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필더

Medfielder展   2013_1023 ▶︎ 2013_1112

김범석_낮 12_한지에 먹, 호분_172×137cm_200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범석_김진_박진홍_박현수 양대원_이동환_이민혁_이영

관람시간 / 09:30am~06:30pm

갤러리 GMA GALLERY GMA 서울 종로구 율곡로 1(사간동 126-3번지) 2층 Tel. +82.2.725.0040 artmuse.gwangju.go.kr

김범석 ● 김범석은 산의 생김새를 따라 그리기 보다는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 산과 나누는 대화를 풀어내려 노력했다. 산에 안기어 산의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 크게 듣고 크게 담으려 했다. 김범석의 산 그림은 하나의 거대한 집적체다. 노동과도 같은 사생과 그림 그리는 행위의 반복, 물감의 중첩이 수 없이 반복된 심리적 맥스(mass)다. 그것은 풍경의 힘, 사소하고 익숙한 것들의 힘, 그것들이 간단없이 이어지면서 쌓이고 뭉쳐서 만들어낸 거대한 덩어리요, 기운이다. ■ 박천남

김진_미네르바라는 올빼미1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12

김진 ● 헤겔의『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대한 단상, 데모 진압용 조명등의 발광하는 빛들(공권력의 폭력성을 암시, 작업실 탁자 위에 놓인 잡다한 사물(일상)등을 감각적인 붓질로 그려내는 김진의 회화는 사물의 형태를 규정하는 윤곽선 없이 그대로 색채와 질감과 선이 동시에 공존하면서 지나간다. 작가는 오래전에 접한 문징명(1470-1539)의 서예를 보고 매혹되었던 경험을 말했다. 그 붓질, 한 획이 자닌 무시무시한 힘. 필력과 한정된 공간에 자리한 절묘한 포치에 마냥 매료되었던 것이다. ■ 박영택

박진홍_얼굴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13

박진홍 ● 그의 작품은 캔버스에 얼굴을 재현하거나 표현하거나 변형시킨 것은 아니다. 타자와 소통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인간에게 얼굴 읽기는 굳이 예술 작품이라는 매개 없이도 매순간 일어나는 거의 본능적 과정이다. 그래서 얼굴은 비록 큰 화면이 아니더라도, 강렬하고도 민감한 표현을 원하는 화가에게 선택과 집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박진홍의 작품에서 얼굴로 간주된 밀도 있고 민감한 영역에는 단지 그 자신으로의 회귀라는 자기 지시적이고 자기참조적인 불모의 행위이거나, 무한대의 되돌이표로 들려오는 공허한 독백은 없다. 한 얼굴에는 다수의 풍경들이 우글거리고 군상들의 다양한 소리들이 웅성거린다. ■ 이선영

박현수_Oval 13-YB_캔버스에 유채_182×122cm,_2013

박현수 ● 박현수의 화면도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구조로서의 평면의 해석으로 먼저 접근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화면이 주는 이채로운 감각은 먼저 깊이와 넓이란 이중성에 의해 형성되는 구조에서 찾아진다. 그의 화면이 주는 일반적 회화의 맥락에서 벗어나는 신선한 역설은 이 깊이와 넓이가 만드는 다층적인 구조에서 온다는 것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단순한 이중적 대비에서만 구조적 특징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보다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대비로 인해 오는 풍요로움이 신비와 광휘를 수반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리라. ■ 오광수

양대원_어떤 기억 Some Memory_광목천에 한지, 아교, 아크릴 물감, 토분, 커피, 린시드유_66×63cm_2011

양대원 ● 양대원의 오랜 브랜드, 동글인 캐릭터가 그간의 작업 연보에서 보여준 요란한 시위와 선명하고 원색적인 호소가 잠잠히 자제된 채, 검정 모노크롬으로 귀결한 이번 신작은 양대원의 내면을 깊이 지배하는 절대적 관념가치와 자기완결성을 향한 관성을 감안할 때 예상 가능한 결론처럼 보인다. 기본 도형을 무수히 변형시켜서 화면 위로 확장해온 그의 오랜 미학적 반복은, 그리드(grid)의 반복으로 회화 언어를 재구성한 몬드리안을 연상할 만하다. 결국 그의 신작은 검정 모노톤으로 마감된 절대주의(Suprematism)의 조형 문법과 근접거리에 놓였다. 원형(circle)의 변형으로 해석될 눈물방울의 전면 배치나, 화면의 전체 프레임을 정사각형(square)에 귀결시킨 여러 작품의 구성이 그러하다. ■ 반이정

