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emed Happening

최정주展 / CHOIJUNGJOO / 崔正周 / painting   2013_1017 ▶︎ 2013_1026

최정주_schemed happening-kiss13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3

초대일시 / 2013_1019_토요일_06:00pm

후원 / (주)신영커뮤니케이션_(주)비젼 크리에티브

관람시간 / 11:00am~08:00pm

갤러리 팔레 드 서울 gallery palais de seoul 서울 종로구 통의동 6번지 Tel. +82.2.730.7707 www.palaisdeseoul.net blog.naver.com/palaisdes

키스! 욕망의 종소리 ● 인간의 욕망은 용광로와 같은 에너지의 집중이다. 그것은 잘 활용하면 좋은 쇠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폭발한 화산에서 쏟아져 나오는 용암과 같이 속수무책으로 모든 것을 녹여버린다. 욕망은 다스려지지 않았을 때 우리의 삶에 집착, 아집, 편견과 고집으로 드러난다. 이는 자신의 처지와 능력에서 벗어난 무엇인가를 지나치게 원할 때 생겨나는 욕망의 또 다른 이름들이다. 이러한 욕망들은 우리의 삶을 무겁게 하며 또한, 제대로 세계를 바라볼 수 없도록 우리의 시야를 가려버린다. 가려진 시야와 그 무게에 지친 삶들은 더 이상 다른 세계와의 소통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든다. 최정주의 키스는 인간의 지나친 욕망에서 벗어나 인간 최초의 본성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작가의 메시지다. 집착과 아집, 때로는 편견에 사로잡힌 우리의 욕망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면 세계는 너무나 사랑스러워 진다. 그리고 그 세계를 더욱 더 열정적으로 끌어 안고 싶어진다. 다시 말해 최정주 작가의 키스는 인간 본성 자체로 돌아가 다른 세계와의 최초의 소통인 동시에 그 세계와의 감정적 충돌이다. ● 작가는 제스처에 집중이 더 잘 되고 속도감이 느껴질 수 있는 이유로 많은 부분 모노크롬으로 자신의 주제인 키스를 표현해 왔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키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언젠가 영화나 TV를 통해 보았거나 보았을 법한 장면의 키스들이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같이 이미 누군가에 의해 잘 짜여져 익숙해진 구성들을 보여주고자한 작가의 또 다른 무대장치다. 작가는 이러한 무대장치를 통해 인간 본성을 왜곡시키고 삶의 질곡을 유발하는 사회적 모순을 표현하고자 했다. 삶의 진정한 가치인 행복을 위해 우리는 욕망의 에너지를 어떤 방법으로 정제하고 순화시켜 발전과 변화의 진정한 삶의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을까. 최정주는 우리에게 욕망의 가장 단순한 행위와 그것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욕망 에너지가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에 먼저 주목해 주길 원한다. 그 에너지의 흐름을 아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자신의 욕망을 가장 최소단위로 충족시키고 집착과 같이 지나침에서 벗어날 수 있는 훌륭한 지표가 될 것이다. 최소단위의 충족. 따라서 작가는 이미 구성되어 버린 세상의 모순 속에서 가장 인간 본연의 삶을 위해 최소단위의 충족을 통한 세상과의 접촉, 즉 키스를 택했는지 모를일이다.

최정주_schemed happening-kiss19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3
최정주_schemed happening-kiss7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3
최정주_schemed happening-kiss18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3

또한, 작가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잘 짜여진 구성을 통해 그것이 어떤 장면을 상상하게 만들고 자신에게 축적된 경험들을 떠올리며 그 구성 속에 자신을 투사하는 일종의 감각적인 현실을 만든다. 다시 말해 작가는 실재의 현실이 아니라 감각을 통한 일루전, 즉 상상속에 실재하는 감각적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주인공들과 관객들의 위치를 전이시킨다.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욕망이 어떠한 흐름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된다. 욕망은 그 흐름을 알지 못할 때 우리에게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와 삶의 무게를 더하게 된다. 그러나 그 흐름을 알고 있을 때 사정은 좀 달라진다. 그 욕망의 흔들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된다. 신이 자신의 발에 너무 잘 맞을 때는 우리는 신을 신고 있음을 잊게 된다. 또한, 허리띠가 허리에 너무나 잘 맞게 되면 마찬가지로 그것을 잊게된다. 신이 불편하고 허리띠가 불편할 때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알게 된다. 욕망 역시 그 흐름을 잘 알고 최소한의 충족을 지속시켜 나간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을 기쁨과 행복으로 이끄는 순방향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집착하지 않는다면 욕망은 발에 꼭 맞는 신처럼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무겁지 않은 배가 자연스럽게 물살을 헤쳐나가듯이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의 삶을 인생이라는 강물을 흘러가는 배에 비유한다면, 탐욕이라는 무거운 짐을 너무 많이 실은 배는 그 움직임이 더딜 것이고 덜 실은 배는 가볍게 흘러가게 될 것이다. ● 키스는 우리의 감각을 집중시키는 최고의 감각적 행위다. 이렇게 집중된 감각은 극적인 감정의 황홀경을 만든다. 이러한 황홀경은 마침내 우리 영혼을 울리고 상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이끌게 된다. 그것이 이념적 대립간이든 단순한 사랑의 행위든 아니면 신뢰와 존경의 표시든 키스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가장 감각적이면서 영혼의 울림을 동반하여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소통의 행위다. 요컨대 작가는 키스를 통해 우리 욕망의 흐름을 파악하여 탐욕이라고 하는 삶의 무게를 줄이고 세계 혹은 타자와 진정으로 소통하기를 희망한다. 또한, 작가는 세상을 잘 짜여지고 구성된 무대처럼 그 자체의 원리와 규칙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연은 단 한순간도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 이 변화야말로 자연이 지니고 있는 변하지 않는 법칙이다. 모든 것들이 자기의 위치에서 변화하기 때문에 자연은 늘 같은 모습으로 비춰진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이치를 따라 인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변화되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 변화에 기뻐할 수 있다면 삶의 기쁨 못지 않게 죽음 역시 기쁘게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은 자연의 이치를 통해서 본다면 같은 흐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연의 이치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욕망의 지나침을 다 버리고 난 그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키스는 욕망 그 자체로 보여진다. 그러나 키스는 소통의 수단이면서 또한, 영혼의 울림을 통한 욕망의 정제와 순화의 행위이기도 하다.

최정주_schemed happening-kiss2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13
최정주_schemed happening-kiss16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3
최정주_schemed happening-kiss20_캔버스에 유채_46×53cm_2013

최정주의 키스는 이렇게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그래서 진정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욕망을 순화하고 정제할 수 있는 가장 감각적 행위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작가는 순수한 감각에서 비롯된 인간 본연의 감성적 삶의 진정한 가치와 현실을 바라보는 상상력의 진화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키스가 일종의 욕망을 제어하는 행위에 집중되었다면 앞으로는 행위를 통한 상상의 현실을 만들고, 잘 짜여진 주인공들의 배경을 통해 세상과 보다 폭 넓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들이 제시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진정 욕망은 우리의 삶과 죽음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지을 수 있는 순방향의 에너지로 활용될 수 있을까. 비운 마음에 하늘을 품어 하늘을 나오게 하고 땅을 품어 땅이 나올 수 있게 그렇게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여전히 키스는 영혼까지 설레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 임대식

Vol.20131018i | 최정주展 / CHOIJUNGJOO / 崔正周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