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e and Breath

최미애展 / CHOIMIAE / 崔美愛 / painting   2014_0109 ▶︎ 2014_0122 / 일요일 휴관

최미애_Nature and Breath_캔버스에 유채_60.6×91cm_201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3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192 GALLERY 192 서울 종로구 동숭동 이화장길 86-24 Tel. +82.2.745.0180 www.gallery192.com

간결한 형상언어로 표현하는 내면 풍경 ● 우리는 그림을 통해 삶의 공간을 보다 넓은 세계로 확장할 수 있다. 현실이 닫힌 공간이라면 그림은 열린 공간이기에 그렇다. 현실과 다른 조형공간에서는 상상의 날개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 상상의 세계는 경직된 정신 및 감정을 이완시키는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림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그런 위안과 치유의 기능을 제공한다. 최미애의 작품은 현실과 상상을 교묘히 조합하여 보다 자유로운 의식 및 감정의 항해를 유도한다. 현실을 떠나 그림 속에 진입하는 순간, 현실공간으로부터 이탈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그림 속에 숨겨진 여러 가지 조형적인 장치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어뜨림으로써 의식 및 감정이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는 까닭이다. 그러기에 그림과 마주하는 순간 현실과 차단된 꿈의 세계로 진입하는 듯싶은 착각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놓은 조형공간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순수한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자연을 포함하여 우리들의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공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세계는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낯선 곳으로 안내한다. 시적인 정서가 풍부한 서정성은 그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설득력이다. 비록 비현실성으로 꾸며지고 있을지언정 왠지 낯설지 않은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어쩌면 눈에 익숙한 소재 및 소박한 조형언어에 기인하는 감정반응일 수도 있다.

최미애_Nature and Breath_캔버스에 유채_33.3×53cm_2013

그의 작품은 일상적인 삶 가운데서 부딪치고 발견하는 사소한 일들이 내용을 이룬다.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하기 쉬운, 그래서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정서를 매개로 하는 까닭이다. 그의 작품에 제시되는 일상적인 삶이란 현실적인 생활의 모습이 아니라, 자연과 마주하면서 보고 느끼는 감수성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그 자신의 주관적인 심인에 의해 인식하고 감지하는 자연물상과 자연현상임을 알 수 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는 꽃을 비롯하여 새, 물고기, 나비, 잠자리, 무당벌레, 오리, 나무 등 자연 속의 물상은 물론이려니와 주택과 같은 인위적인 물상도 포함된다. 이들 소재가 작품에 따라 이리저리 이합집산하면서 다채로운 이미지를 생산해낸다. 현실에 존재하는 소재들이지만 일단 그의 조형공간에 들어오면 현실성을 상실한다. 형태가 부분적으로 생략되거나 단순화되기 일쑤이고 부분적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을 거쳐 개별적인 형식으로 규합되기에 이른다. 작품의 전체적인 인상은 우화적이다. 꽃과 새 또는 집들이 존재하는 방식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마치 동화 또는 우화에 나오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상은 그의 작품이 문학적인 감수성을 기조로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시적인 함축과 긴장이 있는가 하면 스토리가 있다. 자연과 연관된 일상적인 소소한 사건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시각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지적인 유희를 즐길 수 있는 문학적인 이해의 즐거움까지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최미애_Nature and Breath_캔버스에 유채_33.3×53cm_2013

그의 작품에 대한 첫 인상은 특정의 색채가 지배하는 단색조의 색채이미지이다. 청색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분홍색, 회색이 가세하는 정도이다. 이들 단색조의 색채이미지는 대체로 밝다. 흰색혼합이어서 색채가 순화되는 까닭에 연하다는 느낌이다. 이와 같은 색채이미지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강조하는데 유효하다. 현실적인 색채이미지는 이성적이어서 차갑게 느껴지게 마련인데 반해 순화된 비현실적인 색채이미지는 현실적인 감각을 이탈함으로써 부드럽고 온화하다.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은 현실감각을 차단하는 시각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나른한 느낌의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피어오르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그의 작품과 마주하면 마치 꿈속을 헤매고 있는 듯싶은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렇다. 그는 그림 속에다 자신이 추구하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싶은지 모른다. 그가 지향하는 승화된 현실로서의 이상향은 인위적인 억지스러움이 존재하지 않는 자연 상태의 자연스러움이다. 일테면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다툼이나 질시, 모략이 없는 순연한 자연의 상태가 이상적인 가치로 제시되고 있다. 그 자연의 정서를 상징하는 꽃과 새, 물고기 등과 같은 형상이 어린이의 천진무구한 시각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현실적인 공간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력이나 삼차원의 공간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미적 감성의 유희만이 펼쳐질 따름이다.

