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s Without Names 이름 없는 얼굴들

이보람展 / LEEBORAM / 李보람 / painting   2013_1125 ▶︎ 2013_1204

이보람_parts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30×97cm×5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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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 블로그_http://byboram.egloos.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2:00pm~09:00pm

갤러리 닥터스트레인지러브 Gallery Dr. Strangelove 서울 마포구 상수동 93-103번지 코휘드빌딩 5층

테러나 전쟁보도사진이 작업의 1차적 자료가 된다. 2차적 자료는 사진으로 남겨진, 사진 너머의 현실이다. 나의 작업은 사진과 현실의 간극을 전제로 한다. 사진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알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며, 사진이 어떤 사건의 객관적인 증거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사진은 현실의 완벽한 시각적 복사물이기 때문에 사진을 통해서 무언가를 '보고' 있다고, 더 나아가 '알았다'고 착각한다. 어찌 보면 목격 없는 사건이며, 사건 없는 목격이다. 사건과 목격은 서로를 지연시키며 허구화한다.

이보람_parts, 희생자-PIETA_2013

작업의 단계는 이렇다. 테러나 전쟁보도사진을 모으고, 분류한다. 희생자가 클로즈업된 사진들이 주가 되며 인간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으로 인해 일어나는 타지의 사건들이 소재가 된다. 현장과는 멀리 떨어져, 여기에서 구경하듯 바라볼 수밖에 없고 나와는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혹은 그렇게 생각되는 사진들을 수집한다. 그렇게 모은 사진들은 기독교 종교화의 주제를 참고하여 '피에타'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애도' 등으로 분류된다. 사건의 시기나 장소가 아니라 이미지의 유사성과 빌려온 이야기가 분류의 기준이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첫 번째의 '지우는 과정'이다. 두 번째로 지워지는 것은 희생자의 피부색과 두 눈이다. 피부색과 두 눈이 지워지며, 희생자는 이름을 가진 개인에서 '희생자'라는 추상화된 범주의 대유가 된다. 마지막으로 성상이 되어 제단에 놓이게 되면서 이들은 '우리'의 공간과 현실에서 분리된다. 제단은 올리는 이들과 올려진 대상을 명확히 구분하여 희생자들의 고통을 추상적이고 신화적인 것으로 만든다. ● 결국 나의 작업과정은 사진을 바라보는 행위와 그 시선을 시각화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다르게 말하자면, 나의 시선이 가 닿아 변모된 희생자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림에 남게 되는 유일한 것은 희생자들의 몸짓과 표정이다. 이것은 내가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희생'이라는 옷을 입은 타인의 고통은 현실을 환기시키지 않는다.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장면도, 부모가 죽은 자식을 안고 있는 장면도 순간의 충격일 뿐, 나의 현실에는 무해하다. 성화의 주제를 빌려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화나 나의 그림에 존재하는 고통은 현실이 아니라 은유이며, 구경거리이다. ● 희생자를 둘러싼 공간은 따뜻한 분홍색으로 채워진다. 주변에는 손가락이나 인형의 것같은 눈들이 떠다닌다. 분홍색은 값싼 동정심과 가벼운 죄책감, 무기력함을 반전하여 표현한다. 잘려나간 손가락은 검지(index finger)로, 눈과 함께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보는 행위를 상징한다. 고통을 겪는 그들과 구경하는 우리가 구분되는 현실에서, 가리키고 보는 것은 죄책감을 수반하며, 심지어 공격적이라고 여겨진다.

이보람_희생자-PIETA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93×130cm×2_2013

시각적 강렬함이 의미를 잃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그림에서는 사진 너머의 현실이 시선 앞에서 부서진다. 의미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는다. 사진을 설명하는 캡션들도 단어들로 분절되고 뒤섞여 하나의 문장을 이루지 못한다.(「애도에의 애도」, 2012) 나는 나의 그림과 작업과정을 설명하는 언어들로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에서 전쟁과 테러가, 그리고 타인의 고통이 어떻게 소비되는지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충격은 한 순간이고 기억은 희미해진다. 이미지가 다른 것으로 빠르게 대체되는 현실에서 이 과정은 무한하게 반복된다. ● 사진을 통해 보게/알게 되는 현실에서, 사건과 목격은 분리되어 있다. 있을 것 같은 의미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끈이 있을까? 애초에 그 끈은 착각일까?

