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Plastic Trees

최수앙展 / 崔秀仰 / CHOIXOOANG / sculpture   2013_0905 ▶ 2013_1005 / 일요일,추석연휴,9월21일 휴관

최수앙_Isometric_Male_레진에 유채_95×61×47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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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905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추석연휴,9월21일 휴관

스페이스 캔 Space CAN 서울 성북구 성북동 46-26번지 Tel. +82.2.766.7660 www.can-foundation.org

오래된 집 Old House 서울 성북구 성북동 62-10,11번지 Tel. +82.2.766.7660 www.can-foundation.org

최수앙을 만나다-2013년 6월 ● 오랜만에 아버지를 뵈었다. 지난겨울부터 여념이 없으신 불상 작업은 제법 진척되어 등신대가 훌쩍 넘는 부처와 보살들이 작업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인체에 대한 이해, 작가의 묘사력과 구상력 등을 운운하는 나에게 한마디 던지신다. "그래, 헌데 불상은 그 무엇보다도 추상적인 조각이지." ● 세상의 모든 형체들은 공(空)이며 실체 없음을 말하는 불교에서 이천여년 간 불상의 역사가 이어져 왔다. 그 몸의 형상 속에, 얼굴의 표정 속에, 손갖춤의 표상 속에 무엇이 담겼는가. 육신과 감각 너머의 형용할 수 없는 경지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왜 다름 아닌 인간의 몸이 되었는가. 몸의 함축성과 직접성이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에게 얼마나 강렬하고 통렬한 매개가 될 수 있는지. ● 나체로 걸터앉은 채 고개를 돌려 스스로의 화신(化身)을 응시하는 여인(Reflection)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친다. 누가 누구의 화신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하나의 몸은 서서히 드러나는, 혹은 지워지는 중이다. 극도의 리얼리즘은 형이상이 된다. 자연 속에 완벽한 구(球)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최수앙_Listener_레진에 유채_58×58×50cm_2011
최수앙_Perception_레진에 유채_86×50×30cm_2012

2013년 7월-몸짓기 ● 뜨거운 공기 속에 갖가지 형상, 색깔, 소리와 냄새들이 흩어지고 또 무언가로 다시 모이고 있는 작업실. 파괴와 창조, 해체와 조합을 거치며 최수앙은 '몸짓기'를 하고 있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미완의 몸 하나가 좌대 위에 대기 중이다. 헐벗은 형상은 작가의 손을 기다린다. ● 오래전 바사리가 묘사한 다빈치의 작업 현장이 새삼 떠오른다. 그는 점토 모형 위에 흙을 바른 젖은 천을 씌우고 그 위에 붓질을 해 형상에 생기를 더했다고 한다. 가능한 모든 이론과 기술을 동원해 최대한 실재에 근접한 결과물을 창조하려 했지만, 목표는 단순한 자연의 모방이 아니었다. 그림이든 조각이든 그에게 예술은 경험의 통합을 통해 보이지 않는 자연의 원리와 이상의 세계를 가시화하는 과정이었다. 그가 평생토록 인체의 겉과 속, 몸의 온갖 현상들에 천착한 이유이기도 하다. ● 몸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담기는가. 몸의 부분 부분에는 앎과 삶이 깃들고, 감정과 기대가 반영된다. 그것들이 끊임없이 쌓여가거나 덜어지며 하나의 몸은 변화한다. 더욱 선명하게 혹은 더욱 흐릿하게, 더욱 아름답게 혹은 더욱 추악하게. ● 최수앙에게는 인체라는 해부학적 용어보다 몸이라는 함축이 걸맞다. 그의 작업을 마주할 때면 본다는 인식보다 만난다는 느낌이 든다. 과장되고 절단되고 때로는 재조합된 형상들은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는 모습, 작가의 비범한 관찰과 상상력의 피조물들이지만, 칼로 그으면 마치 벌건 피와 새하얀 뼈를 드러낼 것만 같은 몸들이다. 온전한 몸이든 잘리거나 이탈한 일부이든 혹은 부분들의 결합이든 그것은 또 하나의 몸이 된다. 그가 바닥에 던져 놓은 발, 서로에게서 한없이 멀어지는 한 쌍의 발을 보라「무제2013-1」. 잔뜩 웅크린 발에는 온몸이 담겨 있다. 그 자체가 몸부림이다. 그것이 가지를 뻗어 나온 보이지 않는 상실과 무력의 몸통이 손에 잡힐 듯하다. ● 인간이 가진 것 중 가장 솔직한 것이 몸임을 그는 알고 있다. 몸의 가시성과 불가시성, 몸을 통해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자아와 세계, 꿈과 실재, 작가와 작품이 소통하는 곳, 몸은 기억하고 기록하는 경험의 덩어리이자, 존재가 교차하는 경계의 영역임을. 그가 지어내는 몸들과 몸짓들이 우리의 안과 밖으로 그토록 속속들이 스미는 이유이다.

