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온 것과 들어간 것

성재현展 / SUNGJAEHYUN / 成在鉉 / painting   2014_0116 ▶︎ 2014_0215

성재현_어떤인연 18_캔버스에 혼합재료_52×80×7cm_20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웨스트엔드 갤러리 WESTEND GALLERY 서울 강서구 강서로 47길 169 웨스트엔드 아트센터 1차 1층 Tel. +82.2.2667.8550 blog.naver.com/westendcafe

나온 것은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들어간 것은 또 나온 것이 아닙니다. 나온 것은 '철(凸)', 들어간 것은 '요(凹)' 그래서 저는 나온 것과 들어간 것을 '철요(凸凹)'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철요'는 사물의 외형을 일컫는 요철의 의미를 포함하면서도 사건을 아우르는 철학적인 의미를 같이 포함할 수 있도록 제가 만든 저만의 이미지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은 대체로 가까워보이고 두각을 나타내는 듯 보입니다. '요'는 멀어져 보이고 작아보이며 희미해 보입니다. 그래서 요철(凹凸)은 우리 옛날 그림들에서 전반적으로 사용하던 실질적인 회화기법이었습니다. 사물의 깊이를 그릴 때 그들은 나온 것과 들어간 것을 구분하여 차이를 만들어내어 이들을 표현했습니다. '요'는 흔히 움푹 들어간 것을 말합니다. '철'은 일반적으로 툭 튀어나온 것을 칭합니다. '요'와 '철'은 보통 반대의 개념처럼 쓰이며 서로 양립하고 있어서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물은 이렇게 대립적이지 않습니다. 사물은 바로 '철요'의 융화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성재현_어떤인연 17_캔버스에 혼합재료_72×99.5cm_2013
성재현_어떤인연 19_캔버스에 혼합재료_52×80×7cm_2014

그러면 나온 것과 들어간 것은 다른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온 것은 들어간 것이고 들어간 것은 나온 것입니다. 곧 나온 것은 들어간 것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들어간 것 또한 나온 것의 부정이 아닙니다. 들어간 것 없이 나온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온 것은 들어간 것을 전제로 해야만 존재가능성이 생긴다는 말이죠. 다시말해 나온 것이 나온 것 자체로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나온 것은 나온 것 자체만으로는 나온 것으로 인식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온 것은 항상 더 나온 것과 덜 나온 것과의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나온 것'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무엇보다라는 비교를 전제하는 것이니까요. 그 사이에서 때로는 평평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은 또한 들어간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들어간 것을 내포하지 않는 나온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 들어간 것 역시 나온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사물은 나와 있으면서 들어가 있는데 전자는 나와 있는 것이 조금 더 많을 때이며 후자는 들어가 있는 것이 좀 더 부각되어 있을 뿐입니다. 다만 나온 것이라 함은 좀 덜 들어간 것으로 인해 나와 있게 되고, 들어간 것 또한 좀 덜 나온 것 때문에 들어간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들어간 것이 되고 들어간 것이 때로는 어느 새 나온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온 것은 들어간 것이고 들어간 것은 나온 것입니다. 반면 또 다른 견지에서 보면 나온 것은 들어간 것도 아니고 나온 것도 아닙니다. 들어간 것 또한 나온 것도 아니고 들어간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나온 것은 들어가기도 하면서 나와있고, 나와있는 듯 하면서 들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온 것이 있습니다. 이번엔 내가 물구나무를 섭니다. 나온 것은 어느새 들어갔습니다. 들어간 것은 이미 나온 것이 되었네요. 나온 것은 나와 있으면서 더이상 나와있는 것이 아닙니다. 들어간 것도 들어가 있으면서 더이상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또 어떤 나온 것이 있습니다. 더 나온 것 옆에서는 갑자기 들어간 것이 되고 비슷하게 나온 걸 만나니 평평한 것이 되었습니다. 약간 들어간 것 옆에 서니 약간 나온 것이 되었고 많이 들어간 것 옆에 가니 더 나온 것이 되었네요. ● 들어간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나온 것이 좋은 것일까요. 앞에서 기술한 이야기를 이해한다면 그 해답은 이미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나온 것과 들어간 것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가 없고 완전히 하나로 묶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은 나온 것이면서 들어간 것이고 들어간 것이면서도 나온 것이 됩니다. 나온 것은 나온 것이면서 이미 나온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죠.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하여 들아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나온 것은 나온 것과 들어간 곳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죠.

