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날들

이혜인展 / LEEHYEIN / 李惠忍 / painting.installation.video   2013_1015 ▶︎ 2014_0209 / 월요일 휴관

이혜인_완벽한 날들展_대구미술관 프로젝트룸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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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1125_월요일_05:00pm

Y artist project 2展

아티스트 토크 2013_1015_화요일 2013_1226_목요일 2013_1228_토요일 교육 프로그램 「마음으로 보는 풍경」 2013_1026 ▶︎ 2013_1116 초중학생 대상 전시연계감상프로그램(총6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대구미술관 DAEGUARTMUSEUM 대구시 수성구 삼덕동 374번지 프로젝트룸 Tel. +82.53.790.3000 www.daeguartmuseum.org

대구미술관 Y artist project 2012에 두 번째로 선정된 작가인 이혜인(1981-)의 작업은 '야외 사생'이라는 회화의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면서 특정한 장소의 풍경과 그 장소에 머물렀던 작가의 경험적 시간이 결합된 새로운 회화, 설치 작업들이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과 그림에 대한 질문 자체를 내용으로 하면서 장르와 영역의 경계를 초월한 현대미술의 특성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빈 주소_경의선 능곡역 앞 들녘', '베를린 여름밤 자정', '두 번째 삶_베를린의 작은 정원 구역', '수상한 야영객' 등 네 섹션으로 나뉘어 구성되었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환경에 노출되는 야외에서 그려진 작은 사이즈의 회화와 설치 등 70여점 이상의 다양한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 온전한 이방인으로서 세상을 관찰하는 이혜인의 태도는 안과 밖, 정주와 이동, 사색과 순간의 경계 등을 오가며 대립적 개념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늘 함께 존재함을 말하고 있다. ■ * 대구미술관 Y artist project는 지역을 포함한 국내외 역량 있는 젊은 작가를 발굴,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이혜인_기차소리 The Roar of Train_나무 패널에 유채_35.3×27cm_2010
이혜인_베를린 여름밤 자정 The Summer Midnight in Berlin_캔버스에 유채_24×30cm_2012

김주원_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주요 작업들은 베타니엔레지던스(베를린) 입주 전의 그림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작품 사이즈, 작업 과정 등 구체적인 작업 방식도 상당히 달라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는가? 이혜인_현재 집중하고 있는 작업들은 야외사생이다. 즉 작업실을 벗어나 밖을 떠돌며 그곳의 풍경이나 인물 등을 그린다. 이런 방식을 처음 시작한 것은 아니고 2010년 '빈주소- 경의선 능곡역 앞 들녘' 개인전 때부터 시작된 방식이었다. 이전의 그림들은 잃어버린 장소와 시간에 대한 기억, 감각, 상상을 동원하여 캔버스라는 무의 공간에 펼쳐낸 것이라는 점에서 시점이 과거를 향해 있었다. 그런 자신에게 새로운 경험적 자극이 필요했고, 과거를 향해있는 자신과 현재의 빈 공간 사이의 간극을 경험하는 일이 절실했다. 그 때 유년시절의 배경이 되었던 들판으로 가서 작업을 하게 되었고 당시의 체험이 가슴깊이 남아있었다. 그 이후에 다시 스튜디오 작업으로 돌아왔다가 2012년 베를린이라는 공간을 만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바깥을 떠도는 일이 시작되었다. ● 작업 방식에 대해 얘기하자면, 내 경험상 작업실 내의 회화작업은 매우 관념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작업을 위해 자신이 언제든 환경을 제어할 수 있고, 캔버스, 종이, 물감 등은 물질이면서 동시에 추상적이다. 그러나 야외에 나가면 많은 부분, 사실 대부분이 통제가 안 된다. 그림의 크기도 아주 작아지게 되고, 들고 나갈 수 있는 도구도 한계가 있다. 그릴 수 있는 시간, 장소, 날씨, 주변 동물, 식물, 곤충 등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도구나 물감이 얼마나 물질적 특수성을 갖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 모든 다른 것들의 의지가 내가 그림을 통제하고자 하는 개념적 의지를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이혜인_두번째 삶 The Second Life-Wagenplatz. Snowy. 23.12.12. 14:00~15:30_ 캔버스에 유채_24×30cm_2012
이혜인_두번째 삶 The Second Life_ Mergenthalerring Kleingardenhausanlage. Cloudy. 24.12.12. 14:00~15:30_캔버스에 유채_25×25cm_2012

