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의 시간표 Retelling Tales of the Cherry Blossoms

김인숙展 / KIMINSOOK / 金仁淑 / photography.video   2013_0926 ▶︎ 2013_1020

김인숙_ChaecBo-graphy_디지털 프린트_부식액자_가변크기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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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8:00pm

캐논플랙스 갤러리 CANONPLEX GALLERY 서울 강남구 신사동 664-12번지 B1 Tel .+82.2.2191.8538 www.canon-ci.co.kr

벚나무에 얽힌 다른 이야기들 ●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세 명의 아버지가 당신에게 서로 자신만이 진짜 아버지라고 주장하며, 자신만을 아버지로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젊은 한국인들은 재일교포, 또는 자이니치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듯 하지만, 그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한국의 기성세대가 흔히 생각하는 자이니치의 정체는 아마도 위와 같은 황망한 상황으로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패전 후 하루 아침에 국적을 박탈당한, 제주도를 비롯한 남한 출신과 그 후손들이 대다수인 자이니치는 남한, 북한의 국적 또는 일본으로의 귀화를 선택해야하는 강요를 당했다. 그래서 재일교포에 대해 관심이 있는 한국인들은, 그들이 친한국인지 (민단 출신), 친북인지 (조총련 계열), 또는 일본 국적을 취득한 일본인인지 알고자 하며, 그들의 국적을 이념적 성향과 연결시켜 너무 쉽게 판단해버리는 경향이 짙다. ● 하지만 세월이 흘러 제 3, 4 세대에 이른 자이니치의 일상이란 제 1세대 자이니치가 겪은 헐벗은 삶과,냉전 중의 남북한과 일본의 역사, 이념, 국민국가에 입각한 차원에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그들의 삶과 정체성은 그 누구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단일하며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시 복잡하며 지속적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세대 자이니치 작가 김인숙의 경우 역시 단순하게 그의 정체성이 규정되는 것을 거부한다. 아니, 그의 작업이 재일동포의 그것, 또는 일본인의 그것으로만 정의되는 것에 곤란함을 느낀다.

김인숙_ChaeckBo-graphy_디지털 프린트_부식액자_1965~2013

김인숙이 대학생 시절인 2001년부터 12년간 지금까지 지속해오고 있는, 그러니까 그의 작업의 뿌리를 이루는 작업은 바로 「sweet hours」이다. 작업의 배경인 오사카에 소재한 기다오사까조선초중급학교(정식명칭)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북한의 지원을 받는, 그러므로 일본사회에서 질타와 경계심의 대상이 되는 '외부인'의 학교일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남한 출신 한국인의 후손들이다. 김인숙의 경우 어머니는 일본인이며, 그를 포함한 자이니치 3세는 우리말을 배우지만 일본어를 모어처럼 구사한다. 즉, 조선인학교 내부에는 남한, 북한, 그리고 일본 모두가 공존하는 것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김인숙은 '우리학교'만이 그의 진정한 모국이라고 여긴다. 바꾸어 말해서, 서두에서 언급한 상황과 같은, 자이니치에게 있어 하나의 모국이나 국적을 선택해야한다는 강요된 정체성은 부조리와 다름아니다. ● 이러한 연유로,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교실 앞 가운데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이 걸려있을지언정, 김인숙은 아이들의 밝은 미소 품은 모습들을 재현하는데 주력한다. 조선인학교의 어린이들이 이념과 인종주의의 희생양이 아니라, 세상을 신기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친구들과 장난치며 평범한 학교를 다니는 모습으로 말이다. 때로는 아픔과 괴로움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의 행복한 세상이 조선인학교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바인데, 그것은 김인숙의 사진을 통해서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

김인숙_Inter-play_디지털 프린트_설치

한편 생각해보면, 우리는 북한의 엄선된 어린이들의 작위적인 미소나, 무한경쟁 사회에 도입해서 친구를 경쟁상대로 여기며 일찍부터 지쳐버린 한국 어린이들의 모습을 함께 고려해보면, 오히려 「sweet hours」속의 자이니치 어린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순수한 우리들 어릴 적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는 소녀들의 모습은, 단순히 국수적이거나 '촌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마력과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소박하게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굳건한 정신의 힘과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 김인숙의 작업은, 일상에서 늘 동일한 듯 하지만 자세히 여겨보면 발견할 수 있는 새로움과 특별함에 대한 것이다. 작가가 말하듯이, 늘 존재하는 벚나무라 할지라도 사실은 해마다 새롭게 피는 벚꽃들이다. 물론 벚꽃들은 그가 유대하는 조선인학교와서울신창초교의 어린 학생들을 은유하는 것이리라. 또 작가가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벚나무를 일본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고, 원래 한국에도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이다. 벚나무는 이렇게 역사적인 모티브이기도 하면서 탈역사적이기도 하다.