성재현_어떤인연 20_캔버스에 혼합재료_52×80×7cm_2014
성재현_어떤인연 21_캔버스에 혼합재료_52×80×7cm_2014

나온 것과 들어간 것, 이들은 이율배반적입니다. 나온 것이 처음부터 나온 것으로 태어나서 소멸할 때까지 나온 것으로 의리를 지키지 않는다는 겁니다. ● 나온 것은 세가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들어갈려는 욕망, 지금 그대로 있을려는 욕망, 더 나오려는 욕망이 그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서로를 향해 움직입니다. 서로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방향으로의 욕망을 가지고 있죠. 나온 것은 항상 그것과 상반된 방향을 욕망합니다. 지속적으로 들어간 것으로 이끌리고 그렇게 되도록 하고자 합니다. 나온 것은 들어간 것으로 평평해지고 싶어하고 들어간 것은 나온 것을 필요로 합니다. 이 양쪽은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안정적인 상태가 되려고 합니다. ● 한 때 나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길 가의 가로수를 보면 항상 거기에 서 있어야 해서 늘 외롭다고 생각했고, 강아지를 보면 내가 저 강아지가 아니어서 자의식이 있는 것을 안도했습니다. 반대로 상대나 대상을 보고 숭고하다거나 위대한 감정을 가질 때도 있었고, 남성과 다른 여성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감정들은 대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련의 감정들은 오직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서 나오는 결과인 것입니다. 내가 대상을 불쌍히 여기거나, 거꾸로 부러워할 때 실제로 그 대상은 불쌍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습니다. 대상은 내가 전자의 느낌을 가질 때도 후자의 마음을 가질 때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을 뿐인 것입니다. 내가 대상을 가엾게 여기는 것을 들어간 것이라 하고 내가 대상을 확대해석할 때를 나온 것이라 본다면 대상은 비록 들어가 보이고 나와 보일지언정 실상은 들어가 있지도 나와 있지도 않은 것입니다. 비록 양자의 성질을 모두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하나의 성질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입니다.

성재현_어떤인연 14_캔버스에 혼합재료_41×53cm_2013
성재현_어떤인연 15_캔버스에 혼합재료_45×53cm_2013

오래전부터 나는 베란다에 여러 종류의 식물들을 심고 물을 주면서 세심히 보살폈습니다. 거기에는 춘란도 있고 풍란도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도 있고 애플민트, 스피아민트도 있습니다. 가끔씩 음식에 넣어먹기 위해 로즈마리도 키웠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베란다 화분에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어느날 아버지는 매일 분무기를 이용해 이들에게 물을 주고 햇볕을 잘 쬐도록 위치를 옮겨주며 보살폈습니다. 나는 그 조그만 화분에서 생명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어린 식물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하지만 문득 어느 날 물을 주시던 나의 아버지는 어느 새 그 자리를 떠나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식물들은 아버지가 안 계신데도 유유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길거리의 가로수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거리에 없는데 가로수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숨쉬며 세상을 만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엾은 식물에 물을 주시던 아버지가 그 물을 먹고 살던 조그만 식물보다 더 가엾은 존재였다는 걸 그 땐 미쳐 몰랐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우리 집에 경사가 났습니다. 저와 사랑하는 아내 사이에 아주 조그맣고 여리게만 보이는 아들이 생겨났습니다. 그의 눈과 귀는 아내를 많이 닮았습니다. 코와 입 그리고 나머지의 인상은 저를 많이 닮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그의 옆 모습과 뒷모습이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떠나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아들의 모습에 머무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가 그 작은 식물들보다 먼저 떠나셨다는 것도 나의 잘못된 인식에서 기인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먼저 떠난 것을 들어간 것이라 하고 나중에 갈 것을 나온 것이라 할 때 실제의 현상에서 먼저 떠난 것과 나중에 떠난 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시작이 없었고, 선후가 없었고, 끝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나온 것과 들어간 것 또한 선후가 있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 존재한 것도 아니고 누가 나중에 존재한 것도 아니고 항상 양자의 특징을 가지고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끝난 것 같지만 시작이고 시작인 듯 하지만 끝이 보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과 들어간 것, 이것은 이렇게 구분되어 보이지만 구분되어질 수 없고 나온 것은 나온 것이면서 나온 것이 아니고, 나온 것이 아니면서 나온 것이 아닌 것도 아닙니다. 들어간 것은 들어간 것이면서 들어간 것이 아니고, 이미 들어간 것도 아니면서도 들어간 것이 아닌 것도 아닙니다. 나온 것은 또한 들어간 것이면서 들어간 것이 아니고, 들어간 것이 아닌 것도 아닌 것입니다. 사물이나 대상은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고 가만히 있지도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그저 우리의 마음이 들어가고 나오고, 멈추고 움직일 뿐입니다. (2013년 12월 스튜디오에서) ■ 성재현

Vol.20140116c | 성재현展 / SUNGJAEHYUN / 成在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