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ous Live Show

2013_0704 ▶︎ 2013_0718

초대일시 / 2013_0704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희수_박지나_윤성지_이문호_이병호 이은경_이정우_진달래_최형섭

관람시간 / 11:00am~06:00pm

클럽 비너스 Club Venus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8-15번지 진빌딩 B1 Tel. +82.2.3442.6808

『시리어스 라이브 쇼』는 열린 사고의 실험을 펼치고 있는 젊은 설치미술가들의 향연의 장이다. 여기에서 '시리어스'라는 낱말과 '라이브 쇼'라는 낱말의 대립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라이브 쇼라는 말은 철저한 엔터테인먼트이다. 이것은 유쾌한 도락과 유희, 그리고 웃음의 현장이다. 반면에 시리어스라는 낱말은 마음을 놓고 즐기는 상황이 아니라 사회적 정황이나 현재 인간에 대한 이지적 염려를 담는 우환의식(憂患意識)을 뜻한다. 그렇다면 사회와 인간에 대한 관심을 포함하는 이지적 내용과 오랜 시간 연마한 미적 형식의 즐거운 결합이라는 뜻이다. ● 사실 예술이란 기존의 미적 선례(aesthetic precedence)를 전복시키면서 자기 형식을 세상에 새로이 등정시키는 투쟁의 연속된 과정이다. 따라서 그것이 회화든 조각이든 미디어든지 매체에 상관 없이 그 과정은 모든 작가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예술은 체험이라기보다는 형식이다."라는 한스게오르크 가다머의 주장처럼 형식의 문제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그러나 작가이기 이전에 인간인 그 사람과 그 사람이 구축한 형식이 일체화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일체화가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술로부터 감흥을 느끼며 작가부터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얻게 된다.

김희수_Rear Window(12mm)_나무 패널에 사진 콜라주, 레진_122×92cm_2013
박지나_다섯 개의 비와 강_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2

1981년이라는 연도는 얼핏 보기에 평범한 것 같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해였다. 잭 웰치가 '주주의 가치(shareware's value)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해이다. 이것은 노동자의 대우와 공공복지, 설비투자를 지양하고 투자감소, 복지축소의 실현을 통해서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많이 가게 만들자는 취지의 패러다임이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의 신호탄이며 보수주의의 집권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미국의 레이건 정부와 영국의 대처 정부는 외부에 대한 강압적 정책과 복지의 축소, 기업 친화적 정책을 속속들이 실행하면서 세계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강한 국가와 상층부 주도의 굳건한 경제정책, 금융 자율화 등을 통해서 지배세력의 안정화를 꾀했다. 이에 따라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기층세력은 상당한 불리한 정국을 맞이하게 되었다. ● 이때 불리한 기층세력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우민화 정책이다. 우민화 정책은 종교를 활용한다. 종교란 특정 종파의 교리집단을 뜻하는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구축된 믿음의 산물을 뜻한다. 영웅주의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소의 주제가 되었다. 이 영웅주의를 극화시키는 수단은 스펙터클과 스피디한 상황전개, 요염한 섹스였다. 이것은 완벽한 '라이브 쇼'이며 의지의 시간과 이지적 사고를 정지시켜 정념의 세계로 이끄는 미약(媚藥)이었다. 이후부터 이 쾌락적인 산물은 모든 문화현상을 지배한 요체가 된다.

