이 부산이나 서울 같은 공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지적 기억은 시간차가 있다. 늘 다니던 길이나 동네는 현재형 기억을, 드물게 가는 동네는 과거의 기억을, 아주 가보지 않은 곳은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돌아보지 않은 부산은 내 인지 지도 밖에 있다. 고은 사진 미술관의 제안으로 부산의 산동네를 찍기 시작한 것이 2011년 6월 무렵이었다. 그 후 약 일 년 반 동안 부산을 둘러보고 사진 찍었다. 일박 이일, 이박 삼일의 일정으로 십칠팔회 쯤. 그러니 부산에 관해 뭘 안다고 말할 처지가 못 된다. 기껏해야 내가 사진 찍은 동네들- 감천동, 물만골, 우암동, 서동, 영선동, 신선동, 매축지, 문현동, 초량동, 수정동, 안창마을, 아미동 등에 대해 약간 알뿐이다. 그것도 집과 가게와 공중 화장실과 식당과 골목길 에 대해서 아주 조금. 솔직하게 말하면 이제 어느 동네가 어디에 있는지 조금 알았다고나 할까. 왜냐면 부산에는 산동네가 너무 많고 다양해서 그 모든 것을 돌아볼 수가 없으니까. 게다가 산동네가 아닌 매축지 같은 마을까지 합하면 그런 동네들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 처음 부산 산동네 사진을 찍으려고 갔을 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집과 마을의 다양성과 비좁은 공간을 탁월하게 이용하는 효율성이었다. 예를 들면 어떻게든 주거면적을 넓히기 위해 일층 보다 이층을 조금 더 넓게 지은 "한 뼘 이층"이라고 부르는 집들이 그런 예의 하나가 될 것이다. 산동네를 구성하고 있는 집들을 생존의 건축, 집짓기의 밑바닥, 건축가 없는 건축, 원초적 건축 따위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전문적인 용어로 토속적 건축을 의미하는 버네큘러 건축 vernacular architecture 의 한 전형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산동네의 집과 건물, 계단, 길, 옥상들이 보여주는 경이로운 경관을 표현하는 데는 턱도 없이 모자란다. 아니 애초부터 말로 이를 수 없는 곳에 그 집과 마을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건축가들이 지은 건물들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좀 있다. 아니 거부감이라기보다는 심리적 거리감이나 정서적인 불편함이라고 해야 할까. 유명한 건물들, 현대식 건물들을 머리로는 이해를 하겠지만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그것은 건물들이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들과 비슷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그럴듯하게 지으려 한 건물들일수록 그런 기분은 심해진다. 예를 들면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서울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 들어선 건물은 짜증이 난다. 자의식이 너무 강하게 들어가서 모든 것을 다 무시하겠다는 오만한 태도가 곳곳에 붙어 있어 보여서이다.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방어적이다. 내 작품을 몰라주면 안 되는데 하는 불안감이 너무 싫다. 건물 전체에 자신감이 없다. 산동네의 집들은 그런 자의식이 없다. 계단과 난간과 지붕과, 옥상과 이층 모두 다 솔직하다. 물론 살기는 불편할 것이다. 좁고, 통풍도 잘 안되고 화장실도 없는 집이 많으며, 사생활의 비밀 보장도 거의 불가능하다. 대신에 거기에는 일종의 자신감과 사람이 꼭 필요해서 지었다는 느낌이 있다. 절실함이 건물, 길, 골목, 계단 곳곳에 스며있다. 그렇다고 그 절실함이 공격적이지는 않다. 아마도 그것은 주거지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었던 집과 마을에 축적된 시간과 역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 작업을 하는데 참고 할만한 뭔가를 찾아 책과 인터넷을 뒤지다가 전시 제목으로 쓸 수 있을 만한 단어를 발견한다. '프로세믹스 Proxemics' 들어본 말이지만 잘 알지는 못했던 용어이다. 인터넷을 뒤져서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만들어낸 조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에드워드 홀의 책 『숨겨진 차원』을 읽는다. 내용은 이미 이런저런 통로로 일반화 되어 있기 때문에 익숙하다. 우리말로 적절한 번역어가 없어서 '공간 사용법?' 정도로나 겨우 바꿀 수 있는 프로세믹스의 개념은 폭이 아주 넓다. 사람과 사람이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에서부터 인간이 어떻게 공간을 생산, 조직하고 소비하는지를 거쳐, 문화에 따라 다른 공간에 대한 인식과 사용 방식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까 단순히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을 넘어 공간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행동이 어떻게 문화화 되고 개인화 되어 실천되는 지를 아우르는 용어이다. ● 이런 마을과 집들을 사진 찍을 때 가장 어려운 것은 어느 정도 거리에서 어떻게, 무엇을 찍을까를 결정하는 일이다. 