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는 풍경 Coexisting Landscapes

김신혜展 / KIMSHINHYE / 金信惠 / painting   2013_0912 ▶︎ 2013_0928 / 추석연휴 휴관

김신혜_연화도 蓮花圖_장지에 채색_130×162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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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912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추석연휴 휴관

가회동60 GAHOEDONG60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www.gahoedong60.com

실재와 가상의 유쾌한 풍경 ● 붉은 잠자리가 활짝 피어난 연꽃 사이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한가로운 연못이다. 짙푸른 연잎 사이 곳곳에 피어난 연꽃에서는 언젠가 마셨던 연꽃차의 맑은 향기가 느껴진다. 그림 한 가운데 놓인 페트병을 보기 전까지는. 연지蓮池의 단꿈에서 깨어나 다시 그림을 본다. 현대인의 소비문화를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는 김신혜 작가의 '연화도蓮花圖'라는 작품이다. 기성품의 사실적인 묘사에서 시작했지만 작가가 그린 이 연꽃은 오리지널 디자인의 도식적인 연꽃이 아니다. 김신혜의 그림은 동양 회화의 여러 기법과 개념이 바탕에 있다. 장대한 화면 가득 연꽃을 그린 구성과 진채의 기법은 조선시대 궁중을 장식했던 연화도 병풍에서 빌려온 것임에 틀림없다. 동양 회화의 중요한 특색인 여백 또한 시야를 시원하게 해준다. 화학 물감처럼 선명한 색채를 내기 어려운 천연 물감을 전통 장지에 다섯 번 이상 덧발라 전통 회화의 깊은 맛을 우려낸 채색은 작품으로서 완성도를 높여줄 뿐 아니라 신선한 차의 향까지 전한다.

김신혜_페리에 산수_장지에 채색_145.5×112cm_2013

김신혜의 그림은 상품 이미지를 화면에 담음으로써 소비사회가 우리의 일상생활과 의식세계에 불러온 변화의 미시적 단면을 포착한다. 그의 그림에는 산수, 에비앙, 페리에, 산토리 등 다국적의 음료를 담은 포장용기가 주인공이다. 작가가 공들여 선택한 음료수병은 무의미한 병이 아니라 자연의 이미지가 담긴 라벨을 부착한 일종의 자연을 담는 그릇이다. 물론 이 이미지는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선택된 멋진 풍경, 예쁜 꽃들의 복제된 이미지이다. 작은 라벨에 담긴 자연의 이미지는 그녀의 그림 안에서 화면 전체로 확장되어 나가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작가는 자연과 일회용 생수병이 공존하는 풍경을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애초의 자연에 대한 경험이 없어도 우리가 소비하는 상품과 이미지를 통해 그것을 경험하고 기억하고 그것을 그리워할 수도 있는 아이러니 말이다. 우리의 후각은 맡아본 적이 없는 매화의 향을 떠올릴 수 있고, 긴 비행이 없어도 하와이 심해수의 상쾌함을 느낄 수 있고, 네팔에서 날아온 맥주에서 히말라야 만년설의 짜릿함을 기억해 낼 수 있다. 서울의 빌딩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아도 버라이어티한 상품소비를 통해 전지구적인 경험이 가능한 하이퍼리얼러티의 세계를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을 이야기하기에 작가의 생수병은 최선의 선택이다.