_그리는 방식이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리기 방식인 '야외사생' 개념을 고수하고 있다. 작가, 특히 화가 이혜인에게 '야외사생'은 어떤 의미인가? _처음부터 야외사생의 개념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를 화가의 위치에 놓고 생각하지 않는다. 2010년 '빈주소 프로젝트'를 했을 때도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들판으로 간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장소를 다시한번 체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집을 짓고, '미술계'라는 간판을 세우고, 알루미늄 별을 만들어 굴리고 하며 즐겁게 놀았다. 그러고 나서 그리고 싶은 곳에서 작은 그림들을 그려나갔다. 그 때 느꼈던 것은 과거에 느꼈던 장소와 많은 간극이 있지만 여전히 나는 그 장소에 있고, 내가 눈앞에 '존재'하는 저것을 마주하고, 그것을 그리고 있다는 위안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의 엄청난 몰입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알다시피 사생은 전통적인 그림의 방식이고, 어쩌면 누구나 어린 시절 한번 쯤 겪어보는 그림에 대한 경험이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런 이유때문인지 현대미술에서는 변방의 장르에 처해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회화는 고도의 기술을 연마한 장인들이 더 이상 타인의 사주를 받지 않는 역할로 전이되어 현대미술에서 자리 잡은 것인지도 모른다. 주문을 받지 않지만 시장에서 선택되어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회화의 범위를 협소하게 한다. _'야외사생'에 얽힌 대표적인 에피소드를 말해줄 수 있나? _거의 매일이 에피소드이다. 우리가 내일의 일을 모르듯이 바깥에 나가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계는 돌아간다. 작년에 베를린 외곽지역의 정원들을 돌아다닐 때 거의 매일 그림을 그리던 장소에서 쫓겨나거나 그러한 불안감을 안고 다녔다. 한 번은 길을 잘못 들어 바겐플라츠(Wagenplatz)라는 이동식 주택을 만들어 모여 사는 공동체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 그림을 그리러 두 번째로 갔을 때 아랍계의 한 소년에게 성적 모욕을 당한 적이 있었다. 다른 공동체의 일원에게 이 사실을 말했고, 그녀가 내부의 회의를 통해서 내게 사과하고, 다시 그 소년이 공동체에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했다고 알려주었다. 내가 다니는 곳들이 도시의 중심을 벗어난 곳들이어서 그런지 사회적으로 변방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일들이 많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바로 작업실 근처에 늘 지나치기만 했던 곧 무너질 듯한 폐가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그림을 그리다보니 그곳에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고, 오히려 끈끈한 공동체로 묶여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 사회의 단면들을 보고 있으면 눈앞의 그림에 대한 시각적 강박을 덜 느끼게 된다. 시각적 결과물로서 보다는 그 자리에 나를 머물게 하는 하나의 계기로서의 그림의 역할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_이러한 방식은 언뜻 보면 '회화'라는 미술의 방식, 즉 미술매체를 비판하는 것인가? 그것이 상품으로든 예술 자체로든 물질화 될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미술매체의 탈물질화 시도 같은 것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_글쎄.. 자본주의 세계에서 탈물질화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돈으로 어디까지 소비할 수 있을까? 개념미술도 우리는 사고 팔 수 있다. 예술의 상품화에 더 이상 매체적 특성이 큰 관련이 없다. 오히려 희귀한 컬렉션이 필요한 컬렉터에게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러한 현상들을 비판하기 위해 작업을 하지 않는다. 단지 이전보다 미술을 둘러싼 종합적인 환경들을 인지해가는 과정에서 회화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들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그러한 비판을 위한 것이었다면 나는 그림을 그만두어야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매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혜인_28도 어둠의 문제 For the 28 empty degrees of angle_2채널 비디오_00:20:23_2013

