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영投影 : 도시는 흐른다

2013 하반기 기획展   2013_1001 ▶︎ 2013_1108 / 월요일, 일요일 제외한 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3_1001_화요일_04:00pm

참여작가 / 구본석_손피오_전보경_최중원_한성우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일요일 제외한 공휴일 휴관

(재)한원미술관 HANWON MUSEUM OF ART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49-12번지 한원빌딩 B1 Tel. +82.2.588.5642 www.hanwon.org

투영전은 (재)한원미술관의 하반기 정기 기획전으로서 실험성과 주제의식이 강한 신진작가를 발굴하여 이 시대의 모습을 작가들의 신선하고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투영(投影)하여 관람객과 가까이서 소통하고자 기획된 전시로서, 올해로 5회를 맞이하였습니다. 본 전시는 이 시대의 키워드인 힐링, 자연으로의 여행, 도시농부, 텃밭 등에서 보여지듯 도시에 있으면서 도시 외부에서 치유 받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고단한 삶을 투영하고자 합니다. 예로 고대 그리스의 선각자들은 인간은 폴리스(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 살아야 비로소 자유롭고 사고하며 인간다워진다고 믿었으며 우리의 문명은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도시 속의 현대인들은 스스로를 구속하며 상처 받은 채로 부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시의 아이러니를 5인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 19세기 프랑스 문학가 보들레르의 파리가 모더니티를 탄생시켰다면, 20세기 초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망명도시 파리는 자본주의 공간미학과 도시학 연구의 단초를 제공했다. 1930년대 소설가 구보 박태원이 거닌 경성거리에서 식민지를 사는 부르주아 지식인의 권태와 좌절감을 느꼈다면, 시인 김수영에게 1950년대 서울은 폐허와 모순 속에서 저항하는 작가정신을 안겨준 곳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 도시는 새로운 예술개념과 시대정신이 탄생하는 중요한 터전이 되어왔다. ● 전후 세계질서가 재편되고 자본주의의 고도성장 및 세계화가 재빠르게 진행되면서 현대의 도시는 소비권력의 절대적 지배 속에 일상과 예술이 분리되고 사유하는 인간주체를 소외시킴으로써 비인간화된 공간, 익명의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현실과 결별한 모더니즘 예술은 더욱 자신의 내부로 침잠하여 자기형식의 탐구, 예술을 위한 예술의 길을 걸어오다 종국에는 자기모순에 이르렀다. 비현실주의를 극복하고 초현실주의의 언덕 위에서 만난 포스트모던의 세계는 인간의 삶으로 돌아와 그것을 지배하는 제도와 권력에 물음을 던지고 가치의 전복과 저항, 탈주의 공간을 꿈꾸게 된다. 그러한 변혁이 가능한 곳은 바로 일상이 존재하는 우리의 도시공간이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은 바로 예술에 있다. ● 도시는 스스로 생산한다 현대의 대도시는 유행처럼 급변하는 건축물, 북적대는 인파와 자동차, 지속적으로 교체되는 광고물과 쇼윈도우의 상품들로 넘쳐나는 감각의 유토피아 공간이다. 도시적 경험은 동적이며 시각적 매혹에 이끌려 이미지를 소비하고 이미지가 연출하는 환영을 더욱 욕망하게 만든다. 즉, 도시는 단순히 물리적이고 기능적인 공간만이 아니라 철학자 베르그송이 말한 '이미지 집합체로서 물질'내지는 표상된 상징과 같은 것이다. 실존적 삶의 공간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이미지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상징으로 자리 잡고, 삶이라는 운동역학을 유발하는 거대한 유기체에 해당한다. 상징적 유기체로서 도시는 사회문화적 조건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함으로써 스스로 재생산하는 생명체인 것이다. (김민수, 「한국 도시 이미지와 정체성」, 『도시공간의 이미지와 상상력』(메이데이, 2010), p.21.) ● 도시를 자발적으로 변화, 발전하는 유기체 및 생명체로 인식하는 관점은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사회적 공간생산론'에 근거한다. 그에 의하면 도시공간이 생산하는 것은 사물의 경제적 생산만이 아니라 사회, 지식 및 제도의 생산을 포함한다. 공간의 생산은 과정과 결과물만이 아니라 생산주체인 인간의 상상력까지도 포괄한다. (장세룡, 「앙리 르페브르와 공간의 생산-역사이론적 '전유'의 모색」, 『역사와 경계 Vol.58』(부산경남사학회, 2006), pp.299~300.) ● 생산주체의 상상력이 적극적으로 발휘되는 곳은 예술영역이며 예술가들은 도시라는 시각적 놀이공간에 펼쳐진 이미지들을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한다. 예술가들에 의해 도시는 주체가 복원되고 그들 삶의 영역을 중심으로 끌어들여 일상의 눈으로 공간의 이미지를 재생산하게 된다. 1960년대 후반부터 예술의 개념과 형식이 확장되면서 예술은 제도미술의 영역에서 벗어나 실제 도시공간에 침투하고 있다. 예술은 사회적 정치적 활동을 포함하는 행동주의적 방식을 취하며 대중들의 참여와 상호작용을 통해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인식의 변화를 가질 수 있도록 확장해왔다. 도시공간에 개입하여 새로운 저항 공간, 대안공간을 창조하는 행위는 공간의 원래 기능을 되찾는 '전유(appropriation)'의 행위이며 그것은 예술의 상상력을 통한 유희적 실천이자 예술이 제공하는 비일상적이고 특수한 경험일 것이다. (김민지, 「도시공간과 실천적 일상전술의 에술적 실행」, 『현대미술학 논문집 제16권 2호』(현대미술학회, 2012) 참고.) ● 예술은 도시를 상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도시는 과잉성장으로 인한 여러 후유증을 안고 있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이 재빨리 허물어지고 세련되거나 편리하고 기능적인 건축물이 중심을 이루면서 도시는 획일화되었고, 도시구역 특화사업도 전국 지자체에서 서로 유사한 형태로 진행되면서 또 다른 획일화를 낳는 모순이 이 사회에 존재한다. 거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형성된 공간의 의미를 통찰하지 못하고 새로운 도시디자인이라는 구호로 그 자취를 없애버리는 지금의 도시정책을 보면 르페브르식 공간실천론, 공간생산론이 그 대안적 사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 실천과 생산은 공간적 상상력에 의해 발현되며 그러할 때 비로소 공간은 읽혀지기 위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기 위해서 생산되는 것이다. 도시공간을 상상하고 탐구하는 것은 자신의 삶이 놓인 제도와 공간 속의 숨은 의미를 읽는 것이며, 이미지가 상징하는 진실을 캐어내는 작업이다. 고도화된 자본과 권력이 복잡하게 얽힌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그물망 속에서 더욱 스펙터클해진 도시는 이미지를 탐구하는 시각예술가들의 글로벌한 작업공간이 되고 있다. ● 그들은 스스로 사회와 삶의 변화를 자신의 역할로 인지하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상상력으로 도시의 의미는 재 탐색되고 도시의 새로운 이미지들이 재생산된다.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으려는 그들의 진지한 이야기는 일상의 모든 이에게 이 도시공간을 전유하고 전용하게 함으로써 사회 권력의 지배 속에 묻혀있던 개인의 주체성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되고 있다. 보들레르의 시적 감수성과 벤야민의 예리한 통찰력, 구보의 노마디즘이 근대라는 도시 공간의 이야기를 이끌었던 힘이었다면, 동시대 예술은 그곳의 숨은 이야기와 진실들을 전방위적으로 펼쳐내어 이 도시를 흘러넘치게 할 것이다.