김인숙_Interchanging_단채널 영상_119개 고무신, 224개 학습지

김인숙 자신이 강조하듯이, 그에게 사진이란 '만남'의 방식이다. 그는 사진에 내제된 폭력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소위 '치고 빠지는' 식의 무책임하며 선정적인 도큐멘타리를 지양한다. 그는 타자와의 연대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수반함으로써 이미지를 만든다. 「sweet hours」을 12년간 지속해오면서 김인숙은 기다오사까조선초중급학교에서 수년간 학생들과 친숙한 시간을 보내면서 편한 일상의 순간들을 기록해왔다. 학교라는 보편적인 공간을 배경으로한 이 전시의 나머지 작업들을 어우르는 「소년들이 소년들에게」는 서울시 창동에 위치한 서울신창초교에서 5주간의 워크숍을 진행한 뒤 얻은 결과물이다. 그는 그 계기를 통해 현재까지 아이들과 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 「책보그래피」 연작에서 작가가 연출하여 아이들이 착용한 책보와 고무신은 애초엔 어색했을 듯 하나 멋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인터플레이」에서 교복을 입고 등장하는 학부모들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작업에 참여하는 과정을 상당히 흥미로워하며 즐기는 듯 하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서울신창초교의 워크숍을 통하여 어린 학생들에게 학교와 마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며, 학부모 그리고 할머니 세대들과의 교류와 소통이라는 중요한 과정을 수반한다. 여기서 책보와 고무신 등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성세대와 어린이 세대의 차이보다는 그 사이의 연결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으로, 그리고 일본의 조선인학교에서 볼 수 있는 치마저고리와의 간극을 줄이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인숙_sweethours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

그러나 국가와 이념을 극복하고 보편적인 것을 고집하는 김인숙의 작업을 순진한 발상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그가 벚나무와 같은 보편적인 모티브를 취하는 이유는 바로 본인 자신의 개인사가 일제의 제국주의와 냉전구도라는 거대서사의 소용돌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며, 그것이 미미한 개인에게 미치는 형언할 수 없는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함이라고 본다. 학교, 벚나무, 어린이 등과 같은 모티브들과 그가 추구하는 메세지가 보편적인 것일지라도,그것은 그가 연대하는 구체적인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즉, 그의 작업은 보편적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간편한 추상적 메세지에 머무는 위험에 빠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은 단순히 이미지로만 전시장에서 관객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실천해온 일련의 형식적 실험들을 통해 관객과의 관계를 도모한다. 그것은 작가가 촬영한 사진과 창동 주민들로부터 수집한 사진을 혼용하는 방식, 그리고 작가의최근 작업을 옛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부식한 액자를 사용하여 이미지의 근원과 우리의 기억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방식, 산더미와 같은 책걸상과 학교에서 녹음한 일상의 소리는 축적되지만 잊혀지는, 그러므로 다시 환기되고 도래할 세대에게 '선물'로 주어져야 할 공동의 기억으로서 제시하는 방식 등으로 드러난다. 즉, 김인숙의 작업은 도큐멘타리를 근간으로 하되, 아카이브, 편집, 사운드, 설치, 등을 병행하는 유연한,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재치있으면서도 숙고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김인숙_Stackinghours_단채널 영상_00:16:00 / 김인숙_sweethours_사운드_00:11:00_2011~13

서울신창초교를 배경으로 한 작업들을 어우르는 「소년들이 소년들에게」의 영어제목은 「Continuous Way」인데, 그것은 비록 한국학생들의 모습을 담았지만 사실 「sweet hours」과도 연속선상에 있다. 바로 아이들의 진정한 어린이다운 모습이 자이니치나 한국아이들이나 대동소이하다는 점이 그러하다. 그리고 조선인학교의 외부에서 이야기하는 고립성에도 불구하고 생동하는 내부의 사회성과 마찬가지로, 신창초교에서 학부모세대와 아이들을 연결시키거나, 혈연과 관계없는 지역 할머니들과 아이들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학교와 지역 공동체에 대해 배우며 세대간의 활성화, 즉 '마을 만들기'를 일으킨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또 한편, 자이니치 3, 4 세대들의 일본국적 취득과 주류사회로의 동화로 인하여 조선인학교의 학생 수가 급감하는 상황이나, 교육열 때문인지 서울신창초교의 학생 수도 급감하는 상황도 유사하다. 이제 더 이상"달콤"하지만은 아닌 것이다.

김인숙_sweethours and Stackinghours_학교 책상과 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인숙의 작업은 긍정적이며 따뜻한 힘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도, 김인숙은 십 여년전에 한국에 올 때 꿈꾸었던 '님'의 모습을 찾지 못한 좌절감을 확연하게 극복하고 있다. 남북한과 일본을 모두 모국으로 여겨온 작가로서는, '님'을 찾아서 모국인 한반도에 와서 정작 대면한 분열된 모습의 '님'을 보며, 아니 그 분열 속에서 '님'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가 심히 절망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완전하더라도 한국도, 북한도, 연변도, 일본 속의 자이니치 사회도, 모두 님의 모습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그는 민족의 근원, 또는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적 염원이라는 거창한 화두에 의존하지 않고도 님의 모습을 주변의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우리학교의 어린 학생들과, 창동의 주민들, 그리고 어린 학생들과 웃으며 작업해 낸 이미지들은, 그의 마음속에서 그리던 님을 그가 속한 공동체 속에서 가꾸어낸 수 많은 관계 맺기와 교류 속에서 실천하는 구체적인 노력인 것이다. (우리학교에서 배우는 언어를 한국어라기보다는 '우리말'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한 이유는 한국어, 평양에서 쓰이는 국어, 그리고 일본어를 직역해서 쓰는 언어가 혼용되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2013. 09 ■ 문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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