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空間(이공간) -현실과 다른 공간

솔채展 / SOLCHAE / painting   2013_1008 ▶︎ 2013_1021

솔채_Hid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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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채 블로그_blog.naver.com/simpi0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스칼라티움 아트 스페이스 SCALATIUM ART SPACE 서울 강남구 역삼동 828-10번지 Tel. +82.2.501.6016 www.scalatium.com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기억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기억의 매개체인 사물을 관조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영혼에 대한 기억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것은 비록 혼란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다가올 미래에 대한 소망을 저버리지 않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 소망이 실현되는 곳으로 통한 계단은 이미 놓여있고 문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잠시 쉬어갈 의자도 있다. 이처럼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을 현실과 다른 공간 안에서 재구성해 가는 과정에서 나는 기억 너머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솔채_좁은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12
솔채_Where Am 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1×90.9cm_2011
솔채_가장안락한시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2×116.8cm_2013

이 작품의 배경은 아주 어린 시절 떠올리고 싶지 않은, 떠올리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고통스러운 기억의 잔재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후 오랜 시간 병원생활을 하게 되었다. 병원생활은 너무도 외로웠고, 평생을 휠체어나 목발에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감당하기에 7살 여자아이는 너무도 어렸다. 몇 번의 큰 수술 후, 다행히도 경과가 좋았기에 붕대를 풀며 느꼈던 살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이나, 다리에 남은 지워지지 않은 수술 상처는 수술대 위와 병실을 오가며 보았던 병원 천장이나 희고 깔끔한 벽들 너머로 퇴원과 동시에 잊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퇴원의 기쁨도 잠시, 다친 다리 때문에 자연히 체육시간이나 기타 활동시간을 혼자 의자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재미있게 뛰어 노는 아이들을 쳐다보며 그때 의자 위에서 느꼈던 소외와 상처는 평생 내가 안고 가야 할 보이는 상처와는 또 다른 '불편함' 이었다. 이러한 나의 감정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의자에 투영하여 그림에 표현한 것이다. 때문에 나의 그림 속 의자는 팔걸이나 쿠션이 없어 불편해 보이기까지 하는 딱딱한 의자로 표현 되어 진다.

솔채_길을잃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16.8cm_2011
솔채_Present-P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65.1cm_2011
솔채_Who Am 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pie×100_2013

지금까지 살펴본 과거 상처에 대한 나의 기억은 토니 모리슨(Tony Morrison, b.1931)의 소설 비러브드(Beloved)'에 등장하는 '재기억(Rememory)'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토니 모리슨은 이 소설에서 사전적으로 존재하지 않은 '재기억(Rememory)'라는 낯선 단어를 반복적으로 등장시켜 이 단어를 '기억을 떠올리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기억(Memory)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집요하고, 훨씬 더 끈질긴 과거.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결코 돌아가서는 안 될 과거의 뼈아픈 기억들을 다시 반추하고 또 반추함으로써 근원까지 치유하리라는 결연한 의지. 그것이 바로 '재기억(Rememory)'의 의미이다." 나는 자아를 상징하는 의자를 작품 안에 등장시켜, 이미 아주 오랜 전 과거가 되어버린 기억이지만 다시 떠올리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지금 겪고 있는 것처럼 고통스러워 애써 묻어두었던 그 상처를 반추한다. 과거의 상처를 무심한 듯 작품 안에 던져주는 이 과정을 통해 나의 트라우마를 '재기억(Rememory)'으로 극복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직접적인 표현방법이 아닌 모호하며 절제된 화면 구성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을 매개로 내 의도와는 또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한다. 자아로 대변되는 의자와 이상향을 상징하는 문을 이용하여 또 다른 공간에 대해 암시하거나 연속성에 대해 표현하기도 하고, 때론 영화 속 가상현실이 주 모티브가 되어 표현되어지기도 한다. 화면 속의 문들은 항상 열려있지만 그 문은 통과 자체가 어려워 보일 정도로 작거나 너무 많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게 하는 이러한 구성을 통해 나가거나 들어와야 할 소통의 사물인 문이 화면 안에서 단절이라는 역설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진다. ■ 솔채

Vol.20131012g | 솔채展 / SOLCHAE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