_'야외사생'의 방식은 이혜인에게 새로운 대상을 보게 하는 것 같다. 예컨대 어둠 속에서 그림을 그린 다든지, 눈보라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든지 등등의 그 때 그 장소에 특별히 노출된 작업 과정은 결과물인 작품들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가령, 검은 색 일색의 그림이나 눈에 맞아 물감 표면이 번진 그림, 캔버스 뒷면에 그린 그림 등은 일반적인 화가들의 '잘 그린 그림'은 분명 아니다. _이전부터 '잘 그린다'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고, 왜 잘 그려야 되는지도 모르겠다. 잘 한다는 것은 어떤 성공적 기준이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기술을 연마하는 장인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그런 얘기도 여러 번 들었다. 학생 때는 일 년에 그림을 백 개를 그려야 한다느니, 한 가지 스타일의 작업을 최소 몇 년 이상해야 한다는 등. 나는 이미지 생산자가 아니다. _결국 작가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그리는' 것인가? 눈앞의 풍경인가? 아님 그 풍경과 그 곳에서의 시간을 보는 것인가? 사실 이혜인의 (야외 사생)작업에서 풍경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장소'가 문제일 것 같은데… 그렇다면 '자신'이 보낸 시간과 장소의 결합,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보는 것 아닌가? 이는 이전의 작업들과 연장선상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_ 외부에서 그림을 그릴 때 그 장소를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어디든 갈 수 있고, 아주 멀리 가볼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재 하나의 지역을 매일 출근하듯이 반복적으로 장기간 방문하는 방식을 갖게 되었다. 여러 번 가게 되는 것은 그 장소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이끌리기 때문이다. 베를린에서 다녔던 남동부 정원지역 또한 처음 방문 이후 겨울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갈 수 있을 만큼 나를 이끄는 어떤 것이 있었다. 돌아보니 그것이 한국의 장소와도 비슷한 요소를 갖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끌리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에는 분명 알 수 없는 나의 일부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실재 그 장소는 거의 무의미하다시피 한 풀만 듬성듬성 나있거나, 보이지도 않는 밤의 강물이거나,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기찻길 옆 등 특정 대상이 모호한 풍경들이다. 그런데 오로지 그 시각 내 발걸음이 멈춘 순간에 스쳐가는 장막에서 여러 겹의 내 눈 뒤쪽의 공간들과 만나는 지점으로 탈바꿈한다. 이 때에는 시간의 속도도 다르게 느껴진다. 상대적 시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실재로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경험을 많이 하고, 이것이 어릴 때 좋아하는 장소에서 놀이를 할 때의 경험과 상통하는 것 같다. _베를린에서의 귀국 후 작업의 주요 장소는 어디인가? 동네 이름, 동네의 특정한 어디 등등. 그곳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 _한국으로 돌아와서 베를린에서의 작업방식을 계속 갖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은 낯선 장소나 혹은 긴 여행의 형태 등 여러 가지를 고안해봤지만 무언가 스스로에게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작업실 근처의 2010년에 돌아다녔던 들판을 중심으로 한 고양시 토당동 일대의 지역들을 발길 닿는 대로 다녔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던 들판에서 나와 시장이나 동네 골목, 역 근처, 교회 등 생활의 범위 내로 들어간 것 같다. 여전히 내가 자라온 장소라는 의미는 변함없지만 지금은 그것에 별로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약간은 이상한 행위- 시장에서, 들판에서 그림을 그리고, 모텔 옆이나 다리 밑에 텐트를 치고, 반짝이는 공을 굴리고 다니는- 를 통해서 새로운 관계맺음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혜인_경찰-빛 Police's Light_캔버스에 유채_18×24cm_2013

_설치, 조각 작업도 병행하고 있는데, 이들은 회화의 연장선상에 있는가? 아님 독립적인가? _종이를 이용한 작업은 회화를 입체화해보려는 시도였다. 평면의 종이를 찢어 즉흥적으로 이어 붙여 모두가 연결되어 마치 옷과 같다. 텐트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때 젖지 않기 위해 고안한 것이었다. 그림이든 설치든 모두가 하나의 프로젝트로 수렴하는 것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_내가 생각하기에 이번 전시의 제목 '완벽한 날들'은 시간과 장소의 적극적인 결합에서 가능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작가가 생각하는 '완벽한 날들'의 의미는 무엇인가? _'완벽한 날들'은 시인 메리 올리버(Mary Oliver)의 산문집 『The long life』의 한국어판 제목이었다. 책의 본문과 큰 연관성은 없지만 자연과 매 순간에 대한 섬세한 묘사에 대해 공감했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며 다양한 세계의 모습들을 만나고, 때론 신비로운 우연 등을 경험하기도 하며 그 순간들, 시간들을 그림에 담아내고- 그것이 잘 될 때도, 안 될 때도 물론 있다.- 마감하는 하루들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고 느껴졌다. 완벽한 날들, 비어있는 그림의 줄임말.. 일까? _마지막으로, 이번 개인 전시 『벽한 날들』이 작가 자신의 앞으로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끼치도록 할 생각인가? _이번 전시는 앞으로의 작업에 중요한 자산으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 작은 그림들이지만 3년에 걸쳐 그린 그림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나에게도 쉽지 않는 기회다. 개인적으로는 전시라는 것 자체에 대한 고민도 많이 안겨준 전시이다. 계속해서 지금의 작업방식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한다. ■ * 대화 : 김주원(큐레이터) & 이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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