구본석_City of light and dark_LED 라이트 박스, 패널에 아크릴채색_83×180cm_2012
구본석_City of Illusio_LED 라이트 박스, 패널에 아크릴채색_84.5×157cm_2013
구본석_City of Illusion(2)_LED 라이트 박스, 패널에 아크릴채색_90×180cm_2013

도시의 환영 / 구본석 ● 대도시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꿈을 꾸는, 혹은 꾸도록 만드는 공간이다. 최첨단의 소재와 양식으로 하루가 다르게 디자인되는 도시풍경 속에서 끊임없는 소비에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상품광고와 유행의 물결은 물신적 환영을 불러일으켜 자본주의의 꿈을 더욱 매력적인 것으로 만든다. 도시의 야경은 그 욕망을 더욱 극대화시켜 소외되거나 낡은 것, 깨끗하지 않은 도시의 군더더기들을 지워버린다.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과 형형색색의 네온광고, 교각을 장식하는 조명, 자동차의 유동하는 불빛 등이 상호교차하면서 밤의 도시는 환상을 연출한다. 구본석 작가는 도시의 야경을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상징하는 기호로 인식하고 LED 라이트박스와 거울을 이용하여 도시의 화려한 야경을 재현한다. 환영적 공간으로서 도시의 야경은 단지 빛의 픽셀이 모인 집합체일 뿐이며 그것은 자본주의적 꿈으로 가득한 공간, 그래서 허상적인 판타스마고리아의 공간임을 깨닫게 한다.

손피오_런던시리즈 - 바이윤 블루스_디지털 프린팅_17×25cm_2007
손피오_가없이 크고 넓고 자유로운 세계_디지털 프린팅_71×47cm_2012
손피오_플럼플럼_디지털 프린팅_50×34cm_2008

