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a Wonderful World S# 2

박유미展 / PARKYUMI / 朴柔美 / video.installation   2013_0709 ▶︎ 2013_0722

박유미_망각_단채널 비디오「what a wonderful world」영상설치, 시멘트, 우뭇가사리_가변설치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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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사이아트 갤러리 뉴디스코스 작가선정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_02:00pm~07:00pm

사이아트 갤러리 CY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안국동 63-1번지 Tel. +82.2.3141.8842 www.cyartgallery.com

‘죽음’ - 물질과 감각의 또 다른 경계 ● 분주하게 움직이는 도시공간은 생동감 넘치는 삶의 영역을 의미하는 듯하지만 박유미 작가에게는 이 공간이 통속적인 죽음의 아이콘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때 통속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죽음이라는 개념이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임에도 타인의 주검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에 의해 규정되어버린 죽음이라는 이 개념은 정지, 끝남, 단절과 같은 부정적인 코드와 연관되어 해석되고 있음을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작가는 이러한 통속적 의미의 죽음과는 다른 차원에서 작가가 찾고자 하는 제시적 죽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가장 생명력 있게 움직이고 있다고 간주되고 있는 도시공간이라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거시적으로 정지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통속적 의미에서의 죽음의 풍경일 수 있음을 말하면서 작가는 도시의 반대 방향에서 통속적 죽음과는 다른 차원의 죽음에 대해 찾아보고자 하는데, 이러한 시도가 작가에게 있어 도시공간이 무엇임을 확인하는 길이며 그가 찾고자 하는 미지의 세계인 죽음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길일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박유미_What a wonderful world_단채널 비디오_04:26:03_2012
박유미_What a wonderful world_단채널 비디오_04:26:03_2012
박유미_What a wonderful world_단채널 비디오_04:26:03_2012

이 지점은 도시적 시각에서 본다면 삶과 죽음의 위치가 뒤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박유미 작가에게 있어서는 흔히 평화롭게 소통되고 있다고 의심 없이 믿어버리게 되는 도시라는 공간의 안정감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갖고 있기에 생동감 넘쳐 보이는 도시공간과 그것이 정지된 공간 즉 죽음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지점이 위치가 뒤바뀌거나 혹은 일정하게 겹쳐져 있어 보이는 작가의 고유의 시각 방식이 난해하게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는지 모른다. ● 박유미 작가는 그래서 이 도시공간의 반대 방향에서 죽음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항구적으로 정지되거나 단절되고 끝나는 종말의 세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세계라는 것이다. 정지되거나 끝나는 것과 연결되는 통속적인 의미의 죽음이라는 개념은 선형적이고 단선적인 세계관과 일정하게 연결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작가적 세계관은 원형이나 나선형처럼 휘어져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유미_What a wonderful world_단채널 비디오_04:26:03_2012
박유미_What a wonderful world_단채널 비디오_04:26:03_2012

박유미 작가에게 있어서 죽음은 물질과 감각의 단절과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과 물질세계의 시작일 수 있으며 위장된 안정감에 감춰져 있는 도시공간과 부딪히는 또 다른 차원의 시간과 공간의 연장일 수 있다. ● 그래서 작가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인 죽음이라는 세계에 대해 도시공간의 상징물 안으로 수렴하되 이를 뒤집어 반전된 공간의 풍경을 통해 그 지평을 포착해 보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전시에서 견고하고 안정되어 보이는 도시공간이라는 것도 시간에 따라 부식 되어 가거나 우뭇가사리와 같은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식물과 만나면서 생명과 죽음이 마주치는 듯한 풍경의 일부가 되어 어떤 상황 속으로 함몰되는 듯한 상황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렇게 불안정하고 낯선 장면을 만들어 냄으로써 도시적 일상은 이제 물질적으로 변질된 다른 생명의 세계 혹은 시공간의 혼돈 속에 죽음의 징후가 동시에 노출되는 상황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 이때 혹자는 작가가 말하는 생명의 세계는 죽음의 세계와 모순적으로 중복되거나 교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데, 작가적 시각에서 보면 죽음을 망각하게 하는 도시적 일상성의 중독이 해소되는 지점이 바로 죽음이기에 죽음과 생명의 세계에 대한 작가의 시각은 논리적인 모순성이 있다기 보다는 현실공간의 구조적 한계를 물질적으로 해방시키는 시공간적 변질의 경계 지점으로서의 죽음의 역설적 위치로부터 작가가 제시하는 죽음의 개념이 시작되고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박유미_What a wonderful world_단채널 비디오_04:26:03_성북동 거리 상영_2013

박유미 작가는 이처럼 죽음의 위치를 현실 속의 도시공간에 대한 통속적 시각의 전환 지점에서 보여줌으로써 결국 자연과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인식의 구조적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작가의 표현 방식은 그가 연출한 낯선 장면들을 보면 몇 가지 상징적 요소들이 개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의적 해석에 노출시키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는 점에 다시 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이는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풍부한 오해’ 혹은 ‘오독’이 가능한 체계를 만들고자 한다는 작가적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부터 이해하여야 하는데, 작가는 바로 여기서 일상성의 중독이라는 보다 거대한 관성화된 증후를 도시적 공간개념에서 도출된 통속적 죽음이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한정함으로써 이로부터 파생되는 수많은 일상의 시각 프레임들을 오히려 지켜보면서 작가적 시각에서의 죽음의 위치를 더 명료화하고자 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승훈

Vol.20130709f | 박유미展 / PARKYUMI / 朴柔美 / video.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