이동환_三界火宅_장지에 수간채색_195×520cm_2013

이동환 ● 불타는 붉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어린 아이는 유령처럼 사라진다. 거대한 별이 유성처럼 대지에 떨어지고 대양을 뒤흔든다. 어디에도 쉴 곳이 없는 피난민처럼 사람들은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발걸음을 옮기지만 희망은 없다. 누추하며 비극적인 생활이 연속될 뿐이다. 이미지들이 재현하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의 감정과 정서. 황혼의 긴 그림자처럼 늘어진 민중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암울한 전망과 예기치 않는 조울(躁鬱). 조형적 효과를 분석하거나 언어화하는 작업은 작가에게는 한가한 소일거리처럼 보일 것 같다. 그의 작업은 도상과 의미의 전통적인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에서 인간은 정형화한 인간의 상징처럼 포즈를 취하고 연극적으로 연출된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 케테 콜비츠와 오윤의 민중. 오랜 노동으로 거대해진 손과 피로에 쌓인 퀭한 그러나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응시하는 눈. 짐승이나 노예가 아닌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인간. ■ 김노암

이민혁_갈수 없는 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72.7cm_2011

이민혁 ● 그림은 작가가 사회와 나누는 지속적인 대화이다. 따라서 사회는 그에게 있어서 지속적으로 파헤쳐져야할 화두인 동시에 소재의 젓줄이다. 그에게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는 속도로 인식된다. 한국사회에 깊숙이 형성된 '빨리빨리' 증후군처럼 속도는 속도를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을 낳았다. 이민혁은 파렛트 위에서 물감을 곱게 개서 원하는 색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는 빠른 동작으로 여러 색의 물감을 붓으로 거칠게 낚아채 그대로 화면에 칠한다. 그러한 동작은 매우 빠른 순발력을 요구하며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폭발할 듯한 에너지를 담고 있는 이민혁의 화면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판단과 구상력의 소산이다. 소재를 해석하는 기발한 발상, 그것을 요리하는 기법, 순간적인 판단력 등등은 풍자화가로서 이민혁의 회화적 재능을 말해주는 지표들이다. 그는 그림 그리기를 즐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림을 그릴 때 즐거워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처럼 다양하고 재기발랄한 그림들이 양산될 수 있을까? 이민혁은 다작(多作)의 작가다. ■ 윤진섭

이영_명-1_장지에 흑연, 아교, 먹, 연필_110×110cm

이영 ● 이영의 먹그림은 흔히 그렇듯 번짐 효과를 매개로 해서 수묵 자체의 본성을 드러내고 강조하지 않는다. 또한 외관상 추상화에 바탕을 둔 그의 그림은 전통적인 산수화나 도회적인 삶을 그린 현대적인 수묵화에서의 형상미술과도 다르다. 그렇다고 그 추상화의 경향성이 의미와 내용을 가급적 배제하고 순수한 조형원리를 강조하는 식의 모더니즘적 환원주의의 형식논리를 따른 것 같지도 않다. 그의 그림은 형식 외적인 요소들을 배제한 모더니즘의 배타주의의 소산이기보다는, 의미와 내용과 메시지가 함축(압축)된 관념적 형상을 통해 추상화의 형식에 이른 것 같다. 그러니까 그림에서의 의미와 내용이 순수한 형식을 위해 배제되기는커녕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암시)되고 있는 것이다. ■ 고충환

Vol.20131021j | 미드필더 Medfielder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