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바라보는 세가지 시선

문재일_이진희_혜순황展   2013_0626 ▶︎ 2013_0720 / 일,월,공휴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월,공휴일 휴관

구로아트밸리 갤러리 GUROARTSVALLEY GALLERY 서울 구로구 가마산로 25길 9-24 Tel. +82.2.2029.1700, 1742 www.guroartsvalley.or.kr

『자연을 바라보는 세가지 시선』전은 3인전을 통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지역과 미술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관람객들과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현대미술이 주는 신선한 감동을 받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에 마련한 전시는 자연을 소재로 추상으로 표현해내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하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아티스트들이 생각하는 자연·자연의 본질·자연을 통해본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알 수 있으며 보다 다양하고 넓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준비하였다. 추상을 하려면 대상에서 본질적인 것을 이끌어 내야하며, 창조적·미술적으로 사고를 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모든 미술을 추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추상미술이라 부를 때는 이 미술이 대상 묘사를 단념한다는 것, 즉 대상을 완전히 추상화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자연현상을 미술적으로 모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창조자가 되어 자신의 내면과 대상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고 있다. ■

문재일_silent.15_한지에 혼합재료, 분채_90×120cm_2012
문재일_silent history 1_한지에 혼합재료, 분채_130×162cm_2012

고고학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 ● 문명, 특히 언어로 이루어진 상징적 체계에 대한 작가의 거부감은 죽음의 이미지를 향하게 하며, 문명의 바깥을 응시하게 한다. 문명의 잔해들이 자연에 의해 뒤덮여 있는 모습은 진보적 전망이 아닌 진화적 시야를 열어준다. 문명이나 자연은 모두 시간의 흐름에 맡겨져 있지만 자연사는 역사에 비해 더 큰 시간의 주기를 가지고 있으며, 작가의 눈은 이 장기적인 시간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의 그림에서 자동차, 비행기, 기차 같이 인간문명의 비약적인 진보를 가져왔던 발명품들은 그 당당한 위용을 잃고 잔해가 되어 자연에 파묻히는 중이다. 묻혀 사라지는 문명의 흔적은 깊은 침묵에 잠겨있다. 작가는 '인간과 사회, 문명이 자연으로 사라지는 말없는 역사'에 주목한다. 그것은 유한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조건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한다. (중략) 작가에 의하면 시간과 시간 사이의 경계를 통해 드러나는 죽음(사라짐)은 '얽힌 망들을 끊어내는 것'인 동시에 '자연과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인간과 사회가 자연으로 사라지는 '고고학적 가상공간'은 어둠 속에 잠겨있지만, 이 어둠은 새로운 발견이나 출발을 위한 또 다른 차원이 된다. 그는 장지에 코팅을 하고 수묵담채로 엷게 수 십 번 올려나간-유화와 달리 안으로 쌓이는-방식을 통해 주제에 걸 맞는 깊이와 신비감을 부여하였다. ■ 이선영

문재일_silent history 4_한지에 혼합재료, 분채_130×162cm_2013
문재일_silent history 6_한지에 혼합재료, 분채_130×130cm_2013

"인간과 사회, 문명, 그리고 모든 것은 자연으로 사라지다." 혹은 "말없는 역사" 라는 주제는 현재 작업의 진행방향이다. 이는 개인의 죽음에서 시작하는 근본적 두려움의 물음으로 시작한다. 작품의 이미지는 결과론적 이미지에서 시작하고, 자연이라는 커다란 구조물 속에 파묻힌 문명의 부산물들은 생명력을 잃어가며, 메시지를 남긴다. "자연에 묻힌, 멸망 되어진, 전 문명세상 속에서는 어떤 이야기들과 감성들이 숨어있었을까?" 라는 물음에서 작가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 "말없는 역사"를 밝히려는 고고학적 자세를 취해본다. 작품 속, 묻혀있는 이미지들을 역사학, 생물학, 건축학, 미술사학, 인류학, 심리학이라는 연결고리와 함께 보다 심층적인 비교분석으로 삽입할 계획에 있다. ■ 문재일

이진희_Horiz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오일 스틱_130.3×130.3cm_2013
이진희_Every momen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오일 스틱_89.4×145.5cm_2013

