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훈展 / KONGBYUNGHOON / 孔炳勳 / painting   2014_0204 ▶ 2014_0216

공병훈_피에타 상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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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아르스에스 GALLERY Ars'S 대구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1층 Tel. +82.53.668.1600 library.suseong.kr/beomeo

나의 작업은 심리적인 부분이 작용한다. 무언가를 마주할 때 심리적인 거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바라보는 거리로 인해 멀게 느껴지기도,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편하다고 생각해서 마냥 편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고전의 작품들은 우리가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 진다. 인형을 접할 때는 그렇지 않다. 그 상반되는 심리들이 작용하면서 조금은 편하게, 또는 조금은 불편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심리들로 인해서 혼란을 겪는 모순된 심리를 보여주려 한다. 나는 진지하고 엄숙함을 지닌 고전작품의 이미지와 이에 상반되는 친숙하고 친밀한 현대적 이미지에 대하여 작업을 한다. 여기서 고전작품의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서양 미술사에서 흔히 14세기~19세기의 작품을 말한다. ● 현대적 이미지는 대부분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가상이미지, 즉 캐릭터(Character)를 실제 모형으로 만들어 일반인들이 쉽게 또는 친밀하게 접할 수 있는 상품가치를 인정받은 인형이다. 미술사조의 고전 작품들을 차용해 인형으로 재구성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고전의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엄숙하게 되고 조심스러워 진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사람들이 떠들지 못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작품과 마주함으로써 그 시대적 상황이나 당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형이라고 흔히 말하는 장난감 또한 그 시대적 배경이나 사상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만화의 경우, 미국의 사고가 담겨져 있고, 일본 만화의 경우 일본의 사상이나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다. 하지만 고전의 작품과는 반대로 인형을 편하게 대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두 가지의 공통점은 시대적 배경, 사고나 사상을 담고는 있다. 다른 점은 심리적으로 대하는 방식이 한 가지는 편하게 볼 수 있고, 한 가지는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이렇듯이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서로 상반되는 것을 보면서 이중코드를 생각하게 되었다.

공병훈_원반 던지는 사람 상_캔버스에 유채_91×61cm_2013
공병훈_라노이 시청 풍요의 방 장식;예술,철학,풍요,향락 극_캔버스에 유채_116.7×28.5cm×4_2014
공병훈_세례 요한 극_캔버스에 유채_53×40.3cm_2014
공병훈_죽은자에 대한 위대한 행위 극_캔버스에 유채_111.5×145.5cm_2013
공병훈_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극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13

서로 충돌하는 것으로 인해 상반되는 것을 보면서 관람자들은 어떻게 대하는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스스로 생각하며, 어떨 때에는 이게 답 일수도 있고 어떨 때에는 저게 답 일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전에 주장했던 것과 지금 주장하는 것, 또는 이전에 행했던 것과 지금 행하는 것이 상반되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모순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아날로그를 좋아하지만 이미 디지털에 익숙해져, 책 대신 인터넷으로 여러가지 지식을 습득하고, 더디고 느린 아날로그보다 디지털로 인해 조금 더 쉽고 빠르게 생활을 한다. 그런 것을 보고 있으면 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사람은 모두가 자기모순을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이상을 가지고 산다. 나 또한 그렇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모순에 빠져 살고 있다. 일상 속에서 계속해서 삐뚤어진 합리화를 행하고 자기모순을 저지르지만, 끝없이 부인하고 부끄러워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런 악순환을 반복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기모순을 행하는 것은 자기보호본능이라고 한다. 자신의 합리화를 위해서 행하며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 공병훈

Vol.20140204b | 공병훈展 / KONGBYUNGHOON / 孔炳勳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