내가 찍으려는 장소들은 잘 알려진 곳이고 많은 사람들이 무수히 찍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처음 몇 번은 스케치 하듯이 돌아보고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내린 처방은 집과 길들을 찍자는 것이었다. 집을 찍는 다는 것은 마을을 이루는 집들이 가지는 건축적 원초성, 혹은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겹치고 줄지어선 집들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다. 물론 지붕과 벽 색, 물통의 파란색 따위는 유사하지만 대지의 입지 조건과 크기, 경제 사정, 필요성에 따라 너무나 다양하다. 그 다양한 집들은 문자 그대로 유기적으로 생장하고 변모해왔다. 움막과 루핑집에서 판자집, 그리고 벽돌집을 거쳐 이층과 삼층으로 진화했다. 그래서 한 채의 집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집들의 과거가 상상이 간다. 하지만 그 집들을 사진으로 담는 일은 어렵다. 문현동 돌산마을과, 물만골 정도를 제외하고는 집 사이가 너무 가깝고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도무지 촬영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 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채, 두 채가 아니라 몇 채의 집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도록 찍는 수밖에 없었다. 길과 계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골목과 계단이 대부분이었고 일종의 미로를 이루고 있는 곳도 있었다. 때문에 내가 찍은 사진들은 그것을 재현 한 다기 보다는 짐작할 수 있도록 암시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집들이 모여 있는 스펙터클한 풍경이 아니라 개별적인 집의 생김새, 건축 방식과 재료의 사용, 집에 스민 공간 형성의 의지를 찍으려 들자 사진의 방향이 정해졌다. 사진을 잘 찍거나 멋진 사진이 되는 것을 배제하고 일종의 풍경 아닌 풍경이 되도록 시도하기로 했다. 풍경 아닌 풍경이란 기록적인 측면과 집과 길들이 가지는 개별적인 존재감이 섞여 다큐와 개인적인 시선 사이에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원칙 비슷한 것이 일관 되게 적용 되지는 못했다. 영도를 찍은 사진들에서는 집들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안창마을이나 물만골에서는 산과 숲이 풍경을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굳이 배제할 이유도 없었다. 바다와 산이 보이는 것이 필연적이었으므로. ● 앙리 르페브르의 말대로 공간, 장소는 정치, 사회 문화적인 것들에 의해 생산되고 역사를 재현한다. 부산의 산동네들은 해방 이후 귀국한 동포, 육이오 전쟁 피난민들로부터 시작된 역사가 이룬 구성물이다. 이 구성물에 대해 사람들은 문화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관광 상품화 하려 한다. 그것은 산동네 사람들의 삶과 집과 공간을 문화 상품, 즉 산동네의 본질과는 별 관계없는 구경거리로 전환시킴을 뜻한다. 나쁘게 말하면 그럼으로써 역사를 은폐하고, 장소와 공간이 가진 구체성과 가혹한 삶의 흔적과 기억을 지우는 행위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그런 일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것은 별 현실적 힘이 없는 예술이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퇴락해가는 산동네에 대한 도시 재생사업의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다. 내가 그에 대해 뭐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마을을 보존하고 살아 있도록 하는 것, 마을을 구경거리가 아니라 살만한 동네로 만드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런 노력들은 마을을 둘러 볼 때마다 눈에 띄지만, 점점 늘어가는 빈집들을 보면 미래가 그렇게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 사진은 거의 다 찍었다. 작품도 얼추 만들었다. 그런데도 뭔가 부족하다는 기분이 자꾸 든다.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 그게 뭔지 모르겠다. 내 사진으로 도저히 보여줄 수 없는 현장감, 아우라 같은 것일까? 아니 그것 보다 더 깊은 어떤 것이다. 집과 마을이 담고 있는 시간과 역사의 두께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 모든 것을 모아 놓은 것 이상의 어떤 것인가? 사진과 피사체 사이의 건널 수 없는 무엇 때문인가? 현실을 사진이 재현 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음에도 늘 그렇다. 그리고 아마도 이 불만과 결핍감이 모든 작가들에게는 근원적인 것이고, 그들로 하여금 다시 사진을 찍고 작업을 하게 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 사람의 집 – 프로세믹스 부산 』도록에서)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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