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2013_1209 ▶︎ 2013_1231 / 일요일 휴관

김영규_Wannabe-Trainspott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162.2cm_2013

초대일시 / 2013_1209_월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영규_박민경_정은민_한승훈_홍지철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분도 Gallery Bundo 대구시 중구 대봉동 40-62번지 P&B Art Center 2층 Tel. +82.53.426.5615 www.bundoart.com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가 윗세대와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대중문화의 다양한 요소를 물과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언뜻 보아 개성 넘치는 2.30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예컨대 한정판, 희귀본, 기이한 것(freaks)을 소비하며 과시한다. 그렇지만 이런 자기 차별화조차 마케팅이 장치해 놓은 시장세분화 속의 일부란 점은 분명하다. 예술가들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이들은 스스로가 작품을 통해 문화를 재구성한다. 여기 다섯 명의 작가, 김영규, 박민경, 정은민, 한승훈, 홍지철은 자신이 향유해 온 대중문화의 여러 요소를 작업의 소재로 화가들이다. ● 이들 다섯 명이 미술계에 첫발을 내딛은 이후 나는 지금까지 그 재능을 줄곧 지켜보아 왔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이유는 없다. 다섯 작가(사실 5라는 숫자로 한정될 수 없으며, 이보다 배수인 10명 선의 젊은 작가들 가운데 이 프로젝트에 합당한 다섯 명)들은 그동안 창작 스튜디오, 갤러리 작가 육성, 미술관 전시, 공공예술 프로그램 등을 통해 조금씩 이름을 알려왔다. 이번 전시에 내가 소집한 다섯 작가의 특성을 나타내는 키워드는 1990년대 이후 대중문화의 수용, 평면 회화 작업, 고유한 캐릭터 묘사, 그리고 다소 진부하지만 팝아트이다.

김영규_Wannabe-Chungking Expres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72.7cm_2013

김영규는 영화 속 한 장면을 캔버스 위에 선 굵은 붓질로 포착한다. 말하자면 일종의 스틸 컷이다. 이미 영화감독이 잡아놓은 앵글에 화면의 물리적 매체와 질감만을 바꿔 표현하는 셈인데, 이것이 전부라면 그의 회화는 생동감이 없을 것이다. 작가는 영화 이미지의 무미건조한 재현에 자신만의 독백을 얹어서 변증법적인 문맥을 완성한다. 그 결과는 어떻게 보면 꽤나 겉멋이 든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은 비난받을 점이라기보다, '겉멋' 자체가 품은 그의 스타일을 감상의 핵심으로 삼아야 된다는 뜻이다.

박민경_floating on air_캔버스에 유채_130×162.2cm_2013
박민경_sky-blue circles_90.9×72.7cm_2013

박민경의 작품에는 끝없이 순수해 보이는 어린 아이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얇게 칠한 표면의 느낌은 그녀의 그림이 수채화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투명한 이미지로 드러난다. 이것은 표현 기법에 더해진 작가의 심성이다. 흔히 화가가 가진 정신적인 힘을 상상력이라고 부르기 쉽다. 그러나 내가 가진 편견 속에서 상상력이란 것은 다소간의 일탈을 가리킨다. 내가 아는 작가 박민경은 일탈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녀의 그림은 본인이 가질지도 모르는 흉허물로부터 박탈된 지고지순한 존재를 영원히 기다리는 표식이다. 이는 종교적인 삶의 충만함으로 다가가는 태도가 예술의 진보와 같은 궤를 걷는 한 사례다.

정은민_four fif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53cm_2013
정은민_a floating boy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13

그림책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과 평면 회화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정은민은 양 진영의 동년배 작가들에게 부러움을 살만한 경력을 쌓고 있다. 그녀가 보여주는 작업은 유년 시절에 겪은 사적 경험을 동화라는 외부 텍스트에 결합시키는 과정이다. 그 결과 우리가 보는 것은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품은 환상의 재현이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누구나 아련한 추억의 한 귀퉁이에 머무는 상처가 있는 법이다. 이를테면 불안하고, 지루하고, 부끄럽고, 무서운 순간은 늘 있었다. 이런 경험은 부정적으로 각인되어야 하지만, 작가는 이 또한 부드러운 우화의 동력으로 삼는다.

한승훈_Emptiness Doll_캔버스에 유채_72.7×72.7cm_2013
한승훈_Emptiness Doll_캔버스에 유채_72.7×72.7cm_2013

한승훈이 소재로 삼은 대상은 인형을 수집하는 마니아들이라면 잘 알법한 여자 인형이다. 그의 그림에는 항상 이 인형이 전면에 등장한다. 그렇다면 후면에는? 여기엔 서양의 고전 회화들이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거나, 아니면 그냥 무심히 처리된 배경색뿐이다. 이 그림은 우리를 유혹한다. 캐릭터가 품고 있는 새초롬한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인형이라는 시뮬라르크를 다시 한 번 더 가상의 상황 속에 재현한 그의 그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환한 빛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다만 그 빛과 대응되는 그림자가 있을 터인데, 작가는 왜 굳이 밝은 면만 드러내는지 궁금하다.

홍지철_Extremely Aromatic World_캔버스에 커피, 아크릴채색_259.1×181.8cm_2013
홍지철_Extremely Aromatic World_캔버스에 커피, 아크릴채색, 유채_65.1×90.9cm_2013

홍지철은 커피를 자기 작업의 재료이자 주제로 삼아 그림 그린다. 그의 그림 속에는 커피 생산지(그렇다면 이티오피아)를 연상시키는 아이들이 곧잘 등장한다. 이 흑인 아이들의 표정에는 커피 열매의 수탈이나 노동 착취와 같은 부조리함 보다 경쾌함이 나타난 경우가 더 많다. 이것은 마치 '맛있는 커피를 맛보라'는 키치적인 광고 이미지의 도상처럼 보인다. 이 기호는 흥미로운 동시에 아슬아슬하다. 커피 생산국과 소비국 간의 불균등한 위계질서는 아프리카의 많은 어린이들이 처한 기아와 질병, 전쟁 총알받이보다는 낫다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 그렇지만 이 세상의 모든 무미건조함(김영규)과 흉허물(박민경)과 트라우마(정은민)와 그림자(한승훈)와 부조리함(홍지철)을 인상 쓰며 다 드러낼 필요가 있나? 팝아트가 보여주는 대중문화의 쾌락은 때로는 '겉멋들임'과 '지고지순함'과 '아련함'과 '새초롬함'과 '경쾌함'을 통해 예술의 힘을 우리에게 전한다. 그러니까 일단 우리는 즐기고 볼 일이다. ■ 윤규홍

Vol.20131209d |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