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ll is beautiful

이연숙展 / YEON LEE / 李蓮淑 / installation   2013_1130 ▶ 2013_1216 / 일,공휴일 휴관

이연숙_Shadow of father_나무, 금박, 신발 모형, 실, 드로잉_가변설치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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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숙 홈페이지_http://www.yeon-lee.com

초대일시 / 2013_1129_금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압생트 Gallery Absinthe 서울 서초구 반포동 112-10번지 B1 Tel. +82.2.548.7662 www.galleryabsinthe.com

비닐봉지의 지형학"가장 초라한 경제를 국부적으로 팽창시키는 힘의 과잉은 사실 가장 위험한 파괴적 요소로 돌변할 수 있다. 그래서 터뜨리기는 고금을 통해 존재했으며 물론 막연한 의식의 형태이긴 했지만 열광적인 연구의 대상이었다. 고대사회는 터뜨리기를 축제에서 찾았다. 어떤 고대사회에서는 아무런 실용성이 없는 으리으리한 기념 건조물을 세웠다[중략] 그리고 우리는 여가시간을 늘림으로써 잉여의 일부를 흡수한다. 그러나 그러한 여흥만으로 언제나 불충분했다." (조르쥬 바타이유) ● 잉여의 메타포는 현대 문화이론이나 미술비평에서 흔히 등장한다. 쓰고 남은 물건, 즉 쓰레기, 혹은 과잉된 에너지에 대한 메타포는 1930년대 잉여의 미학을 집필한 초현실주의 작가들, 프랑스의 철학자 조르쥬 바타이유로부터 1950년대 프랑스 누보 리얼리스트작가들, 아예 재활용품으로 공공미술을 진행하는 현대의 디자이너와 작가들에 의하여 끊임없이 사용되어져 왔다. 물론 이러한 역사적 계보에는 쓰레기야말로 생산과 진보의 신화에 사로잡힌 초기 자본주의에 대한 강한 저항의 정신이 도사리고 있다. 바타이유는 일찍이 자본주의가 원하는 것은 발전이 아니라, 효율은 더더군다나 아니며 결국 잉여를 어떻게 멋있게 '터뜨릴 수 있을지'에 집중되어 왔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가 미술사에서 심각하게 여기는 모뉴멘트, 축제, 제례 및 각종 문화적 행사들이 "잉여의 터뜨리기"의 일부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적어도 바타이유에게는 근사한 것을 만들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잉여적인 자본주의 의한 단면을 보여 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타이유는 자신의 글쓰기도 결국 잉여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연숙_Voice of voice_레진, 전화, 비닐랩, 캔버스_가변설치_2013

이러한 측면에서 이연숙의 비닐봉지를 사용한 예술 작업은 흥미롭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단순히 별 가치가 없어 보이는 재료를 재활용했다는 의미에서 흥미롭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왜냐면 결국 현대 미술에서 정의해 온 예술가란 결국 일상적인 경험이나 물건들로부터 전혀 다른 가치를 발견하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바타이유가 주장하는 '터뜨리기'의 임무를 지녀 왔기 때문이다. 만약 쓰레기가 자연스러운 자본주의의 한 현상이라면 잉여의 '재활용'이나 '재맥락화'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업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연숙의 봉지 작업에 대한 미학적, 비평적 판단이 일단락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보다 구체적으로 과연 어떠한 '터뜨리기'이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남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말하는 가치체제의 전복이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이루어져야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타이유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잉여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 예술가는 그러한 잉여를 자신의 작업의 일부로 삼음으로써 자본주의가 규정한 특정한 가치체계에 대항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어떠한 변형을 통하여 작업의 가치가 생성되는지,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가치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여전히 남는다.