윤성지_WHO HIRED ME_벽에 페인팅_가변크기_2013
이문호_FM_혼합재료_설치_2013

예술이란 과거의 미적 선례를 전복시켜야만 하는 형식에 대한 사고의 실험이며 정념의 함정을 벗어나려는 의지의 상승이기에 엔터테인먼트를 강조하는 사회분위기와는 잘 맞지 않는다. 그러나 전 세계 예술계는 이후부터 새로운 모험을 감행했다. 카메라나 비디오, 혹은 영상과 같은 새로운 매체 기술의 보급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기층문화를 잠식해가는 스펙터클의 미학을 예술계에 끌어안았다. 그것은 모든 벽면과 공간을 잠식해가는 설치미술의 실험으로 확장되었다. 90년대 이후부터 이러한 현상은 '포스트'나 '대안'이라는 접두어를 장착하여 이론화되었고 심지어 철학화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유학 자율화 이후의 1세대 작가가 이때 미국을 경험했으며 국내에도 이러한 분위기가 유행처럼 퍼졌다. ● 나는 우리나라 예술계의 현재적 정황이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지나간 어제보다 또 한번 날이 밝은 오늘이 좋다고 믿는다. 우리나라 예술계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모든 담론과 신조를 외국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수입된 믿음과 수입된 담론에 의지하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의 종교란 없는 셈이다.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이라는 신조는 미국의 보편주의가 세계인의 기호에 부합할 수 있다는 자기 미적 메커니즘에 대한 확신이었으며 슈퍼 플랫이니 재팬 팝이니 하는 것들은 자기의 문화전통이 세계문화 형성에 기여한 뿌리의 미적 메커니즘이라는 생각의 발로이다. 심지어 태국에서조차 '부다다사 비쿠(Buddhadasa Bhikkhu)'라는 불교 철학자의 사상을 시각화시키면서 21세기의 새로운 미술 탄생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자체적으로 발로한 구심적 신조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계층 양극화의 골은 나날이 깊어질 것이며 통일문제에 있어서 찬반의 양론이 첨예하게 맞설 것이며 한반도 주변의 4국은 자국 이익에 유리한 형국으로 한반도 정세를 몰고 갈 것이다. 경제는 겨울처럼 지리해서 새로운 봄의 파종을 고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련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란 농한기의 겨울에 탄생된다. 예술에서 위에서 말한 제 사회적 문제와 정황을 세련된 형식으로 제련할 것이며 사상적 신조 또한 마련되리라 믿는다.

이병호_Bloom_혼합재료_설치_2013
이은경_Garden map_천에 잉크_36×50cm_2013

여기 참여한 작가들은 자기 형식을 이미 갖춘 노련한 세계관을 지닌다. 이문호의 보이지 않는 사회 이면의 진실과 불안에 대하여 사고적 실험을 감행하며, 윤성지의 현실에 내재되는 형이상학적 진리를 간파하는 작업은 상당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외부세계의 대상을 지배해왔던 주체 중심적 인간사관을 비판하는 최형섭의 작업도 의미가 있으며, 이정우의 사진이 발설하는 현실과 가상의 일그러진 경계설정도 아름다워 보인다. 무언가를 고정시키고 재단하며 정의한다는 인간의 인식론적 폭력에 대하여 비판하는 박지나의 메타포도 훌륭하다. 진달래 작가는 세계에 대한 뉴튼적 인식론이 지닌 한계와 폭력성을 극복하고 광대한 우주적 수사학으로까지 인식을 넓히자고 주장한다. 이병호는 서구의 사상과 남성의 근육에 의해 계층과 가치가 결정되었던 기나긴 역사성의 폭력을 희화시키면서 대안적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김희수는 가상실재의 파편화된 진실을 만들면서도 진리문제보다는 창조성에 우위를 두는 니체적 사고를 옹호한다. 이은경은 의도적으로 염료와 천을 사용한다. 가부장적 사고에서 여성적 포용성, 기하학적 이지성에서 비대칭적 자유로움으로 마음을 열고 확장시키려는 의지를 선보인다.