물아일체의 경계에서 찰나의 순간을 만나다 ● 뭉근하게 배어나오는 이미지들은 부유하듯이 하늘거린다. 마치 에너지가 응집된 듯 둥근 원형들은 날아가는 것인지 날아와 앉은 것인지 혹은 생명이 소멸되고 있는 것인지 생명이 부여되고 있는 것인지 그 경계를 나눌 수 없다. 이진희는 의도적으로 그러한 순간을 포착하여 찰나의 순간, 경계를 구분 짓는 순간이 아니라 모호하고 알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을 잡아내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극대화시켜 자연에 내가 서있는 것인지 내 안에 자연이 들어와 있는 것인지 모를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중략) 인간이 살아가면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계의 중도에 서있는 순간이 꿈과 깨어남의 순간이듯 이 모호한 어렴풋이 느낌으로만 기억할 수 있는 세계를 담아내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점은 전통적인 원근감으로 정확히 그려 낼 수 없으며 하늘에서 내려다 볼 수도 땅 위에서 올려다 볼 수 있는 다(多)시점을 부여하는 것이다. 꿈과 현실이라는 것도, 삶과 죽음처럼 끝없이 변화해 가는 과정 중 일부라면 도대체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 것이며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꿈이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인 것일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 작가는 그 경계의 가운데 서서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 박소민

이진희_Like a virgi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오일 스틱_89.4×145.5cm_2013
이진희_Landscap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오일 스틱_130.3×194cm_2013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이 보드랍게 살짝 넘실거리며 바람결 따라 춤을 춘다. 때론 보송보송한 솜처럼 몽글거리다 쫙 하얗게 펼쳐져서 끝을 알 수 없게 만들 때도 있다. 구름의 그런 모습은 변화무쌍해도 너무 조용하게 지나가버려서 바쁜 우리들의 시선을 받지 못한다. 아주 스펙터클한 콘트라스트가 들어간 풍경을 자아내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는 꽃, 풀, 하늘, 구름 등을 그린다. 때론 형상을 띄기도 하고 때론 추상적으로 표현할 때도 있다. 내가 그리는 이 자연의 요소들은 나에게 시간을 잊게 만들며 동시에 시간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들이다. 모든 것은 다 찰나다. 그 붙들어지지 않는 찰나를 나는 살짝 만져보고 싶은 것이다. 남들과는 조금 시간을 다르게 쓰면서 남들도 느껴 봤으면 할 것을 더 많이 느끼고 보여주는 것. 예술가의 역할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이진희

혜순황_While you are listening II_가변설치_2013
혜순황_Geometric Flora II_혼합재료, 종이에 흑연_76×60cm_2013

'보는 것'과 '느끼는 것'에 대한 회화적 질문 ● 혜순황의 작업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노동집약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의 작업은 선인장이나 솔방울과 같은 자연물에서 소재를 얻어 점진적으로 추상화(抽象化)의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모두 추상적인 것은 아니다. 작업의 초기에 실험한 기하학적 형태들을 제외하면 비록 추상적(抽象的) 경향을 띠더라도 완전한 추상이 아니며, 거기에는 대상을 식별할 수 있는 형태소(形態素)가 있다. (중략) 혜순황의 작업은 요즘처럼 미디어 아트가 득세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회화에 대한 재고(再考)를 요구한다. 회화의 근본 문제를 묻고 있는 그의 작업은 미술의 현재적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어쩌면 더욱 긴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업은 추상과 구상, 기하학적 형태와 유기적 형태의 틈에서 역사가 아주 오랜 회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보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서 파생되는 미적 경험의 문제를 화두삼아 혜순황은 집요하게 노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 윤진섭

혜순황_Formative Flora I_혼합재료, 종이에 흑연_80×80cm_2013
혜순황_Formative Flora II_혼합재료, 종이에 흑연_80×80cm_2013

자연의 거대한 공간과 깊이 속에 존재하는 에너지와 호흡은 그 무엇보다 경이롭고 아름답다. 작고 여리지만 끊임없는 반복에 의해 강인한 생명력을 얻는 식물들의 집합체들로 내가 손대기에는 너무 크고 아름다운 자연이 만들어진다. 자연의 구조와 형태를 관찰하면 그 모습은 우리 삶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는 걸 느낀다. 나 또한 작고 여리지만 섬세하고 강한 식물과 같이 전체의 일부이며 때로는 전체를 결정하는 존재임을 자연으로부터 알게 된다. 자연이 기하학적인 형태, 선, 반복 등의 추상적인 조형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무수한 연필 선들의 반복으로 만들어내는 형태와 흑연, 오일, 왁스 등의 재료들이 여러 번 번갈아 가며 켜켜이 쌓이는 무게감은 식물이 작은 세포, 잎맥, 줄기, 잎 하나하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하나의 선들을 그릴 때마다 식물의 생명의 의지를 반영하고 선을 그리는 단순행위의 반복은 고스란히 작업 전 과정에 나타나며, 작은 선들의 집합이 조화를 이뤄 큰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과 같다. ■ 혜순황

Vol.20130714a | 자연을 바라보는 세가지 시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