이연숙_Woman's dream_향수병, 아크릴, 체인_가변설치_2013

비닐봉지와 재생미학 ● 이연숙이 사용하고 있는 비닐봉지라는 재료를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흔히들 옛 어른들이 '봉다리'라고 부르는 비닐봉지는 존재양상이 흔하고 다양한 만큼 영 미권에서 사용되는 명칭도 가지각색이다. 원래 영어로는 비닐의 합성수지적인 측면을 살려서 플라스틱 백, 아예 그 기능에 따라서 가비지(garbage)백, 혹은 트래시(trash)백, 쉽게 모든 것이 다 들어간다고 해서 빈(bin)백 등 다양한 용어들이 공존한다. 1950년대 대 소비문화가 본격적으로 발전되면서 슈퍼마켓을 중심으로 사용되어져 온 플라스틱백은 어쩌면 문화의 대중화, 효율화, 그러나 동시에 환경문제를 아우르는 상징적인 물건이기도 하다. 또한 비닐봉지는 보자기처럼 다양한 크기와 재질로 만들어지고 다양한 기능성을 지닌다. 때에 따라서는 간단한 쓰레기를 나르는 기능으로부터 이삿짐을 나르는 기능에 이르기까지 비닐이라는 재료가 지닌 가변성만큼이나 다양한 기능과 목적에 따라서 사용되고 다시금 제조되는 것이 비닐봉지이다. ● 작가는 오랫동안 비닐작업을 진행해 오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비닐봉지를 조달한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사용되고 버려진 것을 수거하기도 하고, 슈퍼마켓 매니저에게 부탁하여 기대하지도 않았던 후원을 받기도 한다. 영문학자인 빌 브라운에 따르면 현대사회에서 특정한 물건들의 가치는 매우 복합적인 과정을 통하여 쓸모없는 것으로 인식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모든 물건들 중에서 처음부터 쓰레기가 될 운명을 가진 물건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주인과의 관계 변화를 통하여 특정한 물건들이 쓰레기로 여겨지게 된다. 예를 들어 영화「토이스토리 1」(1995)에서 아이들이 점차로 커지면서 외면당하게 된 장난감들의 운명이 이에 유사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즉 단순히 인형의 물리적인 상태 때문이 아니라 물건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자 인간과의 다양한 심리적, 물질적 변화를 통하여 특정한 물건이 더 이상 가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 따라서 쓰레기를 기사회생시키는 것은 단순히 그것의 물리적인 상태만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것의 물리적인 상태보다는 심리적인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이연숙 작가는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여 비닐봉지를 업그레이드시킨다. 그녀는 비닐과 같이 하잘 것 없는 재료를 사용하되「광주 쿤스트할레의 집(The House_Kunsthalle Gwangju)」(2011)에서 작가 할머님의 치마저고리를 상상하는 설치를 만들어 낸다. 해파리의 형태로 만들어진 비닐설치「나를 재활용해주세요(Re-use Me_Everyone)」(2011)는 성석초등학교의 학생들과 작가의 공동 작업이다. 뿐만 아니라「노란 벽(Yellow wall)」(2013)에서 작가는 아예 멀쩡한 기둥을 비닐로 싼다. 기둥이지닌기능성을변하시키지는않지만대부분빌딩내부에서그존재감이미비해서보이지않던기둥에대한사람들의관심을이끌어내게된다. 또한 변형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비닐봉지를 모아서 함께 코바늘뜨기를 사용하기도하고 나란히 붙여서 전혀 다른 형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혹은 태워서 표면을 변형시키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물건의 형태(뻥튀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연숙_Vanished landscape_Your place_비닐봉지, 모형집, 조명_특정 공간 가변설치_2013