최미애_Nature and Breath_캔버스에 유채_20×20cm_2013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화면분할, 즉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를 나란히 놓는 화면의 분할 또는 구획 방식은 개별적인 형식의 요건이다. 물론 두 개의 다른 이미지를 병치시키는 수법은 현대회화에서는 일반적이다시피 됐다. 하지만 소재 및 이미지 구성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의 경우에는 두 개의 다른 이미지가 상충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제거한다. 동일한 또는 유사한 색채이미지를 통해 시각적인 통일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이미지를 하나의 캔버스에 놓음으로써 대립과 긴장이라는 시각적인 효과를 얻는 동시에 이미지의 통일 및 조화의 묘수를 찾는다. 따라서 이미지의 대비로 인한 시각적인 충돌을 교묘히 완화시킨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에서는 아름다운 화합 및 조화라는 시각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상충이 아니라 조화의 개념을 지향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진 두 개의 화면이 나란히 놓임으로써 시각적인 긴장감이 높아진다. 가령 화면 한쪽은 꽃이 자리하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는 물고기가 유영한다. 이처럼 서로 대립적인 이미지가 병립하는 화면구조는 두 개의 개념을 하나로 통합한다는데 의미를 둔다. 양극적이고 상반된 이미지를 동시에 아우르는 것은 대립의 미, 조화의 미 그리고 상생의 의미를 포괄한다. 이처럼 거의 유사한 패턴으로 전개되는 작품의 형식을 통해 통합과 화합, 그리고 조화의 묘수를 보여주려는 것인지 모른다.

최미애_Nature and Breath_캔버스에 유채_20×20cm_2013

그의 작업에서 형태해석은 그림의 전반적인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조형적인 특징이다. 소재 자체에서 느끼는 친근감이야말로 공통의 정서 및 이해를 위해서는 필연적인 선택이다. 특히 어린이의 시각에서도 충분히 좋아하고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소재들에 한정하는 것은 그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미지를 병치시키는 것은 내용의 문제이다. 가령 꽃이 있는 쪽은 밝음을 의미하고 물고기가 있는 쪽은 어둠을 의미한다. 이는 음양의 문제로 해석해도 틀리지 않다. 낮과 밤, 밝음과 어둠, 남과 여, 하늘과 땅, 해와 달, 생성과 소멸 등 자연의 이치는 모두 음양의 대립 및 조화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밝은 쪽의 화면에서는 꿈과 사랑, 희망, 행복, 평화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반면에 어두운 쪽 화면에서는 그 반대의 감정이 느껴진다. 표현된 이미지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거우며 뚜렷한 형태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작품에 따라서는 명확한 이미지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어둡고 침울하며 답답한 느낌이다. 이는 역시 소멸을 상징하는 내용에 따른 표현방법에 기인한다.

최미애_Nature and Breath_캔버스에 유채_60.6×91cm_2013

그는 단순히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미지 및 내용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쪽에서 밝은 쪽으로 나가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는데 의미를 둔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침체에서 상승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소멸에서 생성으로의 변화를 옹호하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긍정의 논리에 바탕을 둔 밝은 이미지가 화면을 지배하는 구조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두움이 있어야 밝음의 존재가치를 더욱 선명히 깨닫듯이 상반된 이미지를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보다 실제적인 이해를 돕는다. 그는 그림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그 자신이 일상적으로 겪는 희로애락의 감정 및 변화가 심상으로 그려지는 셈이다. 그림에 나타나는 이미지가 비교적 단출한데 비해 화면에 표현되는 이미지는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로 꾸며진다. 구체적인 형상언어 대신에 여러 차례 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바탕, 즉 추상적인 이미지에다 많은 이야기를 담는다. 어쩌면 단색조의 색채여서 단조로운 듯싶으나 거기에는 미세한 감정의 표현들이 밀집해 있음을 알게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변화무쌍한 표현적인 이미지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그의 작업이 단순히 이미지의 표현에 그치지 않는 심상의 시각화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형상언어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미세하고 미묘한 감정 및 의식세계를 추상적인 언어로 보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그림을 결코 심심하거나 무료하지 않다. 무언지 알 수 없는 어떤 울림이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그림으로 말하고 싶은 내면의 세계인지 모른다. ■ 신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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