사람과 도시 / 손피오 ● 도시는 꿈을 꾸게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도시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일상은 느슨해지고 주변사물에 대한 느린 시선과 긴 호흡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손피오 작가는 도심 속 생활자들과 도심 바깥의 이들의 삶을 공간에 대한 편견 없이 카메라에 담는다. 그는 도시와 그 주변지역을 돌아다니며 흘낏 감상하는 여행자가 아니라, 그 공간을 오래 머문 산책자의 시선으로 돌아보며 드라마틱한 구성이나 연출 없이 실존하는 인간의 모습 그대로를 담아낸다. 그의 카메라에 담긴 현지인들의 모습은 그 곳이 발전된 도시의 한가운데이건, 제3세계의 후미진 지역이건 인간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한다. 지역을 초월하여 일상을 사는 인간들의 표정이 보여주는 유사성은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의 기억 속의 주변인물이거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전보경_homesweethome_형광등_가변설치_2013
전보경_등촌동 648-9번지_비디오_00:06:30_2013

도시의 흔적 / 전보경 ● 근대의 뼈대 위에 수없이 쌓이고 허물어뜨려져 온 현대도시의 풍경은 한 세대 안에서 재빠르게 변화함으로써, 개인의 추억이 담긴 공간의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중년에 이른 도시는 이제 그 성장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속도전이 아님을 안다. 속도를 늦추고 멈춰서서 과거를 돌아보고 복원하고 기록하여 그 의미를 재발견하는 성숙의 단계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상실된 도시의 기록은 개인의 기억들로 복원될 수 있으며, 개인의 불완전한 기억을 보완해주는 기제는 기억 속 공간이나 사물일 것이다. 개인적 흔적을 지니고 있는 공간이나 그곳의 사물들에 의해서 유발되는 '무의식적', '무의지적 기억'(마르셀 푸르스트)을 좇아 전보경 작가는 유년기에 살던 지역에서 지금은 부재한 과거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그녀는 유사한 흔적을 발굴하고 그것을 재해석함으로써 기억 속 공간의 아우라를 이끌어낸다. 그곳에서 영구적인 폐허를 부정하는 자본주의적 공간법칙을 확인하고 이 도시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최중원_대광맨션아파트_잉크젯 프린트_100×188cm_2012
최중원_인왕궁아파트_잉크젯 프린트_100×240cm_2012
최중원_삼풍맨션아파트_잉크젯 프린트_240×352cm_2012

재개발의 파노라마 / 최중원 ● 도시공간은 속도와 경쟁, 유행 및 새로운 것이 추앙 받는 곳이다. 전후에 자연스럽게, 혹은 무질서하게 형성된 거주지역은 도시개발정책에 의해 모던한 공통주택양식인 아파트로 대치되면서 대한민국의 주거건축은 획일화된 모습을 보인다. 60~70년대에 최첨단 주거형태로 추앙 받으며 건설된 낡은 아파트들은 3, 40여년이 지난 지금, 거의 사라지고 없는 기념비들이 되었다. 과거의 아파트들을 대치하는 새로운 아파트들은 기본적으로 유사한 구조이나, 더욱 높게, 더욱 넓게, 더욱 조밀하게 지어지면서 대규모 단지를 형성하고 국적 모를 이름으로 브랜드화되고 있다. 최중원 작가는 곧 사라질 낡은 아파트들을 찾아 카메라에 기록한다. 초기의 아파트들은 소규모 단지이거나 상가등과 결합한 맨션의 형태를 이루는데 살림살이가 노출되고 사람간의 소통이 보이지만,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보다 수직적이고 일상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운 차이점을 보인다. 빠른 속도로 짓고 허물어지는 아파트의 역사는 자발적으로 형성된 사적 공간들을 뒤덮는 재개발시대의 상징이자 파노라마이다.

한성우_cooling tower_캔버스에 유채_193.9×259.1cm_2012
한성우_cooling tower_캔버스에 유채_227.3×181.8cm_2013
한성우_drawing(cooling tower)_종이에 혼합재료_29.7×21cm_2012

소외된 공간의 아우라 / 한성우 ● 도심의 건축물은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지만 그것의 유지를 위해 작동하는 기계들이 놓인 공간은 불안과 공포, 어둠이 자리한 곳이다. 냉각탑이나 냉난방장치, 엘리베이터 장비 등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장비들이 존재하는 곳은 정작 소외의 공간인 것이다. 한성우 작가는 그러한 도시의 하부구조물에 시선을 돌려 스케치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것들이 전해주는 생경한 이질감과 괴리감을 캔버스에 담아내면서 그 순간 자신의 감정을 사물에 빗댄다. 그 감정은 소유할 수 없는 사물이 주는 아우라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벤야민에 의하면 아우라는 "그것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있는 것의 현상이다. 아우라에서는 사물이 우리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 심혜련, 「도시 공간과 흔적 그리고 산책자」, 『도시공간의 이미지와 상상력』(메이데이, 2010), p.147. ● 작가에게 있어 냉각탑과 같은 소외된 공간 속에 의중하게 자리 잡은 기계장치는 자신의 위치 따위에 개의치 않고 쉼 없이 작동하는 유기체, 혹은 서사를 담은 기념비와도 같이 경외감을 일으켜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시경관에서 감추어진 그들은 아우라, 혹은 숭고미를 통해 존재감을 확대시키고 있다. ■ (재)한원미술관

Vol.20131004g | 투영投影 : 도시는 흐른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