비닐봉지의 사회학 ●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잉여의 진정한 터뜨리기를 위하여 단지 비닐봉지의 외형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가 않다. 최근 작업「당신의 것 (Yours)」(2008-현재)에서 작가는 비닐봉지를 미학적인 재활용의 매개체로서가 아니라 또 다른 사회적 현상과 가치를 지닌 소재로 접근한다. 그러한 경우에 비닐봉지는 설치의 주재료가 될 뿐 아니라 일종의 연구 대상으로 탈바꿈된다. 예를 들어 작가는 자신이 원래 영감을 받았던 유럽에서 비닐봉지와 한국 내에서 비닐봉지 사이의 차이점에 주목한다. 물론 비닐봉지는 꽤나 '보편적'으로 값싸고 버리기 쉬운 소재이지만 작가에 따르면 분명 사회문화적인 차이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환경적인 이슈가 활발하게 논의되는 유럽에서 비닐봉지는 물리적으로만 싼(cheap) 재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내포한다. 비닐봉지는 현재 유럽에서 일종의 에코백과 같이 일회용이 아니라 재활용하는 각종 백들에 밀려서 사회적인 가치에 있어서도 그야말로 쓰레기와 같은 재료로 여겨지고 있다. ● 작가는 유럽의 도시에서 발견되는 비닐 봉지족을 따로 촬영하였다. 그리고 사진에서 비닐봉지의 형태 위에만 금박을 입혔다. 물론 금박을 입힌다고 해서 비닐봉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그 경제적인 가치가 올라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사진작업은 비닐봉지가 실제로 어떻게 사람들에게 사용되고 인식되는지에 대한 작가의 분석적이고 체계적인 첫 간섭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현재진행중인 이 작업은 비닐봉지의 사회적 가치에 대하여 관객들 스스로 생각해 보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이연숙_I don't care what you say_네온, 작업대, 실, 모형, 나무_특정 공간 가변설치_2013

이와 연관하여 최근 비닐봉지 로고 시리즈「5걸음쯤 떨어져서 보기 (Looking at 5 steps distance)」(2013)에서 작가는 매체를 다변화 한다고 있다. 작가는 2차원의 화면에 수채화와 같이 실상 가장 평이한 매체를 사용하여 비닐봉지를 재현해 낸다. 하지만 이 경우에 비닐봉지가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에 해당하는 슈퍼마켓이나 가게의 로고를 삭제하고 봉지들을 재현한다. 여기서 도금한 사진 작업에서와 마찬가지로 로고를 삭제하는 행위는 비닐봉지의 사회적인 가치를 전복시키기 위한 또 다른 방식에 다름 아니다. 왜냐면 비닐봉지 위에 새겨진 로고는 특정한 봉지를 단지 특정한 상표나 계층의 물질 소비문화와 연관시켜서 가장 일차적으로 홍보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들고 있는 봉지의 외관이 제시하는 로고를 통하여 우리는 봉지 안에 담긴 물건, 심지어 그것을 들고 있는 사람의 취향과 계층적 분포도를 짐작할 수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경우에 다양한 종류의 종이 봉지나 포장지로 이야기를 확대하면 이러한 유추는 더 다양해진다.) 그리고 로고에서 글씨를 삭제하는 과정을 통하여 작가는 결국 봉지에 부가된 사회적 가치를 간섭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관객들은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인식하여 온 우리의 소비문화 환경에 눈을 뜨게 된다. ● 따라서 최근 이연숙 작가의 비닐봉지는 재활용의 미학이 지닌 오래된 모토, 예술과 삶을 결합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최근의 작업이 매우 적극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가치 창출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레지던시를 위하여 울산에 내려와서 새로운 도시/시골 풍경을 접하면서 비닐봉지에 대한 다양한 문화적, 경제적 가치에 관심을 지니게 되었다. 작가에게 비닐봉지는 기능성이나 개인적인 의미를 넘어서 서로 다른 지역이나 사회의 문화적 상황을 현현하는 매체로 거듭나고 있다. 유럽에서 유학 생활 중에 비닐봉지를 처음으로 소재로 삼았던 당시로부터 귀국한 후에 한국내의 소비와 포장 문화를 접하게 되고 찬란한 공업도시이지만 문화적인 열등감을 갖고 있는 울산 지역민들을 접하게 되면서 비닐봉지에 대한 그녀의 관찰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연숙의 최근 작업과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방향이 보다 '장소 특정적'인 비닐봉지의 지형학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고동연

1. 조르쥬 바타이유,『저주의 몫(La Part maudite)』, (1949/한글판, 문학동네, 2000), p. 64. 2. Bill Brown,『Thing Theory』, Critical Inquiry, vol. 28, no. 1 (Autumn, 2001), pp. 1-22.

