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기술 Art of Painting

서동욱展 / SUHDONGWOOK / 徐東郁 / painting   2013_1017 ▶︎ 2013_1114 / 월요일 휴관

서동욱_Fumee_캔버스에 유채_50.5×65.1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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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1017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원앤제이 갤러리 ONE AND J. GALLERY 서울 종로구 가회동 130-1번지 Tel. +82.2.745.1644 www.oneandj.com

나는 한밤중에 강변북로를 동쪽방향으로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도로의 맨 끝 차선으로 달리며 강물위에 흔들거리는 불빛들의 반영을 바라본다. 밤의 풍경은 오래 전부터 나의 마음을 끌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고호의 작품들이다. 숲속으로 난 꼬불꼬불한 오솔길과 사이프러스 나무, 저녁 무렵의 까페, 밤하늘에 영롱하게 반짝이는 별빛들... 고호가 그린 밤의 풍경화들은 내게 다시 느끼기 어려운 깊은 감명을 주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기억하는 어느 날 밤의 이미지는 실제로 시지각을 통해서 경험했던 그 순간 보다 훨씬 더 또렷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아마도 그 이미지는 여러 감각기관을 교차하여 마음속에 새겨진 그림이기 때문이리라.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위해서 난지 한강공원에 차를 세운다. 여름 내내 한강변에 가까운 나의 한시적인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가끔씩은 밤늦은 시간에도 이렇게 강가를 산책하곤 한다.

서동욱_J.B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13
서동욱_S.Y_캔버스에 유채_145.5×97cm_2013

몇 년 전에 어떤 평론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나에게 왜 여러 가지 매체 중에서 회화를 선택하였는지 물었다. "한 때 회화는 이미지의 본보기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회화는 많은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의 본보기이자 거의 유일한 이미지였던 시절의 회화를 지금의 회화와 견주는 것은 부당한 일일 것이다. 사진이든 영상이든 아니면 그 무엇이 되었든, 수많은 이미지가 있다.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매체들 가운데 회화가 존속해야 할 이유란 무엇인가.(서동진)" 그는 여러 번 되풀이해서 물었지만 나는 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납득할만한 변변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아... 하필이면 난 왜 그림을 그리는 걸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 보다가 최근에 와서야 다소 허무한 결론을 내렸다. '처음부터 그림을 선택했고, 그림을 잘 그리기 때문에.' 내가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미 내적인 필연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 매체의 효율성 때문은 아니다. 나는 예술에 있어서 효율을 따져보는 것이 별로 의미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술의 생산성이란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개미들의 겨울식량처럼 아주 미미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회화라는 오래된 매체의 가치를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속 가능한 것인지 판단해보기 위해서는 '얼마나 효과적인가?' 보다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훨씬 유의미한 결론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하니 어려운 질문을 비껴가는 적절한 논리에 뿌듯한 기분이 들다가 갑자기 거대한 질문의 벽 앞에 서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엄청나게 소심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나의 그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제 이런 어려운 질문들은 그만두기로 한다.

서동욱_밤-마포대교-외로운 박쥐_캔버스에 유채_193.9×259.1cm_2012
서동욱_밤-터널을 나온 남자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13

얼마 전「가장 행복할 것 같은 직업 순위」에서 시인, 화가 등 예술가가 1위로 조사됐다는 인터넷 뉴스를 보았다. 함께 미술을 시작했던 고등학교 시절 미술부와 대학 동문들 사이에서 나는 매우 드물게 어린 시절의 꿈을 잃지 않고 화가가 되었다. 나는 평균적으로 주간 70시간 정도를 일한다. 매일 7시간 이상 그림을 그리고 일주일에 20시간 정도 강의를 한다. 최근에는 근로자의 법정근로시간을 주 52시간까지 단축하겠다고 하던데, 전시를 앞둔 예술가의 인생은 혹독하기 짝이 없다. 내가 유일하게 즐겨보는 스포츠는 종합격투기이다. 단순한 규칙과 원시적인 힘, 맹수를 연상시키는 군더더기 없는 유연한 몸놀림과 처절한 투쟁은 나를 숨 막히게 한다. 선수들의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은 그들의 수련과정을 통해서 육화된 무언가 특별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나는 예술가가 작품을 할 때의 에너지가 격투기 선수들의 강인한 육체에서 느껴지는 그 것과 같이 우리를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끌어올리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면화된 감성을 고조시키고 붓 끝에 정신을 집중하여 캔버스에 물감을 올리는 일은 감각적 한계에 도전하는 자신과의 투쟁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육체와 정신의 기운이 축적되고, 그것이 작품을 통해서 배어나오게 된다고 믿는다. 나는 운동선수나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의 연습과정과 같이 피나는 트레이닝을 통해서 회화의 기법들을 습득했다. 화가의 도구는 무려 600년 전에 마사치오가 성당의 벽에 그림을 그리던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현대의 화가들은 불행히도 동시대의 동료 예술가뿐만 아니라 회화의 장구한 역사만큼이나 찬란히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사라진 미술사의 유령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고단한 숙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 선다.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가는 영감을 붙잡기 위해서 나는 순결하고 고독한 노동을 지불해야만 한다. 내가 75세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하루 7시간씩 89,425시간, 나에게 남은 35년 중에서 무려 10년에 가까운 고독한 시간을 작업실에서 혼자 보내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때쯤이면 친구들이 모두 은퇴한 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후배들과 제자들의 존경을 받고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위대한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도 있겠지.「가장 행복할 것 같은 직업 순위」와 함께 조사한「직업 만족도 순위」를 보면 화가는 28위에 기록됐다. 이 슬픈 리얼리즘... 그래도 그림은 계속 그려야만 한다. 왜냐하면 고독과 맞바꾼 대가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증명해야만 하니까. 처음부터 나는 그림을 선택했고, 그림을 잘 그리니까. 다시 돌아가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아... 하필이면 난 왜 그림을 그리는 걸까?

서동욱_밤-안개낀 밤_캔버스에 유채_193.9×259.1cm_2013
서동욱_화지에 Hwajie_캔버스에 유채_90.9×65.1cm_2013

지난 여름은 길고 더웠다. 마지막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혈육이 끊어지는 슬픔을 처음으로 느꼈다. 요 몇 년 동안 아들이 태어나고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돌봐주시는 모습을 보면 오래전에 할머니와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나의 인생은 구원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았을지도 모르는 나의 재능을 아들에게도 물려주기를 꿈꾼다. 우디앨런은 영화「맨하튼」에서 인생이란 맛도 없고 게다가 양도 적은 리조트의 음식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아 고난과 근심으로 가득 찬 인생이 짧기까지 하다니... 차가워지는 밤의 온도를 뒤로 하고 나는 이제 집으로 향한다. 강 건너편의 아파트의 불빛들과 한적한 도로 위에서 역광의 그림자를 남기고 빠르게 사라져 가는 매끈한 스포츠카의 후미등, 우거진 나뭇잎들 사이에서 빛나는 가로등을 바라본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눅눅한 밤공기 속에서 흩어진다.■ 서동욱

Vol.20131020e | 서동욱展 / SUHDONGWOOK / 徐東郁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