이보람_Faces without Names_혼합재료_2012~3
이보람_index finger_혼합재료_2012~3

거의 대부분의 경우, 붉은 피는 가장 나중에 그려진다. 실제 사진에서는 말라붙은 검은 핏자국이더라도, 그림에서는 빨강과 분홍으로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 피는 나를 사진 너머의 현실과 다른 방식으로 이어준다. 붉은 색 피는 그려진 그 자체로서 나의 그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실제로 누군가가 흘린 피의 재현이다. ■ 이보람

이보람_희생자-PIETA 1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93×130cm_2013
이보람_희생자-PIETA 2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93×130cm_2013

The primary source of my work consists of press photographs of war and terrorism. The secondary source involves the reality that exists beyond the photograph as well as the reality that was photographed. The prerequisite of my work is that there is a discrepancy between reality and photography. Photography alone is not sufficient to be objective evidence. However, since photography is a perfect visual duplication of reality, it allows us to delude ourselves that we are 'seeing' something, and even that we 'know' something. Maybe it is a happening without witness, or a witness without happening. Happening and witness defer each other and fictionalize each other. ● Following is the stages of my artwork. First off, press photographs of wars and terrorism are collected and categorized. Most of them are close-up shots of the victims and depict happenings that take place in another part of the world due to the contradictions of human society. Being apart from the scene, I cannot help but merely look at it and collect the photographs that are not directly associated with me, or at least that are 'thought to be' not directly linked to me. These photographs are classified into 'Pieta', 'The Descent from the Cross' or 'The Lamentation' with regard to the famous themes of religious paintings. It is important that the photographs are grouped into categories not by the time and space of the happening but by the similarities of the images and the borrowed stories. This is the first step of 'erasing'. It is the skin color and two eyes of the victims that are secondly erased. The skin color and two eyes are erased, and the victim is transformed from an individual with its own name into a synecdoche of an abstract category 'Victims'. Finally, as the victims become sacred icons and are placed on the altar, they are separated from 'our' space and reality. The altar draws a clear line between the icons and those who place the icons on the altar, and eventually mythicize their pain and make it abstract. ● After all, my work is focused on the 'seeing' of the photograph as well as on the visualization of the sight. In other words, I depict the victim who is transformed as my act of seeing reaches out to him/her. The gesture and the face of the victims are the only things that are left in my artwork. And these are also the only things that I can see through the photograph. The pain of the others, which is attired in 'sacrifice', does not remind us of the reality. Even the scene full of blood, or the tragic scene where parents hug their dead son, is harmless to my reality. They are merely a shock for a moment. This is why I borrow the themes of religious paintings. The pain existing in the painting or in my work is not reality; it is a metaphor; it is a spectacle. ● The space surrounding the victim is filled up with pink. And eyes and fingers are floating around it, which look like those of dolls. Pink is an ironical expression for cheesy sympathetic feeling, a light sense of guilt and helplessness. The fingers that are cut out are index fingers and the fingers as well as the eyes stand for the action of meaningless seeing. In the reality where us, or the beholders are separated from the victims in pain, pointing at them and seeing them accompanies guilt feeling, and is even considered aggressive. ● Why is the visual intensity losing its meaning? In my work, the reality beyond the photograph is collapsed. The meaning disappears and there is only the shell left. The captions that describe the photographs are also divided into segments and fail to compose a complete sentence. (「Lamentation for Lamentation」, 2012) I reckon, I can explain by the means of my works and the language that explains its working process how war and terrorism as well as the pain of the others are consumed under today's media environment. Shock is a matter of a moment and the memory fades away. This repeats itself infinitely in the reality where the images are quickly substituted by others. ● In the reality that we get to see/know through photography, happening and witness are separated. And the meaning that is likely to exist is hardly found anywhere. Could there be something like a string between those are seen and unseen? Or would this be a mere delusion? ● Most of the cases, the red blood is painted at the final stage. Even if it was just dried black stain of blood in the actual photograph, it is depicted with vivid red and pink. The blood links me to the reality beyond the photograph in a different way. The red blood, as it is painted, means my act of painting. However, at the same time, it is a representation of blood that somebody else out there actually bled. ■ LEEBORAM

Vol.20131125f | 이보람展 / LEEBORAM / 李보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