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나: 나였다가, 나였다가, 나일 것이었다가

2014_0124 ▶︎ 2014_0207 / 공휴일,설날연휴 휴관

김한나_절대에의 갈망_캔버스에 유채_72.5×110cm_2013

초대일시 / 2014_0124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한나_문은주_박찬미_보라리 이윤성_이정은_이주이_한윤희_홍수정

주최 / (주)한국암웨이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0:00am~06:00pm / 공휴일,설날연휴 휴관

암웨이미술관 AMWAY MUSEUM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159번지 암웨이 브랜드 센터 2층 Tel. +82.31.786.1199

나였다가, 나였다가, 나일 것이었다가 ― 서정적 에고이즘의 위기의식 ●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감정이다. 사람들은 불행 그 자체보다 그 불행에서 비롯되는 괴로움의 감정을 더 두려워한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보다 좀 더 예민한 기질을 갖고 있는 예술가들은 자신의 감정에 사로잡히는 성향이 더 강하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초창기에 대개 자기 자신의 문제에서부터 출발하여 작업을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작업의 경계를 확장해나가기 전에 내면의 혼돈을 수습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탄탄하게 다져 놓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점 작업 연륜이 쌓일수록 예술가 자신의 내면세계와 바깥의 세계가 교차하여 넘나드는 범위가 넓어지면서, 작품에 공감하는 타자가 많아지게 되고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다.

문은주_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3
박찬미_기억의 편린-소풍_광목천에 아크릴채색, 콜라쥬_130.3×162.2cm_2011

본 전시의 타이틀인 『나나나: 나였다가, 나였다가, 나일 것이었다가』는 이 전시를 꾸민 9명의 작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여 정한 것이다. 황지우 시인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라는 구절에서 '너'를 '나'로 바꿔서 전시 제목을 정했다. 9명의 작가들은 같은 학교에서 공부했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작품 스타일은 제각기 다르다. 그렇지만 그들의 작품이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직접적으로든 혹은 우회적으로든 결국은 자기 자신, 즉 '나'를 향하고 있다는 점을 이들 작가들은 잘 알고 있었고, 이러한 인식이 전시 제목을 정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핵심을 스스로 표명하게 한 것이다.

보라리_bora201305_폴리에스테르, 와이어_가변설치_2013
이윤성_예술가의 숲_디지털 C-Rrint_23×30inch_2013

이들 작가들의 작품 스타일이 제각기 다르면서도 작품의 궁극적인 핵심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이유는 작품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신의 삶에서 얻은 감정, 이미지, 기억, 관계, 깨달음 등을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김한나, 문은주, 박찬미, 보라리, 이정은, 홍수정 작가가 이에 해당한다. 김한나는 내면의 감정을 추상적이면서도 꿈같이 그린다. 문은주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느낀 관계의 중요성을 동화 같은 이미지로 표현한다. 박찬미는 일상과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해체되고 펼쳐진 형태로 보여준다. 보라리는 오랜 시간을 소요하는 손작업의 과정으로 공간을 채움으로써 시간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이정은은 내면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불안하게 표현된 동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 홍수정은 생물학적 형태로 가늘게 그려진 선을 통해서 내면의 불안한 감정을 이야기한다. 이윤성, 이주이, 한윤희 작가는 작업 전개 방향이 약간 다르다. 이윤성은 일상 사물을 찍은 사진 이미지를 콜라주와 인위적 조작을 통해 이미지의 포맷을 변경하는 매커니즘 자체에 방점을 두고 있으며, 이주이는 기하학적 이미지로 채워진 모듈을 다양하게 조합함으로써 공간 지각 방식의 경계를 더듬는 작업을 한다. 한윤희는 대중매체가 생산하는 이미지 제작 방식을 그대로 미메시스함으로써 역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코드를 읽어내고자 한다.

이정은_마주침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3
이주이_Puzzlegame1_캔버스에 미디어_112×162.2cm, 6.2×6.2×6.2cm×50_2011~13

이와 같이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신이 천착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서술하여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서술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은 결국 이야기하는 사람 자신인데, 이 '나'의 이야기는 결국 공동체, 즉 사회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9명의 작가들이 전시 제목으로 왜 '나였다가, 나였다가, 나일 것이었다가'라는 말을 선택했을까. 그 이유는 이 구절에 결핍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나일 것이었다가'라는 말 다음에는 '알고 보니 결국은 내가 아니었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된다. 내가 사회에서 무엇인가 의미 있고 중요한 존재가 될 예정이었는데 그게 취소되었다는 뜻이다. 결국 이들 9명의 작가들은 전시 제목을 만드는 행위를 통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하나의 비평을 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할 것이 없는 풍요로운 환경 안에서,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개개인이 극심한 결핍과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몇몇 사람들이 큰 소리를 내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히 고통을 감내해 가며 내면에 뒤틀려진 감정을 쌓아갈 뿐이다. '나였다가, 나였다가, 나일 것이었다가'라는 말은 이러한 모순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한윤희_다른 곳으로 가자!_캔버스에 유채_336×162cm_2010
홍수정_Time to grow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3cm_2012

본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얼핏 보기에 매우 시적이고 서정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개개의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엇인가 괴기스러운 형상이 꿈틀대면서 얼굴을 들이밀기 일보 직전이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시적인 서정성과 그로테스크함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작가들의 위기의식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서정적인 서술로 이루어진 에고이즘이 서서히 그로테스크한 무너짐으로 변형되어 가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불안함이다. 이렇게 스스로 작품 표면에 나타나는 불안함은 곧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불안한 현실이 이미지로서 드러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불안함이 예술가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예술가는 이러한 상황을 역설적으로 잘 포착하여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도 있다. 이때 관건은 내면의 불안함에 휘둘리지 않고 이를 잘 다스려서 창조적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느냐이다. 본 전시를 꾸민 9명의 작가들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들의 위기의식과 새로운 모색에 대한 의지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 김정은

■ 부대행사 행사명 / 뚝딱 뚝딱 어린이 공작소 - 나만의 가면 만들기 일시 / 2014_0125_토요일_11:00am 장소 / 스킨케어 룸 강사 / 박찬미 작가

Vol.20140124a | 나나나: 나였다가, 나였다가, 나일 것이었다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