이정우_Choi_s morning_디지털 프린트_82×106cm_2013 이정우_Choi_s night_디지털 프린트_82×106cm_2013

독일 나치를 위해서 일하다 나중에 나사(NASA)에서 아폴로 11을 개발한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는 현대 물리학과 기술의 1인자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과학이 가르쳐준 모든 것은 죽음 이후에도 영적 존재는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는 나의 믿음을 강하게 해줄 뿐이다."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예술은 스타일 자체이며 스타일은 바로 영혼의 관상이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영성과 영혼, 그리고 종교적 의식이 바로 예술의 본질적 요소라는 뜻이다. 예술은 진정으로 제식과 염원, 주술과 함께 발전해왔다. 따라서 '시리어스 라이브 쇼'는 예술 현상의 일반적 전개가 아니라 앞으로 현대미술이 나아가고 지향할 초점을 분명히 하는 전시이다. 이 전시의 참여자들은 영성을 믿고 포스트 휴머니즘의 대안을 앞세우며, 현재 우리가 처한 사회적 문제는 정확히 진단하여 짚어낸다. 좋았던 점은 상찬하는 긍정성을 보이며, 또 다가올 미래에 대한 대처하는 자세를 총체적으로 지시한다. 즉, '시리어스 라이브 쇼'는 즐거운 형식과 진중한 내용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그것은 새로운 개념을 위한 작은 토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우리 작가들에게 개념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은 소망이 있다.

진달래_ANTIGONE_혼합재료_볼 2×2m, 설치_2013
최형섭_Hera / ㄱ 헤라_양가죽_195×135cm_2013

독일의 개념미술이 무엇인지 이 짧은 지면을 활용해서 다 설명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전설로 남아있는 큐레이터 헤럴드 제만의 주요 전시 방법을 통해서 개념이 과연 무엇이고 개념미술은 무엇을 노리고 운집한 미술현상인지 일견하고자 한다. 헤럴드 제만의 패러다임 쉬프트는 대략 세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 그 유명한 1969년도 스위스 베른의 전시가 가장 중요했다고 볼 수 있다. '태도가 형식이 될 때' 라는 전설적인 전시는 미술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서 출발하였다. 미술관은 곧 제도이다. 제도는 기득권과 동의어이며 제도가 용인하고 인정한 미술가는 곧 교회의 사제와 동일한 위치를 지니게 된다. 미술관은 곧 예술적 교회와도 같았다. 헤럴드 제만의 생각은 이렇다. 그렇다면 교회로부터 발을 빼낼 때 일상공간에서 하느님은 사라져버리는가? 이와 똑같이 미술관으로부터 발을 빼내는 즉시 세상에서 예술은 사라져버려야 하는가? 헤럴드는 베른 도시 전체에 전시함으로써 베른 자체를 미술관으로 바꾸었다. 이것이 그의 첫 번째 혁명이었다. 둘째, 그가 1972년도 카셀도큐멘타의 전시감독이 되었을 때 그는 '오늘날의 이미지 세계(Image World Today)'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경계를 허물려고 했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어린 아이의 그림들, 키취, 장난감, 광고, 정신질환자의 작품과 동시에 진열했다. 응당 일반관객과 전문가조차도 어느 게 유명작가의 작품이며 어느 게 정신질환자의 작품인지 구분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인식을 살리지 못하고 아름다움의 향유를 미술관과 제도, 권위에 일임해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이 그의 두 번째 혁명이었다. 셋째,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하면서 그는 여태껏 홀대를 받아온 아시아 미술과 동유럽 미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서구 중심주의에 경종을 울렸다. 그의 전시는 한결같이 개념적 혁명으로 점철되어있다. ● 이 헤럴드 제만과 같이 작업했던 대표적 작가들은 대부분 개념의 혁명적 전환을 통한 사람들의 인식의 영역을 넓혀주려던 진보주의자들이었다. 가령 소크라테스 이래로 숭상되어왔던 로고스(logos)의 전회(轉回)를 시도한 작가가 요셉 보이스일 것이다. 정치사회상의 문제양상에 대한 심미적, 예술적 테러를 감행한 한스 하케를 기억해야 한다. 끝으로 영상예술을 극적으로 승격시킨 장르 초월적 예술가인 빌 비올라도 어떻게 보면 개념적 혁명가라고 할 수 있다. ● 나는 이렇듯 '시리어스 라이브 쇼'가 새로운 신조를 보여주며 혁명적 인식과정을 전개하는 태도로 발전하는 지속적 전시로 발전되기를 매우 강하게 염원한다. 자기의 삶과 형식이 일체화를 이루면서도 보편적 의미와 삶에 대한 희망과 긍정, 그리고 처단해야 할 문제점은 과감히 드러내어 척결해내는 혁명성을 구유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이진명

Vol.20130704f | Serious Live Show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