최수앙_Plastic Island_혼합재료_225×117×117cm_2012
최수앙_Reflection_레진에 유채, 호두나무_87×82×52cm_2012

손과 눈 ● 손이란 얼마나 오묘한 것인가. "말할 수 있는 존재, 생각할 수 있는 존재만이 손을 가질 수 있고... 손이 하는 모든 일은 사유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한 철학자의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몸의 연장이자 사고의 발현으로서의 손. 손은 움켜쥐고 뻗고 만진다, 뿌리치거나 받아들이고, 가리거나 들춰낸다. 손을 잃은 이에겐 눈이 없다. 보이지 않는다. 손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지 잊은 지 오래다. 「무제2013-2」 손은 또 다른 눈이다. 손 없이는 온전히 볼 수가 없다. ● 최수앙의 손이 그 본연의 힘을 잃지 않았음, 정교한 감수성을 지녔음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는 수많은 몸을 보고, 수많은 몸들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펼쳐진 몸의 이야기 속에 개인과 사회, 자아와 세계 사이의 심리적, 정서적, 감정적 파편들을 담아내었다. 실험실 속에 늘어놓은 인체들의 우화에서부터 극사실적 몸 안에 담아낸 메타포, 복제와 지워냄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의 질문들은 의지의 문제에서 소통의 문제로, 존립의 문제에서 존재의 문제로 진화해 온 듯하다. ● 그 몸들이 속한 환경 속에서 작가는 그가 경험하는 시각의 파편들을 조금씩 쌓아 올린다(Plastic Island). 어디로 고개를 돌리든 빼곡하게 뒤엉켜 범람하는 기호와 지시.우리의 눈은 자유롭지 못하다. 시야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어느 텅 빈 사막, 그 빈 원의 중심에 서서 사방으로 동시에 떠오르는 별을 보며 눈물 흘렸다는 한 지인의 말에 가슴 저렸던 적이 있다. 최수앙이 쌓아 올린 이미지의 감옥에는 조그마한 문이 달려있다. 쉽게 지나칠만한 초라한 문이다. 그 문은 어디를 향해 열린 눈이 될 것인지. ● 그의 손은 조각에 끼워 넣을 눈알 하나하나를 만든다. 눈동자의 신비로운 색조와 선들을 직접 그려 넣는다. 그 눈을 통해 그들은 우리를, 서로를 또는 알 수 없는 어딘가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작업실 한 켠에는 시선의 메아리가 무한 반복되고 있다(The Blind for the Blind). 성운(星雲)과 같은 거대한 홍채의 바다 속에 든 또 다른 우주. 동공의 심연 속에 펼쳐진 끝없는 공간, 어렴풋한 존재의 느낌에 다가가려면 또 얼마나 많은 오고 감을 반복해야 할까. ● 마주한 두 눈이 교환 하는 시선 속에서, 혹은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눈을 한 없이 응시하다가 한 순간 얼굴이 사라지고, 생각이 사라지고, 몸이 사라지는 찰나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눈은 대부분 끊임없이 옮겨 다닐 대상을 갈구한다. 우리의 몸 자체가 눈이기도 한 것이다. 맛보고, 들어보고, 만져 보고, 안아 보는 눈. 밖을 향해 열린 몸을 살아가는 사람, 그 시선을 안으로 돌리기는 쉽지가 않다.

최수앙_Skin_플라스터, 나무_24.5×12.5×15cm
최수앙_The Dreamer_레진에 유채_75×37×33cm_2007

2013년 8월-껍질 ● 그의 작업실을 다시 찾았다. 몸들의 형태와 움직임, 체온과 체취, 시간의 잔상들 가운데 새로운 얼굴 하나가 떠 있다(Skin). 깎고 또 깎아 점점 얇게 갈아내었으니 만들었다기보다는 지워내었다 해야겠다. 그 얼굴에는 밖으로 향한 눈동자가 없다. 비었다. 밖으로 안으로 뚫린 틈이 있을 뿐이다. 밖에서 안을, 안에서 밖을 바라볼 수 있는 얼굴이다. 얇디 얇은 피부, 아니 껍질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이 만나려 하고 있다. 잘리고, 꿰매지고, 축소되고, 확장되었던 온갖 몸들의 역사가 세상과 내면을 가르고 또 연결하는 얇은 막으로 응축된 듯하다. 몸짓들이 품어낸 알과도 같다. 여기 저기 금마저 가있다. ● 이 표정 없는 얼굴의 보이지 않는 손을 그려본다.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을 것만 같다.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온다. 그에게 시 한 구절 전하고 싶다. ● "어머니로부터 빠듯이 세상에 밀려 나온 나는 또 한 번 나를 내 몸으로 세상 밖 저쪽으로 그렇게 밀어내고 싶다 그렇게 나가서 저 언덕을 아득히 걸어가는 키 큰 내 뒷모습을 보고 싶다 어머니가 그러셨듯 손 속에서 손을, 팔다리 속에서 팔다리를, 몸통 속에서 몸통을, 머리털 속에서 머리털까지 빠뜨리지 않고 하나하나 빼곡하게 꺼내어서 그리로 보내고 싶다 온전한 껍질이고 싶다. 준비 중이다 확인 중이다 나의 구멍은 어디인가. 나갈 구멍을 찾고 있다 쉽지 않구나 어디인가 빠듯한 틈이여!..." - 정진규의 "껍질" 중에서 ■ 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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