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유명가 가평요

검은 달항아리와 그 이후展   2014_0205 ▶ 2014_0217 / 백화점 휴점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 김시영_김자인_김경인

관람시간 / 10:30am~08:0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롯데갤러리 본점 LOTTE GALLERY 서울 중구 소공동 1번지 롯데백화점 본점 12,14층 Tel. +82.2.726.4456 store.lotteshopping.com

고려 이후 한국에서 맥이 끊긴 흑자의 유일한 흑자도예가, 청곡 김시영 ● 우리나라 흑자의 시작은 도자사학자들 사이에서 설로 분분히 남아있다. 고려시대에 시작되어 조선시대 말기까지 오자기, 석간주 등으로 불리며 청자와 백자 가마터에서 부수적으로 만들어지며 명맥을 유지하다, 근대에 현대도자의 유입으로 쇠퇴했다는 주장(호림박물관/黑磁, 검은빛을 머금은 우리 옛 그릇, 2010)과 기원전 4-5세기 제기로 쓰이는, 흑도라고 불리는 검은 도기로 시작하여 통일신라 말경에 청자 가마에서 흑자를 만들었으며 고려를 거쳐 조선으로 들어서며 차츰 명맥이 사라졌다는 주장이 있다.(정양모/가평요 흑유자에 바라는 마음,1997) 더불어 서기 9세기 가장 이른시기의 가마터로 사적 338로 지정된 전라남도 영암군 구림마을 가마터에서 검은 시유도기 파편이 발견되었다는 발표도 있다.(이화여자대학교, 2000) 이런 주장들 사이에서 우리나라 흑자의 공통점은 청자나 백자 가마에서 부수적으로 만들어지다 역사 속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흑자는 흑색, 적갈색의 상태에 머물렀기에 음색으로 터부시 되었고 그로 인해 일상에서는 쓰기 힘들었고 더 이상 발전을 못 하고 맥이 끊기게 된 것이다. ● 하지만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에서는 흑자, 천목으로 불리며 현재까지 계속 발전되며 도자기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자기로 평가된다. 흑색, 적갈색에 머문 것이 아닌 검은 색 속에 숨어있는 색상을 요변이라는 무늬와 색상으로 표현하며 발전되었다. 특히나 송나라의 요변천목은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 일본의 국보가 된다. 청자, 백자, 분청과는 다르게 흙과 불로 도자표면색상의 변화가 무궁무진하기에 더욱 아름답지만, 그 희소성 때문에 누구나 범접할 수 없는 도자의 영역이 바로 흑자이다. ● 현재 우리나라에 흑자만을 전문적으로 고집하며 작업하는 작가는 청곡 김시영뿐 이다. 흑자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청자나 백자, 분청을 작업하며 흑자 작업을 조금씩 시도하는 작가들은 많지만, 모두들 1300도 이상의 고온 소성과 예민하고 미세한 불의 변화로 도자의 표면이 안개같이 캄캄 한 빛이었다가, 순간 오색찬란한 영롱한 빛으로 바뀌기에, 반복적인 고배를 마시며 흑자 외길을 포기하고 고집하지 못하는 것이다. 알피니스트가 미답봉을 오르듯 아무도 오르지 않는 흑자라는 산을 오르는 작가 김시영에게 흑자로의 등반은 필연적인 것일 지도 모른다.

