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적 시간 ARCHETYPAL TIME

오정은展 / OHJOUNGEUN / 吳姃恩 / painting   2013_1218 ▶︎ 2013_1227

오정은_untitled_한지에 먹 드로잉_13×13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927g | 오정은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9:00pm / 주말,공휴일_10:00am~07:00pm

갤러리 팔레 드 서울 gallery palais de seoul 서울 종로구 통의동 6번지 1층 Tel. +82.2.730.7707 www.palaisdeseoul.net blog.naver.com/palaisdes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시간이란 직선으로 흐르며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여전히 시간에 대한 그러한 개념은 습관적으로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시간을 시각적으로 나타낼 때는 순차적인 것, 원인과 결과가 있는 하나의 선으로 나타내곤 한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며 되돌릴 수 없다. 가끔 사이언스 픽션이나 오컬트적 장르에서나 최첨단 과학기술 혹은 초현실적인 현상을 통해 가능할 뿐이다. 같은 날, 같은 사건이 두 번 이상 반복되는 것은 순행하는 시간의 법칙을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시간의 법칙이란 것이 우리의 기억과 감각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건의 나열방식이라면 어떨까. 간혹 처음 겪는 일인데도 마치 이전에 한 것처럼 느끼는 데자뷰 현상은 시공간을 초월한 기이한 경험이라 느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미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중요한 코드만 저장, 출력하는기억력의 한계 때문에 일어나는 착각이라고 보기도 한다. 시공간의순서가 뒤바뀌면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영적인 상황으로 해석을 하곤 한다. 그러나 경험과 기억을 원인과 결과의 순으로 순차적으로 저장하지 못하게 된다면 시간에 대한 개념은 사라지거나 달라질 것이다. 즉 사람이 인지하는 시간은 단선적이지만, 실제 시간이란 공간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정은_untitled_한지에 먹 드로잉_13×13cm_2013
오정은_untitled_장지에 물감, 백묵白墨 드로잉_지름 130cm_2013
오정은_untitled_한지에 주묵朱墨 드로잉_130×130cm_2012

반복은 이러한 시간의 인과관계라는 위계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한다. 오정은의 작품 속 패턴 역시 반복적이며,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우리는 세포나 분자 혹은 원자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지 않은 시각에 익숙하다. 오정은의 작품은 원거리와 근거리의 시각적 효과를 달리하여 이런 감각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멀리서는얼룩으로 보이던 화면은 가까이 갈수록 이글거리면서 가는 선들이 드러난다. 다가간다고 해서 극적인 형상의 반전은 없다. 단지 미세 현미경을 들어다 볼 때 같이 예상과 다른 축척의 형상과 마주할 뿐이다. 근거리의 형상은 가는 선으로 촘촘하게 그려진 아메바와 같은 무정형의 이지러진 타원들이다. 섬세하게 반복된 형상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피부의 땀구멍, 세포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듯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반복적인 요소들이 화면에 가득 채워진 것에서 곤충의 애벌레, 물을 먹은 씨앗, 원생동물처럼 생명의 근원에 가까운 형태이면서 꿈틀거리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작품 속의 형상에서 엄청난 무게의 시간이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의미하고 반복적 행위의 연속임을 확인하면서 놀라게 된다. 두통을 일으킬 정도로 정교하고 복잡하게 반복되는 형태는 정교하게 새겨진 어떤 종류의 기록이지만 기록에는 역사도 시간도 의미도 없다. 화면은 그렇게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의 시선 역시 그 안에서 맴돌게 잡아둔다. 작품은 어떤 의미도 담겨있지 않으며 순수한 시각적 효과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미 없는 형태를 반복적으로 그리는 행위는 의도적으로 의식의 배제하여 무엇을 드러내기 보다는 그 의식이 생성되기 이전 최초의 상태로 회귀하려는 의식인지도 모른다.

오정은_untitled_한지에 먹 드로잉_130×130cm_2013
오정은_untitled_부분

오정은의 작품에는 어떤 주제나 내용, 의도된 바를 담지 않는다. 시간과 반복된 노동이 흔적의 작품 안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무의식적손놀림, 그 행위에 대한 집중을 통해 화면을 채워나간다. 마치 서화를 통해 심신을 수련했던 문인들처럼 순수하고 근원적인 것에 몰입하는 행위이다. 혹은 시간을 되돌려 어린이 보다 더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열망이기도 하다. 화면을 채우기 위해 소요되었을 긴 시간과 노동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작은 나뭇잎 줄기들이 큰 줄기의 형상을 닮는 것과 같은 프랙탈 구조처럼, 작은 곡선들은 커다란 곡선들에 속해있는 형태가 계속된다. 거리에 따라 무한하게 반복되는 형상은 자연의 근원적 형상이기도 하다. 근원적 형상의 반복적 기록을 읽으며 삶과 자연에 대해 생각하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 ■ 이수

Vol.20131217f | 오정은展 / OHJOUNGEUN / 吳姃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