김신혜_무릉도원 武陵園圖_장지에 채색_117×91cm_2012

필자가 김신혜의 작품을 보아온 지 벌써 십년을 훌쩍 넘었다. 그의 그림은 해가 갈수록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가 상품과 소비에 대한 관심을 처음으로 작품화했던 것은 분명 석사졸업 작품이었다. 이때 그린 'Hot Dog Bean'과 'Fancy Cat'은 사료캔을 그린 팝아트 계열의 그림이다. 앤디워홀의 캠벨수프 캔을 차용하며 거대한 상품의 곁에 작은 붓질로 그린 애완동물을 곁들여 소비사회에 길든 현대인의 모습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았던 작품이었다. 이후 첫 번째 개인전에서는 아리조나 그린티병을 그린 '관홍매도觀紅梅圖', 페리에쥬에 샴페인 병을 소재로 '관풍화도觀風花圖'를 선보였다. 라벨에 그려진 꽃을 상품 밖으로 확장해 상품 소비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경험을 가시화한 그림들이다. 작가의 일상에서 길어 올린 현대적인 소비문화에 대한 관심은 상품의 라벨에 붙은 이미지를 포착했다. 붉은 매화가 그려진 아리조나 그린티를 마시던 작가는 문득 "내가 실제로 붉은 매화꽃을 본 적이 있었던가?"라는 의문이 들었고 돌아온 대답은 "없다"였다. 많은 현대인이 작가와 마찬가지로 꽃, 산, 바다와 같은 자연을 직접 경험하기 보다는 상품으로 넘쳐나는 시각 이미지를 통하여 접한다는 자각은 이렇게 작품으로 연결되었다.

김신혜_도원도 桃園圖_장지에 채색_73×53cm_2013

두 번째 개인전인 "제3의 자연 The 3rd landscape"전에서는 일회용으로 버려지는 생수병의 라벨에 부착된 버라이어티한 자연의 이미지를 화면으로 끌어내 새로운 풍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쉽게 소비하고 버려지는 생수병에 부착된 글로벌한 자연의 이미지는 도시적인 소비형태와 상품소비로 만들어지는 가상적인 자연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내용뿐 아니라 회화적 시도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Fiji 생수를 그린 '관폭도觀瀑圖'에서는 팝아트적 기법으로 표현한 상품과 전통적 기법으로 그린 산수화를 중복시켜 이전보다 조형적으로 밀도 높은 화면을 구성했다.

김신혜_국화도 菊花圖_장지에 채색_72.5×91cm_2013

김신혜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작가의 지난 개인전인 '제3의 자연'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되고 있다. 상품에서 연상되는 자연의 이미지임에는 변함없지만 그리는 방식에서 변화가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특징은 상품의 풍경에 동양의 전통 회화에 등장하는 모티브를 언뜻 언뜻 등장시켜 감상의 지적인 즐거움을 배가시킨 점이다. 민화 속의 풍요로운 연못을 연상시키는 연비차蓮秘茶 외에도 마할로Mahalo 라벨에 뜬 무지개는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에서 차용하여 정교한 수묵기법으로 그린 이상향의 이미지를 중첩시켰다. 페리에Perrier는 청신한 색채의 청록산수로 변신했으며 복숭아맛 티 치키Cheeky는 전통적인 이상 세계인 도화원桃花園과 함께한다. 김신혜의 그림에 전통 동양화의 이미지가 없다고 상상해보자.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생수를 사마시는 소비형태가 우리 생활에 가져온 변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촉구하는 그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양의 전통 회화가 그리는 이상적인 이미지와 정교하게 그린 공산품 생수병이라는 이질적 소재가 오버랩되어 만들어진 풍경은 밝고 따듯하며 발랄하다. 그녀의 상품과 산수화가 만든 세계의 이미지는 소비로 인한 미묘한 문제로 가득찬, 반성할 것 많은 세계가 아니다. 인공과 자연, 전통과 현재의 이미지가 즐겁고 유쾌하게 공존하는 세계이다.

김신혜_덩쿨과 새_장지에 채색_60×60cm_2013

김신혜는 초기부터 전통 종이와 천연물감 같은 재료 대해, 동양 회화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묘사력에 대한 관심을 잃은 적이 없다. 이것은 그가 기본기가 탄탄한 작가임을 말해준다. 작품을 거듭해 나가며 상품과 소비에 대한 다양한 해석, 넓어지는 작품 세계를 선보이는 것도 이와 같은 바탕 위에 있다. 그가 보여주는 변화는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거나 파격적이지 않다. 꾸준한 학습과 깊은 고민을 통해 변화 발전해 간다. 이는 분명히 작가와 작품의 성장을 의미한다. 이것이 차기의 김신혜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 이경화

Vol.20130912f | 김신혜展 / KIMSHINHYE / 金信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