불의 연금술사, 검은 도자기와 씨름하다 ● 삼성의 한문 로고가 되었던 '두남체'의 창시자인 고 '두남 이원영' 선생의 먹을 갈던 초등학생 김시영은 먹의 고요하며 깊은 빛깔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장인이 되고자 다짐한 청년 김시영은 1974년 용산공고 금속과에 들어가 용광로의 화염을 접하게 되었고 연세대학교 금속공학과에 들어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물질을 만들고자 했다. ● 김시영은 연세대학교 산악부에 입회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흑자와 결정적 조우를 하게 된다. 태백산맥 29박 30일 종주 중 화전민 터에서 발견한 검은 도자파편은 김시영에게 검은 색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입사하지만 검은 도자기에 대한 그의 열망은 깊어만 갔다. 대기업을 사퇴하고 도자기 시험연구소에서 흙과 불에 대한 과학적인 실험을 한 그는 이천에 있는 한 세라믹 회사의 공장장이 되어 흙과 불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다. 그러며 노 도공들에게 귀동냥으로 도자의 흙과 불에 대한 연구를 심화한다. 우리나라보다 흑자가 발전된 중국과 일본의 자료를 연구하고, 그들의 재료를 키스트(KIST, 한국 과학 기술 연구원)에 의뢰하여 분석하기도 했지만 흑자의 비밀은 풀리지 않는다. 검은 빛깔을 내는 철분은 카멜레온 같기에 종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1989년, 김시영의 고향이자 조선 중기 양질의 흑자 산지인 가평에 가마를 짓고 그 동안의 연습기간을 거쳐 드디어 흑자에 투신하기에 이른다.

김시영_공작흑유대호_50×40cm
김시영_흑유달항아리_39×36cm
김시영_흑유달항아리3

1983년 대학시절 유럽 알프스산맥의 '드류' 서벽 등반 중 조난이 되어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던 김시영의 생명력, 악바리 근성은 흑자 연구의 어려움을 견디게 한다. 아무도 하지 않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연구는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미답봉을 오르듯 호기심과 경외의 마음으로 유약을 바꾸고 가마의 로드를 수정하길 십여년,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흑색과 적갈색이 나는 흑자의 재현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발전한 천목을 완벽히 재현하기에 이른다. 더 나아가 그만의 독특한 색상을 창작해 내어 세상 그 누구도 만들지 못하는 빛깔과 무늬를 불로 만들어 낸다. 검은 도자기 모두를 흑자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흑자는 검은색이 포용한 다채로운 색상이 요변(窯變)으로 표현되는 것이고 김시영은 그 색상을 불러내는 불의 마법을 부린다. 혹자는 김시영을 '블랙홀의 연금술사'라 칭한다. 모든 것은 빨아들여 검고 깊은 블랙홀 속에서 삼라만상의 색을 이끌어내기에 붙여진 별칭이다. 그만의 독특한 빛깔을 만들기 위해 가마 연구를 반복한 탓일까? 기도 점막이 모두 말라 무호흡증으로 또 다시 생사를 오가는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흑자를 향한 정신력으로 100km마라톤을 완주하며 정신 무장을 하는 그는 오늘도 미래의 도자기 빛을 위해 가마를 땐다.

김시영_요변천목다완_5.5×13cm
김시영_서가흑유다완_7×13cm

생업을 포기하고, 생사를 오가며 연구한 흑자, 일본에서 먼저 평가받아 ●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인 정양모 선생은 1997년에 가평요 흑유자에 바라는 마음을 글로 표현했다. 학구적이고 수도자의 자세로 작업하는 김시영이 만들어내는 흑자를 '검은 대지에 잔잔히 피어난 꽃들과 같다'고 말하며 김시영이 공학도 도예가기에 흑자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명장 제도의 전신이 된, 한 분야의 최고 장인에게 주어지는 '경기으뜸이'의 칭호에 1999년 최초로 선정되기도 했다. 일본의 경매회사들이 참고하는 '일본구락부명감' 에서는 그의 찻잔 하나가 100만엔(원화 환산 약 1000만원)에 책정되기도 했다. 임창열 경기도지사가 부임하던 때 경기도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김시영의 흑자가 스페인을 비롯한 각국 원수에게 선물되기도 했다. 그의 끊임없는 연구가 결실을 맺는 듯 보였다. ● 하지만 김시영 흑자의 갈 길은 여전히 험하다. 힘겹고 고된 작업여정으로 인하여 작업하는 이가 없어,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이 또한 없다. 그 누구도 가치를 알아주지 못하고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흑자의 일인자로 평가 받은 지는 오래지만 도자 영역 밖의 대중에게 김시영의 흑자는 너무나 생소하다. 고진 땀방울로 일군 작품의 깊이 보다는 대중에게 익숙한 작품이 인정 받는 현 시대는 김시영에게 가혹하다. 이번 롯데갤러리에서의 전시는 흑자 외길을 걸어온 그의 작품이 오롯이 대중에게 예술성으로 인정받는 자리가 될 것이다. ● 임진왜란에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 도자 문화를 꽃피운 심수관가문의 15대손 심수관은 한국의 현대 도자를 걱정했다. 고려시대엔 고려 청자, 조선시대엔 이조 백자가 유행하며 도자 문화를 꽃 피웠지만, 현대엔 이전 시대의 도자기를 답습할 뿐 현 시대를 대표하는 도자문화가 확실히 없다는 것이다. 김시영의 흑자를 본 그는 시대에 따라 흥망성쇠하는 도자기들 사이에서 현대를 대표하고 미래로 발전될 도자기가 김시영의 흑자가 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한다고 밝혔다.

