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tleby Street 바틀비 스트릿

한동석展 / HANDONGSEOCK / 韓東奭 / photography.video   2014_0118 ▶︎ 2014_0128 / 월요일 휴관

한동석_Bartleby Street#04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50×120cm_2013

초대일시 / 2014_0118_토요일_07: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175 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club.cyworld.com/gallery175

이번 전시에 선보일 작업을 준비하기 전, 나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남긴 흔적, 혹은 쓰레기들을 사진에 담아왔다. 이를 통해 유용성이 소진된 사물들에게서만 묻어나는 모종의 자유로움과 그 안에서 새로이 샘솟는 생명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색다른 설정에 담아 보다 확장된 의미의 토대 위에서 재구성해보고 싶었다. 나는 곧 허만 멜빌 Herman Melville의 단편소설 「필경사 바틀비 Bartleby The Scrivener」의 주인공인 바틀비를 닮은 거리, 즉 무위無爲의 거리를 상상하게 되었는데, 거리의 전역이 기존의 활동을 멈춘 이곳에서, 종래의 규율과 메시지는 애초의 기능적이며 지시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미지의 영역을 향해 열린, 확정되지 않은, 끝없이 거듭나는 의미의 생성과정 속에 덩그러니 놓이게 된다.

한동석_Bartleby Street#0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8×200cm_2013

이러한 거리를 조성하기 위해 폐기된 도로시설물을 수집하여 부모님이 거주하고 계신 양평 용문산 부근의 인적이 뜸한 숲에 설치하기로 했다. 숲은 매 순간 어떤 방향으로든 발길을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을 간직한, 수많은 갈래의 길들이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거리의 토대, 혹은 피난처, 아니면 모태로 적합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에는 폐허가 된 거리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엿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파괴의 잔해 위에서만 비로소 무언가 거듭나기 위한 토양이 자리할 수 있으리라는 예감을 반영하고 있다.

한동석_Bartleby Street#03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2×300cm_2013

이와 같은 애초의 추상적인 구상을 구체적으로 풀어낼 작업에 대한 생각의 진전은 숲이 주변의 소음과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에 귀 기울이며 비롯되었다. 전기톱 소리, 개짓는 소리, 공사장 소음 등등 서로 무관한, 여러 다양한 지점에서 발생하여 각자의 사연을 간직한 소리들은 숲의 창공으로 모여들었고, 숲은 하늘에서 부유하던 이들을 흡수하듯 서서히 착륙시키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소리들은 숲과 대기의 필터로 여과되고 거리감과 공간감이 덧붙여져 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난 탈속적인 음색을 띠게 되었는데, 이들이 모여드는 지점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화성과 종잡을 수 없는 리듬 속에서 낯선 방언으로 된, 불가해한 노래가 유유히 흐르는 것만 같았다. 이때 숲은 철저히 이 소리들을 방치하는 것만 같았고 이러한 방치의 결과로 그들은 나름의 숙성 과정을 거치며 의미의 도약을 꿈꾸는 것처럼 보였다.

한동석_Bartleby Street#06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8×200cm_2013

생각의 진전에 따라 연출 방식도 변해갔다. 처음에는 숲을 무대로 이질적인 도로시설물들로 이루어진 거리의 모습을 조금은 생경한 느낌으로 재현해보려 했다면, 점차 누군가 숲에 생활 집기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폐기된 사물들을 버리고 간 것 같은, 비교적 자연스럽고 친숙한 느낌의 설정으로 장면을 구성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설치된 오브제들은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뀜에 따라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갔으며 단지 무언가 버려진 상태에 방치된 시간의 흔적이 새로이 더하여졌다. 나는 점차 이러한 환경의 개입, 즉 방치의 효과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며 이를 사진에 담으려 했다.

한동석_Bartleby Street#07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8×200cm_2013
한동석_돌곶이의 연인들_HD_00:06:55_2014
한동석_천공의 성, 용산국제업무지구_HD_00:07:00_2014

결국 「Bartleby Street 바틀비 스트릿」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은 자연의 운명적이며 필연적인 순환과정과 다를 바 없이 어떠한 개입과 참여도 허락하지 않는 행위의 연쇄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물음과 성찰이었다. 더 나아가 이러한 행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하지 않음'을 행하는 것, 즉 무위無爲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해답이라기보다 덧대어진 물음 속에 진정한 무위의 길은 어디에 있는지 고심해 볼 단초를 마련해보고 싶었다. 아마도 대상화된 자연自然이 아닌, 추상적인 의미의 자연, '스스로 연유함'으로 돌아가는 데에, 혹은 애초부터 돌아갈 곳이 없었다면 새로이 탐색해나가는 데에 그 길이 놓여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또 다른 물음표를 머리맡에 띄워본다. ■ 한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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