이연숙_Small is beautiful展_갤러리 압생트_2013

Topology of plastic bag ● "The excess of energy that expands its economy from a poor state to more affluent one can be turned into something very dangerous and destructive. Therefore the squandering of energy has always existed and it was a fervent object for study for a long time even though it took the vague form of ceremony. People of ancient times tried to channel this "squandering" into the festival. In some ancient societies there was a grand monument without any practical reasons. (…) And we absorb the part of excess into our life as we lengthen leisure time. But it was never enough to have that sort of entertainment only. " (Georges Bataille, Le Part maudite/ The Accursed Share, 1949) ● The metaphor of 'excess' often appears in contemporary cultural theory and art criticism. The metaphor of waste, the surplus produced by life's basic chemical reactions or superabundant energy has been used among artists such as the surrealists of the 1930's that wrote about the aesthetics of excess, the French artists of nouveaux réalistes in the 1950's including the philosopher Georges Bataille and by contemporary artists and designers who make public work with recycled products. The backdrop to this genealogical history is the belief that waste encapsulates the protesting spirit against early capitalism that was so caught up in the myth of production and progress. Bataille points out that what capitalism tries to achieve is not progress and certainly not efficiency, but it focuses on how to "squander the excess" in the most glamorous way. According to this, it is worth noticing that what is considered most important in art history, such as monuments, festivals, ceremony and other cultural events are actually a part of "squandering the excess". At least to Bataille, an attempt to make something aesthetically pleasing, reveals a fragment of the characteristics of excessive capitalism (on basis of this understanding Bataille sees his own writing as an excessive action). ● In light of the above, Lee Yeon Sook's plastic bag art works are quite intriguing. More precisely, they are interesting not because the artist recycles material that seems to hold no value but because it offers an opportunity of thinking over art and the artist's role in a capitalist society from a new perspective. According to Bataille, the role of the artist in contemporary art is to be responsible for the "squandering of excess". He achieves this by finding a different value for products and the daily experience and assigning new meaning to it. If we agree that waste is the most natural result of capitalism, the most important role of contemporary art will be the "re-cycling" or "re-contextualization" of this excess. ● However, there is still more to Yeon Sook Lee's work that has to be viewed aesthetically and critically just like the question of what kind of "squandering" it has to be. It beckons the question, what is the subversion of the value system that the artist is concerned with and how it can be achieved. If we accept Bataille's notion of excess being a natural phenomenon of capitalist society, the artist takes a stand against that particular value system of capitalism when she incorporates excess as a part of her work. Even though, in doing so, she leaves us with a conundrum; through which modification the value is created and what is this value exactly? Plastic bag and the aesthetics of recycling ● Let's look more closely at Lee's main material, the plastic bag. In Korea, the plastic bag was called "Bogdari" in the past. Furthermore, in western society there are many names for plastic bags since they are used for various purposes in numerous forms. The word "plastic" derives from its synthetic resin production process. Based on their function, the plastic bags are given a variety of names: garbage bag, trash bag and bin bag. The plastic bag that was introduced in supermarkets in the 1950's when consumerism was taking off, is a symbolic object of the era when culture became available to the general public, commencing an era of efficiency and environmental problems. Furthermore, the plastic bag has various functions and is made in various sizes and from various materials just like old wrapping cloth. The plastic bag is used and re-produced for various purposes since the material properties of vinyl are so malleable. It can be used simply to carry the trash out or to carry household items when people move their home. ● Lee has been working with the plastic bag for a long time and has therefore managed to get her material from various sources. She prowls the streets to gather plastic bags and sometimes she will receive plastic bags unexpectedly from the supermarket manager who remembered her previous inquiries. According to Bill Brown, an English Literature Scholar, the value of a particular product is recognized as useless through a very complicated process in contemporary society. What is interesting in this process is that nothing has the destiny of becoming trash from the beginning. So through changes in relationship between the object and the owner it becomes trash. For example, the toys those were fated to be abandoned when the owner of the toys got bigger in Toy Story 1 (1995). The object is recognized as worthless not only due to its physical state but when it is considered with the mental and materialistic change of the owner of the object. ● Therefore, what it takes to revive the waste is not simply the