김시영_공작흑유찻잔
김시영_해수흑유차도구

고려 이후 맥이 끊긴 흑자연구, 두 딸에게 대물림 ● 김시영 흑자는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흑자의 역사를 밝히고 미래의 아름다움을 이끌어갈 도자기이다. 미래를 이끌어갈 도자기라는 사명감 때문에 김시영의 어깨는 무겁다. 전통에만 머무를 수 없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빛깔과 형태를 찾아 헤맨다. 쓰임이 있는 공예품에서 발전시켜 화염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시도하는 김시영은 도자회화와 도자조각으로 작업의 영역을 확대해간다. 조소를 전공한 두딸 김자인(28세, 이화여대 조소과 졸), 김경인(24세, 서울대 조소과 재학)도 아버지의 장인정신과 빛깔을 대이어 간다. 유년시절부터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흙을 채취하기 위해 아빠와 함께 가평의 이 산 저 산을 누빈 두 딸이다. 미술사에 있어 공예와 다른 순수미술을 전공한 그들에게 아버지의 작업은 숭고이자 안타까움이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불의 심판을 받아야 태어나는 김시영의 흑자는 삶의 집약체이다. 그림, 조각,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큰딸 김자인에게 흑자뿐 아니라 도자기는 아주 귀중한 것이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청자하이힐의 작업에서 발전하여 숭고함으로 여기는 아버지의 빛깔을 담은 구두를 선보인다. 작은 딸 김경인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흑자의 빛깔을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김시영 흑자를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앙증맞은 조형물로 재해석하는 작품을 선보일 것이다. 가히 흑유명가를 이룬 것이다.

김자인_신을 수 없는 하이힐_19×14cm_2012
김자인_신을 수 없는 하이힐_각 19×14cm_2012
김경인_서가흑유사과_9×8cm

이번『흑유명가 가평요전-검은달항아리와 그 이후』에서는 고려시대 이후 맥이 끊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우리나라 흑자를 재현한 김시영의 초기작부터, 오랜 연구로 탄생한 작가 고유 유색의 김시영흑자, 그리고 흑자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2세들의 작품으로 한국의 흑자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 음색으로 치부되어 우리나라에서 발전하지 못 한 흑색과 적갈색의 전통 흑자 속에 숨어있는 삼라만상의 색상, 일반화 되고 답습된 도자 문화에 익숙해져 새로운 도자를 두려워하는 대중에게 신선함의 충격을 선사할 김시영의 흑자는 새로운 미래를 대표하는 도자기가 될 것이다. 한-중-일의 흑자 문화에 한류바람을 일으킬 김시영의 흑자를 한류문화를 선도하는 롯데갤러리에서 선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름답지만 생소하기 그지없는 김시영의 흑자세계를 대중에게 알리고, 미래의 도자문화를 세계에 보여줄 롯데갤러리 전시를 기대해본다. ■ 롯데갤러리

Vol.20140204c | 흑유명가 가평요-검은 달항아리와 그 이후展