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풍자, 황소에 빗댄 아버지의 초상

박민섭展 / PARKMINSUB / 朴珉燮 / sculpture   2013_1009 ▶︎ 2013_1015

박민섭_버티기_한옥 고재(육송), 철_140×340×15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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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1009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해학과 풍자, 황소에 빗댄 아버지의 초상 ● 박민섭의 조각은 지난한 삶의 현장이며 일상을 살아내는 지금여기의 보통사람들의 초상을 그려 보인다. 그 실체며 처지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노숙자 문제나 청년실업 문제와 같은 당면한 사회적 문제의식들을 전투적이기보다는 살갑게 때론 상징적이면서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 작가의 경우에 이런 사실주의와 현실주의가 마치 종합을 이루듯 한 몸으로 실현되고 있어서 보기에 편안하고 무리가 없고 자연스럽다. 그러면서 삶의 현장이며 일상에서 채집된 사람 사는 모습을 사회적인 문제의식의 지평으로 확장시키고 존재론적인 자의식의 층위로까지 심화시킨다.

박민섭_숙 명_한옥 고재(육송), F.R.P_230×50×25cm_2013

이처럼 사실주의와 현실주의 미학은 작가의 조각을 지지하는 방법론이며 인문학적 배경이 되고 있다. 그 배경에 힘입어 작가는 근작에서도 역시 보통사람들의 다양한 일상의 면면들을 형상화하는데, 이번에는 그저 보통사람들 대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초상을 주제화해 문제의식의 폭을 구체화하고 한정했다.

박민섭_또 하루_한옥 고재, F.R.P_150×150×25cm_2013

작가의 조각은 꿈과 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아버지들의 초상을 그려 보인다. 그런데 뭔가 예사롭지가 않다. 아버지는 온데간데없고 황소가 아버지를 대신한다. 아버지를 황소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왜 황소일까. 태어나면서부터 죽어라고 일만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꼴이 꼭 아버지의 삶 같다. 소는 말하자면 의인화된 소란 점에서 일종의 우화의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소의 눈에 비친 인간일반의 존재론적 조건을 풀어낸다는 점에서 풍자와 해학의 경우로 볼 수도 있겠다.

박민섭_이랴!_한옥 고재, F.R.P_170×23×39cm_2013

풍자와 해학은 알다시피 그 속에 비판의 칼날을 숨기고 있는 웃음으로 나타나고, 이때의 비수가 한이다. 한을 웃음으로 받아넘긴, 한을 웃음으로 껴안고 포용한, 그리고 종래에는 한 자체를 넘어선 차원이며 경지라고나 할까. 이런 풍자와 해학을 전달하기에 인간은 아무래도 무겁고 버겁다.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동물은 적어도 인간에 비해 순진무구하고, 더욱이 인간의 흉내를 내는 동물이라면 그 자체가 이미 웃음을 자아내기 마련이다. 아마도 작가는 바로 그런 점에 착안했을 것이고, 최소한 그러한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조각은 사실주의와 현실주의 미학을 넘어 풍자와 해학의 경지로까지 확장되고 심화된다. 그렇게 인간을 닮은 소들의 정경 속에 아버지들의 일상이 녹아있고 보통사람들의 애환이 스며든다.

박민섭_옥상에서..._한옥 고재(육송), F.R.P_280×60×60cm_2013

작가는 근작에서 고재 즉 한옥을 허물 때 나온 목재를 도입하는데, 황소로 표상되는 아버지의 일상을 지지하는 배경화면 내지 밑그림의 역할을 도맡아 일종의 풍경조각으로 범주화할 만한 지평을 열어 보인다. 이를테면 길이며 다람쥐 쳇바퀴 그리고 버젓이 창문까지 나있는 키 높은 건물이 고재로 대체된다. 그리고 보다 결정적으론 아예 고재만으로 황소를 만든다. 버티기라는 제목처럼 뒷다리에 힘을 집중한 채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 동세며 정황이 역력하고 생생하다. 그러나 이 역력하고 생생한 느낌이며 팽팽한 긴장감은 놀랍게도 사실적이고 세부적인 묘사를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다만 고재 그대로의 원형을 간직하면서 원형 그대로를 이용해 짜 맞추는 과정을 통해서 얻는다. 빚어 만들고 깎아 만든 것이 아니라 짜 맞춘 것이며, 인공의 손길 대신 원형 그대로를 살리고 이용한 것이다. 이처럼 다만 짜 맞춘 형태가 생생한 현실감을 자아내는 것. 평소 사실주의 조각에서 체득된 해부학에 대한 속 깊은 이해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묘사를 통한 사실주의 이후에 표현을 통해서도 사실에 이를 수 있음을 예시해주고 있고, 이로써 사실주의 조각의 경계를 확장하고 심화시킨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박민섭_맞짱_한옥 고재, 철_145×200×5cm_2013

더불어 이렇듯 고재로 만든 황소에는 꽤나 의미심장한 의미마저 탑재돼 있다. 알다시피 고재는 집을 허물 때 나온 목재다. 작가는 그 목재를 이용해 황소를 만든다. 그런데 그 황소는 얼기설기 짜 맞춘 구조가 황소이면서 또 다른 집 같다. 아마도 묘사가 아닌 구조적인 접근을 꾀한 결과일 것이다. 바로 이렇듯 황소이면서 집이기도 한 형태에 방점이 찍힌다. 작가는 말하자면 집을 허물어 또 다른 집을 지었다. 집을 허물어 집을 지었고, 황소를 지었고, 아버지를 지었다. 무슨 말인가. 아버지는 집이고, 집을 통째로 지지하는 대들보다. 집은 몸이고, 정체성의 산실이고, 존재의 메타포다. 몸에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나 몸이 곧 성전(집)이라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일 것이다. 고재로 만든 황소에는 바로 이런 존재의 메타포가 깃들여 있었다. ■ 고충환

Vol.20131009e | 박민섭展 / PARKMINSUB / 朴珉燮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