upgrade of its physical state but the mental relationship between the object and the user has to be taken into consideration as well. Lee elevates the plastic bag through various processes. Even though she uses an insignificant material like a plastic bag for her work she will use it to make an installation that revives a Jeogori of her grandmother (shirt of traditional Korean clothes, Hanbok) with her piece The House_Kunsthalle Gwangju 2011. She also made a jellyfish looking plastic bag installation Re-use Me_Everyone (2011) as a public work with students of Sung-seok Elementary School. She wrapped the whole column of a building with the plastic bag in Yellow Wall (2013). She draws the audiences' attention anew to the column that is usually invisible due to its slight presence, without changing its function. And she also applies many different ways of modification. Sometimes she will crochet with the plastic bag, sometimes she will build a different form by gluing them side by side or she will even modify the surface of plastic bags by applying heat, making quite startling forms (puffing). Sociology of the plastic bag ● But as I mentioned before it is not fully satisfactory to just change the appearances of plastic bags in order to achieve the true "squandering" of the excess. With the recent work Yours (2008) Lee approaches the plastic bag not as a medium to be recycled but as a material that possesses a social phenomenon and value. In this case the plastic bag is not only the main material for the installation work but it is also turned into a subject of research. For example, Lee pays attention to the difference between the plastic bags that are used in Korea and European ones that initially gave her the inspiration. Of course the plastic bag is rather "universal" and easily disregarded since it is cheap material but there is also a social and cultural difference according to Lee. For example in the European countries where environmental issues are actively discussed, the plastic bag is not merely cheap material but it also carries social connotations beyond that. The disposable plastic bag is considered as waste indeed since many non-disposable bags such as Eco-bags are widely available in the European countries. ● Lee took pictures of the plastic bags that she could find in the cities of Europe. And on the photographs she covered the plastic bags with gold leaf. Even though it is covered with gold leaf the general recognition and the economical value of it doesn't surge. But this work is the first analytic and systematic intervention of Lee on how the plastic bag is actually used and recognized by the public. Furthermore this ongoing work provides the audience with an opportunity to think of the social value of the plastic bag for themselves. In relation to this work, Lee even diversifies the medium with her recent plastic bag logo work Looking at 5 steps distance (2013). Lee re-produces the plastic bag on a two-dimensional surface with the very plain medium of watercolour. But in this case she deletes the logos of supermarkets or the shops that maybe is the very reason to produce the plastic bag to begin with and only reproduces the plastic bags without the logos. Similar to the previous photographic work, her action of deleting the logo is a different way of subverting the social value of the plastic bag. This is because the logo on the plastic bag is used primarily to promote the plastic bag itself and associate it with a certain class's consumer culture or a particular brand. In most cases, we can easily anticipate the product inside of a particular plastic bag when we see the logo and we can even discern the taste of a person holding that bag and his social class (certainly this sort of interpretation can be expanded in many possible ways when this is applied to the various paper bags and wrapping paper). So Lee intervenes with the social value that is added to the plastic bag as she deletes the text of the logo. Furthermore, it will raise the audiences' awareness of their consuming culture. ● Therefore Lee's recent plastic bag works are not limited to the old trope of aesthetics of recycling - combining art and life. Yet of course this doesn't mean that her recent works actively try to subvert and participate in creating new social values. According to her, she got interested in various cultural, economical values of the plastic bag when she encountered the new city/country-side landscape during her stay at Ulsan residency. To her, the plastic bag becomes a medium that manifests the cultural situation of local community or the society, overcoming its own functionality and also exceeding her own personal value. She first used the plastic bag as her material in Europe when she was studying there. Her observations with regards to the plastic bag have developed further through experiencing the consuming pattern and the wrapping culture in Korea and encountering the citizens of Ulsan that display some sense of inferiority regarding their culture despite of Ulsan being a splendid industrial city. In this regard I hope that Lee's recent work and her future work will continue to explore the "site-specific" topology of the plastic bag. ■ GODONGYEON

1. Georges Bataille,『La Part Maudite』, (1949/Korean translation, MoonHak Dong-nae, 2000) p.64 2. Bill Brown,『Thing Theory』, Critical Inquiry, vol. 28 no.1 (Autumn, 2001), pp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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