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잡기 to take place

정소원展 / JUNGSOWON / 鄭昭苑 / installation   2013_0724 ▶︎ 2013_0730

정소원_정상궤도_끈_200×350cm_201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인사동길 52-1)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시간의 축을 따라 발생하는 공간 ● 전통 매듭을 변주해 독특한 기하학적 공간(space)을 만든 정소원 전의 출발점은 자기 자리(place)에 대한 관심이다. 일련의 형태를 만드는 매듭을 하나의 단위로 삼아 엮여지는 공간은 구조적 규칙성을 가지면서도, 발생과 소멸을 암시하는 잠재적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이 규칙 바른 공간들이 원초적 혼돈의 상징인 물에 대한 체험으로부터 왔다는 것도 역설적이다. 실재에 대한 원초적 체험을 가능케 하는 넓고 깊은 바다는 공간의 원형적 모델이 되며, 갖가지 다양한 공간들을 품고 있다. 가령 물고기 떼들이 움직이는 타원형의 궤적이나 산호초 무리가 만들어내는 솟은 형태, 발이 닿을 수 없는 아득한 물속의 깊은 어둠의 공간이 그러하다. 작품의 주제를 공간으로 설정했을 때, 수많은 공간 중에서도 바다를 먼저 떠올린 것은 시사적이다. 인간이 최초로 기거한 공간은 양수로 채워진 모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을 깨고 나온 개체는 자신의 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개체가 속할 또 다른 공간 만들기의 과제는 개체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속될 것이다. 작품들은 화학식 H2O로 표기될 법한 규칙성에 매료된 것처럼 보인다.

정소원_공간의이동_끈_70×455cm_2013

수소와 산소가 자연 법칙에 의해 결합되고, 분자들이 운동하기 위해 빈 공간이 필요한 관계적 실체 말이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타원형, 또는 선형의 움직임조차 작가가 정한 규칙에 충실하게 따른다. 자연으로부터 추출한 공간에 대한 비유는 자연의 법칙에 상응하는 예술의 규칙으로 전환된다. 생명이 항상성을 유지하려면 어떤 공간관계를 필요로 한다. 다양한 비유로 확장될 공간에 대한 상상의 출발은 바다라는 결코 고갈될 수 없는 거대한 실재계였지만, 그것을 실체화하기 위한 방법과 재료는 전통 매듭에서 왔다. 하나의 기법이자 유닛은 3차원으로 확장되었으며, 삶에 대한 구체적 비유가 되었다. 하나의 선이 얽히고설켜 그자체로 조밀한 공간을 형성하는 매듭은 시간과 결합하여 다양한 상황을 비유하게 된다. 삶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매듭지어야 하며, 매듭을 풀어야 하며, 매듭을 끊어야 하는가. 매듭과의 관계 속에서 생과 사, 성공적인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이 결정된다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정소원의 작품은 기하학적 공간과 삶의 자리가 유비적 관계로 엮이면서, 단지 기발한 형태들의 조합을 넘어서 풍부한 서사로 거듭난다. 전통 공예 기법에 존재하는 4개의 잎 모양을 8개로 확장하면서 만들어진 공간구조는 꽃처럼 중심이 있다. 그러나 정소원의 작품에서 그 중심은 항상 이동 중이다. 작품들은 공간의 구조적 측면 뿐 아니라, 발생적 측면도 강조한다.

정소원_공간확장1_끈_100×100×45cm_2013
정소원_공간확장2_끈_100×100×45cm_2013

현대는 좋은 의미로든 아니든, '중심이 상실된'(제들 마이어) 사회이다. 현대의 철학 역시 '기존의 절대적인 근원, 중심, 현존(presence) 등의 존재'(데리다)를 부정한다. 중심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생겨나고 사라진다. 종교학자 조너선 스미스는 『자리잡기 to take place』에서 중심의 상징을 강조하는 기존의 종교적 가설을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하면서, 중심의 상실이 꼭 불화, 타락, 비존재라는 카오스로의 침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시간의 축을 따라 변화하는 작품 공간은, 스미스의 가설처럼 성스러운 공간(sacred space) 보다는 자리(plce)에 대한 사회적이고 동사적인 이해를 담고 있다. 바닥 보다는 벽에 의지하는 정소원의 작품은 전통적인 의미의 조각보다는 회화적이다. 중심 대신에 중심의 이동을 강조하는 『자리잡기』의 구별을 따르자면, '제작(making)'보다는 '표시(marking)'라는 맥락에 놓여있다. 그것은 주어진 자리보다는 자리를 만드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예술은 종교처럼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서 무언가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리는 물리적일 뿐 아니라, 의미의 공간이다.

정소원_자리잡기_끈_200×60×60cm_2013
정소원_foundation_끈_100×100cm_2013
정소원_어안_끈_100×100cm_2013

정소원은 무의미한 추상적 공간 대신에, 의미로 가득한 자리로의 변모를 추구한다. 이 변모는 그 자체로서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 차이나는 기호들의 중첩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것은 인간적이기 보다는 구조적이다. 기성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발을 통해 현대 사상의 근간을 만들었던 구조주의 역시 그러했다. 일반적이고 비인간적(impersonal)인 구조주의는 '주체의 자연발생적이고 지적인 자기중심성으로부터 해방되는데 필수적인 연속적 탈중심화'(장 피아제)를 요구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구조는 선험적이거나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동적인 의미에서 이해된 구조와 주체는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우리의 몸 역시 다른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구조의 궁극적인 결절 점 내지 교차점'(화이트헤드)이라는 구조로 충만하다. 정소원의 작품에는 조밀하게 옥죄는 듯한 매듭의 단위구조로부터 심해라는 거대한 실재계에 이르는 공간의 계열이 있으며, 이 구조적 공간과 함께 생성 소멸하는 주체의 운명을 말한다. 공간적 비유는 시간의 축을 따라 서사를 만든다. ■ 이선영

Vol.20130723c | 정소원展 / JUNGSOWON / 鄭昭苑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